황성에서 폐황령을 내린 뒤 서울은 완전히 개방되었고 많은 무인들이 출입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이 순간 서울 동부의 번화한 거리 위에는 무인들이 거들먹거리면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그들 중 일부는 문벌 출신이고 일부는 세가 출신이며 또 다른 별 볼 일 없는 문파 출신도 있었다.수많은 무인들이 오가는 가운데 노인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보였다.노인은 50대로 보였는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두 손에 굳은살이 가득한 걸 보니 무인이 틀림없었다.그의 곁에는 어린 소녀 한 명이 있었다.소녀는 머리를 묶었고 피부가 구릿빛이라 아주 건강해 보였다.두 사람은 누가 봐도 타지에서 온 무인이었다.그들은 짐을 메고 걸으면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할아버지, 서울의 닭도리탕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저 닭도리탕 먹고 힢어요!”소녀는 걸으면서 노인에게 말했다.닭도리탕을 먹은 뒤 소녀는 가게 앞에 앉아서 오가는 무인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할아버지, 왜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서울에 모여든 걸까요? 대체 어떤 대단한 인물이 초대한 걸까요?”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끊임없이 보이는 무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백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종문이 나서서 초대한 거라고 해.”“종문이요?”소녀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란 듯했다.“그래. 너도 알다시피 우리 화진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고 3대 서열은 오랜 역사가 있어. 3대 서열 중 가장 강한 건 바로 종문이지. 그런데 종문에서 아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우리와 같은 무인들은 당연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노인이 말했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소문에 의하면 종문의 강자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던데 만약 그 사람들을 만난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소녀가 말했다.“음? 하지만 할아버지, 종문 사람들이 그동안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걸까요?”소녀가 궁금한 듯 물었다.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손녀
칠수방을 이끄는 사람은 안희정이었다.안희정은 비록 나이가 아주 많았지만 얼굴을 통해 젊었을 적 매우 아름다운 미인이었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어르신, 저희 언제 6종 회의에 참석해요?”질문을 한 사람은 아주 늘씬한 여성이었다. 여자는 매우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 그녀는 안희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절정 기운을 지닌 안희정은 덤덤히 대꾸했다.“내일이라고 하던데.”“저희 정말로 구주왕을 상대하는 건가요?”늘씬한 여자가 다시 물었다.질문을 받은 노인은 음산한 눈빛으로 말했다.“구주왕은 안하무인이고 우리 3대 서열조차 안중에 두지 않아. 그렇게 건방진 놈에게는 교훈을 줘야 해.”“하지만 어르신... 전 그 사람이 꽤 좋은 사람처럼 보였는데요. 지난번에 절 난처하게 하지도 않았고요.”이때 갑자기 요염한 여자가 걸어왔다.자세히 보니 그녀는 바로 흑여산맥에 나타난 적이 있었던 칠금채 중 한 명인 차비연이었다.“어머, 넷째 언니. 설마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니죠?”다른 요염한 여자가 걸어 나오면서 차비연에게 말했다.차비연은 키득대며 웃었다.“좋아하면 뭐 어때? 그 사람은 잘생긴 데다가 실력도 아주 강하다고. 그런 멋진 남자를 세상에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어?”“뭐 일리 있는 말이네요. 그런데 그 남자 정말로 그렇게 잘생겼어요?”“일곱째야, 내가 이제 구경시켜 줄게. 보면 알 거야.”“그래요? 그러면 우리도 같이 데려가 줘요!”다른 여자들도 웃으며 차비연에게 다가갔다.“다들 그만해. 지금은 중요한 일부터 처리해야 해!”이때 그들을 이끌던 안희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녀가 명령을 내리자 다들 조용해졌다.“그거 아니? 소문에 따르면 현문과 자운각 모두 패배했다.”안희정이 갑자기 말했다.안희정의 말에 여자들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현문과 자운각은 항상 나서길 좋아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차비연이 말했다.“넷째 언니 말이 맞아요. 현문의 도자인지 뭔지 하는 놈은 자기가
선두에 선 사람은 미륵불처럼 생긴 살심스님이었다.“만불종 스님이셨군요!”안희정은 살심스님을 보고 말했다.살심스님은 웃는 얼굴로 합장하면서 말했다.“하늘을 관찰해 보니 귀인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칠수방의 여러분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만불종은 칠수방과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네요.”안희정이 말했다.“그렇네요.”“이번에 6대종문 모두 한자리에 모일 텐데 우리 화진 무도의 경사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천도궁과 서요산 검종은 언제쯤 도착할지 모르겠습니다.”살심스님이 웃으며 말했다.“서요산 검종이요? 설마 서요산 검종도 오는 겁니까?”안희정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화진의 종문 중에서 가장 강한 건 서요산 검종이었다.소문에 따르면 서요산의 저력은 무도 성지 곤륜과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비록 모두 종문이지만 현문, 자운각, 만불종, 칠수방, 그리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천도궁은 서요산 검종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번 6종회의에 서요산 출신의 사람이 올 거라고 합니다. 게다가 검선이라고 합니다.”검선?그 말에 칠수방 사람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아무도 그 검선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살심스님이 말했다.안희정이 대꾸했다.“어째 됐든 서요산에서 사람을 보낸다는 건 우리 5대종문과 같은 편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일리 있는 말씀입니다.”“이번에 6대종문이 동맹을 맺는 건 정말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네요. 게다가 이건 전부 그 구주왕 때문이죠!”살심스님이 갑자기 감개하며 말했다.그는 또 갑자기 말했다.“어르신, 칠수방은 구주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안희정은 고개를 저었다.“6년 전 곤륜에서 그가 구주왕이 되었을 때 우리 칠수방에서는 사람을 보내 참석시킨 적이 있습니다. 우리 칠수방은 구주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맞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아는 점은 실력이 엄청나며 아마도 무도 성지인 곤륜 출신이라는 점뿐입니다.”
바로 이때 발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 보니 6대종문 현문 사람들이었다.현문의 도자 손형재를 필두로 현문의 강자들이 있었다.갑자기 나타난 현문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심스님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현문에서도 왔군요.”현문 사람들은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이러한 상황에 만불종의 살심스님은 조금 머쓱했다.“폼 잡기 좋아하는 멍청이들.”차비연이 중얼거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안희정을 바라보았다.“어르신, 우리도 들어가요.”“그래!”그렇게 칠수방과 만불종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그곳은 문씨 일가 소유의 땅이었다.커다란 대전 안, 칠수방과 만불종 사람들은 그곳에 도착한 뒤 현문, 자운각, 문씨 일가 사람들이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는 걸 보았다.화진의 6대종문 중 이미 네 개의 종문이 도착했다.오직 천도궁과 가장 유명한 서요산 검종이 없었다.“문씨 일가에 찾아오신 칠수방을 환영합니다!”이때 정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던 문창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인사를 건넸다.검은 장포를 입은 그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안녕하세요, 가주님.”안희정이 입을 열었다.“자리에 앉으시죠.”“감사합니다!”그렇게 칠수방의 사람들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다들 자리에 앉은 뒤 문창정이 그제야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일이 바로 6종 회의 날입니다. 오늘 우리 문씨 일가가 여러분들을 대접할 테니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가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6대종문 중 네 개의 종문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천도궁과 서요산 검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요.”이때 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가 말을 꺼내자 문창정은 웃으며 말했다.“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우리 화진 무도 서열을 위해서라도 천도궁과 서요산 검종이 반드시 오실 거라고 믿습니다.”“흥!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서요산 검종은 줄곧 우리 다섯 종문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특히 수십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늙은 괴물들이 얼마나 강할까? 문창정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였다.“하하! 좋아요! 현문과 자운각의 조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번에 우리 무도 3대 서열은 드디어 안심할 수 있겠어요!”...바로 이때 두 사람이 오래된 저택 앞에 나타났다.자세히 보니 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공수이와 정태웅이었다.“태웅이 형님, 칠수방 사람들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세요?”공수이는 그곳에 도착한 뒤 눈알을 굴리면서 눈앞의 저택을 바라보며 물었다.“물론이지! 내가 직접 암부의 첩보를 확인해서 알아낸 사실이라고. 게다가 조금 전 오는 길에 무인들 말 못 들었어? 여신들이 이쪽으로 날아갔다잖아. 그러니 틀림없이 칠수방의 예쁜 여자들일 거야!”정태웅이 말했다.정태웅의 말에 공수이는 곧바로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그러면 뭘 더 기다리는 거예요? 예쁜 누나들을 찾으러 가죠!”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찾긴 뭘 찾아? 여기 보초를 서는 사람이 있는 거 안 보여?”정태웅이 공수이를 잡았다.‘응?’“안 들어가면 어떻게 칠금채를 찾아요?”공수이는 정태웅이 자신을 끌어당기자 원망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정태웅은 교활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면서 말했다.“당연히 몰래 들어가야지. 이렇게 대놓고 들어갔다가는 다들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 거라고!”“뭐가 두려운 거예요? 어차피 종문 놈들은 우리 구주 형님을 해칠 생각이잖아요. 이참에 그들을 전부 죽이면 얼마나 좋아요?”공수이가 말했다.공수이의 말을 들은 정태웅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종문은 윤구주를 처리하려고 했다.만약 두 사람이 종문 사람들을 전부 해치운다면 윤구주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비록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태웅은 공수이의 실력이 조금 의심되었다.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공수이에게 말했다.“수이 동생, 빌어먹을 종문 놈들을 이길 수 있는 게 확실해?”“당연하죠! 태웅이 형님, 절 믿어요. 전 무적이라고요! 아니, 구주 형
눈앞의 문씨 일가의 병사들은 모두 대가 수준이었지만 공수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퍽퍽퍽!한 주먹에 한 명씩,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명의 대가들은 전부 공수이에게 죽임당했다.그들을 다 죽인 뒤 공수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태웅이 형님, 우리 들어가서 예쁜 누나들을 찾아요!”정태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을 본 정태웅은 침을 꿀꺽 삼틴 뒤 눈을 빛내며 말했다.“오늘 어쩌면 수이 동생이 종문 놈들을 전부 죽일지도 모르겠어!”말을 마친 뒤 정태웅은 서둘러 공수이를 따라갔다.두 사람이 오래된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문씨 일가의 병사들이 그들을 막아섰다.“이놈들! 누군데 감히 남의 저택에 침입한 거야?”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난 여자를 찾으러 온 거야.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공수이는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건방진 놈! 감히 이곳에서 행패를 부려? 죽여!”사람들을 이끌던 문씨 일가의 보초병이 명령을 내리자 다른 이들이 일제히 공수이를 공격했다.문씨 일가의 보초병들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자 공수이는 화가 났다.“죽고 싶어? 그렇다면 전부 죽여주지!”공수이는 말을 마친 뒤 갑자기 온몸에서 금빛을 내뿜으며 주먹을 휘둘렀다.그의 공격은 영원히 과감하고 직접적이었다.그가 주먹을 휘두르자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것 같았다.안타깝게도 보초병들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잠시 뒤 보초병 수십 명이 모두 피바다 위로 쓰러졌다.전부 죽었다.공수이는 문씨 일가 보초병들을 전부 죽은 뒤 허리 위에 손을 올리고 대전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종문 놈들아! 내가 죽여줄 테니 당장 나와!”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대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떤 놈이 감히 이곳에서 건방을 떠는 것이냐?”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강자들이 대전에서 나왔다.종문 사람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문창정을 필두로 뒤에는 현문, 자운각,
공수이가 말했다.“집을 지키는 개 같은 자식들, 누가 감히 날 막으래?”공수이의 말에 문창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거기 늙은이, 당신 종문 사람이야?”공수이는 문창정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문창정은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대답했다.“아니다!”“아니라면 꺼져. 난 오늘 종문 놈들을 찾으러 온 거야. 그러니까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성가시게 만들지 말라고.”공수이는 상대가 누군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오늘 예쁜 여자를 찾으러 온 것이고 종문 사람들을 상대하러 온 것이었다.“거기 스님, 종문 사람들은 왜 찾으려는 거야?”음산한 목소리가 자운각의 젊은 주인 현지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빌어먹을 종문 놈들이 감히 우리 형님을 해치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죽이러 온 거야!”공수이는 직설적으로 말했다.그 말에 종문 사람들은 전부 어처구니가 없었다.종문은 화진에서 가장 강했고, 수많은 무인들이 경배하는 신화 같은 인물들이었다.그런데 공수이는 감히 종문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 말했다.“하하하하! 정말 건방진 스님이네. 감히 이곳에 와서 종문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현지욱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머리에 피도 안 마른 스님이 감히 우리 4대종문 앞에서 건방을 떨어?”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이때 앞으로 과감히 한 발짝 내디디면서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왜? 안 돼? 안 되면 뭐 어쩔 건데? 깜빡하고 얘기하지 못했네. 내 법명은 나최고야. 어때?”공수이는 웃으며 말했다.“너...”성격이 난폭한 현문의 도자는 공수이를 공격하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칠수방의 차비연이 갑자기 나서면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스님, 우리 종문을 어떻게 혼쭐내줄 거야?”공수이는 차빈연을 보더니 곧바로 눈을 빛냈다.“와! 정말 아름다운 누나네요!”차비연은 칭찬을 듣자 몸을 뒤로 젖히면서 크게 웃었다.심지어 가슴까지 떨릴 정도였다.공수이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스님, 내가 묻잖아. 왜 대답하지 않는 거야?”차비연이 다시 말했다.공수이는 그제야
“예쁜 누나, 누나도 종문 사람이에요?”공수이는 차비연 등 사람들에게 물었다.“그래.”차비연이 대답했다.“참, 스님. 아까 종문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 했지? 무엇 때문이야?”차비연은 궁금한 듯 물었다.차비연은 이상한 스님인 공수이가 흥미로웠다.공수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네. 종문 사람들이 우리 형님을 해치려고 하니까요!”“형님? 누가 네 형님인데?”차비연의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물었다.“제 형님은 구주왕이에요!”공수이가 말했다.‘뭐?’“네가 구주왕의 동생이라고?”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문창정도 마찬가지였다.공수이는 그렇게 말한 뒤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예쁜 누나들, 두려워하지 말아요. 전 누나들이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달라요. 딱 봐도 나쁜 사람이에요.”“하하하하!”칠수방의 미녀들은 공수이의 말에 다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몸을 뒤로 젖히면서 깔깔 웃었다.“이 스님, 정말 재밌네.”“맞아요. 게다가 말하는 게 너무 웃겨요.”칠수방의 미녀들은 공수이를 칭찬했다.현문, 만불종, 자운각 사람들 모두 안색이 어두워졌다.“빌어먹을 스님, 감히 우리를 욕해? 죽고 싶어?”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제일 먼저 나서서 호통을 쳤다.“왜요? 안 돼요? 내 몸에 달린 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데 당신이 뭔 상관이에요?”공수이는 종문 사람들을 무시했다.그는 오늘 종문 사람들을 죽이러 온 것이다.“대머리, 죽어!”현문의 도자 손형재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면서 공수이를 공격했다.그 두 주먹이 응축되었다. 무홍의 기운이 나타나면서 거대한 검은색 주먹이 모습을 드러냈다.“죽어!”검은색 주먹은 엄청난 힘을 지닌 채 공수이를 향해 날아들었다.현문의 도자 손형재는 남궁서준에게 패배한 뒤 줄곧 체면을 되찾고 싶었다.오늘 그는 종문 사람들 앞에서 가장 강한 공격으로 단숨에 공수이를 죽여서 체면을 세우고 현문의 위엄을 되찾을 생각이었다.그러나 그의 판단은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