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서준과 결혼한 이후, 남설아가 받아온 건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시선뿐이었다.그의 주변 사람들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남설아를 아래로 보는 건 기본이었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그들 상류층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게 공공연한 분위기였다.시간이 지나면서 남설아 자신조차 정말로 자신이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하지만 지금 한원준의 존경 어린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남설아는 문득 깨달았다.그녀는 늘 빛나고 있었지 단 한 번도 모자란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그저 배서준과 그 주변인들이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열심히 해봐요. 다 끝나면 내가 한 번 더 정리해서 마무리해줄게요. 괜찮죠?”남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오전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남설아는 이미 업무 전반을 정리해 놓았다.단지 앞으로의 방향만 설정한 게 아니라 각자 맡아야 할 영역까지 세세하게 나눠서 정리했다.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움직일 수 있었다.그야말로 이상적인 팀장이었고 혼란스러웠던 기술팀은 단숨에 체계적인 조직으로 바뀌었다.한편, 천기준은 기술팀 상황을 그대로 배서준에게 보고했다.그 안엔 남설아에 대한 칭찬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그 여자, 정말 능력 있네.”배서준은 냉소적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 남 팀장님, 정말 대단하세요.”천기준은 진심을 담아 답했다.배서준이 비꼬는 걸 모를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칭찬을 해줘야 마땅한 거 아니야? 근데 왜 회사에 빚이라도 진 것처럼 말하시지?’서유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정말 대단하네, 남 팀장님.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너도 이렇게 정신없이 고생 안 했을 텐데.”그 말에 배서준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기분이 상한 듯 투덜거렸다.“내가 보기엔 일부러 튕기는 거야. 능력 있으면 왜 진작 말 안 했겠어? 사람 바짝 엎드리게 만들고 싶었던 거지.”그 순간 천기준
“대표라는 사람이 제대로 못 하면 당연히 욕 좀 먹는 게 맞죠. 천 비서님처럼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욕하는 거야 당연한 권리예요. 솔직히 나도 욕하고 싶다니까요?”남설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욕만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괜히 말 잘못했다가 자기만 손해니까요.마음 좀 가라앉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봐요.”“아, 맞다. 아까 보니까 보너스 깎였다고 했죠? 걱정 마요. 그건 내가 챙겨줄게요. 직원이 실망하면 안 되잖아요, 안 그래요?”남설아는 조용히 걸어와 물티슈를 뽑아 들더니 책상 위에 쏟아진 커피 자국을 말끔히 닦아냈다.‘어차피 어디 가든 일하는 건 마찬가지지. 누구 밑에서 일하든.’천기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사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남설아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오히려 천기준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남설아는 알고 있었다.자신이 기술팀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 보너스는 문제없이 나갔을 거라는 걸.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자신이 기술팀에 있고 서유라는 배서준의 곁에 있다.그러니 배서준이 마음이 있어도 서유라가 어떻게든 막으려 들것이었다.직장인들의 공통된 목표는 결국 ‘돈’이다.보너스가 날아간다면 팀원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그렇게 판단한 남설아는 아예 자기 돈을 털어 보너스를 지급했다.“선배님, 이제 막 오셨는데 보너스를 먼저 챙겨주시다니... 진짜 감동이에요!”한원준은 두툼한 봉투를 받아 들고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다른 직원들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예전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오늘이 제가 입사 첫날인데 마침 보너스 지급 시기랑 겹쳐서요. 두 가지를 한 번에 축하해야죠. 오늘 저녁, 다 같이 샤브샤브 먹으러 가요! 제가 쏩니다.”남설아가 핸드폰을 흔들며 말했다.“와아아!”기술팀은 다시 한번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남 팀장님 만세!”“남 팀장님, 저희 진짜 사랑합니다!”기술팀은 어느 때보다도
예전이었으면 남설아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걱정해서 도와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서유라의 비꼬는 말투가 무슨 뜻인지는 남설아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서유라를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준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회사에 출근하는 이상 직원으로서 회사 규정을 따라야 해. 특별 대우는 있을 수 없어.”배서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배서준의 그런 모습을 본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좋아요.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도 솔선수범해 주세요. 내가 알기로는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기술팀에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약속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오늘 결재 서류를 올렸을 때 서준 씨가 거부했죠. 그건 무슨 뜻이죠? 내가 기술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 업무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명확한 설명을 해주세요. 이 보너스가 도대체 뭐가 규정에 어긋난다는 거죠?”남설아는 한 마디 한 마디 논리를 펼쳐가며 말했다. 공사 구분해서 업무를 본다고 하니, 그야말로 반가운 소리다. “그런 게 아니야. 서준이는 너무 바빴을 뿐이야. 일부러 지급을 안 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직원들 마음을 사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배건 그룹을 위해 걱정하는 줄로 오해할 것이다. “나는 내 돈으로 보너스를 지급했어. 이게 회사 규정을 어긴 건가? 나를 문제 삼으려고 온 거라면 먼저 사실부터 정확히 조사하는 게 맞지 않아? 재무팀에 가서 내 지출 증빙과 결재 서류를 확인해 봤어? 아니면 회사 장부에서 돈이 사라지기라도 했나?”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고는 자신의 계좌 이체 명세를 꺼내 보였다. 이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를 몰아세웠지만, 그녀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본인 돈이라고?’서유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설아를 쳐다봤다.“
“서준 씨, 지금 여기서 비서랑 이렇게 쓸데없이 얽매일 시간은 있으면서 정작 보너스 서류는 결재할 시간이 없어요? 이게 대표이사가 할 짓이에요?”남설아는 서유라에게 쏘아붙인 후 다시 배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지금 당장 결재해요. 보너스는 한 푼도 빠짐없이 지급해야 합니다.”“남설아, 그렇게 날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보너스야 별거 아니지만, 계약을 못 따내게 되면 네가 계속 이렇게 날뛸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남설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서유라의 손을 잡아끌고는 자리를 떠났다.서유라는 새침하게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가는 내내 훌쩍였다.“서준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너까지 난처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그저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설아 씨가 아직도 우리한테 앙심을 품고 있어. 게다가 저렇게 많은 걸 쥐고 있으니, 너한테 해코지할까 봐 너무 걱정돼.”서유라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눈물을 흘렸고 얼굴엔 깊은 자책과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남설아가 가진 것들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해.”배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에게는 그것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결국 배씨 가문의 재산은 배씨 가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남설아 같은 외부인은 단 한 푼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서유라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남설아가 할아버지에게서 금고 두 개를 상속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회사 지분은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없지만, 금고 안에는 진짜 돈이 있을 것이다.그 생각이 들자, 서유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의 금고는 원래 네 것이어야 해. 설아 씨가 뻔뻔하게 그걸 차지한 거야. 서준아, 다 내 잘못이야. 나만 없었더라면 설아 씨가 널 이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바보야, 남설아가 뭔데 어떻게 나를 괴롭힌다는 거야?”배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서유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됐어. 걱정하지
휴대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확인한 남설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이제는 쓰레기만도 못한 저 두 남녀가 어떤 애정 행각을 벌인다 한들, 더 이상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한심한 남자와 저급한 여자, 아주 천생연분이다.비록 이 사진이 지금 당장은 별다른 힘을 가지진 않겠지만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풀어준다면 꽤 괜찮은 동정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남설아는 사진을 바로 저장해 두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조금 전의 소란 때문에 기술팀 내부 분위기가 어딘가 묘하게 변해 있었다.회사 사람들은 남설아와 배서준이 부부 관계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비록 대부분이 이과 출신이라 사내 소문에 둔감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큰 이슈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오늘, 배서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남설아를 몰아세우고 오히려 그 여자 편을 들며 감싸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자기 남편이 이러는 모습을 본다면 누가 됐더라도 속이 상할 것이다.하여 모두 남설아를 위로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남설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이전보다 더 몰입하는 듯 보였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원준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팀장님, 괜찮으세요?”“제가 왜요? 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혹시 보너스 때문에 하는 말이면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저의 작은 성의일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에요.”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방금 일어난 일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망신당한 쪽은 그녀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이었다.배서준은 이제 서유라를 위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회사 규정을 무시하고 회사에 들여놓은 것도 모자라 아예 그녀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회사 전체가 엉망이 될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남설아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지금 회
그녀는 전혀 거만한 태도가 없었고 전체적으로 매우 소탈했다. 심지어 식사하러 온 가난한 대학생들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어? 이런 우연이! 설아도 여기 있었어?”강연찬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밖에서 걸어 들어왔고 손에는 남설아가 가장 좋아하는 히아신스꽃을 들고 있었다.“남 팀장님, 혹시 밥 좀 얻어먹어도 될까요?”장난스럽고도 다정한 그의 모습에 남설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밥은 얻어먹어도 되지만 식기는 혼자서 가지고 와요.”그러면서 히아신스를 자연스럽게 받아서 자신의 옆에 두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 그들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회사 소속이었고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다들 젊은 기술자들이라 금세 어울려 분위기가 활기를 띠었다.남설아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자, 사양하지 말고 마셔요. 마음껏 먹고 마시자고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그때 배서준이 서유라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 장면을 본 그는 순간 넋이 나갔다.눈앞의 남설아는 생기 넘치고 활기찼다. 그런 모습은 배서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였다. 분명 자신이 그녀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둘 사이에는 한때 아이도 있었고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배서준은 그녀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어쩌면 그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설아는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설아 씨도 여기 있었어? 나... 몰랐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누나, 사과는 무슨 사과야. 누나랑 무슨 상관인데? 여기에 남설아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강연찬도 있잖아?”서도현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배건 그룹이 사업 전환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주원 그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남설아가 기술팀 전체를 데리고 강연찬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의도란 말인가.배서준의 시선
이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강연찬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시계를 한 번 흘깃 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남은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다시 봐요.”그리고는 남설아를 보며 말했다.“설아야, 먼저 갈게.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내.”강연찬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배서준을 지나쳐 남설아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다정하고 익숙한 태도였다.둘 사이에 특별한 신체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연스러운 친밀함은 배서준의 주먹을 조용히 움켜쥐게 했다.옆에 서 있던 서유라는 더욱 난감했다. 배서준이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강연찬과 신경전을 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예전에 나은이 죽었을 때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저 여자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된 건가 말이다.남설아 이 여자는 정말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드시 사라져버려야 하는 사람이다.그때 서도현이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매형, 지금 뭐 하는 거예요?”“네 누나도 이제 우리 회사 직원이고 너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미리 동료들하고 친해지는 게 좋잖아. 앉아서 같이 먹자.”배서준은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서유라에게 자리를 권했다.서도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흥분해서 말했다.“매형, 그거 진짜예요? 정말 내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예요?”“홍보팀에 자리가 남아 있으니까, 바로 출근하면 돼.”배서준은 무심한 듯 대답했지만, 은근슬쩍 남설아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라도 그녀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남설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홍보팀이든, 마케팅팀이든, 배건 그룹 내부 일이야 그녀와 무관했다.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기술팀이었다. 그 핵심 인재들만 꽉 붙잡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 생각에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정말 축하해. 이제 회사 청소부 자리까지 어머님께 가게 된다면 진짜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겠네.”“설아 씨, 내 동생도 대
“내 말은 우리 부서 직원들이랑만 노래방에 가겠다는 뜻이에요. 서준 씨는 비서랑 예비 처남이나 잘 챙기세요.”남설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서준은 원래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남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무슨 뜻이야?”“내 말 그대로예요. 나는 당신이랑 놀고 싶지 않다고요. 노래방에 가고 싶으면 당신들끼리 가요. 우리는 같이 안 갈 거예요.”남설아는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이건 비단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여기 앉아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뿐이었다.남설아는 주주였고 대표의 부인이었지만 이들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설아 씨, 아무리 서준이를 싫어한다고 해도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서유라는 난처한 듯 한숨을 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자는 바깥에서 체면이 중요한 법이에요. 당신이...”“남자의 체면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뻔뻔하게 굴어? 내 남편을 빼앗고 내 아이의 아버지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내 앞에서 훈계질까지 하겠다는 거야? 정말 염치도 없구나. 뻔뻔해서 못 봐주겠어.”남설아는 비웃으며 날카롭게 서유라를 몰아붙였다.“남설아!”배서준이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하지만 남설아는 이제 그런 그의 분노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 알았다.그녀는 테이블을 둘러보며 직원들에게 말했다.“끝까지 재밌게 회식을 진행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다들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제시간에 출근해서 봐요.”이런 불청객들이 끼어든 마당에 계속 자리를 함께해봤자 어차피 분위기만 더 망칠 뿐이었다.괜히 시간 낭비하느니 차라리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나았다.한원준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오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리고 대표님도 감사합니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그를 시작으로 하
“말했잖아요, 전 그런 일 한 적 없다고요!”강연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지금 이건 명백한 조작이에요!”“강연찬 씨, 진정하세요.”형사가 말했다.“저희는 절차에 따라 조사 중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전 제 변호사를 부르겠습니다.”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변호사 도착 전까진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습니다.”강연찬의 강경한 태도에 경찰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를 임시 유치장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남설아는 경찰서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혹시나 강연찬이 억울한 대우를 받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대표님, 너무 걱정 마세요.”곁에 있던 천기준이 위로하듯 말했다.“강연찬 씨는 운도 따르는 분이잖아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그랬으면 좋겠어요.”남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제발 큰 고통은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그때, 송우민이 급히 걸어왔다.“남설아!”그가 말했다.“강연찬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찾았어.”“정말?! 너무 잘됐네!”남설아는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어디 있어? 얼른 보여줘!”송우민은 준비해온 서류를 그녀에게 건넸다.문서를 받은 남설아는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이건...!”남설아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이게 바로 선배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야!”“맞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서류만 있으면 경찰에 정식으로 석방 요청할 수 있어.”“잘됐다!”남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지금 바로 가자.”그렇게 두 사람은 그 증거를 들고 사건을 담당한 형사를 찾아갔다.“형사님, 이게 강연찬 씨의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풀어주세요.”형사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읽어보았다.하지만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게... 이게 어떻게...”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 자료 어디서 나신 겁니까?”
남설아는 꿈에도 몰랐다.배서준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비열해질 줄은.무고한 강연찬을 덫에 빠뜨리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이걸 어쩌면 좋지...”남설아는 마치 불에 달궈진 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게 사무실 안을 서성였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강연찬의 성격을 잘 알았다.그런 사람이 기업 기밀을 유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고 분명 배서준이 꾸민 계략이다.“대표님,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천기준이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강연찬 씨를 반드시 구해낼 수 있어요.”“대표님, 지금은 침착하셔야 해요.”천기준이 진정시키려 애썼다.“우선은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요.”남설아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송우민이 급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남설아! 강연찬 잡혀갔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야?!”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다 배서준 그 비열한 놈이 한 짓이야!”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무너뜨리겠다고 선배까지 끌어들였어. 기업 기밀 유출 혐의로 덮어씌운 거야. 진짜 너무 뻔뻔하지 않아?!”“그 자식,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송우민도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가자. 당장 경찰서로 가서 따져보자. 배서준 그 자식, 자기가 진짜 법 위에라도 있는 줄 아나 본데?”송우민은 말하자마자 남설아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걸음을 멈췄다.“잠깐만.”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지금 당장 달려가는 건 좋지 않아. 그럼 배서준만 신나게 해주는 꼴이야.”“그럼 어쩌자는 거야?”송우민이 물었다.“강연찬이 억울하게 잡혀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그럴 순 없지.”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증거를 찾아야 해. 선배가 억울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증거라니... 어디서 그런 걸 찾는다는 건데?”송우민은 고개를 저었다.“배서준 그 여우가 얼마나 치밀한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을 거야.
“안 돼요!”남설아는 단호했다.“확실한 증거 없이는 누구도 선배 데려갈 수 없어요!”“설아 씨, 이거 지금 공무집행 방해하시는 겁니다!”간호사가 다급해졌다.“상관없어요!”남설아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증거 가져오기 전엔 누구든 손도 못 댈 거예요!”“설아야, 이러지 마.”강연찬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말했다.“잠깐 가서 설명하면 돼. 금방 끝날 거야.”하지만 남설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그녀의 눈빛엔 여전히 깊은 불신과 걱정이 가득했다.“정말 괜찮아.”강연찬이 조용히 위로하듯 말했다.“여기서 기다려줘. 금방 돌아올게.”“선배”남설아가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강연찬이 먼저 말을 이었다.“말 들어.”그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나 믿어줘.”남설아는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응, 기다릴게. 꼭 돌아와.”그렇게 강연찬은 경찰과 함께 병실을 나섰고 남설아의 가슴엔 불안이 가득 밀려들었다.“배서준, 당신의 진짜 비열하고 더러운 짓을 끝까지 봐줄 줄 알았어?”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곧장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천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천 비서님, 누가 선배 뒤통수쳤는지 당장 찾아봐요.”남설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세세한 내막까지 다 밝혀야 해요.”“네, 대표님. 지금 바로 조사해보겠습니다.”천기준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전화를 끊은 남설아의 눈빛은 분노로 불타올랐다.한편, 강연찬이 경찰에게 끌려간 이후 배씨 가문 쪽도 평온하지 않았다.서유라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것이다.그녀는 병상에 누운 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배서준의 손을 꼭 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나... 나 정말 죽는 거 아니야?”“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넌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절대 그렇게 안 놔둘 거니까.”“근데...
배서준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며 모든 책임을 단번에 남설아에게 떠넘겼다.“그 여자한텐 이익밖에 없어. 진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어.”배서준의 목소리는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지금은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렸고 강연찬 혼자만 멍청하게 그 여자 편에 서 있지. 당연히 제거하고 싶겠지!”“서준아, 혹시... 설아 씨를 오해한 건 아닐까?”서유라가 조심스레 물었다.“강연찬 씨가 다친 것도 정말 단순한 사고였을 수도 있잖아.”“사고?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고가 어딨어!”배서준의 감정은 갈수록 격해졌다.“넌 몰라, 그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여잔지! 예전에도 나한테 보복하겠다고 우리 딸한테까지 손을 댈 뻔했어! 그런 여자라면 뭐든 할 수 있어!”“서준아, 진정해. 너무 흥분하면 몸 상해.”서유라가 다급히 그를 달래려 애썼다.“내 말은... 그래도 한때 부부였잖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오해? 나랑 그 여자 사이엔 오해 같은 거 없어. 오직 증오뿐이야!”배서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쳤어. 난 절대 용서 못 해!”서유라는 그런 배서준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역시나, 남설아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배서준은 이성을 잃었다.“서준아, 그럼 어떻게 할 거야?”서유라가 물었다.“이대로 설아 씨가 날뛰는 걸 두고만 볼 순 없잖아?”“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배서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강연찬이 중요하지? 그럼 두 눈 뜨고 그 인간이 무너지는 걸 보게 해주지.”“서준아,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 안 돼.”서유라는 일부러 걱정스러운 척 말을 보탰다.“강씨 가문도 만만한 가문은 아니잖아. 괜히 건드렸다가...”“걱정 마. 난 계산 다 하고 있어.”하지만 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번엔 반드시 남설아한테 값을 치르게 만들 거야.”서유라는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입가에 얄미운 웃음을 지었다.‘남설아, 이제 네 차례야. 각오하라고.’한편, 병원 정원에서는
“지금도 강연찬 씨는 병원에 누워 계세요, 대표님은...”천기준이 망설이다 말끝을 흐렸다.“알고 있어요.”남설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선배는 내가 잘 돌볼게요. 걱정하지 마요.”“대표님, 대표님도 몸 좀 챙기셔야 합니다.”천기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이렇게 계속 버티시면 몸이 먼저 무너집니다.”“알겠어요. 천 비서님은 먼저 들어가요.”남설아가 말했다.“회사 일은 천 비서님이 맡아줘요.”“네, 대표님.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그렇게 천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남설아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연찬은 잠든 상태였다.그의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며 남설아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선배... 고마워.’속으로 말을 걸었다.‘항상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줘서 정말 고마워.’남설아는 수건을 들어 따뜻한 물에 적신 뒤, 강연찬의 이마와 뺨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혹시라도 잠을 깰까 봐 손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선배, 꼭 빨리 나아야 해.”그녀는 속삭이듯 말했다.“하고 싶은 말도, 같이 해야 할 일도 아직 정말 많으니까.”그렇게 밤이 새도록 남설아는 강연찬 곁을 지켰다.다음 날 아침, 강연찬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다.남설아는 그와 함께 병원 정원을 천천히 산책했다.두 사람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설아야, 며칠 동안 정말 고마웠어.”강연찬이 말했다.“너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선배, 그런 말 마.”남설아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날카롭던 평소의 분위기를 거두고 남설아는 조용히 웃었다.“내가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지금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자고.”이 말에 강연찬은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더는 하지 않았다.그저 눈을 감고 이 평온한 순간을 누렸다.그 시각, 배건 그룹.“남설아, 그 여자 진짜 사람 우습게 보네!”배서준이 책상을 쾅
병원 안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고 그 기운은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 만큼 무겁고 침울했다.남설아는 병상 옆에 앉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죄책감과 자책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그녀는 꼬박 사흘 밤낮을 병실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 탓에 눈엔 실핏줄이 가득하고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다.그 사흘 동안, 그녀는 자신과 강연찬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떠올렸고 마음속엔 후회와 미안함이 끝없이 밀려들었다.만약 강연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다.그리고 4일째 되는 아침, 강연찬이 마침내 눈을 떴다.남설아의 수척한 얼굴을 보자 그는 가슴이 아려왔다.“설아야, 너 지금 뭐야, 왜 이렇게까지 됐어...”강연찬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 이제 괜찮잖아.”“선배, 드디어 깨어났네!”기쁨에 북받쳐 남설아는 눈물을 쏟았다.“정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죽는 줄 알았어.”“바보야, 나 이렇게 멀쩡하잖아.”강연찬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울지 마. 또 울면 예쁜 얼굴 망가져.”남설아는 눈물 섞인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선배,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선배를 이런 일에 끌어들이면 안 됐는데...”“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강연찬은 나직이 말했다.“우린 친구잖아.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말이야, 나도 사실 너 때문만은 아니야. 배서준이라는 인간, 나도 예전부터 보기 싫었거든.”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가슴이 찌릿해졌다.강연찬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선배, 말하지 말고 푹 쉬어.”남설아가 조용히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과다출혈로 회복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응.”강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너는? 너 요 며칠 거의 못 잤지? 어서 가서 좀 자.”“안 피곤해.”남설아는 고개를 저
그 말을 들은 서도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알았어, 누나. 이 일은 나한테 맡겨.”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누나가 만족할 만큼 깔끔하게 처리할게.”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도현이 너라면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절대 흔적을 남기면 안 돼.”“걱정 마, 누나.”서도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전문가들이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그렇게 서도현은 조용히 킬러 몇 명을 접선해 남설아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성공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그 말에 킬러들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돈 냄새에 눈이 먼 그들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그들은 남설아를 몰래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한편, 강연찬은 최근 배서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배서준이라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인물이었다.남설아의 안전이 걱정된 강연찬은 그녀 주변의 보안을 은밀히 강화했다.신뢰할 수 있는 경호원들을 붙여 24시간 감시하게 하고 그녀의 집 주변에는 감시 카메라도 설치했다.그리고 결국 암살 시도가 벌어진 날, 킬러들이 남설아의 집 안으로 침입했다.완벽하게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생각한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이미 감시망에 포착된 줄은 꿈에도 몰랐다.남설아에게 칼끝이 겨누어지려는 순간, 강연찬이 경호원들과 함께 들이닥쳤다.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강연찬은 혼자서도 여러 명을 상대할 만큼의 실력을 지녔기에 전혀 물러섬 없이 킬러들과 싸웠다.경호원들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격렬해졌고 결국 킬러들은 모두 제압되었다.남설아는 다치지 않았지만 강연찬은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칼에 복부를 찔렸고 피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경호원들이 급히 강연찬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긴급 수술이 시작됐다.소식을 들은 남설아는 모든 걸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수술실 앞, 그녀는 눈물과 함께 기다림을 견뎠다.가슴은 쿵쾅거리며 터질 듯 뛰었다.‘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해.’그녀는
배건 그룹의 주가는 끝없이 추락했고 시가총액은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주주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배서준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남설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건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남설아가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진짜 끝장날 것이었다.그는 남설아의 사무실을 찾았다. 한때 이곳은 배서준도 함께 쓰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외부인, 불쑥 찾아온 침입자일 뿐이었다.남설아는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놀라울 만큼 평온하고 침착해 보였다“남설아.”입을 열었지만 배서준의 목소리는 몹시 갈라져 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차가웠고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왜 왔어요?”그녀는 담담하게 물었다. 말투에서도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나... 얘기 좀 하려고 왔어.”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했다.“우리가 아직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하죠?”남설아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눈빛엔 조롱이 가득했다.“내가... 예전에 잘못했어.”배서준은 고개를 숙이며 후회의 기색을 보였다.“하지만 지금은 내 잘못을 인정하고 벌도 받았어. 그러니까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어?”“봐달라고요?”끝내 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렸다.“배서준 씨, 미안하다 한마디로 나한테 준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난...”입을 뗐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남설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일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당신은 우리 딸을 죽였고 내 인생을 망가뜨렸어요. 나로 하여금 모든 걸 잃게 만들었죠!”남설아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냥 한 번만 봐달라고요? 당신이 뭔데요?”“보상할게.”배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나를 용서만 해준다면 뭐든 다 줄게. 배건 그룹도 넘기겠어. 네가 원하면 다 줄 수 있어!”“보상?”남설아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두 사람이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배서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야?”배서준은 전화를 받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큰일 났어요!”전화 너머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인터넷에 갑자기 대표님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폭로됐어요, 지금 이미 난리가 났습니다!”“뭐?!”배서준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정말로, 인터넷에는 배서준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도배처럼 퍼져 있었다. 사생활 문란, 직권 남용, 상업 사기 혐의 등, 하나하나가 그를 사회적으로 몰락시킬 만큼 심각했다.“이... 이게 무슨 일이야?”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 배서준은 자신이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서준아, 무슨 일이야?”서유라는 배서준의 얼굴이 안 좋아지자 급히 물었다.“문제가 생겼어.”배서준의 목소리가 떨렸다.“누군가 내 불법적인 정보들을 인터넷에 폭로했어.”“뭐?!”서유라도 크게 놀라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그랬어?”“남설아 그 악질인 여자 말고 누가 있어?”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건 분명 나에게 복수하려는 거야!”“못된 사람, 진짜 끝까지 집착하네?!”서유라도 분노했다.“서준아, 그럼 우리 지금 뭐 해야 해?”“뭘 어떡하긴? 빨리 대처해야지!”배서준이 고함을 질렀다.“언론에 연락해서 이 부정적인 뉴스를 덮어야 해!”“하지만 대표님, 이번 일은 너무 커서 쉽게 덮기 어려울 것 같아요.”비서의 목소리에는 무기력함이 묻어났다.“상관없어! 돈이 얼마나 들든지, 이 부정적인 뉴스는 무조건 덮어야 해!”배서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것도 못 덮으면 너희들 다 잘려야지!”비서는 배서준의 분노에 놀라 몸을 떨며 급히 대답했다.“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비서가 사무실을 떠난 후, 그의 뒤로 욕설이 퍼져 나왔다.처음엔 부부였고 남설아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