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형이 거만하게 말했다.윤구주는 고개를 숙이고 도전장에 적힌 글씨체를 보고는 작게 탄식하며 말했다.“그래, 고씨 일가에서 굳이 죽음을 자초하겠다고 하니 기꺼이 죽여주도록 하지. 이 도전장은 받아들이겠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움직였다.도전장은 윤구주의 현기로 그 위에 윤구주의 이름이 적히게 되었다.윤구주가 정말로 도전장을 받아들이자 고준형의 눈동자가 악랄하게 빛났다.“좋아요. 도전장을 받아들였으니 내일 열 시 제비강으로 와요. 당신과의 싸움을 기다리고 있겠어요.”고준형은 말을 마친 뒤 대전을 떠났다.고준형이 떠난 뒤 윤구주는 중얼거렸다.“남릉에서의 일정도 이젠 마쳐야겠어.”...서남의 제비강은 다섯 개 도를 관통하며 그 길이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다.남릉의 제비강은 과거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던 관광명소였다.그러나 오늘에는 여행객이 한 명도 없었다.오늘은 윤구주와 고씨 일가 어르신이 결전을 치르는 날이기 때문이다.아침 일찍 제비강 주위로 고씨 일가와 무도 연맹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게다가 강 입구 쪽이라서 관광객은 걸음을 멈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제비강 주위에는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복도와 정자가 많았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정자에는 수백 명의 서남의 무도 사람들이 있었다.그중에는 단도문, 금강사, 신씨 형제, 형의문, 청성관 등 서남 무도 연맹의 각 문파 사람이 있었다.그들이 오늘 이곳에 온 것은 관전하면서 응원하기 위해서였다.가장 안쪽에는 고씨 일가 사람들이 있었고 용호산 천암사 사람도 그곳에 있었다.고씨 일가 쪽에서는 고준형을 필두로 고씨 일가 형제와 쓸쓸한 표정의 고시연이 있었다.용호산 천암사 쪽에는 기성윤을 선두로 십여 명의 천암사 문도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크고 웅장한 제비강 위에는 어선 한 척이 강 중간에 떠 있었고, 자세히 보니 그 어선에는 노인 한 명이 있었다.그 노인은 바로 다름 아닌 고씨 일가 어르신 고진용이었다.오늘 고진용은 제비강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서남 무도
고씨 일가 쪽에서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용호산 천암사 쪽에서는 도포를 입고 머리에 나무 비녀를 꽂은 제자들 몇 명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허약한 노인을 데리고 정자에 도착했다.자세히 보니 그 노인은 다름 아닌 윤구주로 인해 단전이 파괴된 홍진후였다.“사제, 내가 푹 쉬라고 했잖아. 왜 온 거야?”기성윤은 사제를 보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휠체어에 앉아 있는 홍진후는 예전처럼 의기양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해쓱해 보였고 얼굴은 온통 잿빛이었다.그는 고통스럽게 두 눈을 뜨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자식이 죽는 걸 직접 보고 싶어서요. 그 자식이 죽는 걸 제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화가 풀릴 것 같아요.”기성윤은 당연히 사제의 원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는 탄식하며 말했다.“사제, 걱정하지 마. 오늘 고진용 어르신이 있으니 그 자식이 아무리 대단해도 절대 살아서 떠날 수 없을 거야.”휠체어에 앉아 있는 홍진후는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증오는 아주 뚜렷했다.그는 당연하게도 윤구주가 미웠다.그의 단전을 파괴한 사람이 다름 아닌 윤구주이기 때문이다.이때 사람들은 제비강에서 윤구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윤구주가 오늘 고진용의 손에 죽기를 바랐다.오직 고시연만이 묵묵히 윤구주를 걱정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렀고 드디어 9시 50분이 지나서야 두 명의 사람이 고씨 일가 사람들, 용호산 천암사 그리고 무도 연맹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다.한 명은 윤구주, 다른 한 명은 시괴 동산이었다.“왔다. 저기 봐, 윤구주가 왔어!”사람들은 둘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을 죽어라 노려보았다.용호산 천암사의 기성윤마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훤칠하고 잘생겼다.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빛나는 별만큼이나 눈부셨다.단순히 그의 용모가 잘생겨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니었다. 타고난 왕의 기질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줬기 때문이다.“사제, 사제의 단전을 파괴한 자식이
이러한 상황에 기성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이럴 리가 없는데. 천안술을 썼는데도 왜 저 자식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휠체어에 앉아 있던 홍진후가 힘없이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가능성은 하나뿐이에요. 저 자식의 내공이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이라는 거죠.”기성윤의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다.비록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윤구주가 홍진후 같은 대사의 단전도 망가뜨린 걸 보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윤구주가 동산을 데리고 제비강에 도착했을 때, 고씨 일가 사람들은 다들 증오에 찬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오직 고시연만이 옷깃을 꼭 잡고 걱정스럽게 윤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윤구주는 제비강에 도착한 뒤 시선을 살짝 들어 강을 바라보았다.강 위에는 고진용이 조용히 어선 위에 앉아 있었다.비록 그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윤구주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가 어선 밖으로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강 위 화면을 본 윤구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라니, 오늘 사람 죽이기 좋은 날이네. 동산, 넌 이곳에 남아있어. 난 사람을 죽이러 갈 거야.”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두 훌쩍 뛰어올랐다.그는 마치 유성처럼 날아갔고 제비강 근처 정자에 있던 수백 명의 서남 무도 연맹 사람들, 고씨 일가 형제, 그리고 용호산 천암사 사람들은 다들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윤구주는 마치 용 같았다.그가 날아서 수면을 지나갈 때, 수면 위로 갑자기 파문이 일었고 곧 윤구주는 고진용에게서 십여 미터 떨어진 수면 위에 떠 있었다.그는 마치 평지에 서 있는 사람처럼 수면을 딛고 서 있었다.윤구주는 뒷짐을 지고 수면 위에 서 있었다.고진용은 윤구주가 모습을 드러내자 살짝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곧 강렬한 시선이 윤구주에게로 향했다.“좋아.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젊은 나이에 이 정도 내공이라니. 오늘 내 손에 죽는다고
굵고 길게 늘어진 물기둥은 윤구주를 향해 휘몰아쳤다.화진 무도천방 7위의 강자가 나서자 윤구주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밑 수면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가 손을 들어 한 번 흔들자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그의 손아귀에 모여들었고 그가 밀어내자 기파는 그 네 개의 물기둥 위에 떨어졌다.쾅, 쾅, 쾅, 쾅!폭탄이 터지듯 네 개의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더니 사방으로 갈라졌다.공포스러운 파도가 몰려오면서 제비강 수면에도 거센 파도가 일었고 사방을 둘러보던 연맹 부하들까지 하나같이 혈기가 들끓었다."이 자식, 괜찮네.”"내 기술 하나만 받아쳐도 나가서 네 실력을 자만할 수 있어.""하지만 안타깝게도, 네가 서남에서 난폭하게 굴고 고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어쩔 수 없지. 너는 오늘 반드시 죽어야 해.”검은 어선에 서 있던 고진용이 오른손을 살짝 흔들자 온몸의 강물이 다시 파도를 일으켰다. 그랬더니 고 부처님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쾅 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렸다.강물은 거대한 힘에 이끌려 솟아올랐고 두 개의 거대한 물주먹을 응집시켰다.이 주먹은 고진용이 무술의 진원 내력으로 뭉쳐 만든 것이었다. 그의 내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했다. 연약한 물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굳혔다. 승용차 한 대도 이 거대한 두 주먹에 의해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임마, 내 철권 좀 받아봐!"고진용이 소리를 지르자, 그 두 개의 큰 물줄기 주먹이 유성처럼 윤구주를 향해 내리쳤다.윤구주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파!”그는 허공을 가로 그었다.금색 빛으로 빛나는 칼날이 허공을 가르더니 그 큼직한 물주먹 두 개를 한칼에 반으로 쪼개었다.강철처럼 단단한 물주먹은 윤구주의 칼을 전혀 당해내지 못했다. 내력이 사라지자, 거대한 주먹은 순식간에 시들다니 공중에서 와르르 무너졌다.윤구주가 단칼에 고진용의 물줄기를 받아치자 그의 몸은 거칠게 움직였다.그는 두 다리를 튕기더니 온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어서 두 손도 마치 거문고를 튕기듯 방금 하늘에
이 말을 한 윤구주는 다시 고진용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신급이 되고 고씨 가문의 늙은 부처가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그래서 말인데, 제가 손을 쓰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묻겠어. 고씨 가문의 봉안 보리 구슬을 저에게 줄 수는 없겠어?”"지금 준다면, 나는 고씨 가문을 남겨 둘 것이고 당신도 살려둘 거야.”윤구주의 소리가 천천히 고진용의 귀에 들려왔다.이 고진용은 윤구주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정말 날뛰는 말괄량이 같으니라고! 감히 내 앞에서 망언을 하다니.”"설마 네가 그 작은 칼질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고씨 가문의 선조가 포효하자 검은색 기체가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공포의 에너지가 나타나자 고진용의 몇 미터 앞에 있는 강의 수면이 갑자기 격렬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마치 이 강물 아래에 있는 화산이 곧 폭발할 것처럼 말이다."신급에 발을 들인 무술의 강자는 모두 무홍의 기운을 낸다고 하는데, 그 무홍의 기운은 선천 진원이다!”"진원이 뭉치면 세상 만물을 다스릴 수 있어.”"고 부처님의 몸 주위에 감도는 검은 기운을 보세요... 저게 전설의 무홍의 기운인가.”제비 강변의 정자 복도에는 태극문의 회장만이 눈을 부릅뜨고 까만 배 위의 고씨 가문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주변의 청성관, 단도문, 그리고 신씨 일가 형제 등 제자들은 고진용에게 무홍의 기운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모두 감격했다."역시 우리 서남의 부처님! 무홍의 기운까지 나타났으니, 그놈은 망했네.”"맞아!"한편, 고진용이 무술 신급의 무홍의 기운을 뿜어내자 용호산 천암사의 기성윤마저 눈에서 빛이 났다."무홍의 기운이라니.고 부처님의 수행이 10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지셨네요.”"맞아요.""무홍의 기운을 가지면 같은 경지의 신급이라도 비길 바가 못 돼요. 그 도둑놈, 남은 건 죽음뿐이네!”옆에 있는 몸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홍진
고진용이 염라대수의 묘기를 선보이자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감탄했다."좋은 기술이군!”하늘을 가리는 열 길의 투명하고 거대한 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무홍의 기운으로 굳어진 거인은 강철처럼 단단한데, 이 한 방이 떨어지면 작은 산이라도 박살 날 것 같았다."말괄량이 같은 놈!""아직도 안 죽었나 봐?”포효 소리가 고씨 가문 선조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그의 두 손이 윤구주를 향해 내리쳤다.쾅!거대한 손이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압력이 먼저 떨어졌다.윤구주 기슭의 수면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주위의 물줄기가 이 무홍의 기운의 기압에 의해 소용돌이 치는 등 강 전체가 강타당한 듯했다.쿵!거대한 손이 오기도 전에 압력이 바로 떨어졌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위압, 이 염라대수가 떨어지는 순간, 온 제비강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강가의 돌 정자마저도 고진용의 일격에 맹렬하게 떨렸고 더욱이 몇몇 오래된 정자는 이 무홍의 힘을 이기지 못해 마치 이곳에서 규모 10의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우지끈 부서지기 시작했다.공포의 십장 거수가 윤구주의 몸을 그대로 덮었다.이번에는 거대한 손이 떨어지다.수면이 그대로 가라앉았고 윤구주의 몸은 그 거대한 손에 의해 단숨에 삼켜졌다.강물은 아직도 끓어오르고 있었다.무서운 물살이 아직도 물을 튕기고 있었다.수많은 물꽃 속에서 윤구주는 염라 대수의 손에 완전히 눌려 강바닥으로 사라졌다."이봐, 저놈 없어졌어!”고함소리와 함께 강변의 연맹 사람들 입에서 가장 먼저 소리가 터져 나왔다.모두가 일제히 일어나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방금 윤구주가 있던 위치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거센 파도가 용솟음치고 있었다.높은 파도 때문에 윤구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씨 가문의 부처님이라는 큰 염라의 손이 떨어졌을 때, 용호산 천암사 쪽에서도 모두 감격하여 일어섰다."끝났어?”"역시 육신으로 신급에 도달하신 선배님!”용호산 천암사의 기성윤이 눈을 반짝이며 강물이 사라지는
이 두 사람은 바로 서울에서 온 남궁 세가의 아들, 군주로부터 화진소년후를 하사받은 남궁서준과 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힌 명인 정태웅이었다.두 사람이 고씨 가문 대문 앞에 나타나자, 흰옷을 입은 남궁서준이 제일 먼저 물었다."우리 구주 형 여기 있어?"곱창을 손에 든 채 먹고 있던 정태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왕이 준 주소가 바로 여기야."남궁서준은 검을 한 쌍 들고 고씨 가문 마당을 쓱 둘러보았다.대문에서 가장 안쪽까지 이어지는 고씨 가문의 검의 흔적이 보였다.이 무서운 칼자국을 바라보며 남궁 서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여기 같아."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고씨 가문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구주 형!"그는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정태웅도 얼른 따라 들어왔다.그곳은 황폐하기 그지없고, 집이 반쯤 무너진 고씨 가문 장원 안은 텅 비어 있었다.두 사람이 들어왔을 때 윤구주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사람은?""저희 구주 형는요?"남궁서준이 찾아다니다가 윤구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는 버럭 화를 냈다."꼬맹아, 서두르지 마. 이 고씨 가문의 덕성을 보니 틀림없이 우리 왕을 건드려서 이렇게 망가진 것 같아""화장실에 똥 싸러 갔나?"정태웅은 중얼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꺼져!"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남궁서준이 욕설을 퍼부었다."왜 그래? 왕도 사람이잖아! 설마 먹고 마시고 싸기도 하지!"남궁 서주는 이 뚱보를 상대하기 귀찮았다.그는 돌아서서 윤구주를 계속해서 찾으려 했다.두 사람이 고씨네 안마당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고씨 가문 식구 한 명이 나타났다. 고씨네 제자였다.그는 정태웅과 남궁서준의 낯선 두 사람이 고씨 가문 장원에 나타난 것을 보고 물었다."누구세요? 감히 우리 고씨 가문에 침입하다니?"이 제자가 말하자마자 남궁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눈이 시려지기 시작했다. 남궁서준은 오른손을 들어 그 제자를 움켜쥐었고 보이지 않는 힘이 그 제자의 목을 옥죄어 그를 공중으
정태웅의 말에 고씨 제자는 놀라서 다리가 후들후들해졌다."이제, 형님이 어디 가셨는지 말해 주겠니?"정태웅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씨 제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고씨 제자는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는... 그는 우리 부처님과 결전하러 갔어요.""결전?"이 두 글자를 듣자 정태웅은 멍해졌다."맞아요.""우리 부처님과 사생결단을 맺었으니 지금쯤 제비강에 있을 거예요."고씨 제자가 대답했다.말을 듣고 정태웅은 턱을 만졌다."그랬구나.""제기랄, 너희 고씨 가문은 죽으려고 그래? 감히 왕과 사생결단의 서약을 하다니. 제기랄, 너희 그 부처님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거니?"정태웅이 비아냥거렸다."우리... 우리 고씨 가문 어르신, 부처님은 화진 무도천방 7위의 강자예요."그 고씨 제자는 승복하지 않았다."뭐?""무도천방 7위라니? 일곱 번째가 뭐라고!""내가 말하건대, 우리 왕이 죽이려 한다면 1위라도 상관없어!"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고씨 제자들은 정태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윤구주가 제비강으로 생사결단을 떠난 후, 그는 고개를 돌려 남궁서준에게 말했다."꼬맹아, 우리 왕을 건드린 놈이 있나 보구나! 말해봐, 어떻게 할까?"이 14살에 화진소년후의 어린 살수로 봉해진 소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성큼성큼 고씨 가문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한마디 내던졌다."다 죽여야지."정태웅은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꼬맹이 너, 나랑 성격이 잘 맞아!""가서 저들을 해치워라!”그러자, 이 두 살신은 빠르게 제비 강변으로 달려갔다.제비강 정자에서.서남연맹의 각 문파 인원 수백 명이 그곳에서 환호하고 감격했다.그러면서 입으로는 부처님이 대단하다고 외쳤다.그들이 보기에 윤구주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파도가 용솟음치는 제비 강 위에 검은 어선 한 척이 아직 강물 한가운데 있었다.배 위에는 무홍의 기운이 하늘을 거스르는 고씨 가문의 부처님이 바로 고개를 들고 서 계셨다.그의 앞에 있는 10미터의 파도 속에서 윤구주는 쥐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