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복궁은 서육궁 중에서도 서북쪽 구석에 자리 잡은 비교적 외진 곳이었다.강빈의 가마는 월화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나서자, 강빈은 가마에 올랐고, 만여는 다른 궁녀들과 함께 그 뒤를 따라야 했다.행렬이 웅장하게 지나가자, 각 궁의 궁인들이 구경하려 몰려들었다.후궁들은 체면상 궁문 앞에 나와 구경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심복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강만여가 강빈에게 남 서고에서 끌려 나왔다는 것과 나올 때는 머리도 흐트러지고 화장도 엉망이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두가 그녀와 황제가 남 서고에서 무슨 일을 벌
강만여가 버둥거리자, 기양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그녀의 옷을 거칠게 벗겼다. “너는 짐의 후궁이거늘, 어찌하여 몸을 사리는 것이냐? 심장안 때문에 정절을 지키려는 것이냐? 과거의 인연을 끊었다더니, 어찌하여 아직도 그리워하는 것이냐? 네가 이리 구는데, 짐이 무슨 수로 너희를 믿겠느냐? 심장안이 아직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내 지금 당장 그의 목을 쳐버릴 수도 있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아야 포기할 수 있겠느냐?”기양의 말은 칼날처럼 그녀의 가슴을 할퀴었다. 강만여는 저항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치욕스러움에 눈물이
입맛이 돌지 않았지만, 심장안이 떠나며 당부한 말이 떠올랐던 그녀는 억지로 떡을 입에 집어넣었다. 잘 먹고 잘 자면서 건강히 그를 기다릴 것이다. 한 시진 후, 대신들이 물러나자 호진충이 그녀를 서고로 데려갔다. 서고 안에서 의자에 기대어 눈을 비비던 기양은 그녀가 들어오자, 손을 내리고 말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 몸을 살짝 움츠린 강만여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기양이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꿇지 말고, 이리로 오거라!”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앞으로 걸어가 몸을 살짝 숙였다.“또 운 것이냐?
그러나 강만여는 끝내 그를 궁문 앞까지 배웅했다.나가지 못하는 궁문 안에 서서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맛보려 했다.아플수록 기억에 오래 남기에, 그녀는 이 아픔을 길이길이 간직하며 마음을 다잡을 것이고 기양이 준 상처를 잊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그를 증오했다!심장안과의 앞날이 어떠하든, 기양을 증오할 것이다!평생을 그를 저주하는 데 바치리라!비록 기양이 강제로 그녀의 몸을 천 번, 만 번 차지할지언정, 그녀의 마음마저 빼앗을 순 없을 것이다.그녀는 궁문
그럼에도 그녀는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다. 심장안과 두세 걸음 거리를 두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승전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살아있는 게 제일 중요해. 공을 세우려고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사적인 일로 정신을 흐트러뜨리지도 마. 잡념이 없어야 냉정할 수 있으니.”“그래, 그렇게 할게.”심장안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 꼭 살아남을 것이다. 너를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강만여는 목멘 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심장안이 말을 이었다. “너도 나를 위해서라도 잘 살아있
기양이 어떤 심정으로 그녀를 심장안의 배웅을 보냈든, 이 결정 자체는 그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그녀는 너무나도 심장안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단 몇 마디 말이라도 좋으니 잠시라도 함께 걷는 것만으로 좋았다.5년 동안 그리워했던 심장안을 오늘까지 포함해 단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여태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다. 이번에 그가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기양이 말한 대로 전장은 위험했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하지만 기양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