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월은 배준우와 고은영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정해 보이네.”지금 배준우가 고은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들이 위장 결혼이라는 걸 누가 믿을까?계약된 관계가 저토록 다정할 수 있을까?“오빠 예전에 언니랑 이런데 온 적 있어?”진승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미월을 쳐다보았다.오늘 정원희를 겨우 설득해 이미월을 데리고 나와 기분 전환 시켜 주려고 했는데!이런 장면을 목격하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이미월은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난 이제는.. 도대체 뭐가 준우의 실제 모습인지 모르겠어. “아마 지금 그의 모습이 실제 모습이 아닐까?그럼, 그녀는 한 번도 그의 실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건가?이미월의 말에 진승연은 더욱 화가 났다.지금 당장 가서 고은영의 뺨을 후려 갈기고 싶었다.“언니, 설마 이대로 포기하는 거 아니지?”진승연은 화가 나서 말했다.정말 이대로 포기할거라고?전에 어쩔 수 없이 떠난 이후로 이미월은 어떻게 다시 배준우를 만나야 할지 몰랐다.그래서 배준우를 찾아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포기하지 않다고 해도 내가 뭘 더 할 수나 있겠어? 지금 나 때문에 너희 집안도 이렇게 됐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용기가 없어.”배준우의 피도 눈물도 없는 대처 방식이 이미월은 너무 두려웠다.정말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그에게 진승연도 이젠 두손 두발 다 들었다.진승연은 여전히 고은영이라면 치가 떨렸다.“이게 다 저 계집애 때문이야.”이 모든 것은 고은영이 나타나는 바람에 벌어진 일들이라고 생각했다.그녀 때문에 자신이 노빈과 결혼해야 할걸 생각하니당장 가서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요즘 정원희가 그녀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는 탓에 손을 쓸 기회가 없었다.고은영을 욕하는 진승연의 말에 이미월은 속이 시원했지만겉으로는 아닌 척했다.“승연아, 지금 상황에 함부로 하면 안 돼. 지금
그동안 진 회장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거의 밖에서 지내다시피 했다.지금 진영그룹의 상황은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만약 노씨 가문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는 한정적이다.이미월을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진승연의 모습에 겉으론 타이르는 척 했지만 속으론 아주 통쾌했다.........배준우는 고은영에게 간단히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사주었다.고은영은 이런 길거리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여기 음식은 길거리 음식이지만 가격이 꽤 나갔다.그래서 고은영은 저번에 왔을 때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하지만 오늘은 배준우가 사는 것이니 마음껏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깐!”고은영이 돌아서자 배준우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그러고는 휴지를 꺼내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아주었다.고은영은 더러워진 휴지를 보고는 멋쩍은 듯 혀를 내둘렀다.“너무 맛있어요!”“좋아?”“네, 좋아요!”고은영은 신이나서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이런 건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되니까, 오늘 먹으면 한참 동안 못 먹겠네.”고은영은 지금 기분이 좋아서 배준우가 뭐라 하든 다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 가끔 한 번씩 먹어도 충분해요.”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배준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배준우는 요즘 그녀가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이런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려 할까 봐서 걱정이다. 그래서 미리 말해두는 것이다.천하의 배준우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니.두 사람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하원으로 돌아왔다.진 씨 아주머니는 이미 퇴근했다. 배준우가 미리 전화해서 저녁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주방엔 먹을게 없었다.고은영은 배준우와 함께 있으면 행복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 때문이다.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그토록 숨기는 일을 배준우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의 뭔가 고민하는 듯한 눈빛에 배준우가 물었
평소엔 우유부단하던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정의를 내렸다.그리고 지금 배준우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배준우가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든 두 사람이 위장 결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됐어, 피곤하지 않아?”고은영이 아무 말도 없자 배준우는 그녀가 놀란 줄 알고 더 놀리지 않았다.“저,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준우의 무릎에서 일어났다.그리고 몸을 돌려 샤워하러 가려 하는데 배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어떤 일에는 그렇게 깊게 고민할 필요 없어.”모든 일은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은영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제넘게 굴지 말라는 말로 들었다.그가 뭘 하려 하든 그녀는 그냥 순종하면 된다는, 그런 뜻으로 말이다.그의 뜻을 거역하면 집과 카드를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생각을 하니, 조금 전 까지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도 들었다.하지만 모든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렸으니, 순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조금 전까지 혼자 자겠다고 하더니, 샤워를 마치고 고민하다가 결국 얌전히 배준우의 침대에 누웠다.배준우가 방에 들어오자, 고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배준우는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인지 알지 못했다.저녁 먹을 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그러지? “왜 그래?”배준우가 걱정되어 낮은 소리로 물었다!평소에 말투가 워낙 차가워서 지금 아무리 부드러운 태도로 말한다고 해도 고은영에겐 별로 따뜻하게 들리지 않았다.고은영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졸려서요.”“졸려서 기분이 안 좋아?”고은영이 입을 삐죽거렸다.“네.”“그럼 자.”배준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먼저 재웠다.그리고 그는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가 다 씻고 나오자 고은영은 이미 깊은 잠에 빠졌다.키가 큰데다 잠버릇까지 얌전하니 못하니 그녀 혼자 온 침대를 다 차지했다.배준우는 처음 그녀와 잘때 이런 그녀의
즉 그녀가 만약 풀려나지 못했다면, 그들이 굶어 죽든 말든 상관할 사람이 없단 뜻인 건가?고은영, 고은지, 독한 년들!“엄마 찾느라 돈 다 썼어요. 진짜 한 푼도 없다고요.”“은지한테 전화 안 했어?”가장 먼저 고은지에게 도움을 청했는지에 대해 물었다.고은영보다 고은지가 더 만만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강성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고은지라 생각했다.그녀는 지금 고은지도 고은영과 똑같은 태도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서정우는 힘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러 번 전화했는데도 다 안 받아요. 그런데 돈 얘기를 어떻게 꺼내요!”“은지까지도 전화를 안 받겠다고?”조보은은 믿기지 않았다.그동안 고은지는 그녀의 말을 거역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서정우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서정우도 그렇게 생각했다.서정우는 어제 고은지의 냉담한 태도를 생각하며 뭔가 고민하듯 말했다.“엄마, 전에 진짜 누나한테...?”그 뒷말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대답을 듣게 될까 두려웠다.“내가 뭘 어쨌다고! 난 걔한테 떳떳해!”그녀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부인했다“근데 누나가 왜 이렇게 갑자기 차갑게 변해?”서정우는 어쩌면 조보은이 자신도 모르게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고의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조보은의 이유가 아니면 고은지가 지금 이렇게 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고은영, 그 계집애가 뭐라고 했겠지!”조보은은 확신하듯 말했다.그녀는 자기 때문에 고은지가 이혼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듯했다.지금 고은지가 이러는 걸 다 고은영 탓으로 돌렸다.“........”고은영, 이건 모두 고은영의 짓이다!서정우도 고은영 때문이라는 조본은의 말을 믿었다. 고은영 말고는 그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고은지가 완전히 변한 건 고은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요? 지금 돈 얼마나 남았나요?”“10만 원
고은영은 지금 회사에서 아예 할 일이 없다.아침에 회사에 도착해서 휴게실을 정리하고 대청소하는 데 고작 1시간 걸렸다.그러고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충전된 핸드폰을 뽑고, 부재중 전화는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안지영은 지금 미치듯이 바빴다. “은영아, 너 지금 근무시간 아니야?”안지영은 이 시간에 전화할 여유가 있는 고은영이 놀라웠다.왜냐면 오전 시간이 가장 업무가 많은 시간이기 때문이다.“나 지금 비서에서 도우미로 강등했어. 그래서 별로 할 일이 없어.”“무슨 일이야?”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상계단으로 갔다.해야 할 일이 많긴 하지만, 고은영이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나 지금 회사야, 난 대표님 휴게실만 정리하면 돼. 나머지 업무는 다 신입한테 인수인계해 줬어.”“휴게실을 정리한다고?”몇 분이면 끝나는 일 아닌가?“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뜻일까?”전에 배준우가 제일 싫어하는 게 회사 직원이 한가하게 빈둥대는 거였다.그런 직원이 눈에 띄면 바로 엄청난 양의 업무를 준다.그런데 지금 그녀는 온 하루 빈둥거리고 있다.“그냥 휴게실을 치우라고 했다고?”“그렇다니까!”고은영은 억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그녀는 지금 점점 배준우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가 그렇게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더 무서웠다.“대표님께서 무슨 의도로...”안지영도 어리둥절했다.방금 고은영의 질문을 다시 반복해서 말했다.고은영도 알지 못했다.“설마 너 임신한 거 걸린 거 아니야?”“내가 임신한 걸 걸렸으면 이렇게나 평화로울 수가 있었을까?”“하긴!”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더 고민됐다. 도대체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나태웅은 당연히 알고....!안지영은 아직도 고은영에게 나태웅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왜냐면 고은영이 배준우에게 임신 사실을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안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나태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
완강한 안지영의 태도에 고은영은 더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전화를 끊은 뒤,고은영은 불안감이 엄습했다.예전에는 안지영과 함께였으니 그나마 괜찮았는데, 이제 혼자가 되었으니 조금 무서워 났다.안지영의 전화를 끊자마자 조보은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은영은 끊으려 했는데 손이 빗나가 버튼을 잘못 누르고 말았다.“고은영, 너 대단해! 이제 경찰에 신고한 거 이거야?”“내가 신고한 거 아니에요.”“네가 한 거랑 뭐가 달라? 내가 내 사위 회사 앞에서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네 짓이 아니라고?”조보은은 화가 치밀었다. 어제 그녀는 밤새도록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만약 이 소문이 용산에 퍼진다면,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그래서 지금 어떻게든 큰돈을 건져야 돌아갈 수 있다. 그 돈을 누가 주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날 정말 당신 딸이라고 생각은 해요?”“생각하든 안 하든, 넌 내 딸이야!”고은영은 그녀의 이런 가식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역겨웠다.“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요. 이런 수작은 나한테 안 통해요.”하긴, 그녀의 수작에 쉽게 넘어갈 고은영이 아니였다.그녀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거면,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녀의 말에 조보은은 바로 태도를 바꾸며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래, 그럼 당장 2억이나 내놔!”조보은은 이 돈을 량천옥이 주든 고은영이 주든, 암튼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내놔야 한다고 생각했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반드시 돈을 받고야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그럼 당신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한테 연락해 봐요.”조보은의 말에 고은영은 조금의 심경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2억? 얼굴도 두껍지!전에 200만 원도 주지 않았는데, 지금 2억을 달라고?고은영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절하자 조보은은 더욱 흥분했다.“난 너랑 배준우의 결혼, 난 승낙 못해!”“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승낙 못한다고?조보은의 말에 고은영은 웃음
고은영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고은영은 재빨리 문을 열었다.그러자 진청아가 손에 쇼핑백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사모님!”“......”사모님이라는 소리가 아직도 익숙지 않았다.진청아는 쇼핑백을 고은영에게 건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께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진청아는 완전 부럽다는 눈으로 고은영을 쳐다보았다.배준우가 그녀를 너무 잘 챙겨 준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도 항상 옆에 두고, 그녀가 심심할까 봐 걱정하고.재벌가의 결혼은 거의 비즈니스 관계가 많지만, 그런거와 상관없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고은영이 너무 부러웠다. “이게 뭐예요?”고은영은 그런 진청아의 마음을 전혀 모른채 그녀가 건네준 쇼핑백을 받아 열어보았다.안에는 털실 뭉치가 들어있었다.이건 무슨 뜻이지.....?“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지루해하실까 봐 목도리 하나 떠달라고 하셨어요.”“목도리요? 저 뜰 줄 모르는데요!”이런건 에젠에 할머니가 참 잘하셨다.그녀는 비록 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이런 걸 배울 시간은 없었다.그래서 정말 할 줄 몰랐다. 그러자 진승연이 웃으며 말했다.“안에 강좌도 있어요. 강좌 먼저 보고 하세요.”강좌도 있다고?설마, 어제 할 일이 있을 거라더니, 이걸?고은영은 머리가 뻣뻣해졌다.“그래요, 알겠어요!”그녀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했다. 할 줄 모르기도 하지만, 이런 세심한 일을 할 인내심도 없었다.할머니 곁에서 자라면서 이런 걸 배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물건을 주고 진청아는 제자지로 돌아갔다.배준우는 아직 회의하고 있다.고은영은 쇼핑백을 들고 휴게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털실 뭉치를 꺼냈다.쇼핑백 안에는 책 한 권도 있었는데, 각종 무늬를 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그녀는 가장 쉬운 걸로 골랐다..............밖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배준우와 고은영은 늘 붙어 다녔다.설령 누군가 고은영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지금은 그럴
지금도 배윤을 지키기 힘든데, 만약 배준우가 그 아이의 존재마저 알게된다면..?량천옥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이 몇 년 동안 배윤은 배준우 때문에 배가에 돌아오지도 못했다.배준우가 어떤 사람인지 량천옥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가 그 아이의 존재를 알기만 한다면, 그걸 이용해서 자기를 벼랑 끝으로 몰아낼 거라는 것도 말이다.그때는 정말 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봐, 배 회장은 절대 그 아이에 대해서 알면 안 돼, 그땐 우리 다 끝이야.”량일은 큰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그렇다, 그 대가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량천옥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지금 그녀의 슬픔은 어제 량일이 느꼈던 그런 슬픔이었다.량일은 그런 량천옥이 안쓰러워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도닥여줬다.그러고는 탄식하며 말했다.“그냥 그 아이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배항준의 지금 건강 상태로 봤을 땐 앞으로 십 년에서 이십 년은 문제 없었다.그래서 지금 설령 그 아이를 찾았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그럼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만, 누구인지만 알려줘요.”량일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그만 잊어!”그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량천옥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이 그때 그 일을 얼마나 후회하는지.몇 년 동안 몰래 그 아이를 찾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그 아이가 누구인지만 알려주면, 몰래 찾아갈게 뻔했기 때문이다.몇 번 그러다가 배항준에게 걸리면......!그래서 량일은 이 모든 걸 혼자만 알고 있기로 다짐했다.어제 량천옥 앞에서 그 말을 꺼낸 것도 후회되었다. 그래서 더욱 알려줄 수 없었다.“절대 안 찾아갈게요. 누군지만 알려줘요. 네?”량천옥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너무 알고 싶었다!량일은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끝까지 침묵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량천옥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고은영은 오전 내내 뜨개질을 연구했다.마침내 첫 부분을 시작했다. 책에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