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들을 이렇게 많이 모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어 보였다.‘고기 방패로 사용하려는 거겠지.’염구준은 의도를 간파하고도 밝히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잠시 뒤, 녹독산장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선두에서 사람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이번 흑충곡 진입을 위해 저희 녹독산장이 특별히 미리 안전한 길을 물색했으니, 여러분들에게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하지만 대표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어디선가 곤충의 날개짓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이 나타났다.독침벌!윙윙거리는 날개짓 소리와 함께 검은 무리 떼를 본 순간 사람들은 직감했다. 한 번 움직이면 최소 천 마리, 공격도 굉장히 조직적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곤 사방으로 흩어졌다. 쏘이면 즉사였다. 하지만 염구준은 태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반보천인으로서 겨우 벌 따위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지금 저주받은 상태라는 것을.“여러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우리 녹독산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가지고 있습니다.”독산이 크게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녹독산장의 위세를 보여줄 순간이었다. 부하들을 향해 손짓하는 독산, 곧 녹독산장의 사람들이 화염방사기를 들고 하늘을 나는 벌들을 향해 뿜었다. 불꽃은 벌들의 천적이었고, 화염방사기로 인해 대부분의 벌들이 소탕되었다. “하하, 보셨습니까? 저희 녹독산장이 함께인 이상, 두려워하실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역시 녹독산장, 생각보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이때, 잠시 숨돌리는 사이 멀리서 아까보다 더 웅장한 날개짓 소리가 들려왔다. ‘왔군!’염구준은 남들보다 뛰어난 오감을 가지고 있어 진작에 이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최소 십만 마리, 제대로 벌집이 터져 나온 것 같았다.“계속 불태워라!”독산이 어두워진 얼굴로 명령했다. 매우 강하고 큰 불꽃이 독벌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염구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흑충곡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인원중 3분의 1이 죽었다. “음?”가까운 곳에 연못이 있었다. 염구준의 시선이 이상하게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독벌이 물러간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는 허리에 매달려 있는 물병을 꺼내 한 모금 수분을 보충한 뒤,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그런데 저주에 걸린 뒤, 처음으로 사례에 걸리지 않고 물을 마셨다. 그는 의아했다. “야, 물병 좀 넘겨.”평범하게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던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무례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구준은 못 들은 척, 상대를 무시했다. “귀먹었어?”하지만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느닷없이 가루 한 웅큼 염구준을 향해 뿌렸다. 일반인이었다면 바로 즉사할 수도 있는 독 가루였다. 그러나 염구준이 아무렇지도 않고 몸을 비틀어 피해 버리는 바람에 뒤에 있던 사람만 봉변을 당하게 되었다. 흙가루를 맞게 된 남자는 온 몸이 부식되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 가루는 강한 부식성을 가진 황산과 맞먹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와 독을 뿌린 여자를 향했다. 여자의 정체는 독산의 여자, 흑주였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여자였다. “계속 쳐다보면 눈알 뽑아버릴 줄 알아!”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음에도 흑주는 아주 당당했다. 독산의 여자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얼른 고개를 돌렸다. “죽고 싶어?”하지만 염구준은 달랐다. 그는 냉랭하게 여자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흑주는 그가 원하던 대로 숙이지 않자, 곧바로 옆에 있던 독산을 향해 애교를 부렸다. “자기, 저 남자가 나를 죽이려고 해. 도와줘!”독산이 있는 앞에서 이런 험한 대우는 그녀도 처음이었다. 반면, 독산은 안 그래도 순탄치 못했던 출발을 한 터라 기분이 안 좋았는데, 또 일이 발생하자 짜증이 치밀었다. “형씨, 내 여자가
퍽! 길고 단단한 검은 창이 염구준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몸을 돌려 발차기로 창을 걷어찼고, 창은 순식간에 공격한 남자를 뚫고 뒤에 있는 나무에 뿌리깊게 박혔다. 독산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호위병 중 한 명이 제대로 된 공격 하나 막아내지 못하고 즉사해 버린 것이다. 상대의 무공 실력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약하군, 너무 약해.”염구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서히 독산 쪽으로 걸어갔다. “형님, 제가 고수를 몰라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상황이 불리해지자 독산은 곧바로 굴복했다.“늦었어. 처음부터 그랬어야지.”염구준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희망을 짓밟았다. 그런데 이때, 뽈록하고 연못 쪽에서 기포가 올라왔다. ‘뭔가 나오려나?’염구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연못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에 적잖은 수의 생명체가 점점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스윽-이때, 갑자기 물속에서 작은 송아지만 한 크기의 형체가 튀어나왔다. 온몸이 진흙으로 뒤덮인, 더럽기 짝이 없는 독을 품은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첫 목표로 염구준을 노리며 길다랗고 끈적한 혀를 뻗었다. “흥, 어디 한 번 살아남아 보시지?”그 모습에 독산이 크게 기뻐하며 환희에 가득한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봤다. 이 짧은 거리에서, 그것도 갑작스레 일어난 습격을 피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죽고 싶구나?”염구준이 주먹을 뻗으며 강력한 펀치로 날아오는 독개구리의 혀를 날려 보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탄력 넘치던 혀는 갈갈이 찢어지며 바닥에 무참히 널브러졌다.개굴개굴!독개구리는 그 충격에 울부짖으며 다급히 연못 안으로 다시 피신했다. ‘인간이 맞아? 어떻게 저 상황에서 바로 반격할 수 있지?’독산은 경악한 얼굴로 염구준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제야 자신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함께 삼색꽃을 찾으러 가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상대에게 모두 빼앗길 게 뻔했다. 그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연못
조용히 묻어가려 했더니,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강자는 세상이 내버려 두지 않는 법이었다. “때가 됐군.”염구준이 독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곧장 뒤쫓아갔다. 삼색꽃을 찾기 위해 안내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지금이 적기였다. “선생님, 저희 좀 구해주세요!”몇몇이 염구준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다.“바빠, 알아서 살아남아.”염구준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숲속으로 살아졌다. 흑주에게 위협받았을 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으면서 도움을 바라다니, 염치가 없었다. 연못가엔 끊임없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두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그른 것 같았다.숲속엔 엷은 독안개가 퍼져 있었으며, 독충들이 사방에 돌아다녔다. 독산 일행은 확신 있는 발걸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돌진했다. “자기, 나 피곤해. 조금만 쉬자.”독산의 여자, 흑주가 지친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닥쳐, 얼른 삼색꽃을 찾아야 해.”그러나 이번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통만 돌아왔다. 삼색꽃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염구준이 등장한 뒤로, 묘한 불안감과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다.“흥!”흑주가 토라진 얼굴을 한 채, 입을 다물었다. 반면, 염구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심히 이들의 뒤를 미행했다. 수풀이 무성한 곳을 뚫고 지나가다 보니, 생각보다 흔적이 많이 남아 뒤쫓는 것이 쉬웠다. 그러나 앞선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에 실패한 독충들이 뒤늦게 따라온 그를 발견하곤 공격하기 시작했다. “성가시군.”염구준이 손을 휘두르며 손 쉽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벌레들을 처리했다. 그런데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저주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흑충곡 절명충 분지 중심, 단풍 무의가 수놓아져 있는 검은 로브를 쓴 한 무리가 서 있었다. “좋아. 모든 장비 제대로 준비되었는지 확인했어?”흑풍존주가 축구장 열개 정도 정도 크
이 소녀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어려보였지만, 실제로는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었다. 이들이 대화하는 사이, 숲 속에서 인기척 여러 개가 느껴졌다. 바로 독산 일행이었다. 이들은 계속된 전투 상황에 많이 지쳐 있었다. 더군다나 불운을 불러오는 사내까지 뒤를 쫓고 있으니,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독매, 네가 왜 여기 있지?”독산은 좀 전까지 삼색꽃을 얻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절명충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독매 일행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대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든, 절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물어? 널 죽이러 왔지.”독매가 웃으며 대답했다.“동생아, 나 농담할 기분 아니다. 우리가 비록 같은 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정이라는 게 있잖아.”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독산이 침착하게 독매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 독매의 얼굴을 보니, 자신의 말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빠, 너도 나를 죽이려고 삼색꽃을 찾으려는 거잖아. 이제 와서 발뺌해도 의미 없다는 걸 알 텐데? 연기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해.”독매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흑충곡 같은 곳에 발을 들일 이유 없었다.“….”독산은 계획이 들통나자,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강경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가자, 먼저 삼색꽃을 찾아야 한다!”독산이 지시를 내리며 절벽 너머 우뚝 솟아 있는 절명충 분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아가씨, 저들을 막아야 하지 않나요?”독산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독매 옆에 있던 부하가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알아서 사지로 굴러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니까.”독매가 웃으며 조용히 독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삼색꽃을 채취한다는 것은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귀했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때, 수풀 사이에 또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절벽 꼭대기와 가까워질수록 독충도 점점 많아졌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더 커졌다. 동시에 연달아 폭발음이 들렸다. 염구준이 앞에서 날아오는 독충들을 모두 날려보내고 있었다. 그가 펼친 것은 바로 전신 영역이었다. 겨우 이 정도 공격에 반보천인의 힘은 사치였다. “전신 경지 강자다!”독산이 놀라 외쳤다. 그는 충격에 꽤 긴 시간 염구준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럼 좀 전에 전신 경지 강자랑 붙을 뻔한 거야? 죽을 뻔했는데?’소름이 전신에 돋았다. 녹독산장은 큰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재들이 부족했고, 전신 경지 강자는 더더욱 만나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염구준은 순식간에 절벽 꼭대기에 도착해 삼색꽃을 채취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그런데 삼색꽃을 뜯은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모든 독충들이 빠르게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광경은 아무리 반보천인인 그에게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어쩌면 저주의 여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샘색꽃은 어떻게 복용하지?”염구준이 아득한 눈빛으로 곤충 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때, 밑에서 외치는 독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먹으면…!”거리도 멀고 곤충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때문에 염구준은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삼색꽃은 아직 많았다. 방법이 무엇이든, 통할 때까지 시도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곧바로 삼색꽃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이런, 독 있잖아?’삼색꽃을 입안에 넣고 씹자마자 그는 폭발적인 힘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모든 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염구준은 급히 기운을 끌어 모아 장기들을 보호하며 최대한 독충들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몸을 날렸다. “미쳤나 봐. 삼색꽃을 그냥 먹다니!”현장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봤다. “그냥 먹지 말고 목욕물에 풀어 몸에 흡수시키라고 했는데, 못 들었나?”독매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 방
“음침한 놈이, 평소대로 쥐새끼처럼 숨어있기나 할 것이지, 왜 나타났어?”염구준이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흑풍존주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상대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이 와중에 허세는! 이제 날 건드리지도 못할 놈이!”흑풍준주가 조롱하며 마음껏 지금 상황을 즐겼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번져갔다.그런데 이때, 어디선가 비행선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염구준 머리 위에 멈춰섰다. 막 업그레이드된, 7세대 전투 비행기였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기다리던 지원군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전투기였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기엔 아직 숙련도가 부족했지만, 멈추고 세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외부 지원?”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흑풍존주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중얼거렸다.염구준은 다리에 힘을 주며 높이 뛰어올라 순식간에 비행기 조종석에 자리 잡았다. 그러자 목표물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독충들이 일제히 비행기를 향해 돌진했다. ‘멍청한 벌레들!’비행기에서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발생하더니, 도무지 벌레로는 쫓아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며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여파로 공격하던 벌레들 모두 튕겨져나갔다.“존주님,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흑풍존주의 부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흑풍존주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염구준이 전투기에 탑승한 순간, 이미 도망친 것이다. 과연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전투기에 탑승한 염구준은 열감지 장치를 이용해 적을 감지한 뒤, 곧바로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몇몇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갔다. 이후, 염구준은 전투기를 조정해 달아나고 있는 흑풍존주를 추격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흑풍존주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어떻게든 염구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눈앞이 흐
한 달 뒤, 5성급 호텔 최상층,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주인님, 찾으셨습니까?”선풍은 겉 보기에는 존경의 눈빛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사실 원망이 가득했다.“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흑풍 존주는 그의 깍듯한 모습을 비웃듯 웃어 보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다 아는 듯하였다.그는 지난번 염구준에게 패한 이후 약 한 달간 훈련을 하며 마침내 부상에서 회복됐다.지금 흑풍 존주는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그의 목표는 엘 가문이었다!“내가 기필코 되돌려주마, 염구준은 손도 쓰지 못할 거야!”흑풍 존주는 입가에 냉소를 띄우며 선풍의 앞으로 서류를 던졌다. “네 다음 임무는 엘 가문을 공격하는 거다!”그 위에는 최근 엘 가문의 약점과 내부 스파이까지 적혀 있었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선풍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예!”선풍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서류를 집어든 그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겨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주인님, 저 자를 믿으십니까?”옆에 서 있던 남자는 조금 놀라며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흑풍 존주는 차갑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뒤, 엘 가문이 파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주님, 이제 어떡하죠? 벌써 문 앞에 돈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저희의 최저 입찰가도 알려졌습니다!"임원들이 앨리스의 앞으로 달려와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앨리스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려움이 커져갔다.앨리스는 잠시 생각을 하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염구준은 하품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 피곤해했다.“염 선생,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엘 가문은 지난 이틀 동안 악의적인 공격을 받아 현재 파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두 개의 간단한 문장으로 현재 엘 가문의 모든 상황이 설명되었다. 염구준은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떴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
비록 인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베르 일행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여러 가문을 합쳐서 겨우 20명이 살아서 돌아오고 나머지는 심해에서 전사했다.신비한 생물체가 공격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참담한 손해를 보았다.“빨리 출발해!”베르는 선박에 올라오자마자 부하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지금 그의 안색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정예병들을 잃고 강력한 조력자 세라까지 잃었는데, 고작 가짜 옥패를 찾다가 죽을 뻔했다.“출발해. 바다 화산이 곧 폭발할 거야!”“우리도 스텔라성이 복수하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다른 가문에서도 각자 선박과 잠수함을 타고 먼 곳으로 향했다.바다 밑의 움직임이 너무 커서 그들도 휘말릴까 봐 너무 무서웠다.지금 해수면에 남은 사람은 노신기와 아타의 선박뿐이었다.그들은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렸다.저런 인간들도 살아서 돌아오는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염구준은 무조건 살아서 돌아올 거라 굳게 믿었다.“문주님, 소용돌이가 나타났어요.”선박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다.“소용돌이?”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소용돌이가 점점 거세게 번지는데 이러다 선박 세 척까지 삼켜버릴 것 같았다.또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아타 장로님, 저기…!”노신기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뒷말을 흘렸다.솔직히 그도 염구준이 살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싶지만 이러다가 백 명의 부하들이 전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일단 철수하고 소용돌이가 사라지면 보트로 찾으러 오죠.”아타도 급속하게 퍼지는 소용돌이를 보고 일단 명령을 내렸다.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작은 섬들을 완전히 삼키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용돌이가 미친듯이 주변을 삼켜 버리기에 이러다 정말 전멸할 것 같았다.노신기가 베르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염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하하하, 당연히 내가 죽였지!”베르는 바다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으면서 빌어먹을 허영심 때문에 또 허풍을 떨었다.당시 현장은 난장판이라 제대로 본 사람은 얼마되지 않
밖에서 보면, 절벽이 곧 무너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게다가 바닥에서 진흙과 모래가 일면서 시야까지 가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어느 방향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하하하, 염구준이 동굴에 묻혔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이미 추동 장치로 수십 미터 올라간 베르가 유난히 신나게 웃고 있었다.염구준이 이곳에서 뼈가 부서지고 연기처럼 사라지길 바랬다.촤아아!그런데 기뻐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한 그림자가 혼탁한 바닷물을 뚫고 나타난 것이었다.염구준이 아니면 누구일까?“흥, 추동 장치도 없는데 수천 미터나 되는 심해에서 어떻게 올라오나 보자.”베르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더니 더는 염구준을 상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동굴 밖으로 나온 염구준은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검붉은 암장이 소용돌이치고 모래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사방을 헤엄치고 대왕 오징어도 균열을 뚫고 심연으로 빠져나왔다.이곳의 기괴한 생물체들도 도망치느라 인간을 봐도 공격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동굴 밖에 나와서도 바다의 화산이 폭발하는 위기에 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지금 잠수 장비와 추동 장치는 없고 산소통만 남는데 몇 숨만 쉬면 바닥날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변고로 아래로 흡수하는 암류가 사라져서 올라가기 쉬웠지만 그래도 시간이 한참이나 필요했다.어쩌면 해수면으로 올라가기 전에 암장에 삼키거나 익사해 죽을 것 같았다.‘방법이 있어.’문뜩 좋은 방법이 생각난 그는 빠른 속도로 심해 모래벌레의 둥지로 향했다.그곳에 죽은 무술인들의 잠수 장비를 찾아볼 생각이었다.슈우웅!얼마 가지 못하고 지면이 점점 격렬하게 움직이며 대량의 암장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바다의 화산이 제대로 폭발한 것이다.분화점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벌레 둥지는 순식간에 암장이 덮쳐버렸다.“뭐야. 나랑 해보자는 거야?”왠지 모든 불리한 요소들이 전부 염구준을 향하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심해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놀아나다가 죽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방금 전에 심해 눈물의 덕
신비한 생물체는 춤을 추듯 물속을 떠다니더니 공의 명령을 받았는지 우르르 몰려서 베르 일행을 공격했다.“공격을 멈추지 마세요!”두통이 밀려온 베르는 명령을 내리고 곧장 동굴로 도망쳤다.일부 무술인들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각자 도망치기에 바빴다.생물의 정체와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기에 일단 도망치는 것이었다.“살려줘요!”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세라는 베르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데려가길 바랐다.그런데 본인만 챙기느라 누구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일단 한 걸음만 뒤처져도 바로 죽기 때문에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아악!”운이 나쁜 무술인들은 대량의 생물체에 공격당해 비명을 지르다 백골이 되어버렸다.그리고 몸에 한두 마리씩 들어간 무술인들은 경련을 일으키다 바로 기절했다.기괴한 생물체는 공격력은 약하지만 일단 몸에 닿으면 방어할 틈도 없이 살해했다.곧 도망친 사람들은 살아남고 늦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렸다.지금 심해에 염구준이 혼자 남았으니, 반투명한 생물체들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조금만 더!”염구준은 천천히 흐르는 심해의 눈물을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여러 번이나 검기를 휘둘러 생물체를 제거했다.아무리 극한 반보천인이라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생물과 억지로 맞서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감당하지 못하면 백골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니까.슈슈슝!신비한 생물체가 죽는 족족 살아 있는 생물체들이 계속 헤엄치며 다가왔다.염구준이 검을 휘둘러 죽일 때마다 더 많은 생물들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마치 그의 피와 살을 모조리 먹어 치울 기세였다.그래도 염구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자신을 보호했다.그때 일부 생물체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몸으로 스며들었다.“이것들이 정말 끈질기네.”염구준은 체내의 불 원소의 힘으로 몸 겉면에 황금색 화염을 형성했다.심해에서 불 원소의 힘은 압박을 받아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생물체를 제거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치지직!그에게 접근한 생물체는 엄청
베르는 동시에 방어한다면 염구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하나씩 파괴되는 것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아아아악!”염구준의 검은 여전히 날카롭게 베르의 방어벽까지 쉽게 깨 부셨다.갑자기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했더니 구자검이 전처럼 날카롭게 움직이지 않았다.“반격!”이때다 싶어 베르는 다섯 명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려 반격에 나섰다.쿵!맹렬한 공격으로 쌍방은 각자 뒤로 물러서고 그 충격으로 수중에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동굴이 심하게 흔들렸다.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방어벽으로 막지 못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잠수 장비가 깨지고 심해의 수압에 경련을 일으키다 익사했다.그 장면을 본 일부 무술인들은 괜히 끼어들다 죽을까 봐 한참 뒤로 물러섰다.돌기둥에 돌아온 염구준은 아직도 심해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이렇게 귀한 물건을 낭비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산소통을 빼앗아 검으로 자르고는 거기에 담기 시작했다.심해의 눈물이 워낙 밀도가 강해서 산소통의 물이 알아서 흘러나왔다.그때 전체 동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아아악!”또 갑작스럽게 닥친 변고에 다들 주변을 경계했다.베르의 표정은 가관이었다.눈앞의 강적도 죽이지 못했는데 또 알 수 없는 위험이 닥쳐서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불꽃으로 비춰!”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몇몇 불꽃이 위를 비추었다.대부분 부하들은 가방에 보물을 하나라도 더 쑤셔 넣으려고 전등이나 불꽃을 만드는 장비를 전부 던졌다.불꽃이 이동할 때마다 주변을 비추었는데 위험한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대신 아무런 상처도 없는 죽은 시체가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그것을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적의 정체를 모르니 아무리 힘이 있어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응?”염구준도 수상한 기운을 느끼다 갑자기 누군가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감지했다.죽은 모습은 전에 보물을 찾으러 왔던 무술인들의 시체와 증상이 똑같았다.‘엄청난 생명이 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