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송연화는 열여섯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명문가의 귀한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송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부모와 오라버니 모두가 금지옥엽처럼 아끼는 딸을 두고 있었다. 도리어 송연화는 언니의 정혼자를 빼앗은 천한 계집으로 전락했다. 그 남자의 마음을 얻고자 함께 유배길에 오르고, 전쟁터를 누비며 수없이 고된 나날을 견뎠다. 끝내 두 눈마저 잃었다. 하지만 높은 자리를 되찾은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처음부터 네 언니뿐이었다. 네가 박복한 것을 누구 탓하겠느냐." 부모는 모진 말로 몰아세웠다. "너는 어찌 늘 언니의 것을 빼앗으려 드느냐?" 오라버니는 매정한 저주를 퍼부었다. "차라리 뒤바뀌던 그날 죽어 버리지 그랬어!" 송연화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늘 오만하던 남자가 비틀거리며 찾아와 그녀의 옷자락을 붙들고, 제발 한 번만 자신을 봐 달라 애원했다. 송연화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내 눈이 멀쩡한데, 어찌 폐하의 아내겠습니까?"
View More두 사람은 대화를 마쳤고 문이율은 서재헌을 찾아가 출궁하는 일을 꺼냈다.서재헌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약을 찾는 것뿐이라면 짐이 사람을 보내면 된다. 네가 연빈을 데리고 출궁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겉으로는 묻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위협이 담겨 있었다.문이율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한 가지 약재는 채취한 순간부터 약효가 서서히 사라집니다. 평소라면 소인도 서두르지 않았겠지만 지금 연빈 마마께서 호전되고 계십니다. 신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상황이..."서재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이율의 말이 사실인지 헤아렸다.시간이 흐른 뒤 서재헌이 허락했다."짐이 사람을 붙여 함께 가게 하겠다."예상한 일이었다. 문이율은 예를 올린 뒤 물러났다.그날 오후 희안궁 사람들은 출궁 소식을 듣고 멍해졌다. 하지만 이유를 알고 나자 기뻐했다."지금 상태로 보아 마마께서 깨어나실 수 있는 것입니까?""그런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폐하께서 마마의 출궁을 허락하셨겠느냐?"희안궁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희안궁 밖에서 이 일을 알게 된 송유란은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또 송연화야!''전에는 줄곧 내가 우위였는데, 어쩌다 일이 꼬인 뒤부터 송연화만 모두의 보살핌을 받는 거지?''분명 승자는 나야. 송연화 따위는 상대도 안 돼!'"아씨, 괜찮으십니까?"송유란은 정신을 차리고 궁녀의 조심스러운 눈빛과 마주하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괜찮다."그때 유모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다가왔다."아씨, 어린 황자께서 갑자기 울음을 그치지 않으십니다. 소인이 아무리 달래도 진정하지 않으셔서..."한창 짜증이 나 있던 송유란은 그 말을 듣자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얼굴에는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유모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송유란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억지로 감정을 눌렀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어찌 갑자기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이냐? 태의를 불러 물어보았느냐?""소인이 감히 제멋대로 정하지 못했습니다."그 대답이 마음에
문이율은 팔짱을 꼈다."전에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했을 때는 거절하시더니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시다니, 저를 너무 대단하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송연화가 담담하게 말했다."대단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다."문이율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게 선택권이 없다고 누가 그랬습니까?""내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네 무덤에는 풀이 돋았을 것이다."송연화의 목소리는 몹시 차분했지만 그 말에 문이율의 표정이 달라졌다.고요 속에서 송연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물론 계속 부인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절대로 서재헌에게 알리지 못할 것이다."이는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송유란은 어릴 때부터 허약했다. 송씨 가문에서 그토록 많은 의원을 불렀는데도 낫지 않았지만 문이율은 나타나자마자 고독충을 꺼내 들었다.주술과 고독으로 인한 화는 예부터 있었다. 서재헌이 어리석지 않다면 문이율을 무사히 떠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문이율은 손을 쓰는 순간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셈이었다.그것이 문이율이 송연화에게 회혼단을 요구한 이유이기도 했다.송연화는 서두르지 않고 마음속 생각을 하나씩 말했다. 문이율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주위에 내려앉은 적막으로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송연화도 완전히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문이율이 왜 손을 썼는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다만 결국 송씨 가문과 관련된 일이니 지금 당장 밝혀낼 필요는 없었다.시간이 흘렀다.문이율이 가볍게 웃었다."연빈 마마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회혼단으로 퇴로를 마련하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회혼단은 이미 마마께서 드셨고 지금 두 사람 모두 황궁 안에 있습니다. 제게 선택권이 있다 해도 마마를 바로 빼내기는 어렵습니다.""어째서 안 된다는 것이냐? 서재헌에게 내 병은 출궁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전하거라. 그러면 허락할 것이다."황궁만 벗어나면 회혼단이 없어도 송연화는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문이율은 송연화를 위
말을 마친 서상운은 매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연이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본래도 연빈 마마는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일을 겪고 이제는 영휘궁마저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희안궁!'냉궁과 맞닿은 데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황폐할지 알 수 있었다.연이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내전으로 들어갔다."마마, 폐하의 뜻을 들으셨습니까?"송연화는 천천히 눈을 떴다."들었다.""그곳은 도저히 사람이...""너나 나나 선택할 수 없다."송연화가 연이의 말을 끊었다.연이가 송유란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송연화는 더 이상 그녀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문이율이 연이를 통제하고 있으니 연이도 당연히 따라가야 했다.더구나 아직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연이도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 억지로 미소를 짓고 느릿느릿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영휘궁의 궁인들도 소란스러워졌다."희안궁이 냉궁과 무엇이 다르냐? 나는 가지 않겠다. 절대로 가지 않겠다!""마마께서는 본래도 정신을 잃으셨는데 이제 냉궁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간다니. 안 돼. 나는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으니 절대 가지 않겠다.""..."사람들은 저마다 이유를 대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연이가 밖으로 나오자 마주한 것은 분노로 가득한 얼굴들이었다."연이 언니,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저도 가지 않겠습니다."어수선한 목소리에 머리가 아파진 연이는 이마를 짚었다."그만!"호통 한 번에 모든 목소리가 사라졌다.연이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다. 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너라."연이는 여섯 명의 이름을 불렀다. 내시가 네 명, 궁녀가 두 명이었다."너희는 나를 따라 들어가 연빈 마마를 희안궁으로 모셔라."내전에서 송연화는 이미 들려 나갈 준비를 마친
일행은 청안궁에 도착했다."유란이가 고모님을 뵙습니다."태후는 환한 얼굴로 송유란을 바라보았다."어서 일어나거라. 오늘은 어찌 왔느냐?""고모님이 보고 싶었습니다."송유란은 옅게 웃으며 몇 걸음 만에 태후의 곁으로 갔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얼굴에는 어느새 근심이 드러났다.태후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졌다."어찌 갑자기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느냐? 누가 너를 괴롭혔느냐?"송유란은 한숨을 내쉬었다."저를 괴롭힌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황후 책봉식이 다가오니 마음이 불안하여 고모님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머무는 곳이... 아, 이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밖에 알려지면 제가 고모님 곁을 떠나지 못한다고 비웃을 것입니다.""어서 어린 황자를 데려오너라. 고모님께서 자세히 보시게 해야지. 얼마나 총명하고 얌전한지 모릅니다..."유모가 강보를 앞으로 가져오자 태후는 웃으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겉으로는 기쁜 듯 아이를 어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여러 생각을 헤아리고 있었다.반 시진쯤 뒤 송유란은 어린 황자를 데리고 떠났다."이채원."상궁이 앞으로 나아갔다."태후 마마."태후가 눈을 살짝 들었다."황제를 불러오너라."원화사에서 돌아온 뒤 송유란은 청안궁 오른쪽에 있는 전각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주 멀지는 않았지만 전에 청안궁에서 지낼 때와는 분명 달랐다.하지만 태후가 더 신경 쓰는 것은 거리가 아니라 영휘궁이었다.황후의 침전인데도 송유란은 들어가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송연화가 차지하고 있었다.마땅하지 않았다. 참으로 마땅하지 않았다.서재헌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송연화의 곁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태후가 찾는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지만 지체하지 않고 송연화에게 인사를 남긴 뒤 영휘궁을 떠났다."연화에게 영휘궁을 내놓으라고 하라는 말씀입니까?"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전에는 황궁에 다른 비빈이 없었으니 그곳에 살아도 내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황후 책봉식이 코앞이고 유란이가 정식으로 황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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