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행사가 끝난 뒤, 밤공기가 한층 차가워져 있었다.호텔 앞 도로에는 검은 세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플래시가 몇 번 더 터진 뒤에야 사람들의 발걸음이 흩어졌다.수혁은 말없이 차 문을 열어 주었다.서린이 조용히 조수석에 앉았다.차 안의 공기는 고요했지만, 갈 때와는 달리 무겁지 않았다.도심의 불빛이 유리창을 타고 길게 흘렀다.수혁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룸미러로 서린을 힐끗 바라보았다.창밖을 보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이, 평소보다 조금 들떠 보였다.시선을 거둬야 하는데,한 번 더 확인하듯 다시 시선이 머물렀다.“성유정 작가랑 꽤 잘 통하던데.”서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원래 아는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어.”서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그냥…….”나직한 목소리였다.“느낌이 좋아서요.”“느낌?”“네. 왠지 말이 잘 통할 것 같고… 낯설지가 않더라고요.”서린은 수혁의 옆모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대표님도 그런 사람 있잖아요.”“…….”“처음 봤는데, 아주 오래된 것 같은 사람.”말끝이 조금 흐려졌다.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브레이크가 깊게 밟히고, 깜빡이가 규칙적으로 딸깍딸깍 울렸다.수혁이 고개를 돌려 서린을 바라보았다.“알지.”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나한테는 공서린, 네가 그랬으니까.”서린의 심장이 작게 뛰었다.“……대표님은 원래 그런 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세요?”“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 같아?”잠시 눈이 마주쳤다.수혁이 피식 웃으며 서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듯 스쳤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대로 손을 잡았다.닿아 있는 온기가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다.서린의 심장이,무언가 스치고 지나간 듯 저릿하게 울렸다.“오늘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어요.”“성 작가 덕분에?”“...대표님 덕분이기도 하고요.”이번에는 수혁이 아주 옅게 웃었다.“좋은 친구가 생길 것 같아서 다행이네. 회사 일 핑계 대고 자주
옆에는 자신을 단단히 세워주는 사람이 있고,앞에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처음으로—이곳이 완전히 적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하지만 단 한 사람.강민재만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샴페인 잔을 든 채, 세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얼음이 잔 벽에 부딪히며 낮게 울렸다.‘이게 아닌데.’차수혁은 성유정에게 발이 묶이고,서린은 정계 인사들 틈에서 숨이 막혀야 했다.그리고 그 순간.자신이 손을 내밀어야 했다.‘차수혁은 너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그걸 깨닫게 해 주고,자신만이 그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동아줄임을 각인시킬 생각이었다.판은 내가 짰고, 움직이는 말도 내가 고른 건데―‘이게 뭐야.’왜 저 셋이 하나로 묶여 있는 거지.수혁은 한 발 앞에서 중심을 잡고,성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균형을 맞추고,서린은—편안했다.자신과 마주할 때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힘이 빠진 미소.그게 가장 거슬렸다.자신이 말을 걸면 곧바로 경계부터 하던 여자였다.한 걸음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섰고, 웃고 있어도 눈빛만큼은 언제나 차가웠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차수혁의 옆에서, 처음 만난 성유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어깨에 들어갔던 힘마저 풀려 있었다.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얻지 못했던 얼굴을 저 두 사람은 너무도 쉽게 보고 있었다.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자존심을 긁었다.내가 뭘 잘못 계산한 거지?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저었다.잘못된 건 자신의 계산이 아니라,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공서린이었다.강민재의 턱선이 서서히 굳었다.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수혁이 아니었다.이 판에서 밀려난 쪽은, 오히려 자신이었다.그때.반대편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차윤호 회장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허허, 거봐라. 내 눈이 틀림없다니까.”차 회장은 옆에 선 비서에게 으스대듯 말했다.“수혁이 저 녀석, 처음엔 튕기더니 유정 양이랑 분위기
서린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그 시선을 수혁이 놓치지 않았다.옆에 서 있는 성유정을 흘끗 바라본 뒤, 다시 서린을 봤다.‘이런, 불편한가.’순간 수혁의 턱이 단단히 굳었다.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하지.다음 순간, 그는 성유정과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한 발 물렸다.“공 부장님?”옆에 서 있던 강민재가 서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려 했다.서린은 한 발 앞으로 내디디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그리고 유정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아니야.’유정의 동공이 잠깐 멈췄다.그리고 이해했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그때,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수혁이 걸어왔다.“차 대표님.”강민재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수혁은 서린의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손을 잡지도, 어깨를 감싸지도 않았다.대신 아주 당연하다는 듯 같은 선 위에 서 있었다.“잠시 이야기 좀 하죠.”강민재가 웃었다.“저하고요?”수혁이 짧게 답했다.“아니. 공 부장과.”그리고 시선이 차분히 맞부딪혔다.“공 부장은 제 직원이니, 업무는 저를 통해 말씀하시죠.”테이블 위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누군가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또각, 울렸다.강민재의 눈빛이 얇아졌다.“대표님이 과민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단지 능력 있는 인재를 소개하려던 것뿐입니다.”“충분히 소개됐습니다.”수혁의 입가에 온기 없는 미소가 걸렸다.“김 의원님, 오랜만입니다.”그가 정계 원로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희 직원을 잠시 데려가겠습니다. 급하게 확인할 업무가 있어서요.”강민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수혁의 손이 서린의 팔을 감싸 쥐었다.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쪽으로.”강민재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지만, 수혁은 돌아보지 않았다.그는 서린을 감싸듯 이끌어,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테이블 앞으로 이동했다.유정도 조용히 그 자리에 합류했다.어설픈 삼각 구도가 만들어졌다.잠시 어색한 정적.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좋은 취지의 행사니 빠질 수 없죠.”수혁이 사무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강민재는 짧게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시선을 서린에게 돌렸다.“공 부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소개해 드릴 분들이 많습니다.”그는 자연스럽게 서린의 등을 에스코트하려 손을 뻗었다.“아니, 잠깐—”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나섰지만, 강민재가 한발 빨랐다.“김 의원님! 여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그 유능한 실무자가 이분입니다.”강민재는 서린을 정계 원로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이끌었다.서린은 수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걱정 마세요.’“인사드리세요. 한도오토링크의 공서린 부장입니다. 이번 자립 지원 사업의 일등 공신이죠.”서린의 숨이 순간 걸렸다.‘하필이면.’김 의원.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어린 시절 지안을 무릎에 앉혀놓고 사탕을 쥐여 주던 사람.그 손에 쥐여졌던 사탕의 포장지 색까지 떠올랐다.“허허, 젊은 친구가 아주 똘똘하게 생겼구먼.”김 의원이 안경 너머로 서린을 유심히 훑어보았다.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탕했지만,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반갑습니다. 공서린입니다.”서린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심장이 귓가까지 울렸다.“공 부장님은 실무 능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이 남다릅니다. 제가 아주 아끼는 파트너죠.”강민재는 보란 듯이 덧붙였다.말끝에 힘이 실려 있었다.수혁은 몇 걸음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샴페인 잔이 다시 부딪쳤다.웃음소리가 겹쳤다.누군가 플래시를 터뜨렸다.그 속에서 수혁의 손이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주먹이 단단히 쥐어졌다.‘교활한 새끼.’수혁이 이를 갈며 다가가려던 찰나였다.“수혁아!”익숙하고도 불청객 같은 목소리.차윤호 회장이었다.“회장님.”“여기 있었구나. 안 그래도 찾고 있었다.”차윤호는 수혁의 팔을 낚아채듯 붙잡았다.“인사해라. 이쪽은 혁신위원장님 따님인 성유정 양이다. 이번에 프랑스에
의원실의 창밖으로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내려다보였다.강민재는 창가에 기대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입가에는 느슨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회장님, 저 강민재입니다.”— 오, 강 의원. 무슨 일인가?차윤호 한도전자 회장의 목소리는 반가움과 경계가 반씩 섞여 있었다.“차 대표 혼사가 조금 시끄럽다 들었습니다. 유통 쪽과는 정리가 된겁니까?”— 허허. 그 녀석이 워낙 고집이 세서. 제멋대로 파토를 냈지 뭡니까.“아쉽군요.”강민재는 창밖을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한도오토링크를 그룹의 핵심으로 키우시려면, 든든한 외부 연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잠시 뜸을 들였다.“혹시 다른 쪽은 생각 없으십니까?”— 다른 쪽이라니?“저희 당 혁신위원장님 따님이 이번에 귀국했습니다. 미술 전공이고요. 집안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죠. 위원장님께서 사윗감을 찾고 계신다고 해서… 차 대표가 떠올랐습니다.”전화기 너머의 숨이 달라졌다.— 거기는… 우리 수혁이를 좋게 본답니까?“제가 자리를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그리고,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다만 한 가지가 눈에 밟혀서요.”— 뭔가?“차 대표가 요즘 눈에 띄게 챙기는 분이 있더군요. 몇 번 마주쳤습니다.”— 누구 말인가?“전략기획실 공서린 부장입니다.”“... ...”“능력도 좋고, 존재감도 있더군요. 차 대표가 꽤 신뢰하는 듯 보였습니다.”— 직원 하나 때문에 틀어질 일은 없네.“물론입니다.”강민재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다만, 위원장님 귀에 괜한 말이 들어가면 번거로워질 수 있어서요.”전화기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놈 자식이… 지 애비 닮아서,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이는군. 내가 단속하겠네.“막으려 들면 더 버틸 겁니다. 차 대표 성격, 회장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민재가 부드럽게 덧붙였다.“공 부장은 저희 재단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인재입니다. 자립 사업 확장에 실무 책임자가 필요했거든요.”— 강 의원이 데려가겠다는 건가?“그럴 수만 있다면요.”민
한참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제 괜찮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서린의 대답이 수혁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바람 부는 옥상에 서 있었다.수혁은 서린의 등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끼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하지만 뼈가 있는 목소리였다.“민우를 만나고 왔어.”“변호사님을요?”“어. 한도전자 때문에.”서린이 고개를 들어 수혁을 바라보았다.“상우 녀석, 내 사촌 동생 말이야. 이번에 반도체 소재 사업부까지 욕심내고 있어. 아버지인 차 회장 믿고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하는 중이지.”“……위험한 도박이네요. 지금 한도전자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을 텐데요.”서린은 이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수혁의 말을 듣고 있었다.“맞아. 그래서 계열사 자금을 끌어다 쓰고 있어. 나는 이사회에서 그 자금 이동을 막을 생각이야. 배임 이슈를 걸고 넘어지면 제동은 걸 수 있으니까.”회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방어하고, 그 틈을 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야.이게 수혁이 생각하는 최선이었다.하지만 서린의 생각은 달랐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요, 대표님. 막지 마세요.”“뭐?”“오히려 길을 터주세요.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더 쉽게 빌릴 수 있게 놔두셔야 합니다.”서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지금 제동을 걸면, 차 회장은 어떻게든 다른 구멍을 찾아서 메울 겁니다. 그러면 상우 씨의 실패는 ‘경영 실수’가 아니라 ‘반대파의 방해’ 때문이라는 핑계가 생겨요. 명분이 약해집니다.”“그럼…… 회사가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으라는 거야?”“지금 터뜨리면 작은 사고입니다. 더 부풀게 두세요. 풍선이 터지기 직전까지요.그래야 소리가 커지고 그땐 아무도 덮을 수 없습니다.”서린이 난간 너머, 멀리 보이는 한도전자의 사옥을 응시하며 말했다.“무리한 확장은 독이 든 성배예요. 지금 상우 씨는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