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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윤채경
용우천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첩인 한씨 마님이 먼저 나섰다.

“큰 마님께 아룁니다. 대비마마의 성지는 이미 내려왔는데 큰 아가씨께서 죽어도 따르지 않겠답니다.”

큰 마님은 고개를 살짝 들고 조용히 물었다.

“그래?”

그녀의 시선은 용지안을 스쳐지나 용우천의 얼굴에 꽂혔다.

“딸 하나 설득하지 못하면서 전장에서 어찌 삼군을 휘둘렀단 말이냐? 참으로 기이하구나.”

어머니의 날 선 꾸지람에 용우천은 깜짝 놀라 고스란히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머니. 지안이는 이미 동의했습니다. 아까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것뿐입니다.”

큰 마님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서둘러 거처부터 옮겨주도록 하거라.”

“예.”

용우천은 얼굴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지안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 하느냐? 얼른 짐을 챙기거라. 큰 마님께서 너를 위해 거처까지 바꿔주신 건 큰 은전이다.”

그러나 용지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차갑게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애화원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전 입궁하지 않을 거예요.”

큰 마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치 천하의 희귀한 농담이라도 들은 듯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비틀린 호기심으로 번뜩였고 입꼬리에는 얕은 조소가 감돌았다.

“우리 지안이가 제법 컸구나?”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큰 마님은 굳어진 얼굴로 다시 한번 용우천을 바라보았다.

“항상 이런 식인데 내 어찌 너를 믿겠느냐? 이 아이가 철이 없다면 아비라도 철이 들어야 할 텐데. 곧 궁에서 사람을 보내올 것이다. 그때도 지안이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대비마마께 뭐라고 보고하겠느냐? 네가 성지를 청한 건 용가를 위해서였을 테지. 그 또한 네 나름의 효심이었을 것이다. 허나 정작 성지를 얻어놓고도 딸아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더냐? 열여섯 해를 우리 집에서 자란 아이다. 그러니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게 만들었어야지.”

“예, 어머니.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큰 마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용지안을 바라보았다.

“지안아, 장군댁의 밥을 그냥 얻어먹는 건 아니지 않느냐? 나는 말이다. 내가 기른 것이 하다못해 개일지라도 꼬리를 흔들어야 뼈다귀 하나 던져준단다. 너는 이 집의 큰 아가씨로 열여섯 해를 귀하게 살아오지 않았더냐? 누릴 만큼 누렸으면 이 집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도리다. 그조차 하지 않겠다면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용지안은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입꼬리만 살짝 올릴 뿐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듣기에 참 곱고 그럴싸한 말을 골라 하시는군요.

용지안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큰 마님은 고개를 돌려 다시 용우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을 보니 어젯밤의 형벌이 약했나 보구나. 조금 뒤면 궁에서 보낸 사람들이 올 것이다. 그러니 알아서 처리하거라. 숨만 붙어 있다면 가마에 실어 보내면 될 것이다.”

말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하녀에게 말했다.

“가자. 이런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지.”

“제가 모실게요. 어머님, 조심히 걸으세요.”

용씨 부인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부축하자 하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큰 마님에게 건넸다. 큰 마님은 그녀를 흘깃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게 이 집안을 맡겼으면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야지. 이렇게 물러빠져서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인을 다루는 것도 자식을 기르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야. 칭찬할 건 칭찬하되 매질할 건 매질해야 한다. 무작정 아낀다고 해서 그들이 네 마음을 알아줄 것 같으냐? 세상에는 그런 정성을 짓밟는 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용씨 부인은 고개를 푹 숙였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싸늘한 웃음이 번졌다.

그 순간 용지안의 맑고 단아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잠깐만요, 할머니.”

큰 마님 뒤에 서 있는 용지안의 표정은 고요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입꼬리에 다시 한번 비웃음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지안아. 할 말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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