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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Author: 서린화
“그러니 여비, 영비에게 사과하게.”

황제가 차갑게 말했다.

금영은 그 말을 듣고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여비가 금영을 모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황제가 보고도 그냥 넘어갔는데, 드디어 오늘은 여비를 벌하려 하고 있었다.

여비는 눈가가 붉어진 채 황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궁에서 아이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신첩은 그저 있는 사실을 알려 주었을 뿐이옵니다.”

황제의 목소리는 차갑고도 엄숙했다.

“있는 사실을 알려 준 것뿐이라고? 그렇다면 야생 토끼는 왜 표범 우리 안에 던져 넣으려 한 것인가?”

그 말을 들은 금영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만약 오늘 금영이 물고 늘어지려고 마음먹었다면, 여비는 오늘 비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은 물론 냉궁에 보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여비의 말대로 오늘 일이 그녀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훗날 진실이 밝혀졌을 때 여비는 당당한 얼굴로 다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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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4화

    황제는 현비를 바라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대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군.”현비는 웃으며 금영에게 예를 올렸다.“금영 동생, 이번에는 정말 동생 덕을 봤네.”현비는 더 이상 원비라 부르지 않았다.대신 한층 친근한 금영 동생이라는 호칭을 꺼냈고, 먼저 허리를 숙여 예까지 갖췄다.현비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적어도 금영 앞에서 스스로 한발 낮출 줄 아는 이 여유만큼은 서 황후가 백 년을 배워도 흉내 내지 못할 것이었다.금영은 얼른 몇 걸음 앞으로 나가 현비의 팔을 받쳐 주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현비마마, 어찌 이리까지 예를 차리십니까? 더구나 이 일은 본궁도 감히 제 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금영이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만월연의 일은 애초부터 현비마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았습니까. 괜한 일에 휘말리신 셈인데…… 본궁을 탓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찌 감히 인사까지 받겠습니까?”맑고 순진한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해 보였다.누가 보아도 해칠 것 하나 없는 어린 아씨처럼 보일 정도였다.하지만 금영은 속으로 모든 것을 똑똑히 계산하고 있었다.현비가 이렇게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수록 황제는 그녀를 더욱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지금 황제가 현비에게 남녀 간의 정을 얼마나 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적어도 지금 황제의 마음은 온통 금영에게 향해 있었다.하지만 남녀 간의 정을 빼고 보더라도, 현비는 오랫동안 후궁을 흐트러짐 없이 다스려 왔고 욕심을 드러내며 다투지도 않았다.황제로서는 그런 현비를 어느 정도 좋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그러니 이런 자리에서 금영이 총애를 믿고 교만하게 굴며 정말 현비의 감사를 받아 버릴 수는 없었다.그랬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격만 떨어뜨리는 꼴이었다.금영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현비마마, 어서 앉아서 말씀 나누시지요.”현비는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가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금영이 앉으라 하니 그대도 앉게.”언뜻 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3화

    그래서 황제는 금영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싶었다.한참을 빙글빙글 돈 탓에 금영은 제법 어지러웠다.황제가 그녀를 내려놓는 순간, 금영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황제가 얼른 손을 뻗어 붙잡아 주자, 금영은 그 힘에 기대 그대로 천천히 눈밭에 몸을 눕혔다.막 눈이 내린 뒤라 쌓인 눈은 보드랍고 깨끗했다.금영은 그렇게 누운 채 머리 위로 펼쳐진 매화나무를 올려다보았다.조금 전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그런데 잠시 후, 황제마저 자신의 곁에 나란히 눕는 것이 아닌가.“금영아.”황제가 나직이 불렀다.금영이 고개를 돌렸다.“폐하, 신첩을 부르셨사옵니까? 무슨 분부라도 있으시옵니까?”황제에게 무슨 분부가 있을 리 없었다.그저 그 이름을 입에 담고 있노라면 자신이 황제가 아닌 것만 같았다.그저 좋아하는 여인과 함께 있는 평범한 사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금영아.”황제가 다시 한번 불렀다.이번에는 금영도 가만히 대답했다.“네.”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금영은 문득……굳이 무슨 말을 더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마음 한구석에 아주 옅고도 따스한 기쁨이 번져 들었다.한 줄기 바람이 스쳐 갔다.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매화 한 송이가 사뿐히 금영의 미간 위에 내려앉았다.끝없이 황량하던 마음속 설원에도 마치 매화 한 송이가 내려앉은 듯했다.황제는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세월이 다할 때까지 금영과 함께 매화나무 아래에 누워 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자신은 추위에 강해도 금영은 아니었으니까.황제가 먼저 몸을 일으킨 뒤 금영에게 손을 내밀었다.“가자. 이제 돌아가야겠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은 채 소녕전으로 향했다.아직 전각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금영의 얼굴은 추위에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마치 두 뺨에 분을 옅게 물들인 듯 고운 빛이 돌았다.황제는 그런 금영을 보고 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소녕전에 도착하자 금영은 뜰 안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2화

    손복안은 위명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본래 그는 누구에게나 능숙하게 처신하는 사람이었다.황제의 총애를 받는 측근이라고 으스대는 법도 없었고, 남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위명과 함께 있기만 하면 제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위명이 봉급 몇 푼 깎이는 게 대수인가?손복안은 이 사내 때문에 제 목숨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손복안이 싸늘하게 웃었다.“제가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하신다면 가 보십시오.”그 말과 함께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렸다.이 눈치 없는 인간이 황제와 원비마마의 흥을 깨 놓았다가, 나중에 황제가 자신에게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책임을 물을까 걱정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다.괜히 위명 때문에 덩달아 화를 입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그사이 금영은 이미 매화 가지를 꺾어 손에 넣었다.결국 위명은 황제에게 잘 보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어찌 보면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조금 전 정말 앞으로 나섰다면 앞으로는 궁문 앞에서 동냥이나 해야 했을지도 몰랐다.손복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해수를 바라보았다.“얘야, 내가 좋은 말 하나 해 주마.”해수가 공손하게 답했다.“복안 내관님, 가르침을 내려 주시지요.”손복안은 그 말을 듣자 속이 절로 풀리는 듯했다.역시 해수는 원비마마를 닮아 영리했다.손복안이 말했다.“나중에 지아비를 고를 일이 있거든 말이다. 팔다리만 튼튼하고 머리는 텅 빈 사내는 절대 고르지 말거라.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말끝에 손복안은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아비가 어리석으면 자식도 줄줄이 어리석은 법이지.”위명도 아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이쯤 되니 손복안이 자신을 돌려 까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손복안을 힐끗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복안은 내가 아직 아비가 될 수 있다는 게 부러운 모양이군.’그래도 손복안의 체면을 조금은 생각해 주어 그 말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1화

    태후가 정세를 꿰뚫어 보는 솜씨만 놓고 보아도 서 황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손 상궁은 태후의 머리를 계속 눌러 드리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마마, 너무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어찌 되었든 오늘 폐하께서 마마의 체면을 보아 황후마마께 황실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 않사옵니까.”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황제께서 어디 내 체면을 봐주신 것이겠느냐?”“내 체면을 꺾었다가 내가 돌아서서 그토록 아끼는 사람을 괴롭히기라도 할까 염려한 것이지.”태후는 모든 것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수강궁을 나오자 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았다.손끝에 닿는 온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황제가 곧바로 물었다.“어마마마께서 너를 곤란하게 하셨느냐?”금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렇지는 않았사옵니다.”예전에는 태후도 대놓고 금영을 곤란하게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황제가 금영을 몹시 아낀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부터는 노골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기껏해야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정도였다.이번에도 적어도 겉으로는 꽤 화목했다.그런데 금영은 이상하게도 태후가 황제를 대하는 모습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마치 예전 송정희가 자신을 대하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어린 시절 송정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서 금영을 박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언제나 웃는 얼굴로 바라봐 주기도 했다.예전의 금영은 이해하지 못했다.비록 송정희와 자신 사이에 진짜 혈연은 없었다 해도 오랜 세월 모녀로 지냈으니 정이라는 게 조금은 남아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사람이 변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나중에야 깨달았다.사실 송정희와 자신이 멀어진 것은 배명월이 돌아온 뒤부터가 아니었다.처음부터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놓여 있었다.금영은 문득 떠오른 그 근거 없는 생각을 애써 눌러 버렸다.그리고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폐하, 이쪽은 소녕전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신첩을 어디로 데려가시는 것이옵니까?”황제가 웃으며 금영을 바라보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0화

    금영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태후가 오늘 자신을 수강궁으로 부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황제에게 서 황후의 근신을 풀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이제 태후가 직접 그 말을 꺼냈으니 금영도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태후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한 손은 계속 머리를 짚은 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손 상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요 며칠 태후마마의 두통이 또 심해지셨사옵니다.”태후가 나직이 꾸짖었다.“됐다. 황제께 그런 것까지 말씀드리지 말거라. 정무로도 이미 지치셨는데, 이 늙은 몸 하나 때문에 또 마음 쓰실 게 무엇이냐.”황제가 싸늘하게 말했다.“황후는 황실 연회에 참석해도 좋습니다. 다만 연회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 근신하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겠습니다.”이 정도가 황제가 한발 물러서서 내놓은 최선이었다.말을 마친 황제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자에게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 있으니, 먼저 원비를 데리고 물러가겠사옵니다.”금영도 떠나기 전 태후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태후마마, 그럼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황제와 금영이 떠나고 나자 손 상궁이 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마마, 아직도 머리가 많이 아프시옵니까?”태후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아프다. 어디 그리 금세 낫겠느냐? 좀 눌러 다오.”손 상궁은 곧 태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눌러 주기 시작했다.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잠시 후 네가 직접 서봉전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거라. 그리고 황후에게 다시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라. 또 사고를 치면 그때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고.”잠시 뒤 태후의 목소리에 못마땅함이 짙게 배었다.“어찌 그리도 어리석은지. 황후로 입궁해 그 자리를 지킨 세월이 얼마인데, 이미 손에 쥔 것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어린 계집 하나를 상대로 질투나 하고 있으니.”서 황후를 이야기하는 태후의 말투에는 답답함과 한심함이 그대로 묻어났다.손 상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황후마마께서도 폐하를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29화

    태후는 그 말을 듣고 흡족한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역시 선대 영안후가 직접 가르친 사람답구나. 참으로 영민해.”금영이 겸손히 답했다.“과찬이시옵니다, 태후마마.”태후는 손 상궁을 바라보며 분부했다.“내가 원비와 아기 황자에게 주려고 마련해 둔 선물을 가져오너라.”손 상궁은 두 가지 물건을 받쳐 들고 와 웃으며 말했다.“태후마마께서는 진작부터 아기 황자께 드릴 선물을 마련해 두셨사옵니다. 다만 원비마마께서 수강궁에 자주 발걸음하지 않으시다 보니, 노비들도 그만 소녕전으로 보내 드리는 것을 잊고 말았사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금영은 손 상궁이 자신에게 수강궁으로 문안하러 오지 않았던 일을 에둘러 지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금영은 곧바로 대답했다.“신첩은 태후마마께서 몸이 편찮으신 데다 소란스러운 것을 꺼리시어 조용히 요양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래서 감히 함부로 찾아뵙지 못했사옵니다.”“신첩이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옵니다.”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덧붙였다.“태후마마께서 신첩을 시끄럽다 여기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고 곁을 지켜 드리겠사옵니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내관의 외침이 들려왔다.“황제 폐하 납시오!”금영이 고개를 돌렸다.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성큼성큼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걸음걸이만 보아도 꽤 서둘러 온 것이 분명했다.“어마마마.”황제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태후가 황제를 힐끗 바라보았다.“지금은 문안을 올릴 시각도 아닌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황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태후가 웃으며 짓궂게 물었다.“설마 금영을 데리러 오신 겁니까?”“내가 그저 불러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지, 잡아먹기라도 하겠습니까? 무엇이 그리 급하십니까?”황제가 태연하게 답했다.“소자가 어마마마를 뵙고 싶어 찾아온 것이옵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어마마마께서는 오늘 어찌 원비를 부르실 생각을 하셨사옵니까?”태후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황제께서 황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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