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비를 거는 성격은 아니지만 상대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아예 싹을 제거하는 것!이게 그의 방식이었다.“어쩔 수 없군.”원종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은둔 가문인 이씨 가문에 대해 그들은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도 범상치 않은 가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장공만 봐도 알 수 있었다.어린 이장공마저 이미 무도 왕자의 단계까지 달성했는데 오랜 시간 수련한 가문의 장로들은 또 얼마나 무시무시할까?게다가 지난번 신무대회에서 염구준이 신무옥패를 사람들에게 선보인 것도 숨은 적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현재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만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한편, 용하국의 서북부에 있는 한 미지의 땅.이씨 가문의 본거지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지난번에 가족들의 허락도 없이 속세에 발을 들였던 이장공은 이미 돌아올 때부터 엄중한 처벌이 내려질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었다.그런데 돌아온지 며칠이 되도록 아무도 그에게 그것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몰래 본거지를 떠났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설마… 적풍상인?”잠깐의 고민을 거친 뒤에 이장공은 통로를 따라 신속히 산 아래로 이동했다. 대략 30분 정도 갔을 때 드디어 산기슭에 있는 호숫가에 도착했다.붉은색 도복을 입은 적풍상인이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조용히 호숫가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기가 미끼를 물었군!”‘고기? 대체 누가 미끼를 물었다는 것이지?’이장공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어르신, 제가 사사로이 본거지를 떠난 일을 숨겨주신 분이 어르신인가요?”“왜… 그러셨습니까?”‘이래서 똑똑한 애들이 좋다니까.’적풍상인은 빙긋 웃으며 나뭇가지로 만든 낚시대를 한방에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주 가느다란 물고기 한마리가 낚시대에 걸려 나왔다.“난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가문의 규정대로 너에게 처벌을 내릴 수도 있겠
“설마… 가주의 자리를 차지하실 생각입니까?”이씨 가문의 가주는 한 나라의 국왕과도 같은 무한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다만 대대로 그 자리는 이런 더러운 정치질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만 쟁취할 수 있었다. 그 규칙을 어긴다면 속세의 범부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어르신,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이장공은 거대한 충격에 목소리까지 떨며 그에게 말했다.“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냥 말씀해 주십시오.”적풍상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앞으로 내 말만 잘 들으면 나중에 가주의 자리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하지.”그 말에 이장공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실 마음 속에서는 이미 거대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적풍상인이 언제부터 이런 대담한 생각을 가진 걸까?이씨 가문에서 적풍상인은 그야말로 헌신적인 존재였고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그런 상냥한 얼굴 뒤에 이런 거대한 야망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내 답은 같아. 난 널 해치지 않아.”적풍상인은 이장공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찬 웃음을 지었다.“내 도움이 없으면 넌 가주 자리를 경쟁할 자격을 잃게 되는 건 물론이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야.”“기억해. 오늘 아무 일도 없던 거고 너랑 나는 만난 적 없던 거야. 알겠니?”“알아듣게 얘기했으니 이만 돌아가서 쉬거라.”말을 마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는 낚시꾼 같은 모습이었다.“어르신….”이장공은 따질 말이 많았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뒤에 자리를 떠났다.이장공의 모습이 사라진 뒤.“어르신.”멀지 않은 곳에서 도천연이 재빨리 다가오더니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고 존주의 동향도 계속해서 감시 중입니다. 최근에….”적풍상인은 눈썹을 꿈틀하더니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최근 같은 소리가 아니라 현재야.”“예, 어르신.”도천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풍상인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요즘 점점 건방지더라고. 그 녀석 손에 있는 신무옥패는 내가 직접 가서 취할 것이야!”신무옥패는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그가 원하는 건 옥패에 기록된 무술비전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숨겨진 비밀이었다.현재까지 세상에 드러난 옥패 중에 염구준은 혼자 세 개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가 이토록 적의를 불태우는 것도 당연했다.“드디어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건가.”도천연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적풍상인의 뒤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적풍상인을 전면전에 내세우는 것, 그가 원하던 그림이기도 했다.염구준의 목숨을 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만약 적풍상인이 직접 움직인다면 이씨 가문에서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나라 전체가 들썩이게 될 것이다.그리고 혼란은 흑풍존주가 가장 바라는 상황이었다.“존주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도천연은 착잡한 얼굴로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제가 없는 사이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한편, 고성.해번가에 있는 유럽식 별장 주변에 시체가 즐비했다.“도망쳤어? 이런 상황에서 도망을 쳤다고?”검은 도복을 입은 흑풍존주가 시체 더미 중간에 서서 음침한 얼굴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조직 혈향의 주인이자 킬러들의 우상이라고 불리는 블러드가 도망쳤다는 소식에 그는 경악했다.킬러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를 잡으려고 흑풍존주는 아주 오랜 시간 준비했고 혈향 내부에도 인원을 침투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그물망을 쳤다. 그리고 부하들을 데리고 호호탕탕하게 잡으러 왔는데 정식으로 접전하기도 전에 블러드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신분, 명성 이런 것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집 잃은 개처럼 도망을 간 것이다.“어쩌면 존주님의 명성을 이미 듣고 두려워서 도망친 게 아닐까요?”가면을 쓴 백인사내 백터가 웃으며 말했다.“이번에 손실 하나 없이 혈향 조직의 수뇌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모든 인원을 동원해서 무조건 블러드를 찾아내.”잠깐의 침묵 뒤에 백터가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쳤다.“살아 있으면 살려서 데려오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찾아내라고!”백터의 신변을 수호하던 검은색 인영이 핸드폰을 꺼내 부하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블러드는 무조건 죽어야 하는 존재였다.“블러드가 살아 있는 이상 난 진정한 킬러의 왕이 될 수 없어.”백터는 창가를 마주하고 서서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살기를 번뜩였다.한때 모두를 두렵게 했던 킬러의 왕, 블러드.하지만 현재는 중상을 입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그 시각, 별장과 10km 떨어진 지점의 해수면.광풍과 파도가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었다.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한 사내가 간신히 판넬 하나를 붙잡고 해수면을 표류하고 있었다.사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과거 킬러의 왕이라고 불리던 블러드는 현재 과다출혈로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뿐, 사실 상 시체나 다름없었다.“염구준… 그 존주의 무술이 염구준과 흡사한 점이 많아.”블러드는 낮게 기침하며 붉은 피를 토해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자 그제야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세상에 이렇게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스피드, 힘 모두 최상이었고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드는 모습이 전신전 전주 염구준과 매우 흡사했다.그의 추측이 맞다면 저 음험하고 교활한 흑풍전주는 아마 신무옥의 무학을 수련한 게 틀림없었다.“하!”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블러드는 사고를 멈추었다.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7m 정도 되는 요트가 그를 향해 신속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갑판에 선 수십 명의 사내들이 블러드를 향해 웃고 있었다.“그렇게 건방을 떨더니 꼴이 이게 뭐야?”“우리 손에 잡혔으니 죽어줘야겠어!”‘결국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안 그래도 이동수단이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 정말 충성이 지극한 녀석들이군!”비록 중상을 입기는 했어도 블러드의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과거의 부하들을 마주한 그
이제 기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급의 인간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조심해!”남은 인력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곧 죽을 것 같았던 블러드가 이런 폭발력을 보여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물론 블러드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중상을 입은 데다가 찬 바닷물에 한참이나 몸이 담가진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내력을 가져다 썼기에 부상 정도는 더욱 심각했다.“죽여!”잠깐의 고민 뒤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미친듯한 고함을 지르며 블러드에게 달려들었다.“같이 상대하면 돼. 당장 저 녀석의 목을 가지고 백터님에게 돌아가자!”사내들의 협동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손에 든 무기를 블러드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고작 너희들이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블러드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낫을 집어들었다.사신의 낫이라고 불리는 그만의 무기였다.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가 휘두른 낫에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블러드는 최강 킬러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날카로운 낫이 번뜩이더니 조금 전 소리치던 사내에게로 날아갔다. 사내가 잠깐 당황하는 사이 그것은 이미 사내의 목을 베고 사내 머리는 그대로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머리를 잃은 시체는 그대로 갑판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무기가 블러드의 손을 떠나 사내의 목을 베기까지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았다.그게 끝이 아니었다.조금 전과 같은 섬뜩한 빛이 번뜩이더니 낫은 다시 공중을 날아 블러드를 향해 달려드는 사내들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여덟 명의 사내의 몸뚱아리가 그대로 두동강이 났다.“말도 안 돼!”갑판 위에 남은 여섯 명의 사내들은 겁에 질려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블러드,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보스입니다. 저희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었어요. 백터가 그러라고 우리에게 협박했어요. 보스… 안 돼!”목소리는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았다.블러드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낫을 치켜들어 남은 여섯 명의 목을 그어버렸다.거친 파도가 갑판 위를 스치고 지나가
연습장 중심에 도복을 입은 손가을이 염구준을 향해 주먹과 발길을 휘두르고 있었다.염구준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방어만 하고 있었다.겉보기에는 그가 밀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손가을의 주먹은 그의 옷깃 한번 스친 적 없었다.“성장이 너무 빠른걸? 이제 잘 못 피하겠어.”교전이 시작되자 염구준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비틀어 날아오는 손가을의 주먹에 일부러 가슴을 맞고는 엄살을 부렸다.“아, 맞았어! 아파!”손가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염구준을 쓰러뜨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와 오래 함께 했고 무관에서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무도 등급간의 차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비록 원종, 정경림, 서문당, 북궁야 같은 고수들의 가르침을 받기는 했어도 무술을 익힌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은 초짜였다. 이제 겨우 내력을 약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반보천인인 염구준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일반인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고 군대에서 사용되는 특수 살상무기를 제외하면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잇는 사람은 몇 없었다.오히려 그의 몸에 맞은 그녀의 주먹이 더 아팠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자.”염구준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뒤돌아서 염희주를 품에 안고 볼을 비볐다.다시 뒤돌아선 그는 담담한 어투로 허공에 대고 말했다.“봤지? 내 아내와 딸이 여기에 있어. 내 가족들을 놀라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살기 거둬!”신위무관 내부에 금방 입문한 손가을을 제외하고 원종과 정경림을 비롯한 무관 학도들 모두 공기 속에 만연하는 엄청난 살기를 느꼈다.“쿨럭… 역시 들켰네.”무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길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탁!약간 허약해 보이는 인영이 그대로 나무에서 추락하더니 대자로 바닥에 뻗었다.“아!”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염희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저 사람 나
침실로 들어온 염구준은 블러드의 상처를 살피고 표정을 굳혔다.“흑풍전주?”그의 예상은 정확했다.블러드 체내에서 강력한 기운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염구준이 수련했던 공법의 기운과 매우 흡사했다. 신무옥패에 기재된 무학 전적에서 본 내용이었다.블러드를 다치게 한 사람이 그였다니!“맞아. 흑풍.”블러드는 침대에 누워 염구준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주는 내력을 느끼며 아까보다는 밝아진 안색으로 대답했다.“흑풍존주 한 명만 상대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야. 내 부하들, 백터가 나를 배신하고 흑풍과 손을 잡았어.”염구준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지하 세계에서 킬러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은 매우 잔인했다. 백터라는 사람이 만약 정식으로 보스의 자리에 앉으려 한다면 블러드와 정면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그는 승산이 없자 결국 흑풍존주와 손을 잡고 킬러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블러드를 왕위에서 끌어내린 뒤, 새로운 왕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염구준.”블러드는 낮은 소리로 염구준을 불렀다. 안색은 아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입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이 일, 염구준 당신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백터는 배신하기 전에 엘 가문의 짐과 만난 적이 있어. 내 추측이 맞다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엘 가문이야.”역시 짐이 고성에 갔을 거라던 추측은 맞아떨어졌다.“나도 들은 바가 있어.”손을 내린 염구준은 블러드의 혈자리를 봉인하고 계속해서 말했다.“부상이 심각해서 한동안 쉬면서 요양해야 해. 일단은 여기서 지내고 있어. 다른 곳보다는 안전하니까.”말을 마친 그는 곧장 침실을 나가 연무장으로 돌아갔다.손가을과 염희주는 여전히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염구준이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눈치챈 건지, 두 모녀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다가와서 염구준의 품에 안겼다.“아빠…”“희주 착하지.”염구준은 애틋한 얼굴로 딸의 볼을 살짝 꼬집은 뒤에 아내를 보며 말했다.“봉황국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너무 걱정하지 마. 일만
엘 가문이 다른 업계로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금융이나 IT 산업은 폭리가 가능한 산업으로 최단 기간에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서 오샤나지 그룹과 손씨 그룹 사이의 분쟁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었고 엘 가문은 새로운 자금체계를 가지게 되었다.엘 가문은 거기서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계속해서 과감한 투자를 하며 자금을 불려나갔다.“앨리스 씨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군요.”엘 가문의 저택.거실에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이런 결과에 만족하십니까?”당연히 만족스러웠다.최근 일주일 동안 염구준은 비록 봉황국을 떠나 있었지만 주작전존은 이곳에 남아 그들의 신변안전을 지켜주었다.비록 반디엘 본인도 많은 경호원을 배치하고 거금을 들여 무인들을 호위로 고용했지만 왕자 레벨의 호위마저도 붉은색 갑옷을 입은 그 여자와 눈길을 마주치지도 못했다.게다가 더 무시무시한 건 호위들의 말에 의하면 주작이라는 여자의 실력은 전신 단계라고 했다.“주작 씨의 실력을 믿었습니다.”인재가 급히 필요한 반디엘은 간청하는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염 선생, 값은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주작 씨를 저희 엘 가문의 경호팀장으로 고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주작을 고용하고 싶다는 말에 염구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전쟁 시기, 청용, 백호, 주작, 현무 4대 전존은 고생을 마다하고 수련을 거듭하면서 무성의 경지까지 돌파했다.현재 용하국은 태평성새를 마주했지만 그들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전신 단계를 가장 먼저 돌파한 사람은 청용 전존이었다.그 뒤를 이어 백호, 주작, 현무 세 명도 성장을 거듭하며 전신 단계를 돌파했다.용하국에서 공개된 전신 강자는 도합 아홉 명.그들을 제외하고 108명의 전왕들도 돌파의 기미를 보이면서 도합 20여 명의 무성의 단계까지 올라갔다.전신전의 전반적인 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용하국의 든든한 기둥으로 불리게 되었다.반디엘은 그런 대단한 존재를 고용하고
염구준은 피식하며 비웃을 뿐, 두려운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수백 명의 무리는 그런 염구준을 멍청이를 보는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많은 깡패들이 모였는데 한 명이 한 대만 쳐도 상대방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헤르빈은 단단히 뚜껑이 열렸다.평소 타인이 벌벌 떠는 모습을 제일 좋아했는데 염구준이 그를 무시해서 몹시 불쾌했다.“저놈의 사지를 잘라내고 숨만 쉬게 만들어!”“사지를 잘라!”한 무리 오합지졸이 고함을 지르며 기세등등하게 몰려왔다.순식간에 벌떼처럼 달려들자 부두와 선박에서 지켜보던 행인들이 수근거리면서 탄식했다.“에휴, 저 병신은 뭐 하러 건드렸어.”“이 부두에서 또 망령이 한 명 늘어났네.”“헤르빈에게 용감하게 맞서는 걸 봐서 이따가 시체를 수습해 주자.”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염구준이 살아남지 못한다고 확신했다.왜냐면 염구준이 움직이지 않고 기운도 끌어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곧 도착하겠네.”쿵!그 순간, 갑자기 여러 사람이 무리에서 튀어나와 닥치는 대로 깡패들을 공격했다.최전방에 나서서 공을 세우려던 깡패들은 어느 하나 살아남지 않았다.“한 발짝만 나오면 바로 죽는다!”“감히 염 선생을 공격해? 죽고 싶어?”몇몇 무술인이 염구준의 앞을 막으며 단번에 상황을 통제했다.만약 그들이 협박하지 않고 진짜로 싸운다면 이 깡패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않을 것이다.“때마침 잘 오셨어요.”염구준은 앞에 나타난 일행을 보며 한마디했다.뜻밖에도 아타와 노신기 외에 대어당, 안설홍, 레온의 가주까지 나설 줄은 몰랐다.솔직히 그들과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나선 것이 조금 의아했다.“염 선생, 부디 우리 가문을 위해 복수해 주십시오!”일행은 갑자기 돌아서서 무릎을 꿇었다.염구준은 그들의 눈빛에서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것을 보았다.“스텔라성이 공격했어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유동심연에서 스텔라성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우두머리 성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노신기는 두 눈을 붉히며 주먹을 꽉 쥐
맨 앞에 선 남자는 눈 한쪽만 안대를 하고 왼손에 쇠고리를 낀 흉악하게 생긴 털북숭이였다.“헤르빈! 담배 한 대 피우시죠.”그 남자를 본 선장은 흠칫 놀라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담배를 건넸다.이곳의 부두는 크지 않지만 헤르빈의 말이라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형님, 벌써 돌아왔어? 큰 돈을 벌 좋은 일이 생겼나 보네. 나도 껴줘.”헤르빈은 담배를 받으면서 다정하게 불렀다.솔직히 말해서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수작이었다.“무슨 말씀입니까? 선박이 고장 나서 수리하려고 일직 돌아왔어요. 정말 재수없기도 하죠.”촤아악!그런데 선장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헤르빈이 뺨을 날리는 것이었다.그는 가식적인 웃음을 거두고 싸늘하게 협박했다.“영감탱이, 좋게 말할 때 다 불어. 절반씩 이윤을 나누면 용서해 줄게. 아니면… 흥!”이 구역은 각 세력들이 관리하고 있기에 제도나 규칙 같은 것은 없고, 주먹이 강한 것이 일인자였다.헤르빈이 날뛰고 있을 때 누군가 앞에서 짜증스럽게 말했다.“비켜. 길을 막았잖아!”“이 자식이 죽고 싶어? 감히 헤르빈 님한테 그 따위로 말해?”청자켓을 입은 부하가 칼을 들고 염구준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그들은 평소 나약한 어부들을 괴롭히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 부두에서 자신들이 일인자이고 자신들의 말이 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반보천인 무술인 앞에서 이렇게 나댄다면 바로 모가지가 날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쿵!아니나 다를까, 칼이 닿기 전에 염구준은 기운을 발사해 상대방을 살해했다.“헤… 헤르빈 님, 이 자식 죽었어요.”다른 부하가 앞으로 나와 살펴보더니 벌벌 떨며 소리를 질렀다.지금까지 온갖 횡포를 일삼던 그들은 처음으로 살해당하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짝!“무슨 개소리야?”헤르빈은 부하의 뺨을 쳐서 경고하고는 염구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쳐들었다.“내 사람을 죽였으니까 10억 달러 배상하고 한쪽 손을 잘라.”그는 눈앞의 남자가 전주라 확신하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염구준이 시큰둥하게 대답
염구준은 검갑을 메고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그의 몸에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방금 어떻게 복면인을 죽였는지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다, 당신은 누구야?”우두머리는 버벅거리며 물었다.분명 상대방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없는데,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저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알 거 없고, 했던 말은 다시 반복하지 않아.”염구준이 주변을 빙 둘러보며 복면인을 째려보았더니, 대장 외에 전부 주먹질만 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비켜. 아니면 바로 죽일 거야.”우두머리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로사의 목에 겨누었다.“하.”쿵!염구준은 피식 웃고는 갑자기 기운을 발사해 복면인들을 살해했다.뒤로 날아간 우두머리는 무공 실력이 조금 있다고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었다.“당신 반보천인이야?”이제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운을 감지한 우두머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맞아. 나 반보천인이야!”솔직히 염구준은 그들과의 싸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대처했을 뿐이었다.원래 기운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복면인들이 기어코 죽음을 자초했다.“악!”중상을 입은 우두머리는 갑자기 충격을 먹고 기절했다.난생 처음으로 반보천인을 봤는데 그것도 괜히 건드려서 죽음을 당했으니 심정이 참 아이러니했다.염구준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복면인들은 전부 죽고 싸움은 끝났다.선장과 선원들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여기 정리하세요.”염구준은 태연하게 뱃머리 쪽으로 올라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부두를 쳐다보았다.곧 육지에 오르게 되니 더는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랐다.로사는 고통을 참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선배님, 감사합니다!”아직 무술계에 발을 들이지 않아 반보천인이 어떤 레벨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아주 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내 이름은 염구준이야. 용하 청해에 살아.”방금 소녀의 절묘한 싸움 실력을 보고 염구준은 자신의 이름을 알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만약 무술계에서 성장한다
선박이 부두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검정 옷 차림에 복면을 쓴 일행이 갑판 위에 나타났다.염구준은 그들의 기운을 감지했다.가장 강한 우두머리는 종사 경지에 도달했는데 한 주먹거리도 안 되었다.이런 실력이라면 뒤에 있는 세력도 강하지 않을 것이다.“여러분, 저희 선박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선장이 억지로 웃으면서 다가가 물었다.저들의 옷차림새만 봐도 좋은 일로 찾아온 것 같지 않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스윽!복면인이 번쩍이는 칼을 선장의 목에 겨누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암살녀는 어디 있어? 당장 내놔.”곁에 있던 염구준은 일단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역시 그의 예상대로 일행은 로사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누구요?”선장은 처음 듣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잔뜩 당황했다.“죽고 싶어?”일행은 더는 묻지 않고 칼로 선장의 목을 베려고 했다.위기의 찰나에 염구준이 나서려고 할 때, 마침 로사가 갑판에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나 여기 있어. 무고한 사람들은 해치지 마!”자발적으로 나서서 혼자 상대하려고 하다니, 염구준은 소녀의 용기에 속으로 감탄했다.우두머리는 목표물이 나타나자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며 선장을 옆으로 내팽개쳤다.“저 년을 생포해!”열 명 넘는 남자가 몽둥이를 꺼내더니 서로 동선을 맞추며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하지만 3분도 되지 않아서 로사의 손에 전부 살해당했다.소녀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염구준이 한마디 평가했다.“무술인이 된다면 로사는 아마 무적의 존재가 되겠네.”거의 완벽한 소녀의 동작에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었다.“병신 같은 놈들!”뚜껑이 열린 우두머리는 욕을 하고는 직접 칼을 들고 공격했다.탁!하지만 강력한 남자의 힘으로 로사는 단번에 패배하고 말았다.일반인과 무술인은 힘부터 차원이 달랐다.잇따른 공격에 로사는 구석으로 몰려 피할 길이 없었다.“죽어!”로사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몸을 특별한 모양으로 비틀고 맹렬하게 비수를 무찔렀다.그런데 비수는 우두머리의 가슴을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