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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목련청
온 병원이 배나은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남설아는 마치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

들리는 건 발소리와 사람들의 외침뿐, 눈앞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남설아 씨? 괜찮으세요?”

의사가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남설아는 멍하니 의사를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며 모든 이성이 한꺼번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제 딸... 어떻게 됐나요?”

“일단 상태는 안정시켰습니다. 그런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서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우선은 ICU에 입원시켜서 안정될 때까지 지켜보고 그 이후에 수술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설아 씨, 지금 아이의 상태로 봐서는 수술은...”

의사는 말을 흐렸다.

굳이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남설아는 이해했다.

수술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저 아이의 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자신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희망도 놓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의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예고도 없이 터졌다.

그녀는 다급히 손으로 눈물을 닦았지만 닦을수록 더 쏟아졌다.

결국 복도에 주저앉아, 온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이 순간, 그녀는 절망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 아픈지 뼛속까지 깨달았다.

위생복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남설아는 나은이의 침대 옆에 앉았다.

나은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온몸에는 수많은 튜브와 기계들이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도 느껴졌다. 그녀의 소중한 딸의 생명이 손끝에서 조용히 흘러나가는 듯했다.

“나은아, 미안해. 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지난 일들이 스쳐 갔다. 만약 자신이 배서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은이는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분명 아빠가 아껴주고 소중히 했을 텐데.

자신이 잘못된 사람을 사랑했기에 아이의 짧은 인생조차 이렇게 가혹하게 흘러가 버렸다.

나은이의 손을 꼭 쥔 채, 그녀의 가슴은 한없이 무너졌다.

아이의 작은 몸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녀의 모든 감각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망설이다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ICU에서 나와 복도에 섰을 때, 그녀 앞에는 깔끔하게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를 보는 순간, 남설아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배서준 회사의 법무팀에서 가장 뛰어난 변호사, 방찬혁이었다.

“방 변호사님, 무슨 일이시죠?”

남설아는 목소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

“대표님께서 이혼 조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전에 남설아 씨가 제안했던 황당한 거래는 법적으로 무효라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그 거래는 폐기될 예정입니다.”

방찬혁은 준비해온 이혼 서류를 서류 가방에서 꺼내 건넸다.

“대표님께서 전하신 말씀은, 이혼 조건은 다시 논의할 수 있지만... 남설아 씨께서 더 이상 헛된 집착을 하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겁니다.”

‘헛된 집착?'

그 말을 듣는 순간, 남설아는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작은, 비웃음 같은 웃음이었다.

그래, 그녀는 헛된 집착을 해왔다. 그 집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난리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배서준을 사랑한 일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이고 재앙이었다.

“가서 전해 주세요. 그 조건 말고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계속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남설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변호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방찬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막 설득을 시도했다.

“남설아 씨, 이렇게 하셔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대표님이 제시한 조건은 충분히 좋은 겁니다. 사랑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어요.”

방찬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간곡한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갔다.

그렇다. 세상 사람들 눈에 남설아는 자업자득이었다.

배서준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남설아는 이제 그 사랑에 미련이 없었다.

그저 나은의 마지막 순간에 단 한 조각 아빠의 사랑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설령 거짓이고 연극 같은 사랑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그 작은 소망조차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제 입장은 확실합니다. 죄송하지만 전 더 이상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차갑게 말을 남긴 채 남설아는 다시 중환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은이는 여전히 생과 사의 경계에 놓여있는데 그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은 오직 자유만을 원했다.

그의 세상엔 서유라뿐이었다.

자신과 아이, 둘을 합쳐도 서유라 하나만큼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남설아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울면서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변호사는 바로 상황을 배서준에게 보고했다.

“그럴 줄 알았어. 저 여자가 순순히 물러설 리 없지.”

배서준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 속에선 싫증과 혐오가 넘쳐흘렀다.

바로 그때, 장우진이 들어왔다.

“대표님, 남도일이 또 나타났습니다. 아마 남설아 씨에게 돈을 뜯으려고 온 것 같습니다.”

“돈? 어림도 없지.”

배서준은 차갑게 웃으며 지시를 내렸다.

“당장 남설아의 카드를 전부 정지시켜. 돈 한 푼 없이 바닥을 기어봐야 정신 차리지.”

그는 마치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결국 허영심 많은 여자니까 돈이 사라지면 스스로 포기하고 이혼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여자에게 배서준은 단 한 톨의 동정도 없었다.

그 사이 나은이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하였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오늘 밤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수술해 주세요.”

남설아는 망설이지도 않고 소리쳤다. 비록 수술해도 나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엄마로서 아이가 죽어가는 걸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수술비를 내려고 카드를 꺼냈을 때 모든 카드가 정지된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가 가진 전 재산은 혹시 몰라서 챙겨둔 400만 원의 현금뿐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배서준의 복수였다.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자신을 벌주기 위해 아픈 아이를 인질로 삼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도 없었다.

지금은 나은을 살려야 했다.

남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꺼내 배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 한 번만, 딸을 살릴 기회를 달라고 빌고 싶었다.

한편, 저 멀리 도심의 밤하늘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터져 올랐다.

배서준은 서유라를 품에 안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서준아, 너무 예쁘다. 고마워.”

서유라는 행복하게 웃으며 그에게 기댔다.

그 미소는 꽃잎처럼 빛나고 있었다.

“기념일 축하해.”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사랑과 온기가 가득했다.

그때,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순간, 배서준의 얼굴엔 짜증이 스쳤다.

그는 전화를 끊고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핸드폰에서는 무정한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남설아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절망에 빠져 나은이의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나은이는 피를 토하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작은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런데도 나은은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지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엄마, 울지 마. 엄마, 우리는 아빠 필요 없어. 엄마 행복해야 해.”

나은이는 작은 손으로 산소마스크를 벗어 엄마한테 마지막 얘기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손은 끝내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그 순간, 병실 가득 모니터의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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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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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저런 게 아빠고 또 많은 판단이 필요한 회장이라니... 한심해 죽겠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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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06. 07. AM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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