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황제의 낯빛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그는 걸음을 멈춘 채 감히 금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차갑게 명했다.“모두 이곳에서 짐을 기다려라! 누구도 떠나서는 안 된다!”말을 마친 황제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현비도 이곳에 있었다.현비는 서 황후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황후마마, 신첩이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니라면 폐하께서 입고 계셨던 옷은 황후마마께서 손수 지으신 것이 아니옵니까?”서 황후의 낯빛이 시퍼렇게 굳었다.“현비,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설마 본궁이 옷에 손을 썼다고 의심하는 것인가?”현비가 옅게 웃었다.“신첩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사옵니까? 다만 황후마마께서 그 옷을 손수 지으셨다고 직접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옵니다. 신첩이 의심하지 않더라도 잠시 뒤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황후마마를 의심하실지도 모르옵니다.”현비가 말을 이었다.“그러니 황후마마께서는 잠시 뒤 어떻게 해명하실지 미리 생각해 두시는 편이 좋을 듯하옵니다.”그 옷을 서 황후가 직접 지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오늘 서 황후는 내무부를 시켜 황실 연회에서 입을 옷을 황제에게 보냈다.황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옷으로 갈아입고 연회에 참석했다.당시 연회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서 황후는 웃으며 황제에게 물었다.“폐하, 신첩이 손수 지은 옷이 마음에 드시옵니까?”황제는 냉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황후는 앞으로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 쓰지 마시오.”황제는 서 황후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그런데 누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했겠는가?금영은 창백한 얼굴로 침상에 누워 서 황후와 현비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눈동자 속의 모든 감정을 감추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돌아왔다.황제의 눈빛은 차갑고 엄숙했으며, 온몸에서는 서늘하고 무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황제는 먼저 금영의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금영을 살핀 그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불러온 배를 가볍게 어루만
황제는 금영의 모습을 보자 얼굴빛이 갑자기 변했다.“금영아, 왜 그러느냐?”금영은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대답했다.“폐하, 신첩은… 배가 너무 아프고 불편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황제는 삽시간에 당황했다.그는 성큼 다가가 금영을 품에 안아 들었다.소녕전으로 돌아갈 겨를조차 없었다.황제는 금영을 조금 전 황실 연회가 열렸던 요화전으로 데려갔다.요화전에는 연회가 열린 정전 외에도 사람들이 잠시 쉴 수 있는 편전이 마련되어 있었다.황제가 자리를 비운 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달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와 있었다.그들은 황제가 금영을 품에 안고 급히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 멈춰 섰다.“대체 무슨 일이옵니까?”서 황후도 황급히 뒤따라왔다.현비를 비롯한 후궁들 역시 함께 따라왔다.황제가 차갑게 명했다.“무엇들 하고 있느냐! 어서 태의를 불러오너라!”이 원사는 오래지 않아 도착했다.침상에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한 사람이 금영임을 확인한 순간, 이 원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필 이 귀한 분에게 탈이 나다니!금영은 그야말로 상전 중의 상전이었다.이제 후궁에서 황제가 금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금영의 뱃속에 있는 황실의 후사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내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후궁 전체가 뒤집힐 터였다.이 원사는 황급히 금영에게 다가가 진맥하려 했다.그런데 금영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아주 희미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보통 사람이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옅은 향이었다.하지만 이 원사는 태의인 만큼 후각이 남달리 예민했고, 약재의 향을 구별하는 데에도 능숙했다.향을 맡은 이 원사의 얼굴빛이 먼저 변했다.곧 그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사향이옵니다!”이 원사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원비마마의 몸에서 어찌 사향 냄새가 나는 것이옵니까?”사향은 향료에 넣어 쓰기도 하여 그리 드문 물건은 아니었다.하지만 문제는 원비가 지금 회임 중이라는 사실이었다.사향이 회임한 여인에게 어떤
배명월은 본래도 툭하면 성을 내곤 했다.이번에는 배경천이 제때 걱정해 주지 않은 탓에 그에게 화가 난 것인지도 몰랐다.하필 아픈 데를 제대로 찌른 셈이었다.배명월은 독벌 사건으로 이미 갖은 고초를 겪었다.독벌에 쏘인 것만으로도 모자라, 서 황후에게 그 일로 숱한 괴롭힘까지 당했다.그런데 배경천이 하필 그 일을 다시 들추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배명월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둘째 오라버니께서 염려하실 일은 아니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먼저 본인의 일이나 잘 돌보시지요!”배명월은 말을 마치자 다시 배경원을 바라보며 불렀다.“셋째 오라버니, 제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선물은 준비하셨습니까?”배명월은 금영과 동갑이었지만 생일은 금영보다 한참 늦었다.배경원은 배명월에게 붙들려 난처해졌다.하지만 이곳은 황실 연회였고, 궁중 사람들뿐 아니라 조정의 신료들까지 자리하고 있었다.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낼 수도 없어 곁에 있던 심연희를 바라보았다.그사이 심연희는 조용히 금영의 곁으로 다가가 살짝 비껴 서서 말을 건넸다.“마마.”심연희는 말을 고르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금영이 담담하게 말했다.“설명할 것 없네. 본궁은 모두 보았네.”그래도 심연희는 한마디 덧붙였다.“세자께서는 태자비마마와 가까이 지내실 뜻이 조금도 없사옵니다. 다만.”금영이 가볍게 웃었다.배명월의 낯가죽이 지나치게 두꺼울 뿐이었다.배명월이 배경원에게 끈질기게 매달린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얼마 전 심연희가 입궁했을 때 이미 한 차례 말해 준 적이 있었다.그런데도 오늘 금영이 보는 앞에서 배경원에게 이처럼 매달리는 것은 일부러 보여 주려는 행동이 분명했다.금영의 속을 뒤집고 배경원과의 사이까지 벌어지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금영이 웃으며 말했다.“염려하지 말게. 본궁은 오라버니를 믿네.”전생에 배명월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때조차 배경원은 그녀에게 기대어 출세하려는 마음을 조금도 품지 않았다.하물며 지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해수가 말하지 않아도 금영은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저 여인이 얌전히 현숙한 황후 노릇만 했더라도, 폐하께서 후궁을 자주 찾지 않으셨다 한들 황실의 후사가 이토록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금영이 낮게 코웃음을 쳤다.해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마마,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절대로 서 황후의 계략에 걸려들어서는 아니 되옵니다.”금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도둑은 천 날을 노릴 수 있어도, 지키는 쪽이 천 날 내내 막아 낼 수는 없는 법이지. 본궁이 한두 번은 막아 낼 수 있겠지만, 어느 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미처 막지 못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마마의 뜻은 무엇이옵니까?”해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금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 황후가 이토록 본궁을 해치기 좋아하니, 본궁도 제대로 된 답례를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금영은 해산하기 전에 서 황후가 다시 한번 권세를 잃게 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다.눈 깜짝할 사이에 추석이 되었다.추석이 되면 궁에서는 으레 성대한 황실 연회를 열었다.금영은 어느덧 회임한 지 일곱 달이 되었다.본래 가늘고 마른 체구였지만, 이제는 배가 눈에 띄게 불러와 아무리 품이 넓고 화려한 궁복을 입어도 감출 수 없었다.금영은 황실 연회에 도착하자마자 영안후부 사람들을 발견했다.영안후는 금영을 보더니 시선을 불러온 배에 두었다.곧 비위를 맞추려는 웃음을 띠며 예를 올렸다.“원비마마를 뵈옵니다.”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였기에 금영도 영안후를 다정하게 대했다.금영이 웃으며 말했다.“부친, 어서 일어나십시오. 이러시면 딸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말을 마친 금영은 배경천에게 시선을 돌렸다.배경천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심연희와 관련된 일이 벌어진 뒤로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런 그가 이번에는 대체 무슨 낯으로 입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영안후가 이를 허락했다는 사실도 뜻밖이었다.배경천은 금영을 바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가 어찌 왔느냐?”서 황후가 대답했다.“신첩은 금영을 찾아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어 문병하러 왔사옵니다. 그날 독벌이 금영을 해치지는 못했으나,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까 염려되었사옵니다.”서 황후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회임한 몸은 아무래도 더욱 귀히 보살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황제가 보는 앞이었기에 서 황후는 어질고 너그러운 황후인 양 행세했다.“더구나 폐하께서는 수많은 국사를 돌보시느라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실 것이옵니다. 신첩이 금영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마련해 주려 하옵니다.”황제는 서 황후의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황후가 마음을 썼구나.”금영도 뒤이어 말했다.“신첩, 황후마마의 염려에 감사드리옵니다.”황제는 이미 아침을 마친 뒤였고, 이제 조회에 들어야 했다.황제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황후는 이곳에 오래 머물지 마라.”서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폐하. 신첩은 그저 금영에게 몇 마디 당부할 말이 있어 왔을 뿐이옵니다. 말을 마치는 대로 돌아가겠사옵니다.”하지만 서 황후의 속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황후인 자신이 후궁 안에서조차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곳이 생기다니.황제가 저 천한 것을 갈수록 더욱 총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황제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서 황후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금영아, 아직 본궁에게 말하지 않았구나.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은 없느냐?”금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황후마마, 폐하께서는 이미 떠나셨으니 더는 이처럼 거짓으로 선의를 베푸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사옵니까?”서 황후는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배금영, 독벌 사건에 네가 손을 썼다는 것을 본궁이 모를 줄 아느냐?”금영이 웃음을 터뜨렸다.“황후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신첩은 참으로 알아듣기 어렵사옵니다
황제는 태자와 이야기를 마친 뒤 금영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금영은 황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마중 나가 그의 곁에 멈추어 섰다.황제는 묵옥반지를 낀 손가락을 들어 바람에 흩어진 금영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나직이 말했다.“천천히 다니거라.”마침 이쪽으로 걸어오던 배명월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원한이 솟구쳤다.어찌하여 배금영은 황제에게 이토록 다정한 대접을 받는데, 태자전하는 자신에게 마음이 식어 버렸단 말인가?배명월은 황제에게 예를 올렸지만, 황제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다.배명월은 민망한 기색으로 태자에게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전하.”배명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가엾게 여겨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조금 전 황제에게 경고를 받은 태자는 배명월의 그런 모습을 보자 속이 더욱 답답해졌다.태자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그 가련한 척하는 태도부터 거두어라! 지금 네 모습을 보거라. 어디에 태자비다운 체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느냐?”흡사 기루의 여인과도 같은 행색이었다.태자는 마지막 말까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배명월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지켜 주려는 뜻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체면까지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황제는 금영의 앞을 빈틈없이 가로막아 태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했다.황제가 방향을 바꾸었을 때에는 태자가 탄 가마가 이미 멀어진 뒤였다.금영은 이 일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일국의 황제인 사람이 이토록 유치하게 굴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서 황후는 서봉전에서 여러 날을 꼬박 요양한 뒤에야 독벌에 쏘인 얼굴이 조금씩 나아졌다.하지만 그렇게 회복하고도 얼굴에는 손톱만 한 검붉은 자국이 몇 군데 남아 있었다.서 황후는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곁에서는 환옥이 서 황후의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있었다.분을 한 겹 바른 정도로는 검붉은 자국을 가릴 수 없었다.서 황후의 얼굴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