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라, 나 들어간다!”천면현이 큰소리치며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끼익, 나무 문이 열렸다 닫혔다. 곧이어 두 사람의 친밀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나라, 이게 얼마 만이야? 미모는 예전하구나.”“천면현,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썩 꺼져!”두 사람은 평범한 관계가 아닌 것 같았다. 과연 천면도를 나올 때 천면휘가 함께 나오지 못하도록 말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염구준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약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주변에 있던 불들이 하나둘 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쓱쓱, 이때 어디선가 수상한 움직임 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정말 쥐가 있었네?”멀지 않은 곳에 검은 그림자 열댓 개가 스르륵하고 나타났다.“대장, 정문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오늘도 움직입니까?”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물었다. 대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이내 결심한 듯 단호히 말했다.“더는 못 미뤄. 이미 상부에서 몇 번 독촉장이 내려왔어. 오늘 밤,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다. 저 남자를 밖으로 유인해.”그는 매우 신중했다. 오늘은 절대로 예상밖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러자 한 남자가 기척을 대놓고 드러낸 채 염구준을 향해 다가갔다. 유인하려면 일단 들켜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군!’나타난 것은 열댓 명인데, 혼자만 인기척을 드러냈다? 뻔한 의도에 염구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누구야?”그는 일단 상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앗, 이런! 들켰어!”그러자 남자가 과장되게 놀라며 어딘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편, 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할 것이지, 발연기도 이런 발연기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빠르게 어둠속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일이 생각보다 순조로웠기
하지만 염구준 앞에선 이들은 그저 약자에 불과했다. 열댓 명이나 되는 검은 인영들이 동시에 땅을 박차고 지붕 위에 있는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해 빠진 것들!”염구준이 전혀 긴장감이 없는 목소리로 코웃음 쳤다. 그의 몸이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난 순간, 뛰어오른 검은 인영들 모두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대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너 도대체 뭐야?”“그러는 넌, 천무산 쪽 사람인가?”염구준은 이들의 움직임 속에서 단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맞아. 난 천무산 소속이다. 그러니 천무산 이름을 봐서라도 살려다오!”자신이 앞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대장이 다짜고짜 염구준에게 빌었다. “천무산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서 나갈 수 없지.”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단번에 대장의 목을 따버렸다. 천무산 사람을 볼 때마다 그는 독에 당한 딸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젠가 반드시 천무산 전체를 불살라 버리리라! 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급한 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설의 뱀을 찾는 것이었다. 적들을 모두 처치하고 나니, 밤은 다시 고요해졌다. 염구준은 날이 밝아질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조용히 집을 지켰다. 이때 공방의 문이 열리며 아주머니와 함께 천면현이 나왔다. 다들 모두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여기, 원하던 물건입니다. 혹시나 해서 두 개 만들었지만, 하나만 복용해도 충분히 전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아주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약이 담긴 나무 상자를 염구준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뭐 필요하신 거 없나요?”염구준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이 일에 대한 대가는 천면현한테 받을 거예요.”아주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염구준의 시선이 천면현에게 향했다. 노인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괴의 치료약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이 들었을 텐데, 아주머니의 보상까지 직접 하겠다고 하다니
삼인조는 여전히 호숫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땀 범벅에 핼쑥하진 얼굴, 하루 밤 사이에 족히 십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밤새도록 감시를 받으며 춤을 췄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수안아, 가자!”염구준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숫가를 향해 외쳤다. “네!”수안이 대답하며 순식간에 염구준 옆으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그런데 저 셋은 그냥 저렇게 둘 거예요?”그러자 염구준이 무심한 얼굴로 삼인조를 바라보며 답했다.“내버려 둬. 어차피 쓰레기들이라 함부로 못해.”이 정도로 혼났는데도 불구하고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이나라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때는 염구준이 아니라 천면현에게 호되게 당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천면현와 이나라의 분위기를 봐서, 분명 멀지 않은 시기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았다.사랑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지났지만 이제라도 자기 짝을 만난다면 그것도 복이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삼인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드디어 해방이었다. 한편, 보채성.천무산을 가기 위해선 보채성을 반드시 지나야 했다. 그런데 보채성에 발을 들인 순간, 염구준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오라버니, 피 냄새가 나요. 좀 전에 흘린 피 같은데요?”수안이 살짝 인상을 쓰며 코를 움찔거렸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꽤 많은 사상자가 나온듯했다.“그러게, 피 냄새가 나네.”염구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보채성에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건, 대염무관에도 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뜻했다. “가자!”염구준이 발에 힘을 주며 대염무관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대염무관과 전갈문은 모두 무리안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두 세력은 무리안에서 염구준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대염무관에 도착했다. 피가 낭자한 땅, 재앙이 휩쓸고 간 모습이 보였다.염구준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
이 익숙한 기운은? 그 분이다!제욱의 눈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엔 염구준이 있었다.“적이다! 방어 진형으로 바꿔!”천무산 무리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약 스무 명이 되는 인원 모두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무리안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만큼, 이들의 결단력과 결속력이 대단했다.“또 꼴도 보기 싫은 천무산이라니. 그냥 오늘 죽는 날이라 생각해.”염구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염 선생님!”제욱이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구세주가 왔다!“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늦어서 죄송해요.”염구준이 제욱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넌 뭐야? 대염무관이랑 어떤 관계야?”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염구준을 경계하며 물었다.“너희들 모두 천무산 소속 맞지?”어차피 곧 죽을 놈들,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흥! 우리의 소속을 알고도 끼어들다니!”대장이 비웃으며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천무산은 무리안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그렇다면 봐줄 이유가 없겠군!”상대의 신원이 확실해지자, 염구준은 망설임없이 움직였다.“방어.”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시작된 맹렬한 공격, 이들의 진형은 염구준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제욱은 경악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토록 쉽게 밀어붙이다니!“넌, 악마야!”대장이 피를 토하며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염구준은 특별한 기술 없이, 단순 맨몸 공격으로 절반 이상의 인력을 해치웠다. 천무산 쪽 사람들에겐 염구준은 인간이 아니라 핵폭탄 그 자체였다.“내가 인간이든, 악마든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너희들이 오늘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될 거란 거야.”이 말을 끝으로 염구준은 다시 남은 인원들을 향해 움직였다.이제 천무산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었다. 한쪽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남은 한쪽은
”살고 싶다면 염구준에 대해 아는 것 모두 불어라. 쓸만한 정보가 있다면 살려주겠다.”그제야 대염무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 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하! 꿈 깨!”제정도가 코웃음 치며 입을 꽉 다물었다. 은인을 배신하라니,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오? 입이 꽤 무겁구나?”광사가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던져버린 뒤, 선글라스를 내리며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결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고문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특기는 남의 팔다리 힘줄을 끊는 것이었다.“반 시간 정도 남았다. 그동안 실컷 여유를 즐겨라. 곧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광사가 대염무관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익! 결투다, 이 개 자식아!”제정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몸에서 남은 전신 영역을 끌어올리며 광사를 향해 돌진했다. 비록 중상 입은 상태였지만, 남은 사람이라도 지켜야만 했다. “쯧! 번거롭게!”하지만 광사는 너무나도 쉽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제정도는 지금 서심고에 당한 상태였다. 전투력이 평소의 십 프로 밖에 낼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의리를 지키려 해? 너희들이 처참하게 당할 때, 염구준은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광사가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나 여기 있어!”이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흩날리는 먼지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이었다!염구준은 누군가가 몰래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염 선생님, 어떻게 여기….”구세주를 본 제정도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거기까지.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만 운다는 말이 있죠. 눈물 거두세요.”염구준이 손을 들어 제정도를 저지시켰다. 그리고 남은 대염무관 사람들을 세어 보았다. 제욱을 제외하곤 이곳에 납치당한 사람이 살아남은 인원의 전부라면, 절반이나 죽임을 당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타까움이 치
염구준은 광사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차렸지만, 굳이 막으려 들지 않고 수안을 불렀다. “먼저 사람들을 구한 다음에, 저 쓰레기들을 치우자!”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천무산 사람들이 빠르게 쓰러져 갔다. “아악!”끊이지 않는 비명, 살아남은 이들은 완전히 전투 의욕을 잃은 채 산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쫓아갈까요?”수안이 염구준에게 다가와 물었다.“쫓아가. 그리고 전부 다 죽여버려!”천무산 사람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한 놈도 살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친 인원들도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했다. 제정도도 둘을 돕고 싶었지만, 서심고에 당해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숲은 다시 고요함을 찾아갔고, 천무산 사람들은 광사를 제외하고 모두 전멸당했다. 그는 소란스러운 틈을 타, 몰래 한쪽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하들에겐 맞서 싸우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실력차이를 실감한 터라 정면승부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광사는 부디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며 숨죽였다. “넌 또 뭐야? 거북이야? 숨는다고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아?”이때, 위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사가 가장 두려워했던 염구준이 나타났다. 이 따위 야비하고 얕은 수단이 통할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설 수밖에! 광사는 공격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그런데 두려움에 자신이 지금 구덩이 속이라는 것을 잊고 영역을 펼친 탓에 제대로 된 실력을 펼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펼친 공격에 스스로 타격을 입는 아주 치명적이고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허허, 이런 멍청한 놈이….”그 모습을 보고 염구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자기 전신 영역에 자기가 당하는 모습은 그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젠장!”입안 가득 흑먼지를 먹은 광사가 침을 뱉으며 다시 염구준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격이라 허점이 많이 보였다
“뭐야? 닥치고 있으면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돼? 그리고 라크, 너가 그랬지? 이나라의 고충을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됐지? 한번 설명해보지 그래?”라크라 불린 남자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산주가 콕 집어 압박하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 산주님. 제가 보낸 인원들이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도중에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라크가 조심스레 돌려 임무가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산주는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인물로, 가능한 최대한 자극하지 말아야 했다.하지만 현충은 그의 말을 듣고 더 분노에 차올랐다.“그건 네 사정이지. 임무 기간은 끝났고, 난 결과만 본다. 넌 실패했어, 아니야?”라크는 그의 말 속에 담긴 위협을 느꼈다.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그는 다급히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산주님,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제가 직접 팀을 꾸려 가서 물건을 찾아오겠습니다.”하지만 현충의 반응은 냉랭했다.“늦었어! 끌어내, 법규에 따라 처리해버려.”라크는 공포에 질린 채 계속해서 애원했지만, 결국 밖으로 끌려 나가 즉결 처형당했다. 회의장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모두들 산주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현충은 몰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보기가 되었을 테니, 당분간 이 긴장된 분위기가 풀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일종의 경고였다. “이런, 이런. 오자마자 피비린내 나는 광경이라니, 기운이 좋지 않군요.”이때, 갑자기 문 밖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며 조용한 분위기를 깼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산주, 현충만큼은 그를 단번에 알아봤고 현충의 얼굴에 경멸이 담겼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흑풍존주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염구준과 대적하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와주러 왔습니다.”“용건이 그게 다야?”현충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하, 오랜
“꺼지라고 했다.”현충이 끈질기게 구는 흑풍존주를 노려보며 손을 뻗어 장풍을 날려 멀리 날려 보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그는 제대로 한방 맞고 기혈이 뒤틀리며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커걱, 망할 늙은이!”결국 흑풍존주는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더 이상 천무산에 있지 못하고 뒤꽁무니 빠지게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회의장은 안엔 다시 침묵이 찾아왔고, 이때 현충이 입을 열었다.“지나간 일은 다시 묻지 않겠다. 하지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목숨 내놓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산주는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현충은 반짝 긴장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삼장로, 지금 하던 거 모두 중지하고, 모든 인원을 천무산으로 불러들여.”“이장로, 무산채 쪽도 모두 포기하고 철수해라.”“대장로, 삼장로랑 이장로가 돌아오는 대로 즉시 산을 봉쇄하고 경계 수준을 최고치로 올려라.”이유 모를 위기감를 느낀 현충은 만반의 준비를 시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직접 움직일 예정이었기에, 따로 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천무산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긴장과 압박감이 흘렀다. 무산채. 이곳은 꽤 거금을 들여 만든 천무산 소유 휴양지였다. 하지만 그들이 철수하고 나자 외부인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의 목적은 하나, 어떻게든 옥패를 빼앗는 것, 그것뿐이었다. 무산채 입구, 한 남녀가 나타났다. 바로 염구준과 수안이었다. “오라버니, 저희 바로 천무산으로 가는 거 아니었나요?”수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우린 정보가 부족해. 일단 상황파악부터 하고 움직이자.”염구준은 딸이 걱정되었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당장 전신전 전주로서 천무산쯤 멸문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쌍두성사였다.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