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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Penulis: 잔영
그러나 용성우는 두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손태석의 손을 맞잡더니 이번에는 진숙영과도 악수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손 선생님, 사모님,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협상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을... 혹 우리 직원들이 두 분을 홀대한 건 아니겠지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부디 두 분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져오게나!"

재빨리 다가간 경호원이 정교한 순금 카드를 용성우 앞에 공손하게 내밀었다.

"이건 저희가 특별 출시한 VVIP 카드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지요."

용성우는 손태석과 진숙영 앞에 조심스럽게 순금 카드를 내밀었다.

"이 카드를 소지한다면 우리 용씨 가문 휘하의 모든 장소를 전액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지요!"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가 손태석과 진숙영 부부에게 이다지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심지어 이건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왜?

두 사람은 손씨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었다. 기업 내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했다. 복지나 상여금은 차치하고 툭하면 기본급도 깎이는 처지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제공받는 셈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대단하신 용성우가 두 사람을 예우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VVIP 순금 카드를 내민 것이다. 게다가 손씨 어르신과 손 부사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혹시 카드의 주인이 뒤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손태석은 차마 용성우가 내민 귀한 선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님, 어찌 저희에게 이런 귀한 걸 내어주시는 겁니까. 이것 참...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회사 규정상 고객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라면, 먼저 계약서부터 작성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바로 이해한 용성우는 카드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얼른 VVIP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그가 다정하게 손태석의 팔을 잡았다. 손태석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마치 친우를 만난 듯이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계약 확정을 알리려고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투자금은 5조면 되겠습니까? 부족하다면 더 늘리겠습니다. 우리 아우님 부탁이라면 제가 힘닿는 대로 도울 것입니다!"

용성우의 '아우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손중천, 손혜린을 비롯한 이들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뭐 이런 이상한 전개가 다 있지?

VVIP 카드도 모자라 형님 아우 사이로 발전하고 이젠 투자까지 아낌없이 하시겠단다. 단지 손태석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그러나 손태석이 뭐라고?

손씨 어르신에게 쫓겨나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슬하에 아들조차 없는 데다 유일한 딸자식은 벙어리다. 사위는 또 쓸모없는 퇴역 군인이 아니던가. 당장 일자리도 잃게 생겼는데 대체 무슨 수로 용성우의 호감을 얻었단 말인가?

너무나도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고... 이게 대체..."

열정적인 용성우를 앞에 두고 손태석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에게 팔까지 잡히고 나니 온몸이 불편해지며 말조차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 건도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간신히 웃음을 쥐어짜 낸 손태석이 입을 열었다.

"저, 가주님..."

"어허, 가주님이라니. 우리 아우께선 너무 수줍음이 많으시구려."

용성우는 사람들의 경악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손태석의 팔을 덥석 잡으며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아우만 괜찮다면 나를 형님이라 불러도 좋네만... 아우 생각엔 초기 투자금으로 5조면 되겠소? 나중에 언제든 늘릴 수도 있으니. 자, 얼른 계약하러 가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도 편하게 놓았다.

용성우는 한편으론 손태석의 팔을 잡아끌며 또 한편으로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진숙영을 향해 정중한 제스처를 취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손영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손중천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순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조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조심스레 다가온 손혜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어르신. 이게 대체..."

"시끄럽다!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해?"

손중천이 버럭 화를 냈다.

"계약은 해야 할 거 아냐!"

......

손영 그룹 귀빈실에 모인 그들은 배정된 좌석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아우랑 제수씨는 왜 그런 곳에 앉아있나?"

용성우는 말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내 손중천과 손혜린에게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 나와 계약을 체결하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난 아우와 제수씨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겠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중천은 겨우 미소를 쥐어짜 내며 손혜린에게 낮게 속삭였다.

"얼른 일어나!"

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손태석과 자리를 교환했다.

"......"

손혜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간신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진숙영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마침내 자리 배정이 끝났다. 손태석과 진숙영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사람들 속에서 어색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용성우의 건너편에 자리 잡았다.

오늘 주인공은 두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번 계약 건의 핵심 인물로서 손에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감히 그들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손태석, 진숙영!'

손혜린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며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감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공까지 가로채려 하다니. 찢어 죽일 놈들.

계약이 체결되면 당장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터였다.

"아우님."

용성우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서는 미리 우리 직원한테 작성하라고 했네. 한번 읽어보게나. 내가 제멋대로 몇 줄 더 보탰네만... 아우께서 좀 수고해 주시게나. 너무 언짢아하진 말고."

그의 손짓에 노련한 용운 그룹 업무 담당자가 일찍이 작성해 놓은 계약서를 두 사람 앞에 내놓았다.

본래 5조짜리 계약서에는 투자 방향, 자금 사용 방안, 기반 시설 배치 계획, 갑을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 및 져야 하는 책임 등 수많은 조항이 포함되어야 했으니 적어도 7,8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는 양이어야 했다. 그러나 해당 계약서는 1장뿐이었다.

"이건..."

건네받은 계약서를 훑어본 손태석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용성우를 바라보았다.

'프로젝트 자금 사용 및 배치는 을 측 기업 대표인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갑 측은 이에 따라야 한다.

프로젝트 실행의 모든 과정은 손태석, 진숙영의 감독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물러날 시, 갑 측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할 권리가 있으며 을 측에 계약 위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이건... 그냥 우리에게 자금을 맡기겠다는 거잖아요!"

함께 계약서를 읽어보던 진숙영이 그만 진심을 내뱉고 말았다. 당황한 그녀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말은 실로 정확했다. 자금 사용을 총괄하고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실행을 감독하는 건 굉장한 권력이었다. 몇조나 되는 방대한 자금이 두 사람의 사유 재산으로 둔갑한 셈이니까.

이로써 계약이 체결되면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손혜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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