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라 씨가 저보고 개래요. 대표님은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천기준은 말할수록 억울함이 북받쳤다.명문대 출신에 수년간 배서준을 따라 일해 왔건만 돌아오는 건 모욕뿐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된 사과나 공정한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니.‘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일하는 사람도 사람인데, 감정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데!’“뭐요?”남설아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설마 이런 이유였단 말이야? 진짜로 이 일 때문이었어?’배서준은 지금 서유라한테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이젠 이성이 마비됐는지 자기 옆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을 모욕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질 않나?진짜 머리에 뭐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아니,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걱정 마요. 이번 일은 내가 기억해둘게요. 언젠가 꼭 되갚아줄 겁니다.”“지금 당장 회사 최근 5년간의 핵심 자료가 필요해요. 구할 수 있어요?”이미 서로 손을 잡기로 한 이상 남설아는 더는 멋쩍게 굴 필요가 없었다.이젠 파트너이니 필요한 건 당연히 요구할 수 있었다.천기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구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내일 밤까지 드릴게요.”이렇게 말하고 일어선 천기준은 망설이다가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 이제부터 설아 씨 편이에요. 그 말은 곧 배 대표님을 배신하겠단 뜻이죠. 모두가 배신자를 어떻게 보는지 저도 잘 알아요. 그리고 설아 씨도 목적 달성하면 절 옆에 두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 돈이 필요해요. 멀리 떠나서 새 인생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요.”사실 남설아는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좋았다.뒤에서 어정쩡하게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았다.결국 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200억. 일 끝나면 200억 줄게요. 멀리 떠나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예요.”“감사합니다, 남 대표님!”천기준은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솔직히 처음엔 남설아 성격상 많아야 몇억을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결혼이 아무리 중요해도 지금 상황보단 안 급하잖아?’강연찬은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진영을 보고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다 계산하고 있어. 이미 이 일은 설아한테 맡겼거든. 오늘 저녁에 밥 가져갈 때쯤이면 좋은 소식 있을 거야.”“뭐라고요?”서진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강 대표님, 지금 본인이 무슨 짓 하고 계신지 아세요? 우린 배건 그룹이랑 경쟁 관계예요! 지금 이건 명백한 회사 기밀 유출이라고요! 저 진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어요!”이렇게 심각하게 말하는 서진영을 보며 강연찬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더니 침착하게 말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 사람은 절대 날 배신하지 않아. 우리가 배건 그룹과는 경쟁 관계지만 남설아와는 협력 관계야. 이 정도는 너도 알잖아?”“네가 날 걱정해서 그러는 건 알아. 그리고 설아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어. 근데 그 사람 실력은 진짜 최고야.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 능력까지 부정할 순 없잖아? 감정 때문에 일 그르치면 안 되지. 안 그래?”강연찬은 마치 설교하듯 간곡하게 말했다.서진영은 그런 강연찬을 보며 기가 막혔다.‘지금 일에 감정을 끼워 넣는 건 도대체 누군데 그래? 누가 지금 사적인 감정으로 회사를 망치고 있는 건데?’“강 대표님, 정말 그 사람 믿으시는 거예요?”서진영도 결국 진지해졌다. 눈빛은 날카롭고 단호했다.서진영이 보기엔 남설아와 배서준이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 해도 결국은 법적으로 부부였다.즉, 이익 공동체란 말이다.그런 상황에서 강연찬의 행동은 말도 안 되게 어리석은 짓이었다.하지만 강연찬의 마음엔 그런 의심조차 없었다.남설아를 향한 그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믿어. 그 사람은 날 배신하지 않아.”그 순간, 서진영은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눈빛이 되었다.이젠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코코야, 아이구, 엄마 보물,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코코도 남설아를 보자마자 너무 반가운 듯 그녀 곁을 왔다 갔다 하며 몸을 비볐다.입으로는 계속해서 야옹야옹 소리를 내며 애정을 표현했다.강연찬은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코코와는 철저히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남설아를 향해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거... 너 탕수육 안 먹을 거야?”그제야 남설아도 생각났다.강연찬이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걸.코코를 품에 안은 채 남설아는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선배, 와서 한 번 만져봐. 코코 진짜 순하고 얌전해.”딱 봐도 요즘 장숙자가 코코를 얼마나 잘 돌봐줬는지 느껴졌다.처음 데려왔을 땐 꾸깃꾸깃한 털 뭉치였는데 지금은 반질반질 살찐 귀요미가 돼 있었다.강연찬은 최대한 코코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도시락을 남설아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진짜 난 무서워.”“알겠어.”남설아는 아쉬운 듯 눈을 떨궜다.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녀는 자신이 준비해온 USB를 꺼내어 강연찬에게 던져줬다.“선배가 말한 그 보안 허점은 이미 해결했어. 그런데 말이지, 내가 이보다 더 큰 문제를 발견했어. 선배 쪽 설계안 진짜 완벽하긴 해. 근데 비용 조절이나 유지보수는 고려한 거야?”남설아는 도시락을 열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정말 수준급이었다. 업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하지만 예산이나 사후 관리 측면은 너무 간과한 게 보였다.강연찬도 그 말을 듣고는 순간 멈칫하더니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비용 계산까지 했지. 이 정도 성능을 내려면 이만큼은 써야 해.”“선배 돈 많아?”남설아는 탕수육을 한 입 베어 물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난 강 회장님이 선배가 밖에서 이런 일 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 거로 아는데? 지원은커녕, 회사 빨리 망해서 집안일 물려받으라고 하시지 않아? 도움은커녕 방해만 안 해도 감지덕
강연찬은 남설아가 이렇게 이성적으로 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화가 났다가 이내 안쓰러움이 몰려왔다.그는 알고 있었다. 남설아가 학교 다닐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그녀는 결코 이렇게 맥없는 사람이 아니었다.지금 이렇게 조심스럽고 둥글둥글해진 건 분명 배서준에게 시달리며 오랜 시간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강연찬은 코코에 대한 공포를 억지로 참아가며 다가갔다.그러고는 조용히 남설아를 안아 올려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너는 굳이 참고 살 필요 없어.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싶은 대로 살아.”남설아는 순간 당황스러웠다.하지만 알 수 없는 따뜻함과 감동이 가슴을 밀려왔다.그녀는 천천히 강연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알아. 해결책은 개요 형태로 정리해뒀어. 돌아가서 보면 될 거야.”“설아야, 지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진짜 그것뿐이야?”강연찬은 약간 서운한 얼굴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지금 하고 싶은 말이 일 얘기밖에 없어?”그 말에 남설아는 강연찬의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사실 다시 그를 만난 순간부터 남설아는 알고 있었다.이 사람 마음속엔 여전히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뭘 어쩔 수는 없었다.지금 그녀는 배서준의 아내이자 배나은의 엄마였다.이미 둘은 너무 많은 걸 지나쳐왔고 지금의 자신은 강연찬을 감당할 자격조차 없다.그녀는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더니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선배, 미안해. 난 자격이 없어.”강연찬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무슨 자격이 없어. 너는 최고야. 언제나 최고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그런 확신에 찬 말, 그런 진심 어린 인정, 그건 배서준이 단 한 번도 그녀에게 해준 적 없었던 말이었다.남설아는 오랫동안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지금 그 말이 눈앞에 와 있었지만 정작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부탁이야. 날 밀어붙이지 마. 제발.”“그래. 안 밀어붙일게. 기다
“대표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위화 그룹 프로젝트입니다. 기술팀은 지금 완전히 중심을 잃었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천기준은 아예 화제를 바꿨다.지금은 이런 사적인 감정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고 진짜 중요한 건 회사의 일이었다.“기술팀이 그렇게 무너질 팀 아니야. 한원준이 알아서 잘 이끌 거야.”배서준은 무심하게 말했지만 이어지는 말은 또다시 불쑥 감정이 튀어나왔다.“남설아, 진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지. 병원에 있으면서도 남자 꼬시는 걸 잊질 않네.”말을 하다 보니 배서준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걸 지켜보던 천기준은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진짜 가망 없는 사람이네. 깊은 물에 빠진 아이랑 똑같아.’천기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섰다.이 이상 여기 머물며 괜히 그의 화풀이를 당할 이유는 없었다.“매일 최고급 도시락으로 챙겨. 마치 우리 배씨 집안이 걔 밥도 못 먹여주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지시했다.천기준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남자 자존심, 그 한 가지 때문이었다.굳이 말로 하지 않고 천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가장 비싼 프리미엄 도시락 업체 몇 군데를 찾아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한편, 병원에서는 서도현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눈을 뜨자마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진 그는 곁에 있던 엄마 정애리를 보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으악! 아파!”“이 쓸모없는 놈, 대체 뭘 한 거야! 내가 뭐라고 했어? 남설아한테 본때를 보여주라고 했지! 근데 걔는 멀쩡하고 너만 반쯤 죽어왔잖아!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야?”서유라는 동생을 보자마자 쏘아붙였다.그녀는 예전부터 동생이 자기 발목만 잡는다고 여겼다.지금 배서준의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서유라는 그 마음을 붙잡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고 있는데 이렇게 사소한 일 하나도 못 해내는 동생을 보자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이
정애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성큼 다가가 유라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희가 왜 오래도록 아이가 없는지 이상하다 했지. 결국 네가 안 낳겠다는 거였구나! 이 못난 것아!”정애리는 이를 악문 채 유라를 노려봤다.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친딸이 아니라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너희 사이에 아이 하나만 있었어도 비록 같이 살지 않더라도 적어도 너희만의 끈은 남았을 거야. 그럼 넌 평생 외롭지 않았을 거고 네 동생도 애썼을 필요 없었지. 누나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니?”“도현이, 도현이! 엄마 입에서 나오는 건 맨날 도현이뿐이에요.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이라도 신경 써본 적 있어요? 내가 죽든 살든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었잖아요! 엄마한테 자식은 도현이 하나뿐이고 난 아예 없는 거예요?”서유라는 끝내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서도현은 두 사람의 끝없는 말다툼을 바라보다 못해 답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엄마, 누나가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잖아요. 그리고 오늘 일은 원래 누나 잘못도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서유라는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사실 서유라가 그동안 서도현에게 잘해준 건 가족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좋아서였고 서도현도 진심으로 누나를 아껴줬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도현은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누나를 향한 그 마음만큼은 늘 진실했다.서유라는 서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도현아, 누가 너 때린 거야?”“송우민.”서도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답했다.“송우민이랑 남설아가 뭔가 수상해. 둘이 좀 친해 보이더라고.”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유라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저번에도 돈은 받아놓고 아무 일도 안 하더니 이번엔 아예 내 동생을 건드린 거야? 도대체 이 인간은 무슨 꿍꿍이야?’서유라는 바로 전화를 꺼내 송우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로 주소 하나가 왔다.그 주소를 한참
“확실해?”“확실하지.”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분명 서유라와 배서준 사이를 몹시 신경 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남설아는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녀에게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그 말에 송우민 쪽은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그렇다고 전화를 끊지도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는 그의 숨소리만 조용히 들려올 뿐이었다.그제야 남설아도 자신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음을 깨달았고 약간 민망해진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사실 안 간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몸이 좀 안 좋아서... 침대에서 못 내려와.”“오기 싫으면 말고!”송우민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곧이어 남설아의 핸드폰엔 주소가 적힌 문자가 도착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송우민은 겉으론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도 사실은 정반대의 사람이란 걸.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한 타입이니 말이다.잠시 고민하던 남설아는 결국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긴 했지만 완전히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올 뿐이었다.온몸의 힘을 다 짜내 겨우 도착한 약속 장소는 한 카페였다.송우민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휠체어에 앉은 남설아를 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본 순간 괜히 마음속에 묘한 우쭐함이 피어올랐다.그는 가볍게 웃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안 온다더니?”“우리 민이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어떻게 안 오겠어. 와야지.”“말은 왜 그렇게 많아?”괜히 얼굴이 조금 붉어진 송우민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사실 몇 번의 대면 끝에 남설아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송우민은 주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친놈도, 위험한 사람도 아니었다.그저 세상에 떠밀려 극단으로 몰린 한 명의 젊은 청년일 뿐,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만 하면 그는 분명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송우민은 다리를 꼰 채로 앉아 있었다. 눈빛은 냉소와 비아냥으로 가득했고 온몸에서는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남설아 앞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그런 송우민의 표정을 본 서유라는 더 화가 치밀었다.“돈 줬잖아!”“송우민, 정말 기본도 없는 인간이구나? 돈 받아놓고 일도 안 하고... 진짜 개자식이네!”서유라는 자신이 건넨 돈이 떠오르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속이 쓰렸다.그 말에 남설아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동안 서유라가 머리도 있고 계산도 빠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보 같을 줄은 몰랐다. 송우민 앞에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진심으로 우습기까지 했다.서유라가 자기 앞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보며 송우민은 입을 열었다.“나는 원래 더러운 일이나 하는 놈이야. 근데 유라 씨는 참 순수하고 고결하더라? 자, 한번 상상해봐. 배서준이 지금 유라 씨 이 꼴을 본다면, 유라 씨의 진짜 모습을 안다면... 그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워할까?”그 한마디에 서유라는 그제야 숨을 고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배서준은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 유일한 약점이자 유일하게 신경 쓰는 존재였다. 누구 앞에서든 제멋대로일 수 있었지만 배서준 앞에서는 언제나 착하고 얌전한 ‘금빛 새장 속 카나리아’여야 했다.“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뭐예요? 뭐가 필요한데요? 그냥 말해요. 줄 수 있는 거라면 다 줄게요. 못 주는 건 애초에 무리하진 마요.”서유라는 오늘 그가 자기를 부른 이유가 협박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각오도 되어 있었다.둘은 함께 손잡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유라는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나눠주고 협력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난 그게 알고 싶어. 배서준은 어떻게 자기 딸이 죽는 걸 뻔히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을까?”송우민은 무심코 남설아 쪽을 힐끗 바라봤다.그 순간, 남설아는 손에 쥐고 있던 커피 컵을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 뜨거운 커피가 컵을 통해 손을 데우고 있었지만 정작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