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화

작가: 목련청
“서준아, 설아 씨가 너랑 얘기하고 싶다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마.”

서유라는 배서준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억울함을 꾹 눌러 담은 눈빛을 보냈지만, 여전히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본 배서준은 살짝 불만스러워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도 모를 만큼, 둘만의 시간이 이렇게 주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설아는 한동안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배서준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에게는 이미 남설아에게 쏟을 인내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데? 애를 데리고 이런 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엄마라는 사람이 이래도 돼?”

그녀가 과거에 자신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는 생각에 심지어 그 수단으로 자기 아이까지 이용한다고 느껴져서 배서준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당신이 나은이랑 한 달만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한 달 동안, 제발 서유라 씨는 나은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남설아는 이제 배서준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저 딸이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길 바랄 뿐이었다.

“난 나은이랑 한 달 같이 있겠다고 했지, 네가 뭘 요구하든 더 들어줄 생각은 없어. 넌 참 한결같다. 예전에도 더럽고 비열한 수법으로 내 침대에 기어들더니... 너만 아니었어도 난 누구의 아빠도 되지 않았을 거야!”

배서준의 눈빛이 점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그는 나은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만 떠올려도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역시나 몇 년이 흘러도 그는 끝내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날 밤은 정말 의도치 않은 사고였고 남설아조차 왜 그 방에 있었는지, 왜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만에 나은을 품에 안게 되었을 때, 남설아는 그저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나은의 병약한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세상이 너무 싫어서 그냥 잠깐 들렀다가 떠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서준 씨, 그때의 일이 그렇게도 싫어서 자신의 아이까지도 싫은 거예요?”

남설아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자신에 대한 증오는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은에게까지 그렇게 매몰찬 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은이는 아빠를 그렇게나 사랑하는 데 그 사랑이 그에게는 정말 안 보이는 걸까?

“그 아이는 내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야. 네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했어?”

배서준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가득했다.

그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고 항상 특별한 존재로 떠받들어져 왔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당한 함정이 바로 이 여자 때문이라 생각하니 분노가 멈추질 않았다.

“엄마!”

나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옆에서 있던 유라 이모가 나은이를 데려왔는데 아이는 아빠가 엄마에게 던지는 차가운 말을 모두 듣고 말았다.

나은이는 늘 아빠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빠는 바빠서 그런 거라고 그래도 아빠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지금, 아빠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말은 너무 잔인했다.

“나은아?’

남설아는 아이의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배서준 역시 당황한 듯했다.

방금 한 말이 아이에게 닿을 줄은 몰랐고 그는 일부러 아이를 상처 주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었다.

“두 분... 얘기 계속하세요.”

“나은아, 우리 먼저 돌아가자. 엄마 아빠 방해하지 말고.”

서유라는 당황한 모습을 하며 휠체어에 앉은 채 나은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하지만 나은은 이 아줌마가 싫었다.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아줌마가 자꾸만 엄마랑 떨어뜨리려 했다.

“놔요! 엄마한테 갈 거예요!”

“아야!”

서유라가 비명을 질렀다.

나은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손톱이 서유라의 뺨을 스치며 작은 상처를 냈다.

“나은아!”

“유라야!”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소중한 사람에게 달려갔다.

남설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급하게 살펴봤다.

“나은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피났어?”

한편, 배서준은 서유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상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뺨에 맺힌 피 한 방울이 그를 폭발하게 했다.

그는 한걸음에 나은에게 다가가 아이를 잡아당겼다.

“사과해!”

나은은 커다란 손에 휘청였지만, 끝까지 울음을 참았다.

“아줌마가 저를 일부러 여기로 데리고 온 거예요. 저는 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엄마 찾고 싶었어요.”

“서준아, 아이를 탓하지 마. 다 내 잘못이야. 제발 그만해.”

서유라는 뺨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배서준의 팔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아이한테 화내지 마.”

그녀가 이렇게 나올수록 배서준의 분노는 더욱 치솟았다.

나은이는 남설아와 닮은 데다 지금의 고집스러운 표정은 마치 남설아를 그대로 빼닮은 듯했다.

그 모습이 배서준을 더욱 화나게 했다.

그는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경멸 어린 눈빛으로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를 노려봤다.

“넌 정말 너희 엄마랑 똑같구나. 어린 것 치고는 참 독하네.”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

배나은은 작은 몸으로 남설아 앞을 가로막았다.

그 또랑또랑한 눈망울에는 아빠에 대한 깊은 실망이 가득했다.

작은 몸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버텼다. 엄마를 지켜야 했으니까.

그동안 아빠의 사랑을 원했던 나은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빠는 자신을 싫어하고 엄마도 싫어했다. 그렇다면 아빠가 없어도 괜찮았다. 나은이는 엄마만 있으면 됐다.

“흥.”

배서준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나은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서유라의 휠체어를 밀며 그대로 돌아섰다.

“나은아, 미안해.”

남설아는 천천히 다가가, 나은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딸을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너무 약한 엄마였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상처를 겪게 만들다니,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 아빠는 저를 싫어하는 거 알아요. 제 이름, 배나은도 그냥 대충 지은 거잖아요. 그래도 난 아빠랑 있고 싶었는데 아빠는 엄마도 싫어하고 저도 싫어하잖아요. 엄마, 저 떠나기 싫어요. 엄마 곁에 있고 싶어요. 엄마 혼자 남으면 어떡해요?”

나은이는 울음을 삼키면서도 남설아를 꼭 껴안았다.

아이의 눈에는 마냥 천진난만해야 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슬픔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은의 작은 몸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입술 끝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더니 아이는 그대로 작게 몸을 웅크렸다. 고통스럽고 절망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나은아! 의사 선생님, 제발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나은아, 제발 엄마를 놀라게 하지 마.”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06. 07. AM 05:30
댓글 모두 보기

최신 챕터

  • 굿바이 쓰레기   제846화

    배서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고 이를 악물었다.소미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비웃듯 콧방귀를 뀌며 잘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사무실 안에는 여전히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소미란이 떠난 뒤, 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유라도 강씨 가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책상 위 서류들을 정리할 뿐이었다.며칠 후, 어느 오후.서유라가 금박으로 장식된 초대장을 들고 배서준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비쳤다.“서준아, 이거 봐. 이씨 사모님이 사람을 보내서 직접 전해준 거야.”그녀는 초대장을 건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술품 감상회 초대장이야. 듣자 하니 이번에는 회장님의 소장품 중에서도 꽤 귀한 걸 내놓으신다네.”배서준은 청첩장을 받아들고 훑었다. 이씨 가문은 지역의 오래된 가문으로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금융계와 예술 수집하는 업계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집안이었다.이씨 가문이 여는 연회는 늘 도시의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이씨 가문의 연회라...”배서준은 손가락으로 청첩장의 문양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배건 그룹은 최근 여러 논란에 휩싸였고 소명 그룹의 자금이 들어와 간신히 숨통은 텄지만, 외부의 불신과 소문은 여전히 무성했다.그들에게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관계를 정비할 자리가 필요했다.서유라는 그 옆으로 다가오며 부드럽게 말했다.“맞아. 회장님 부부가 이런 사적인 자리를 마련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야. 이번 초대장을 받은 것도 쉽지 않았고. 게다가 이번 참석자 중에는 상당한 인물들도 온다고 하니까 인맥을 넓히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거야.”배서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의 속내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말하는 내용은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신이 힘들게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이씨 가문이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한 연줄을 확보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네 말이 맞아. 좋은 기회지.”그는 청첩장을 닫으며 말했다. “가자.”확답을 들은 서

  • 굿바이 쓰레기   제845화

    배서준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의 가고 오는 차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시가는 아직 불도 붙이지 않았다.소명 그룹의 자금이 들어오긴 했지만, 갈증을 해소했을 뿐이지 충분치는 않았다.그가 원하는 건 숨 돌릴 틈이 아니라 모든 걸 되찾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서유라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뒤로 설렘을 감추지 못한 소미란이 조심스레 따라 들어왔다.“서준아.” 서유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미란 씨 왔어.”배서준은 몸을 돌려 소미란을 바라봤다.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앉아요.”소미란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등을 곧게 폈고 투자자의 위엄을 보이려 애썼지만, 배서준의 시선 앞에서는 왠지 모르기 불편해졌다.배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소명 그룹 자금은 시기가 적절했어요. 큰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소미란 씨.”소미란은 그 말에 대꾸하며 배서준을 위아래로 살폈다.“서준 씨한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죠. 배건 그룹이 잘 되면 우리 소명 그룹도 자연히 이익을 보게 될 테니까요.”배서준은 대꾸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돈만으로는 부족해요. 외부에 보여줘야 해요. 배건 그룹이 소명 그룹과 진심으로 손잡았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말이죠.”서유라가 옆에서 거들었다.“서준이가 말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기회를 만들자는 거예요.”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투자 기념식 같은 걸 열 생각입니다. 규모는 크게 말이에요. 배건 그룹은 예전 그대로고 소명 그룹의 지원으로 더 강해질 거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요.”그는 소미란을 바라보며 약간 미간을 좁혔다. 이미 계산은 끝난 상태였다. 곧 말투를 바꿔 말했다.“우리 둘만으로는 부족해요. 행사를 키우려면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하죠. 소미란 씨, 소씨 가문과 강씨 가문이 좀 안면 있지 않나요?”소미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의 미소가 잠깐 굳었다.배서준은 이어서 더는 거절할 수 없게 몰아붙였다.“강씨 어르

  • 굿바이 쓰레기   제844화

    남설아의 이름이 언급되자 배서준의 눈빛에서 온기가 한층 식었다.소미란이 남설아를 향한 그 깊은 증오를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감정, 잘만 이용하면 제법 쓸모 있는 칼이 될 수 있었다.소미란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동시에 남설아가 남겨둘지도 모를 뒤처리를 감시할 내부 인물을 심는 일이기도 했다. 이 거래,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그는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의 힘이 조금은 풀어졌다.“소명 그룹이 배건 그룹에 투자하는 건 작은 일이 아니에요. 이건 사모님께 여쭤봐야 하는 일이죠. 저는 배건 그룹이 괜한 말 나오는 꼴은 보기 싫거든요.”그건 곧 긍정의 신호였다. 소미란의 눈이 반짝이며 목소리도 높아졌다.“걱정하지 마세요. 엄마는 저를 제일 예뻐하세요. 제가 설득하면 꼭 동의하실 거예요.”서유라도 미소 지으며 소미란의 손등을 다정하게 두드렸다.“그럼 다행이네요, 미란 씨. 너무 어머님께 부담드리지는 마세요.”그날 저녁, 소미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서재로 뛰어 들어갔다.“엄마, 동의해 주세요. 소명 그룹이 배건 그룹에 투자해야 해요!” 소미란은 다소 격한 말투였다.문서를 보고 있던 소미란의 어머니는 고개를 들며 이마를 찌푸렸다.“미란아,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배건 그룹 상황 뻔히 알잖아? 배서준이 전처랑 싸운다고 회사를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엄마, 그건 리스크가 아니라 기회예요.” 소미란이 다급하게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배서준이 이미 승낙했어요. 우리 소명 그룹이 돈을 대면 제가 투자자 자격으로 배건 그룹에 들어갈 수 있어요. 생각해봐요. 이건 단순히 배서준을 돕는 게 아니에요. 두 회사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거예요. 나중에 소명이랑 배건이 협력하면 얼마나 많은 이익이 생기겠어요?”어머니는 말없이 딸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딸의 진짜 목적이 강연찬이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배건 그룹을 손에 넣는

  • 굿바이 쓰레기   제843화

    서유라가 적절히 말을 받았다.“서준의 말이 맞아요. 남설아가 워낙 급하게 인수인계했으니 회사 내부에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을 거예요. 우리는 그걸 파고들면 돼요. 남설아가 강연찬이랑 엮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럼 강씨 가문한테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보여주는 거예요. 강연찬한테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겨줬는지 알려주면 돼요.”남설아와 강연찬을 겨냥한 말에 소미란의 관심이 옮겨졌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맞아요. 강씨 가문의 강씨 어르신은 가풍을 제일 중시하는 분이에요. 그분이 남설아 같은 여자를 받아들일 리가 없어요. 제가 직접 어르신을 찾아가서 남설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말씀드릴 거예요.”배서준이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코웃음을 쳤다.“강씨 어르신은 그렇게 몇 마디 말로 움직일 분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당장 찾아가면 괜히 눈치만 채게 할 뿐이에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소파 팔걸이를 무심코 두드렸다.“하지만 강씨 가문을 공략하는 방향은 좋은 생각이에요. 강연찬이 남설아 때문에 화승 그룹 자원을 꽤 많이 썼을 겁니다. 그 자체가 약점이 될 수 있죠. 사업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어요. 오직 이익뿐이죠.”서유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서준이는 항상 생각이 깊어요. 미란 씨, 지금은 성급하게 나서지 말고 천천히 차근차근 풀어나가요.”배서준은 서유라를 한 번 바라봤다. 더 말하지 말라는 듯 눈빛으로 보내고는 담담히 말했다.“회사 일은 제가 처리할게요. 남설아가 남긴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갈 겁니다. 그리고 남설아랑 강연찬...”그는 말을 멈췄고 눈빛에는 음울한 기색이 스쳤다.“편하게 휴가나 즐기고 싶다고? 그럴 실력이 되는지 한번 보자고요.”거실 안은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소미란은 배서준의 선이 또렷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배서준 씨, 저 알아요... 예전에 남설아 때문에 일부러 몇몇 협력 업체들 끊어냈던 거 말이에요.

  • 굿바이 쓰레기   제842화

    회사 일의 골치 아픈 기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집까지 따라왔다.남설아가 모든 걸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난 모습이 배서준의 가슴을 답답하게 막고 있었다.서유라가 물 한 잔을 들고 와서 무슨 말을 꺼내려던 찰나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하인이 문을 열자 소미란이 성큼성큼 들어왔다.눈은 소파에 앉아 있는 배서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배서준 씨!”소미란의 목소리는 높고 날카로웠다.“당신 나한테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설아랑 강연찬 사이 확실히 정리하겠다고! 그런데 지금 뭐예요? 둘이 도망쳤다고요?”안 그래도 화가 잔뜩 쌓여 있던 배서준은 그 말에 이마의 핏줄까지 튀어나오며 벌떡 일어섰다.“본인들이 나가겠다는데 제가 줄이라도 묶어놨어야 합니까?”“줄로 묶으란 소리가 아니잖아요! 적어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됐잖아요!”소미란은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거렸다.“내가 서준 씨 배건 그룹 돌려받을 수 있게 도와줬잖아요. 그런데 결과가 이거예요? 둘이 저렇게 한가하게 놀러 가게 놔뒀다고요?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요? 가만히 있으라면서요, 알아서 처리하겠다면서요?”서유라는 급히 물잔을 내려놓고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미란 씨, 진정해요. 천천히 말해요. 서준이도 방금 퇴근해서 지쳐 있어요.”그리고 곧바로 배서준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서준아, 너도 좀 참아. 미란 씨가 지금 화가 나서 그래.”배서준은 서유라를 힐끗 보았을 뿐,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이미 지친 기색과 짜증이 가득했다.그는 원래 소미란에게 좋게 대하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얼굴 보기도 싫다는 듯 노골적으로 불편해했다.“됐어!”배서준이 소리를 질렀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나 지금 이딴 말 다 들어줄 시간 없어요. 회사에 일 쌓여 있고 미란 씨랑 말다툼할 여유도 없다고요. 가서 머리나 식혀요.”서유라는 또다시 소미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미란 씨, 제발 들어봐요. 지금 이렇게 싸우면 안 돼요. 우리 아

  • 굿바이 쓰레기   제841화

    배건 그룹 꼭대기 층, 대표이사 사무실.배서준은 넓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 쌓인 문서들은 거의 그를 덮을 정도였다.그는 애초에 남설아가 권한을 넘길 때 분명히 한바탕 소란이 있을 줄 알았다. 울거나 따지고 들 수도 있고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할지도 다 계산해뒀다.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말끔하게 완전히 손을 떼고 정말로 강연찬과 함께 인생을 즐기러 떠나버렸다.이렇게 거대한 기업과 수많은 잠재적인 골칫거리까지 전부 그에게 넘기고 간 것이다.배서준은 휴대폰을 들어 남설아의 번호를 눌렀다. 몇몇 프로젝트에 관해 직접 물어봐야 할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남설아가 정말 이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믿을 수 없었다.벨 소리는 한참 울렸지만 끝내 아무도 받지 않았고 전화는 자동으로 끊겼다.“남설아, 대단하네 진짜.”배서준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휴대폰을 책상 위로 던졌다.“서준아, 무슨 일이야?”서유라가 커피를 들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책상 옆에 내려놓으며 물었다.“회사 일 잘 안 풀려?”배서준은 그녀를 흘낏 보기만 했고 입을 열지 않았지만 속은 화가 가득했다.그는 다시 한번 남설아의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는 두 번 울리자마자 전화가 끊겼다.“쾅!”배서준은 휴대폰을 책상에 세게 내리쳤다.서유라는 깜짝 놀라 트레이를 떨어뜨릴 뻔했다.“서준아, 그러지 마. 남설아는 정말로 회사 일에서 손 떼려는 거 아닐까?”“손 뗀다고?”배서준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고 눈빛이 서늘하게 식어갔다.“자기가 배건 그룹을 뒤집어놓고 이제 와서 발 빼면 끝이야? 배건 그룹을 뭐로 아는 거야? 시장 바닥이야?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게?”그의 가슴이 요동쳤다. 마음속은 속은 것 같은 분노와 권력을 쥐고도 사방에 발이 묶인 좌절로 가득했다.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서도현이 느긋한 얼굴로 들어왔다.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걸려 있었다.“형님, 누가 그렇게 화나게 했어요?”그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책상 위 문서를 힐끗 보았다.“이 배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