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가.”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지금은 엮이고 싶지 않았고 빨리 배서준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은데?”강연찬은 코웃음을 치며 차 문을 열고 내렸다.팔짱을 낀 채 배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본 그는 가볍게 비아냥댔다.“배 대표님, 이렇게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나 있나요? 뭐 하는 거죠? 혹시 증거라도 모으러 온 겁니까? 본인이 불륜 저지른 게 맞다는 증거?”배서준은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대신 곧장 조수석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차 안에 앉아 있는 남설아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내려.”“안 내려요.”남설아는 단호했다.더 이상 이 남자에게 순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서준 씨, 우리 이미 이혼했어요.”“이혼서류에 도장 안 찍었으니까 아직 아냐.”배서준은 짜증을 억누르며 다시 말했다.“우리는 아직 부부야. 그러니까 넌 나랑 같이 가야 해.”이 말에 남설아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는 결혼이라는 관계가 구속이라며 거부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는 그 관계를 핑계 삼아 자신을 붙잡으려고 한다?결혼이라는 줄에 묶여 있던 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그녀 혼자뿐이었다.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배서준은 철저한 이기주의자였고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인간이라는 것을.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부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있는 힘껏 차 문을 닫아버렸다.문이 세게 닫히는 순간, 배서준의 손이 문틈에 낀 것이 보였다.그리고 곧이어 ‘악’ 하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에 남설아는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그 순간, 강연찬이 지체 없이 차에 올라타더니 곧바로 엑셀을 밟았다.모든 동작이 하나로 이어진 듯 깔끔했다.그리고 차가 빠르게 멀어지는 동안 뒤늦게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삼키던 배서준이 본 것은 오직 그들의 차량이 남긴
하지만 지금은 배나은도 없다. 아이가 없는 이상 남설아와 배서준 사이는 이제 정말로 끝이 난 거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께 약속한 일도 결국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서준을 놓아줄 수는 있어도 배건 그룹까지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배건 그룹은 사실 배서준과 큰 관계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일궈낸 기업이었고 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려 운영해온 곳이었으니 말이다.그리고 배서준은 그저 거저 얻은 것뿐이었다. 그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까지 죄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이렇게 생각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남설아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배씨 가문이었다.배서준과 결혼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배씨 가문의 인정이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오직 할아버지만이 그녀를 아껴줬을 뿐. 배서준의 부모는 늘 해외에서 생활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소문이라도 들었는지 급히 돌아와 그녀를 심문하려는 모양이었다.잠시 고민하다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저녁, 본가에서 저녁 먹자.”“어머님, 저희 이미 이혼했는데요.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처음으로 남설아가 반기를 들었다.그전까지는 배씨 가문에서 무슨 말을 하든 묵묵히 따랐지만 이번만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의 예상대로 상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한 번도 자신에게 대들지 않던 며느리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겠지.’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상대의 냉랭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쏟아졌다.“남설아, 주제 파악 좀 해. 오늘 저녁 안 오면 밥상도 안 차릴 거야.”그러더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차피 남설아는 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태도였다.남설아는 끊어진 전화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배서준이 사람을 이토록 무시하는 태도를 어디서 배웠는지.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유심 칩을 빼내더니 잠시 망설이며 한숨을 쉬었다.“이 번호, 내
남설아는 배씨 가문의 본가 앞에 서서 복잡한 감정을 삼켰다.이곳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할아버지가 계실 때만 해도 최소한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들어 걸음을 옮겼다.예전에는 배서준의 부모 앞에서 늘 조심스럽게 굴었다.남설아는 자신이 미운털이 박혀 있다는 것도 출신이 높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배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배서준 부모 내외는 늘 해외에 머물렀지만 가끔 남설아와 마주칠 때마다 얼굴에 싫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마치 그녀 같은 며느리를 둔 것이 큰 치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리고 예상대로 막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적대감이 쏟아졌다.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배서준의 어머니, 윤화진이였다.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지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이제 아주 대담해졌구나? 감히 이렇게까지 날뛰다니. 네가 이렇게 나온다고 서준이가 널 다시 봐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아버님이 남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이제 연기할 필요가 없어진 건가?”남설아는 그녀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나은이가 죽었어요. 그거 알고 계셨나요?”그러자 윤화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곧 냉소를 띠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겨우 그런 애 하나 때문에 이 난리야? 없어졌으면 그만이지. 너도 아직 젊잖아. 아이를 원하면 다시 낳으면 되는 거고.”이게 바로 배씨 가문이었다.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는 곳의 민낯이었다.배나은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았고 오히려 꺼려하고 싫어했다.그저 몸이 약하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배씨 가문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결함 있는 존재로 취급했고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겼다.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배나은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손을
남설아는 엄마로서 그런 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저는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단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을 뿐이죠. 서준 씨가 아들을 원한다면 서준 씨한테 아이를 낳아줄 여자는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제가 나설 필요는 없겠죠.”서유라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배서준의 아이를 갖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그 말에 윤화진은 확실히 다급해져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를 갈듯 말했다.“좋아, 감정이 없다는 거지? 정말 이혼하고 싶다면 우리는 굳이 말리지 않겠어. 다만 아버님이 너한테 남긴 것들은 내놔. 그러면 어디든 네 맘대로 가!”“그건 할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거예요. 왜 제가 도로 줘야 하죠?”남설아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본가에 오기 전부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고 씁쓸했다.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남설아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 오늘 훈계나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저 확실히 말씀드리러 왔어요. 할아버지가 제게 남겨주신 것들 전 반드시 잘 활용할 겁니다. 그리고 저와 서준 씨 사이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그건 배씨 가문의 것이야! 이혼해서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게 됐으면 그걸 가질 자격도 없는 거 아니야?”“당장 내놔! 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히 안 둘 거야!”윤화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차가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노려보았다.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한없이 움츠러들고 주눅 들어 있던 며느리였다.한눈에 봐도 하찮은 집안에서 자라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여자였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역시, 그 많은 재산 덕에 자신감이 붙은 거겠지!’그 모습이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남설아는 더 이상 말다툼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그건 제 겁니다. 주식뿐만 아니라 이 본가도요. 할아버지가 남기신
남설아는 이번 일을 통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본가를 나서자마자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살면서 이렇게 통쾌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사람이 가끔은 독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네.’한편 병원.배서준은 부모님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서유라는 이미 병원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배서준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배서준이 들어서는 순간, 서유라는 급히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았다.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아버님, 어머님 상태가 좋지 않아. 어떡하지? 서준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아버님께서는 원래 고혈압이 있으셨는데... 이런 충격을 받으시면 어떡해....”서유라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하지만 배서준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그는 본래 부모와 특별한 정이 없었다.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고 부모는 해외에서 자유롭게 살았다.본래 아이를 낳을 계획조차 없었다가 뜻하지 않게 그를 갖게 되어 마지못해 낳았을 뿐이었다.그마저도 제대로 키울 생각은 없었고 태어나자마자 본가에 맡겨놓고는 자기들끼리 즐기며 살았다.그런 부모와는 그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만 존재했을 뿐 애정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잠시 후,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아버님께서는 원래 고혈압이 있으셨는데 이번에 심한 충격을 받아 뇌졸중이 왔습니다. 편마비 증상이 심해서 앞으로는 서거나 걸을 수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미리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깨어나셨습니다.”의사는 짧고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한 뒤 자리를 떠났다.배서준은 말없이 병실로 들어갔다.그가 들어서자마자 윤화진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아들이라고 여기 들어올 낯짝이 있긴 해?! 네 그 잘난 전 부인이 우리를 어떻게 만든 줄 알아?!”오랜만에 만나는 어머니 윤화진이었지만 배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쏟아지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닌 비난과 질책뿐이었다.배서준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에 전혀 동요
“서준아, 아프지 않아?”서유라는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배서준의 붉게 부은 뺨을 바라봤다.하지만 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푹 쉬라는 말만 남긴 채 혼자 차를 몰아 남설아를 찾아갔다.남설아의 허름한 집에 도착해서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근처 사람에게 물어본 끝에야 남설아가 이사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는 수 없이 그는 전화를 걸었다.겨우겨우 다시 마주했지만 예전처럼 차갑고 거만한 모습은 없었다.대신 어쩐지 지친 기색과 체념이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이제 그만하지? 집으로 돌아가자.”“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요?”남설아는 그 말에 실소가 터졌다.“내 딸이 죽었어요. 내가 뭘 더 가지고 당신이랑 싸우겠어요?”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배서준의 뺨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었다.누가 봐도 부모가 때린 흔적이었다.예전 같았으면 그걸 보고 마음 아파했겠지만 지금의 남설아는 오히려 통쾌했다.‘개가 개를 무는 광경... 참 볼만하네.’“아버지는 중풍, 어머니는 병원 신세. 이 정도면 됐잖아.”“내 아내는 영원히 너야. 유라 숨겨둘게. 네 자리 빼앗지 않게. 아이를 좋아한다면 내가 하나 더 낳아줄 수도 있어. 어때?”그는 여전히 자애롭고 이해심 많은 척 말했다.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정말 배려심 깊은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남설아에게 그 말은 역겨울 정도로 우스웠다.“당신 부모가 병든 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 손으로 사회에서 도태된 거예요. 나랑 아무 상관없어요.”그녀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전에 그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줬다.부메랑은 돌고 돌아 결국 자기 몸에 꽂히는 법, 그 고통이 어떤 건지 이제 뼈저리게 느껴보라는 거였다.“도대체... 넌 지금 뭘 원하는 거야?!”배서준이 한 발 앞으로 다가오더니 남설아의 목덜미를 움켜쥐며 소리쳤다.“남설아, 네가 정말 감히 이렇게 나와?!”이 말이 그의 인내심의 끝이었다.예전
남설아의 눈물이 끝내 떨어지고 말았다. 평생의 눈물은 오직 배나은을 위해 흘릴 줄만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배서준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그는 오랜 세월을 사랑해온 사람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헌신해온 사람이었으며 심지어는 모든 걸 참고 견뎌줄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사람이 사람답지도 못한 인간일 줄은 정말 몰랐다.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손익 계산뿐, 자연의 법칙이라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마치 배나은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개처럼, 아니, 그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처럼, 없어져도 그만인 한낱 풀잎에 불과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그 마음속엔 단 한 번도 딸을 품은 적이 없었다. 배나은이란 존재는 배서준의 인생에서 단 한 줄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당신이 날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는 건 알아요. 날 미워해도 좋아요. 하지만 나은이는,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었어요!”“서준 씨, 내가 이 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당신과 함께 나은이를 낳은 것, 그리고 당신이 나은이의 친아빠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남설아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눈가는 부어오를 대로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남설아는 그동안 수년간 배서준 앞에서만큼은 늘 감정을 억제해온 사람, 한 번도 이렇게 미친 듯이 소리친 적 없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의 표정은 너무나 처절했고 그 광기 어린 모습에 배서준은 혐오를 드러냈다.“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언제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게 마땅해.”“딸은 죽었고 우리 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됐어. 이걸로 서로 비긴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나랑 돌아가. 넌 여전히 배씨 가문 사모님이야.”배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다음 수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지금 남설아가 붙들고 있는 이 감정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중요하지 않은 아이 하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그 말을 들은 순간 남설아는 완전히 깨달았다.이 사람
남설아가 끝까지 체면을 버린 이상, 배서준도 더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그는 지시를 내렸다.“당장 남도일을 찾아와.”“대표님, 남도일은...”비서인 천기준은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배서준의 날카로운 눈빛에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남도일은 지금 복역 중입니다.”‘감옥에 있다고?’그 말에 배서준은 다소 놀란 기색을 드러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예전에 빚이 있었는데 수표가 부도 처리되자... 남설아 씨가 빚 대신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로 강연찬 쪽에서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리고 감옥에 보냈다고 하더군요.”천기준은 이런 건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뭐라고?”배서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왜 나는 몰랐지?”그의 날 선 질문에 천기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마누라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지금 와서 직원한테 화풀이하면 뭐가 달라지나?’“나가.”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손을 휘저었다.‘남도일이 분명 남설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그 끈이 이미 끊어졌다고?’강연찬은 배서준에게 있어서 진짜 재수 없는 재앙 그 자체였다.창가로 다가가 복잡한 도로를 내려다보며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남설아, 이 모든 건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한편 남설아 역시 미친 듯이 원고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반드시 배서준을 사회적으로 끝장낼 작정이었다.사람은 자신의 죗값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특히 배서준 같은 자는 더욱 그래야 했다.그가 무슨 자격으로 이 모든 걸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그때 강연찬이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그러고는 손에 들린 배달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배서준, 반격 시작했어.”“반격?”남설아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떴다.“어떤 반격?”“네가 그때 얼마나 온갖 수를 써가며 그와 결혼했는지, 어떻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