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에 유료 항목도 적지 않게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딸이 좋다면 돈을 아끼지 않고 티켓을 왕창 구매했다.“알았어. 실컷 놀아.”염희주가 즐거워하자 염구준과 손가을도 덩달아 기뻤다.어느덧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염희주는 아쉬운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아이들 넘치는 체력에 두 사람은 진심으로 감탄했다.세 사람은 기분 좋게 퇴장하다가 입구에서 뚱뚱한 남자애의 아빠와 마주쳤다.남자 뒤에 건달처럼 생긴 남자가 한 무리나 있었다.“아빠!”덜컹 겁을 먹은 염희주가 염구준의 뒤에 숨더니 머리를 내밀었다.“희주야, 겁먹지 마. 아빠가 하늘이 무너져도 널 위해서 버틸게.”염구준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허풍 떨지 마세요!”염희주는 너무 과장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있다면 안전했다.“이봐, 날 기억하지?”남자가 건방지게 걸으며 다가왔다.뒷배가 있어서 그런지 남자는 고개를 쳐들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기억해. 방금 뻔뻔한 놈 아니야?”염구준은 조금도 체면을 주지 않았다.“네가 티켓을 양보하지 않아서 우리 아들 밥도 먹지 않겠대. 어떻게 보상할 거야?”남자는 억지 같은 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자식이 밥을 먹지 않은 것도 남의 탓을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그럼 어떻게 보상받고 싶은데?”염구준은 아내에게 딸을 데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어떤 장면은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간단해. 너희 세 식구 내 아들한테 사과해. 밥을 먹을 때까지.”남자는 염구준이 겁을 먹은 줄 알고 더 기고만장 해졌다.그러자 염구준이 코웃음을 쳤다.“웃겨. 네 아들이 밥을 안 먹는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난 네 아들을 교육할 의무 없어.”이런 인간에게 절대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되었다.“참교육을 시켜라!”남자가 손을 휘두르자 뒤에 일행이 움직였다.십여 명이 한 사람을 때리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한 것이다.“그럼 돈을 추가해!”그때 무리에서 한 건달이 값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당
건달 일행은 깍듯하게 90도 경례를 하고 도망치듯 사라졌다.그 장면을 본 남자는 정신이 혼미해졌다.그는 무술인이 뭔지도 모르고 돈을 주고 부른 건달이 왜 무릎을 꿇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또 뭐가 있어? 나 바쁘니까 빨리 끝내자.”염구준이 검지로 손목 시계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상대방이 싸우고 싶다면 신나게 싸워줄 생각이었다.“기다려!!”남자는 끝까지 싸워보자는 기세로 휴대폰을 꺼내 흔들었다.그동안 제경에서 살면서 몇몇 거물을 알고 지냈었다.오늘 체면을 위해서 그 사람들까지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염구준도 어떤 사람들을 부를지 기대되었다.평소 말썽을 피우는 세력가들을 부른다면 이 참에 가문을 멸망시키고 다른 세력가들에게 경고를 줄 생각이었다.끼이익!5분도 안 되어서 한 차량이 멈췄고 세 사람이 내렸다.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것을 보니 무술인이었다.“기헌 형님, 오셨어요? 바로 이 새끼…”남자는 염구준에게 삿대질하며 욕하려다가 되려 한기헌에게 얻어맞았다.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해 있을 때 한기헌은 염구준의 앞에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염 선생님, 저는 당씨 가문의 기사입니다. 도련님이 만나 뵙고 싶어하시는데 제가 연락을 드리면 바로 마중하러 오실 겁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를 본 기억이 없었다.“됐어요. 이따가 청해로 돌아갈 거예요. 근데 저 사람이 자꾸 시비를 걸어서 못 가고 있었어요.”뜻밖에 지인의 기사라면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남자는 또 어안이 벙벙했다.자기가 빌붙어서 친분을 맺은 거물이 이 사람 앞에서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니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게다가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면 당씨 가문 도련님을 아는 것 같았다.‘나도 접근할 수 없는 거물인데.’그때 한기헌이 안색을 굳히며 손가락으로 남자를 향해 까딱거렸다.“이리 와.”어떤 사람은 건드릴 수도 없고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촤아악!“염 선생님한테 사과해!”한기헌이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내리치며 엄숙하게 말했다.만약 상대방이 진짜
“지정된 해역에 도착했습니다.”늠름한 모습의 주작이 앞으로 나가 보고했다.“닻을 내려서 배를 멈추고 청후병들한테 탐색하라고 해.”염구준은 암초만 보이는 해역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전방은 추룡대삼각 지대로, 안개가 자욱하고 상황이 불분명하므로 항공모함 전투단을 계속 가게 할 생각이 없었다. “네!”주작은 대답을 한 다음 바로 준비하려고 떠났다.염구준은 제경에서 청해시로 돌아간 뒤 계획을 세우고 집안일을 잘 처리하고 팀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거였다.이번 행동에서 핵심 인원은 4대 전존과 황지천 그리고 황지영이고, 용필과 초상비 등은 청해시에 남았다.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흑풍존주가 느닷없이 공격해올까 봐 걱정이 돼서였다.이때, 황지천이 입을 열었다.“이곳, 조금 익숙한 것 같습니다.”하긴, 집 앞까지 왔는데 익숙하지 않을 리가 있겠나? 그럼 그건 길치가 아니라 바보라고 해야 했다.“그럼 입구가 어디인지 알아?”염구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했다.“헤헤, 무작정 나온 거라 기억 못했어요.”황지천은 조금 난감해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쯧,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이 해역은 작지 않으니 천천히 찾아야 했다. 즉, 얼마나 오래 찾아야 하는지는 전부 운에 달렸다는 거다.황지영은 조용히 자신의 집인 추룡대삼각 지역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의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시는지 걱정하면서 말이다.이때, 갑작스럽게 들리는 폭발성에 사람들은 전부 경계태세에 진입한 채로 항공모함 전투단의 한 쪽을 쳐다보았다. “주상, 한 척후 부대가 섬에서 미확인 인원을 만나 습격을 당했습니다. 비록 이미 철수하기는 했으나 손해가 막심합니다.”이와 함께 청룡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와서 보고했다.“타겟을 정하고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해.”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우렁차고 힘있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추룡대삼각 지역의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삼선도의 보초들일 것이었다.‘우리가 정확하게 왔다는 거지.’하지만 한 척후 부대를 잃었다는
“화력을 최대로 해서 공격해!”몇 척의 쾌속정들을 상대하는데 전투기까지 띄울 필요는 없었다. 그러기 귀찮은 것도 있지만 주로는 전투기를 띄우기 전에 전투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슉, 쾅!순식간에 불빛이 하늘을 찌르며 해면을 불바다로 만들었다.쾌속정으로 항공모함 전투단을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행위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전투단에 있는 게 전부 염구준이 제대로 훈련시킨 정예들이기 때문에 적들이 이길 가능성은 더욱 없었다.적들의 쾌속정들은 한 척만이 봉쇄를 뚫고 나머지는 전부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렸다.“다중 전신의 영역이 쾌속정을 보호했어.”빠르게 낌새를 챈 염구준은 이제 곧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직감했다.슉슉.그리고 이와 동시에 네 명이 항공모함에 올라 분노에 찬 눈길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모두 같이 죽여주마!”비록 매우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럴만한 자격은 있었다. 세 명의 전신 위 강자들과 한 명의 반보천인이라면 정예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항공모함이었다면 정말로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나, 애석하게도 그들이 만난 건 전신전의 최고 전력인 염구준이었다.“너희 넷은 반보천인을 상대하고 다른 셋은 나에게 맡겨.”염구준은 이 기회를 빌어 아랫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싶었다.“네!”4대 전존은 깔끔하게 대답한 뒤 바로 반보천인을 향해 돌진했다. 상대방의 실력이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흥, 죽고싶은 모양이구나!”반보천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고박한 칼을 꺼내 마찬가지로 돌진했다.쌍방은 서로 뒤엉켜 싸웠고, 상황을 보아 단시간 내에 승부를 가리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옆에서 이를 보고있던 나머지 세 명의 전신 위 강자들은 상황을 보고 돕기 위해 달려갔다.슉.그러나 곧 염구준이 나타나 그들을 막고서 하찮아하며 말했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니까 가서 낄 생각하지마.”“죽여!”염구준
“흐아아압!”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그는 소리를 지르며 체내의 진기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목숨을 걸고 싸워 보려는 의도였던 것이다.이에 염구준 역시 주먹을 꽉 쥐고 힘껏 내보냈고, 그렇게 몇 합을 겨루지도 못한 채 그는 바닥에 쓰러져 겨우 숨을 쉬면서 황지천을 노려보았다.“배신자 새끼, 너는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거다.”이 말을 들은 황지천은 크게 화를 냈다.“너희같은 당동벌이이야말로 섬을 해치는 존재들이야.”그날 쫓기는 길에서 염구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쿨럭.”생명력이 거의 소모된 반보천인은 피를 토하고는 바로 숨을 거두었다.이로써 위기가 해소되기까지 전후로 15분도 안 된 셈인 거다.“청룡,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남은 적들이 있는지 섬을 수색해.”“주작, 넌 입구를 계속 수색하고.”진도를 빨리 하기 위해 염구준은 쉬지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늦어서 계획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말이다. 싸움이 격렬했기 때문에 삼선도도 눈치를 챘을 것이 뻔했다. “네!”두 사람은 명령을 받고 각자 사람들을 데리고 임무를 하러 갔다.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서 이미 온 하늘이 별로 가득 찼지만, 그들은 아직 삼선도의 입구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염구준이 한번 무모하게 그냥 돌진해 볼까 고민하던 차에, 황지천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저깁니다. 제가 바로 저곳에서 뛰쳐나왔어요.”이 말을 들은 염구준은 벌떡 일어나 상대방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곧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했는데, 자세히 보니 등대 같아보였다.“확실해?”염구준은 신중하게 물었다.중대한 일이니 조금의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네. 나왔을 때, 추격병이 있는지 뒤돌아보다가 저 빛을 봤었어요. 당시에는 적들이 왔는 줄 알고 멀리 도망쳤었는데, 거리가 멀어져도 아무런 소리가 없더라고요.”“지금 저 빛을 다시 보니 생각나는게, 빛이 계속 같은 곳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 같아요.”황지천은 확신에 차서 모든 디테일을 전
이에 염구준 등은 전부 어이가 없어했다. 그들 역시 물 아래에 뭐가 있다는 걸 발견했었기 때문이다. 말을 안 한 이유는 괜히 놀래키고 싶지 않아서였다.촤악.이때, 물소리가 바뀌더니 누군가 그들에게 빠르게 다가왔다.“주상님, 어떡하죠? 크기도 작지 않은 것 같고 수량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주작이 귀를 살짝 움직이며 보고했다.“싸울 준비해.”염구준은 말을 하며 검상자를 열고 구자검을 꺼냈다.지금 이 상황에서는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투를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오든 목숨을 부지하려면 반드시 무찔러야 한다는 거다.“우... 음!”이때, 물 밑의 물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소리가 아주 가늘고 날카로웠다.범고래였던 거다.바다 속의 호랑이로 불리우는 이 생물은 이상할 정도로 흉악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지능을 갖추고 있어 협동 작전에 능했다.비록 고수는 아니지만, 몸무게가 있으니 건드리기 쉽지 않은 존재였다.“선체를 감싸!”염구준은 소리를 지르고는 손에 든 검을 꽉 잡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쿵.그가 내려가자마자 범고래가 그를 박았는데, 위력을 보아서 속도를 최대로 낸 게 틀림없었다. ‘깜짝이야!’염구준은 검을 가슴 앞에 가로로 가져다대서 막았지만 물속에서 행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렸다.‘그래도 다행히 막았네.’펑!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수많은 물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휘몰아치더니 한 줄기의 물기둥이 솟구치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염구준은 마치 기차에 부딪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그의 몸을 밀어붙이며 그가 끝없이 뒤로 물러서게 했다.‘버텨야 해!’그는 강대한 기운을 내뿜으며 몸을 멈춘 뒤, 팔에 힘을 주어 범고래를 진퇴시켰다.그리고 거리를 벌리자마자 바로 검을 휘둘러 검기로 범고래의 한쪽 눈을 찔렀는데, 비록 물의 저항에 의해 많이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폭발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푸욱.범고래의 찔린 눈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지만, 이는 그것을
이미 온 이상에 그는 자신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 딱히 없었다. 하지만 이때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바람이 멈춰버린 것이다. 동력을 잃은 나무배는 그대로 제자리에 멈춰섰다. 바람의 방향은 불분명하고, 배는 움직이지 않으니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한 번 염구준에게로 쏠렸다.그들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백호, 네가 키를 잡고 앞으로 쭉 가.”“나는 물에 내려가서 배를 밀 테니까.”염구준은 이곳에 멈춰 서서 바람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지금 그냥 빠르게 안개 구역을 벗어나고만 싶었다.곧이어 염구준의 힘으로 밀린 나무배는 마치 엔진이 달린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기운도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었다.즉,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이 한 번에 달려 있다는 거였다.한편, 삼선도에서 가장 큰 섬인 봉래도는 매우 떠들썩했다. “대도주님, 큰일 났습니다! 외부 적이 침입했습니다!”한 사람이 허겁지겁 고박한 장식의 대전으로 들어와 급하게 보고했다.“뭘 그리 조급해 해? 삼선도는 여러 방어 설비를 갖추고 있어. 적들이 들어올 수 있을 리 없단 말이다.”높다란 주좌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느긋하게 눈을 비비며 말했다.그의 이름은 황지열로, 삼선도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삼선 클럽을 통해 용하에서 막대한 재산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지금까지 외부인은 삼선도에 발을 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이 안개 구역에서 처리당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섬 주변 암초지대에 강력한 보초들까지 배치해 두었기 때문에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아닙니다!”“침입자가 이미 외곽 보초들을 소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암초지대를 뚫고 범고래들까지 물리치며 안개 구역을 빠른 속도로 돌파 중입니다!”보고를 하던 이는 초조해하는 얼굴로 땀을 뚝뚝 흘리면서 설명했다.“뭐라고?”황지열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큰 소리로 물었다. “대체 누가 쳐들
몇 시간이나 뒤에서 배를 민 탓에 염구준은 현재 기운이 바닥났고, 온몸의 근육도 저릿했다.‘생산대의 당나귀라도 이렇게 혹사시키진 않을 거야.’“이제부터는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백호는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염구준이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스스로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괴로웠다.“그래, 잠시 숨 좀 돌릴게.”그는 말을 하고는 몸을 일으켜 앉아 천천히 내공을 가다듬기 시작했다.겉보기에는 평온한 삼선도였지만, 그 안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살기가 가득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있을 변수를 대비하려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길을 안내해. 바로 봉래도로 가자.”백호는 황지천을 보며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전설로만 들어온 그 봉래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지천은 대답을 피하며 염구준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우리 모두 생사를 함께 한 사이니 숨길 필요 없어.”그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챈 백호가 얼른 말했다.“혹시... 소봉도에 먼저 들러도 될까요? 잠깐이면 됩니다. 가족들을 보고 싶습니다.”황지천은 애절한 눈빛으로 부탁했다.삼선도는 세 개의 주도 외에도 수십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소봉도는 그중 하나였다.“그럼 소봉도로 가. 여기까지 왔으니 잠깐 정도는 괜찮을 거야.”염구준은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정리하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황지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서였다.반면, 황지영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그녀의 고향이었지만, 지금의 소봉도는 그녀가 기억하던 그곳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백호와 일행이 노를 저으며 황지천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배를 움직였다. 염구준이 밀 때에 비하면 속도는 느렸지만 그래도 꾸준히 움직인 끝에 반 시간이 지날 무렵에 섬이 시야에 뚜렷하게 들어올 정도로 가까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