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제 알겠어.”“네 말은 저하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절대 그 여자 귀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거지?”정태웅이 물었다.“당연하지.”“만약 그 여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우리 화진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천현수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정태웅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전임 군왕이 죽고 새 군왕이 이미 군림한 상태다.만약 지금 ‘구주왕’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퍼지기라도 하면 화진 전체가 크게 요동칠 것이다.그러면 10국까지 흔들리게 된다.그 원인이라면 윤구주는 9주의 군신이었고 한 개 군으로 10국을 대적하면서 10국의 국경을 안으로 수만 리 줄이게 한 제일 용자였기 때문이다.하여 윤구주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은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늑대야, 우리 지금 어떡하면 좋을까?”정태웅이 얼른 물었다.“형님이 전보에서 우리더러 비밀리에 강성으로 올라와 만나러 오라고 하셨어.”천현수가 말했다.“진짜야? 정말 저하를 만날 수 있는 거야?”정태웅은 이를 듣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래.”“잘됐어. 정말 너무 잘된 일이야. 더는 저하의 능묘를 지키지 않아도 되겠네. 흑흑.”정태웅은 이렇게 말하더니 서러움에 엉엉 울기 시작했다.코를 훌쩍이는 정태웅을 보고 천현수는 정말 한 발 걷어차고 싶었다.“됐어. 이 뚱땡아, 그만 울어.”“지금 바로 암부로 가서 소대 이상의 간부에게 중무전에 집합하라고 전해.” “그리고 내 명령도 하달해. 동경, 서경, 남경, 북경의 40만 암부 엘리트들은 일체 업무를 중단하고 무장 대기하라고.”천현수가 말했다.정태웅이 이를 듣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늑대야, 설마 전쟁이라도 하려고?”“정말 그래야 한다면 하면 또 어때? 전에 저하를 따라서 산전수전 다 겪어봤는데.”“하하하하!”“난 정말 너의 이런 악바리가 마음에 든다니까. 그래 좋아. 손에 피를 안 묻힌 지 꽤 되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던 참인데 잘됐네.”정태웅이 이렇게 말하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천현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서울
원성일은 서른 살이 되어서야 한 신급 귀인을 만나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그렇게 고작 몇 년 사이에 그는 한 지역을 이끄는 거장이 되었다.더우기는 서경에 이름을 날린 천하회를 직접 창설했다.천하회에 대가급 경지에 오른 고수만 해도 10명 남짓하다고 한다.이로써 천하회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될 것이다.옆에 앉은 늙은이가 이렇게 말하자 원성일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차창으로 강성의 고층 건물을 내다보며 말했다.“강성 참 오랜만이네.”“회장님, 도대체 누구 결혼식에 참석하시길래 이렇게 직접 오시는 거예요? 너무 과분한 처사 같은데요.”입을 연 늙은이는 민태오였다. 민태오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원성일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몰라. 하지만 정연이가 그러더라고. 윤구주는 이미 신급 경지에 다다른 고수라고. 게다가 암부의 3대 지휘사인 호존도 그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린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궁금해서 와본 거야.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암부 호존, 민도살이요?”“그래.”민태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넋을 잃었다.“대박! 화진에서 호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호존도 굽신거릴만한 사람이 과연 누굴지 저는 예상이 안 가네요. 천하에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요?”원성일이 웃으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예전에 천하에 이름을 날리던 그 사람(인왕) 외에 호존 민규현이 이렇게 존경을 표할 만한 사람이 누굴지 나조차도 예상이 안 가.”“그래서 이렇게 직접 강성으로 온 거야.”이에 민태오도 침묵을 지켰다.한참이 지나서야 민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 화진의 그 분(인왕), 정말 전사하신 걸까요?”“맞아.”원성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먼곳을 바라봤다.“이번에 정연을 강성에 보낸 것도 그분의 유품(구주령)을 찾기 위해서야. 은혜를 입은 적도 있고 그분 덕분에 천하회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거야.”“내게 그분(인왕)은 은인과도 다름없는 존재야.”“더우기는 우리 천하회의 은인
용인 빌리지.천하회 사람이 강성시로 입성하고 있을 무렵 윤구주는 박창용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윤구주의 결혼은 천하의 축복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윤구주는 신분을 노출하면 안 되기에 일단 먼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축복하러 왔다.그 속엔 창용 부대, 서울 암부, 그리고 강성 제일 갑부 주세호와 곧 도착하는 천하회가 있었다.박창용은 윤구주와 앉아 과거를 회상했다.정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천하회의 노정연이 서양과 마 선생을 데리고 들어왔다.“저하, 이 사람들은 누구죠?”박창용은 전에 문어구에서 노정연과 그 일행을 본 적 있었지만 그들이 무슨 신분인지 몰랐기에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이분들은 서경 천하회 사람들이네.”윤구주가 덤덤하게 말했다.“천하회요? 설마 원성일의 부하예요?”박창용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그래 맞아.”“이상하네? 서경 천하회 사람들이 왜 저하 곁에 있어요?”박창용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그는 천하회와 같은 신분은 윤구주와 알고 지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의아해한 것이었다.“말하자면 기네. 하지만 천하회도 그때 우리 화진을 위해 공을 세웠고 명성도 꽤 좋은 편이지 않은가.”윤구주의 말에 박창용이 고개를 끄덕였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천하회가 최근 빠르게 크고 있긴 하지만 그때 우리 화진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우긴 했죠.”박창용은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했다.“아참, 저하, 갑자기 생각난 게 있습니다. 전에 설국의 난을 평정하실 때 원성일을 구해준 적 있지 않으신가요? 맞죠?”그때 설국의 마귀산에서 일어난 전쟁은 박창용이 이끄는 창용 부대가 진압했기에 박창용은 잘 알고 있었다.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때 원성일의 목숨을 구해주긴 했네.”“하하, 그래서였군요.”윤구주가 박창용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노정연이 어느새 앞으로 다가왔다.“윤 선생님을 뵙습니다.”“사령관님을 뵙습니다.”노정
“당연하죠.”박창용이 웃으며 말했다.“윤 선생님, 사령관님 감사합니다.”“회장님께서 사령관님이 윤 선생님과 같이 계신 걸 알면 무조건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노정연이 이렇게 답했다.박창용이 소리 내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나를 보고 기뻐할까, 아니면 저하를 보고 기뻐할까?’그렇게 노정연은 일행을 데리고 원성일을 데리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정연은 서양과 마 선생을 데리고 천하회의 행렬을 맞이하러 갔다.스무 대가 넘는 위풍당당한 랜드로버 행렬이 패기 넘치게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더니 용인 빌리지가 위치한 산기슭에 멈췄다.노정연은 천하회의 차량 행렬을 공손하게 기다렸다.차량 행렬이 도착해 한 줄로 일제히 멈춰 섰다.제일 앞에 세워진 차량의 문이 열리더니 개량 한복을 입은 원성일이 대가 민태오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그 뒤로 수십 명의 천하회 조직원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강성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노정연과 서양, 그리고 마 선생은 원성일을 보자마자 바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원성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인사는 넣어두게.”“정연아, 여기가 바로 네가 말한 그 윤 선생님이 산다는 곳이야?”원성일은 고개를 들어 웅장한 기세의 용인 빌리지를 올려다봤다.“네, 회장님.”노정연이 대답했다.“이곳은 호랑이와 청룡이 머물러 있어서 그런지 그 기세가 하늘을 치솟고 있구나. 아주 좋은 곳이야.” “그저 네가 그렇게 칭찬하는 윤 선생이라는 분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할 뿐이야.”원성일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회장님이 익히 알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지금 빌리지에서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노정연이 말했다.“그래?”“내가 익히 아는 거물이라? 누구야?”원성일이 물었다.천하회는 서경에 있고 강성은 남쪽에 있었기에 거리가 꽤 멀었다.하여 원성일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근데 노정연이 그가 익숙히 알고 있는 큰 인물이 여기에 있다고 하니 원성일
용인 빌리지 대문 앞.기골이 장대한 박창용이 완전 무장하고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서 있기만 해도 온몸으로 올곧은 군인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후광이 보일 정도였다.박창용의 뒤로 두 명의 반듯한 경호원 두 명이 서 있었다.백경재도 보였다.이때 천하회 사람들이 도착했다.“회장님, 저기 좀 보세요. 박 사령관님이십니다.”노정연은 원성일과 일행을 데리고 올라오더니 대문 앞에 서 있는 박창용을 가리켰다.원성일은 박창용의 다부진 뒷모습을 보자마자 몸이 세차게 흔들렸다.“정말 사령관님이잖아!”“사령관님!”원성일은 흥분하며 이렇게 불렀다. 천하회의 회장이 마치 가족이라도 만난 듯 그쪽으로 뛰어갔다.“원성일, 사령관님을 뵙습니다.”“5년 동안 이날만을 기다려왔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원성일은 눈시울을 붉히며 박창용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하하!”“동생, 그동안 잘 지냈는가?”박창용이 웃으며 말했다.“사령관님이 그때 챙겨주신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겁니다. 이 모든 건 다 사령관님의 은혜입니다.”원성일이 흥분하며 말했다.그때 설국의 난으로 서경은 큰 피해를 보았다.천하회가 제일 먼저 나서서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설국의 대군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그러다 끝내는 박창용이 이끈 창용 부대가 설국의 30만 대군을 무찔렀고 설국은 결국 핍박에 못 이겨 땅을 내주며 화해할 것을 요구했다.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창용 부대가 없었으면 천하회는 진작에 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러니 원성일도 박창용을 보고 이렇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었다.“동생,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다 같은 화진 국민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네. 너무 고마워 말게.”박창용이 웃으며 말했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원성일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자네가 이번에 직접 강성으로 올라왔다고 부하가 그러길래 이번 기회에 자네를 만나볼까 싶었네. 서경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몇 년이나 못 만나지 않았는가.”박창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네,
박창용은 고개를 돌려 용인 빌리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이것만은 말해줄 수 있지. 그분은 나 박창용에게 하늘과도 같은 존재야. 나 박창용이 평생 숭배하며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지.”이 말에 원성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화진 창용 부대 총사령관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윤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하지만 이상했다.노정연은 전에 분명 윤 선생님은 매우 젊은 분이라고 했다.그런 젊은이를 총사령관인 박창용이 이렇게까지 존경한다고?원성일이 충격에 잠겨 있는데 박창용이 이렇게 말했다.“동생, 가세. 같이 이 박창용의 하늘이 누군지 만나보자고.”박창용은 이렇게 말하더니 성큼성큼 용인 빌리지 내부로 들어갔다.원성일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뒷산.청석 중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등진 채 끝도 없이 이어진 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왕과도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구주왕 윤구주였다.이때 박창용이 원성일을 데리고 뒷산에 도착했다.“동생, 저분이 바로 이 박창용의 하늘일세.”“이 박창용이 평생 지켜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자세히 한번 보게나. 아는 사람인지.”박창용은 미소를 지으며 윤구주를 바라봤다.원성일도 얼른 고개를 돌려 공손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우러러보았다.윤구주의 유일무이한 뒷모습을 본 순간 원성일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왕과도 같은 기운이 순간 윤구주에게서 뿜어져 나왔다.무려 천하회 회장인 원성일도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리가 살살 떨리기 시작했다.마치 보고 있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장악하고 있는 왕인 것처럼 말이다.이상한 건 그 유일무이한 뒷모습이 보면 볼수록 익숙하다는 것이었다.이런 익숙함에 원성일은 순간 몇 년 전 설국의 마귀산 전투가 생각났다.그 전투에서 원성일은 천하회를 이끌고 설국의 무사를 마귀산으로 유인해야 했다.그 전투로 원성일이 데려간 800여 명의 조직원들이
“하하하하, 동생, 이제 윤 선생님이 누군지 알겠나?”옆에 있던 박창용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원성일이 눈물을 훔치며 여전히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했다.“네, 알다마다요.”“하지만 이번 생에 저하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저하, 이렇게 살아계시는데 왜 다들 저하가 10국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하는 건가요?”원성일이 이렇게 물었다.“말하자면 기네. 앞으로 차차 얘기해 주지.”윤구주는 설명이 길어지는 게 싫어 덤덤하게 말했다.원성일도 이를 알아채고 더는 묻지 않았다.원성일에게 있어 제일 감격스러운 건 그렇게 숭배하던 저하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었다.지금은 원성일도 윤구주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윤구주도 더는 숨기지 않았다.엄격히 말하면 천하회도 윤구주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애초에 원성일의 목숨도 윤구주가 구한 것이다.“동생, 기억하게. 저하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동생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네.”“오늘 같이 온 천하회의 조직원들도 포함해서 말이야.”“발설하는 자는 즉결 처분할 거야.”박창용이 이렇게 말했다.원성일은 무슨 상황인지 몰랐지만 박창용이 이렇게 말하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령관님 명령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여기서 맹세합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저하의 소식은 일절 발설하지 않겠습니다.”“그래, 그럼 됐네.”“가지. 안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자고.”윤구주가 이렇게 말했다.천하회 회장 원성일이 윤구주를 만나고 있을 때 노정연, 서양, 그리고 천하회의 조직원들 모두 윤구주가 구주왕인지 모르고 있었다.그저 회장님이 윤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정도만 알고 있었다.결국 무슨 결과가 날지는 아무도 몰랐다.“이모님, 회장님께서 윤 선생님을 뵙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서양이 물었다.노정연이 고개를 저으며 어여쁜 눈으로 용인 빌리지의 내부를 바라봤다.“어찌 됐든 간에 회장님은 박 사령관님을 만났으니 잘된 일이지 뭐.”“그러네요.”천하회에서 윤
앞에 세워진 여러 대의 랜드로버를 보며 주세호는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다.하지만 이내 차량마다 두 명의 까만 슈트를 입은 천하회 조직원이 서 있는 게 보였다.그들은 차가운 표정으로 목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이상한 사람과 이상한 차를 바라보던 주세호는 끝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혹시 어떻게 오셨어요? 왜 여기에 차를 대고 있는 거예요?”질문을 받은 천하회 조직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주세호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우리는 서경 천하회 사람입니다.”“서경 천하회요?”이를 들은 주세호가 화들짝 놀랐다.천하회가 무엇인지 당연히 주세호도 잘 알고 있었다.그것보다 천하회의 노정연, 서양 등 사람이 계속 윤구주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한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용인 빌리지에 이렇게 많은 천하회의 조직원이 나타났다는 건 설마 윤구주를 만나러 온 걸까?이렇게 생각한 주세호는 바로 용인 빌리지로 달려갔다.용인 빌리지.백경재, 노정연과 서양 등은 아직도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주세호가 아래서 다급하게 뛰어왔다.“주 회장님, 어쩐 일로 오셨어요?”백경재는 멀리서 달려오는 주세호를 발견하고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인사했다.“저하의 결혼식을 미리 준비하러 왔어요.”“아참, 아래에 천하회 사람들이 쫙 깔려있던데 무슨 일이에요? 서경에서 온 차량도 엄청나게 많던데.”주세호가 궁금해서 물었다.백경재가 웃으며 저편에 있는 노정연과 그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그건, 저쪽에 물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주세호의 눈빛이 노정연 쪽으로 향했다.그러자 노정연이 웃으며 다가왔다.“회장님, 안녕하세요.”“정연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천하회 사람들이 왜 갑자기 용인 빌리지에 대거 몰려온 거예요? 서경 차량도 엄청나게 많던데.”주세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회장님, 오해하셨어요. 천하회 회장님이 강성으로 올라오셨어요.”노정연이 이렇게 설명했다.뭐라고?“천하회 회장님이 오셨다고요?”주세호가 놀라서 물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