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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러나 지금은 퇴역한 사위가 돌아와 그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고 있지 않은가! 비록 전우의 인맥일지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지라도 괜찮았다.

여전히 아이를 안은 채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염구준이 무심하게 내뱉었다.

"손혜린, 잊지 마. 3일 뒤면 희주 생일이야. 생일 연회에 너랑 서재원, 두 사람 모두 희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거야. 같잖은 자존심 지키려다 망하고 싶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봐."

손혜린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부들거리며 화를 억눌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이었다. 용운 그룹과 계약을 체결한 뒤 복수해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반드시 염구준과 손가을 집안을 모조리 박살 내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죄송해요. 두 분께 사과드립니다."

손혜린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아내며 간신히 미소를 쥐어짰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용운 그룹에 연락해서 계약 준비를 하라고 할게요. 바로 집 앞에 제 차를 세워두었으니 두 분을 회사까지 모실겠습니다."

떠나는 순간 그들의 뒤에 있는 염구준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5시간이나 허리를 숙이고 있었더니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장인어른, 장모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염구준과 손가을이 나란히 서서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손혜린을 흘깃 쳐다본 염구준이 보란 듯이 말을 보탰다.

"용운 그룹과의 계약 건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두 분께 차려진 몫은 꼭 받게 되실 겁니다."

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에게 차려진 몫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동안 무수한 거래를 성사했음에도 배당금이나 상여금은 전부 손혜린 차지였다. 이번 계약을 마지막으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상여금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

"다녀오지."

씁쓸한 표정으로 인사하던 손태석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진숙영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장인, 장모를 눈으로 배웅하던 염구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떠나기 전 손혜린이 자신에게 보냈던 표독스러운 눈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 바로 보복하려는 속셈일 테지. 그러나 전신전 전주와 겨루기엔 그녀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

한편, 절뚝거리며 자신의 포르쉐에 다가간 손혜린은 활짝 미소 지으며 굽신굽신 통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입니다. 네네네, 그럼요. 당연히 손태석 씨와 진숙영 씨를 모셔 왔죠. 그러니 부디 저희와 계약을... 네, 뭐라고요?"

손혜린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처음에 전화를 받은 이는 젊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으나 어느새 거친 노인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알겠소. 나 용성우요. 30분 뒤 손영 그룹에서 보세. 이 몸이 직접 가서 체결하겠네."

할 말을 마친 상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수화기 너머의 무정한 신호음을 들으며 손혜린은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한 채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용성우가 누구인가. 용씨 집안의 가주이며 이 도시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거물이 아니던가. 용운 그룹 책임자가 바로 용성우에게 전화를 넘길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용성우가 직접 행차할 정도이니, 그들도 이번 계약을 중요시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손영 그룹 부사장인 자신이 아니라 손중천이 친히 용성우를 맞이하는 게 옳았다.

"얼른 타요, 얼른!"

손혜린은 온몸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잊은 채 허둥지둥했다. 두 사람을 얼른 차에 태운 뒤, 차를 몰며 손중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한 용성우가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을 손영 그룹 전체에 알려 성대하게 접대하도록 신신당부했다.

오후 네 시, 손영 그룹 건물 앞에 열두 개의 축포가 나란히 울려 퍼지며 '용운 그룹 용성우 대표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높게 걸렸다.

회사 건물 입구에는 손중천을 포함한 회사 고위직 임원들 및 특별히 초청한 의장대까지 무려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태진이는?"

지팡이를 짚은 손중천이 군중을 훑어보며 얼굴을 굳혔다. 이렇게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그의 맏아들이자, 손영 그룹의 사장인 손태진이 없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가까이 다가간 집사 양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손 사장은 지금 병원에서 작은 도련님을 보살피고 있답니다."

손중천은 그제야 노여움이 조금 가신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유일한 손주는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수족구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자신이 친히 걸음 했으니 큰아들이 오지 않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손씨 집안의 명맥을 이어가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이때,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빨간 포르쉐가 빠른 속도로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부사장 손혜린이 손태석, 진숙영을 이끌고 급히 손중천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헉헉거리며 인사했다.

"어르신, 오셨군요!"

손중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손태석과 진숙영을 싸늘하게 훑어보고는 흥, 하며 코웃음 쳤다.

"처신 잘하거라. 계약서에 예쁘게 도장 찍어야지 않겠어? 일이 잘못되면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테니 그리 알아!"

손태석과 진숙영은 그의 눈치를 보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큰 성과를 냈음에도 손중천의 태도는 늘 한결같이 쌀쌀맞았다. 그는 아마 평생 남아 선호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싶었다.

바로 이때,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용씨 집안 가주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열세 대의 외제차가 나란히 줄지어 들어섰다. 앞뒤로 여섯 대는 모두 신형 마이바흐였으며 중간에 특별 제작한 롤스로이스 안에는 용성우가 타고 있었다. 고강도 방탄 성능을 지니고 있는 해당 차량은 제조비만 해도 40억을 웃돌았다.

그 기세는 가히 모든 군중을 압도했다. 차량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유히 손영 그룹 회사 문 앞까지 당도했다.

"용 대표님!"

손중천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그는 재빨리 손혜린과 임원들을 이끌고 롤스로이스 가까이 다가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건장한 체구의 경호원이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용성우를 보좌했다. 차에서 내린 용성우가 주변을 훑어보았다. 1초 정도 손중천과 손혜린에게 눈길이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뒤쪽에 서 있던 손태석과 진숙영을 발견하고는 눈빛을 빛냈다.

'저 두 사람이 주군의 장인 장모란 말이지.'

이번 계약 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귀빈들이다. 여기엔 용운 그룹과 용씨 가문의 미래도 달려 있었다.

"아이구, 두 분께서 이리 직접 마중 나오시다니요.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용성우가 예를 차리며 얼른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소를 지은 손중천은 지팡이를 집사에게 넘기며 용성우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손혜린도 황송한 듯 고개를 숙였다. 용성우가 말한 '두 분'이 그녀와 손중천을 가리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녀도 덩달아 두 손을 내밀며 허리를 숙였다. 용성우와 악수할 생각에 마음이 잔뜩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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