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귀비는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러내렸다. 기양은 시선이 현비를 바라보았다. “억울한 네 심정은 이해를 한다만, 귀비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런 것이니 차마 벌할 수 없구나. 다만 너를 귀비로 승격시키는 것으로 보상해 주겠다.”기양의 발언에 사람들은 일제히 놀랐다. 현비는 네 명의 비 중 한 명이었지만, 전에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숙비나 황자를 낳은 단비, 가화 공주를 낳은 장비에 비하면 찬밥 신세였다. 그런 여인이 가장 먼저 귀비로 승격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비가 귀비로 승격
기양은 강만여의 의자를 자신의 옆으로 옮기게 하고, 그녀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후에야 차가운 시선을 무릎 꿇고 있는 난귀비에게로 돌렸다. “이게 몇 번째냐?” 그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어찌할 수 없다고 여기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이냐?”난귀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망극합니다, 폐하. 화가 너무 나서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무엇이 그리 화가 나더냐?” 기양은 의자의 팔걸이를 세게 내리쳤다. “누가 널 그리 화나게 했는지, 황손을 저
강만여는 정중하게 말했다. “근거 없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현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비 마마께서 황자를 낳았으니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난귀비의 얼굴이 즉시 어두워졌다. 누군가 심장을 칼로 찌른 듯했다. 현비는 서둘러 일어나 사과했다. “마마, 용서하십시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난귀비는 이를 악물고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 천한 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분명 일부러 그런 것이거늘!”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전각은 삽시에 조
강만여는 그녀의 말에 불쾌함을 느끼며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제야 그녀가 영락 공주라는 것을 알아봤다. 작년 심장안의 영접연에서 영락 공주가 심장안에게 거절당한 이후로 강만여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지금 보니 그녀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온몸에서 퇴폐적이고 초췌한 기운이 풍겼고, 원래 밝고 아름다웠던 얼굴에는 풍파를 겪은 듯한 흔적이 늘어 있었다. 통통했던 뺨은 쑥 들어가 눈이 유난히 커 보였지만, 공주로서의 타고난 오만함은 사라졌었다. 이 모습으로는 화려한 궁궐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날이 밝고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마치자, 현비가 궁녀를 보내 정안 태비가 수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했다.관례에 따라 후궁의 비빈들은 그녀에게 문안 인사를 드려야 했다. 날씨가 시원하니 다 함께 가자고 했다. 안전을 위해 옥주는 속으로 강만여가 외출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일은 피할 수 없었고, 게다가 그녀가 외출을 너무 하지 않는 것도 태아에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옥금과 자소, 그리고 호진충과 함께 그녀를 모시기로 했다. 승건궁에서 수강궁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옥주는 사람을 시켜 가마를 준
방 안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자, 창문 아래 나란히 서 있던 두 명의 대총관이 소곤거렸다. 호 총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신기합니다. 폐하께서 오늘 밤 저희 마마의 침소에 드시지 않겠다더니, 어찌 갑자기 비바람을 뚫고 오신 겁니까?” 손 총관이 답했다. “폐하께서 이러시는 것도 처음이 아니거늘, 뭐가 그리 신기한 것이냐? 게다가 비는 오는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호 총관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누구를 속이려는 것입니까? 폐하를 모셔봐서 아는데, 폐하의 성정으로 보아 누가 부추기지 않는 이상 오지 않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