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배지영에게, 배준우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이어졌다.“배지영, 다시는 내 뒤에서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안 그러면…!”안 그러면 뭐?이미 배준우의 목소리와 어조에서는 배지영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압적인 위협이 가득했다. 아무리 친동생이라 하더래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뒷말이 충분히 와닿았다. “오빠 정말….!”“너 알지, 내가 뭘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지!”무엇을 가장 혐오하냐고?배준우가 가장 혐오하는 건 바로 앞뒤 다르게 행동하며 몰래 계략을 짜는 거였다.하지만 이걸 계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녀는 당연히 오빠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명확한 적의를 띄고 차갑게 저를 노려보는 두 눈에 결국 배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던 배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그만 돌아가.”“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할 거야. 엄마가 전화로 얼마나 난리였는지 알아? 꼭 치워버리라고 말했어.”“그만해, 이제!”결국 큰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마주친 두 눈도 아까 전보다도 더욱 차가워져 있어, 온도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배지영은 결국, 결국에는 마음속으로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제 오빠가 저 고은영이라는 여자에게 진심이라는걸.. 온 강성에서 떠들어 대던 그 루머가 진짜였다! 그런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다니!그러나 동시에 배지영은 알고 있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해도 늦었고,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기사 불러 줄 테니 돌아가.”내쫓는 태도마저 이렇게나 명확한 것을.말 해야 되는 것들도 이미 다 말했으니, 결국 더 말해 봤자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물러 났다.비록 오늘 하고자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어쨌든지 간에 오빠에게 명명백백히 전해야 되는 이야기였다.배준우와 고은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마어마한 신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하지만 결과는…!물론 아직 결혼과 이혼을 겪기 전이라 그녀는 강성에 돌아오자마자 전화 한 통으로 사무실에 불려 갔다.이연 팀장님도 자리에 있었고, 안지영은 머리를 쓱쓱 긁으면서 불만을 털어놓았다: “계약은 이미 체결 완료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왜 야근해야 하죠?”전에 자칫 놓칠뻔한 고객을 그녀가 다시 그 마음을 돌려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가?최근 전전긍긍하면서 출근하는 안지영은 현재 마음이 아주 초조했다!이연은 고객 자료를 안지영에게 건네주었다: “새로운 고객 자료입니다. 내일 출국 예정이니, 오늘에 반드시 해결해야 해요.”자료를 한가득 건네받은 안지영은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가 없었다.“영업부서에 직원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저 입니까?”“이건 작은 대표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일입니다!”작은 대표님이라면, 나태웅!현재 나태웅과 나태현 모두 회사에 나오기에 구분하기 위해서 작은 대표님과 대표님으로 호칭하고 있다.그녀는 나태웅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죠?” 안지영은 언짢은 말투로 물었다.이 얘기를 들은 이연 팀장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았다: “작은 대표님께서 당신과 그런 장난이나 하고 있을 한가한 사람으로 보입니까?”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안지영은 왠지 나태웅이 일부러 그녀를 골탕 먹이는 것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왜지? 그녀는 도대체 언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얌전히 출퇴근만 했을 뿐인데.이연이 말했다. “어서 가서 일해요! 함께 남아서 도와줘요!”“그건 안 됩니다, 오늘 아들이 전화 와서 저녁에 꼭 집에 오라고 했어요.”말을 하면서 이연은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안지영은 갑자기 폭풍에 휩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마음속으로 나태웅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마음먹었다고 확신했다.이건 절대로 그녀 혼자의 착각이 아니다!“그럼 작은 대표님께서 사무실에 계시나요?”“아마 안 계실 텐데요? 오후에는 계셨는데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연 팀장은 퇴근 준비를
사무실에 안지영과 나태웅 두 사람만 남았을 때도 역시 남자의 안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조금 전 안지영의 화 역시 그의 차가움에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고, 나태웅이 화낼 때, 결국 그녀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심호흡하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주일에 거의 매일 같이 야근하니,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이런 흉악한 늑대 앞에서, 안지영은 감히 횡포를 부리지 못했다.나태웅: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인데, 건강도 따라 줄 거야.”무슨 뜻이지? 뭐가 또 능력이 있다는 거야? 아니, 능력이랑 건강 상태는 또 무슨 연관이 있는데?안지영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무뚝뚝하게 나태웅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건강이 좋다고 해도, 이대로 계속 간다면 나빠지겠죠?” “……”“저는 제 몸을 아낍니다. 여기엔 실적을 달성하러 온 것 뿐이지, 출근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맞아, 단지 200억 원의 실적을 달성하는 것뿐, 그한테 팔려 온 것은 아니다!마치 그녀가 그에게 죄라도 지은 것처럼, 목숨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은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이지?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어?생각할수록 안지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렸다. “출근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네.”합의서와 근로계약서는 엄연히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그녀는 단지 실적만 달성하면 되고, 그녀가 언제 어떻게 하든 이는 모두 그녀가 혼자 알아서 할 일이다.어찌 지금과 같겠는가? 그녀는 지금 감옥살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아, 딱 한 달이야!”“네?”남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안지영은 또 어리둥절했다.천락그룹에 온 후, 그녀는 이 남자와 소통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당신이 아까 직접 얘기하지 않았어? 우린 단지 합의된 거래일 뿐이라고?”“네!”“그럼 한 달 내에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완성하면 되겠네.”“뭐라고요?” 안지영은 크게 놀랐다!이젠 그녀는 완전히 깨달았다. 나태웅은 그녀가 한 달 내에 200억 원의
”급하게 실적을 달성하는 것이 힘들다면, 다른 방법도 있어.”다른 방법이 있다고?나태웅이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기에, 그녀는 바로 정신이 돌아왔다. “다른 방법은 뭔데요?”“장선명과 깨끗이 정리하는 것!” “……” 이게 무슨 다른 방법이라는거지?눈가에 맺혔던 희망은 순식간에에 사라졌고, 서류를 품에 안고서는 얘기했다. “지금 바로 가서 야근할게요!”이게 무슨 방법이야? 이건 완전히 그녀를 호랑이 굴에 떠미는 식이잖아?나태웅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 이 여자가 정말!“다 당신을 위해서야.”“감사합니다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그녀를 위해서라고? 웃기시네!그녀가 먼저 장선명을 찾아갔고, 지금 동영그룹의 위기가 해결되니 자신더러 파혼하라고?강성에서 장씨 가문이라면 쉬이 건드릴 수 없는 가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만약 장씨 가문과 등지게 되면, 이번 생에서 그녀는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안지영은 바보도 아니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그리고 장선명은 혼인 관계는 최대 3년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그녀가 이를 악물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사무실 문이 ‘쾅’하고 닫혔다!그 찰나, 나태웅의 표정은 지옥에서 나온 사탄처럼 차갑고 무서웠다.이 여자가 진짜로 장선명과 결혼할 생각인가? 그녀가 이 결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 걸었고, 상대방은 곧장 전화 받았다. “대표님!”“장선명과 약속 잡아, 지금 당장 봐야겠어.” 나태웅은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한편 수신자 황민호는 나태웅이 장선명을 만나겠다는 얘기에 몹시 놀랐다.최근 며칠 동안 나태웅, 장선명 그리고 안지영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황민호는 잘 알고 있었다.지금 나태웅이 장선명을 만나겠다는 얘기에 황민호는 저도 모르게 걱정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설득했다. “지금은 많이 늦었습니다. 장 선생님께서 이미 주무시고 계실지도 모르고요!”“그런 사람이 이 시간에 잘 것 같
장선명은 나태웅의 비서 황민호의 전화를 받았을 때, 조금 놀란 눈치였다.특히 황민호가 전화한 이유를 알기에 더더욱 그는 심기가 좋지 않았다. “지금요?”“네, 지금 대표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장선명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고, 곧 저녁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나태웅이 지금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고개 돌려 ‘매직’ 두 글자를 보면서 얘기했다, “맞은편 커피숍에서 보죠!”매직이라 하면, 장씨 가문이 운영하는 산업 중 하나였다. 또한 장선명이 주로 관리하는 산업이다.장씨 가문은 겉으로 정당한 사업을 하지만, 장선명은 이와 반대였다.장씨 가문 첫째와 둘째 아들은 부동산과 에너지 사업을 하고, 그가 주로 하는 것은 클럽이었다!전국에 천 개가 넘는 매직과 같은 산업은 전부 그가 관리하고 있었다!표면으로 보기엔 보통 클럽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실제로 암암리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안지영이 그를 찾아가기 전에 이 방면으로 많이 알아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말 믿는 사람들이였고 적어도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다.……30분 뒤. 나태웅은 커피숍에 도착했고, 맞은편 시끌벅적한 매직과 반대로 커피숍에서는 은은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런 멜로디는 고상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장선명은 앞에 있는 커피잔을 들었다: “늦은 시간에 나를 만나자고 한 건, 그 여자 때문인가?”그는 직설적인 사람이기에 말을 돌리지 않았고 시간 낭비도 하기 싫었다.담배를 쥐고 있던 나태웅의 손은 잠시 멈칫하더니 차갑게 장선명을 보면서 얘기했다: “너와 그 여자는 절대로 약혼할 수 없어!”“그래?”장선명은 의미심장하게 나태웅을 바라보면서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달랐다.“준우가 너한테 얘기했지?”“얘기했어. 그런 일이 있었다니, 참 유감이야.” 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웃는 표정이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였다.특히 ‘유감’이라는
”이 조건이면 되겠어?”“나 혼자서도 되찾을 수 있어!” 장선명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태연한 표정으로 나태웅을 보았다.마치 그 조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그래? 이미 6개월이나 지났는데, 가져올 수 있었다면……!”뒷말을 잊지 않았지만, 그 뜻은 아주 명확했다.동성 구역을 잃은 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그의 태도에 장선명은 조금 불편했다.이 기간에 그는 되찾으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지금까지 그 배후를 만나보지 못했다.현재 동성은 그에게 진짜로 골치 아픈 존재라고 할 수 있다.그가 얘기하기 전에 나태웅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파혼 약속을 하면, 동성은 내일 당신 손에 들어올 거야.”“내일? 당신이 여간 자신 있는 게 아니구만!”그가 반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을, 지금 나태웅이 하룻밤에 해결한다고 얘기한다.장선명은 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지만 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야?”나태웅은 무뚝뚝하게 그를 보고 있었다. 할 얘기는 이미 다 했고, 그 외의 얘기는 그 역시 쉽게 하지 않을 것이다.분위기는 삽시간에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장선명에게 있어 동성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는 더더욱 중요했다.그 배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 심지어 지금은 동성을 다 빼앗겼지만, 그 배후가 그가 관리하는 다른 구역에 언제든지 손을 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나태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장선명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 뜻대로 안 해!”“당신 결국 동의하게 될거야.” 나태웅은 냉랭하게 얘기했다.장선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태웅의 이러한 자신감에 그의 웃음은 점점 차가워졌다.자기 앞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보아하니 나태웅이 확실히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오늘은 이만 돌아가, 당신이 제시한 조건은 나한테 아무런 유혹도 없어.”그리고 사내대장부가 기본적인 도덕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이런 일로 자기 약혼녀까지 내놓을 수는 없지 않았다
차 안에서!장선명은 화장을 예쁘게 한 안지영을 보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어젯밤에 나태웅이 찾아왔어요!”“네? 무슨 일로요?” 안지영은 몹시 놀랐다!어젯밤 나태웅과의 일을 생각하면, 진짜로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괘씸했다.사람을 그렇게 착취해도 된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그로 인해 화나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장선명이 답했다. “당신과 결혼을 취소하라고 했어요.”“설마, 아니죠?”그가 이런 일까지 참견한다고?안지영은 나태웅을 다시 보게 되었지만, 그녀는 나태웅이 이러는 의도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그저 남자가 억지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선명은 안지영이 도통 영문을 모르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속의 걱정을 덜어냈다. 안지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고, 그녀의 사고방식에 맞춰 얘기했다. “아마 당신이 200억 원 실적을 달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천락그룹에만 전념하라고 그러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진짜로 그런 것이면, 이는 도가 지나치는 행동이다. 그녀가 최근에 일 때문에 야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하지만 나태웅이 어젯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제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선명의 얘기가 맞는 듯싶었다.“정말 괘씸하네요.” 안지영은 중얼거렸다.그러자 장선명이 물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세요?”“200억 실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신과 천락그룹은 업종이 완전히 다른 걸로 알고 있는데요?”그리하여 돕고 싶어도 아마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 “당신이 도움을 원하면, 당연히 도움을 드릴 방법이 있지요.”안지영은 망설였다!정말이지, 나태웅은 그동안 그녀를 정말 많이 힘들게 했었기에, 그녀는 어서 200억 실적을 달성한 후, 각자 자기 갈 길을 가고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럼, 제가 한번 생각해 볼게요.” 안지영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그녀와 장선명 사이에 어떤 혼약을 맺었는지, 또한 그녀는 을의 입장으로 그에게 조건을 제시할 수 있
”어르신은 방에 계십니다.” 집사는 웃으면서 장선명에게 얘기했다.어르신 얘기에 안지영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 처음으로 어르신을 뵙는 자리에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장선명과 어르신이 계신 방으로 가던 중 집사가 함께 따라오지 않은 것을 보자, 안지영은 장선명을 잡았다. “잠깐만요!”“왜 그래요?”장선명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제가 깜박하고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어쩌죠?”장선명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물을 꼭 준비해야 하나요?”안지영은 고은영이 매번 언니 집에 놀러 갈 때 선물을 많이 사 들고 간 것이 기억났고, 그녀가 처음으로 장씨 어르신을 뵈러 온 자리이니 그래도 선물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오기전에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최근 잦은 야근으로 머리가 멍해져서 그런지, 차에서 오면서 이 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그리고 장선명은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안지영은 이마를 잡고 서둘러 몸을 돌렸다!장선명은 그런 그녀를 잡고 물었다. “지금 어딜 가려고?”“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뵙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일은 알아서 잘 얘기해주세요!”얘기를 마치고 안지영은 재빨리 도망가려고 했다. 빈손으로 어르신을 뵈러 오는 것이 어르신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물론, 그녀를 경우 없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지영이 가려고 하는 것을 본 장선명은 잠시 멈칫했다. “그냥 이렇게 간다고?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그렇다, 그냥 이대로 간다고 해결 되는 문제는 아니기도 했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이 시점에서 어르신을 빈손으로 뵙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뵙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럼 어떡하죠..?”“따라와요!” 말을 마치고 장선명은 안지영을 데리고 자기 방으로 데려갔는데, 장선명의 방은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하지만 침대가 깔끔한 것을 보니, 그가 평소에 자주 들
“당연하죠!”해외의 일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했으면서 이상한 이유들로 안지영을 괴롭혀온 사람이 바로 나태웅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이 죽도록 싫었다.“...”안열은 그렇게 대답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나태범은 강압적인 사람이다. 그러니 나태웅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태범의 명령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그 생각에 안지영은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안열은 갑자기 변하는 안지영의 기분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도 선명 도련님과는 잘 풀었나 보네.’안열은 안지영이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고, 가식 섞인 얘기를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 말이다.그런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 사이에 있을 법한 괜한 오해들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한편.나태웅은 나씨 가문에 도착했다. 나태범은 나태웅을 보고 바로 나태웅의 방에 가둬버렸다.“문 열어!”나태웅은 약간 놀라더니 바로 닫힌 문을 두드리면서 이를 꽉 깨물었다.그 소리를 듣고 온 집사가 공경한 태도로 얘기했다.“작은 도련님, 어르신께서 얘기하셨습니다. 허영지 님과 결혼하기 전까지는 조금 참아달라고요.”나태웅의 눈동자에 스산한 기운이 드리워졌다.“난 그 여자랑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그러면 누구랑 결혼할 거냐.”밖에서 나태범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일단 문부터 열어요!”“지금부터 안지영은 잊는 게 좋을 거다.”나태범의 태도는 아주 칼같았다. 나태웅에게 후회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있었다.나태웅은 더욱 어두워진 표정으로 이를 꽉 깨물고 얘기했다.“말했잖아요. 그 여자랑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걱정하지 마. 천천히 생각해 봐도 좋으니까.”말을 마친 나태범은 점점 나태웅의 방에서 멀어져갔다.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마에 핏줄이 돋을 정도였다.“문 열어요! 문 열라니까!”하지만 아무도 나태웅을 신경 쓰지 않았다.나태웅은 화가 나서 발로 문을 차버렸다.나태웅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태범이 얼굴도 비추지 않고 나태웅
너무 어려서.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그때의 장선명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사랑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였다 불같았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의 장선명은 조금 진중해졌고 일을 처리할 때도 신중히 처리했다.“정말 그 일 때문에 두 분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제가 다 속상해할 거예요.”“왜 그렇게 선명 씨를 보호하는 거예요?”안지영이 가볍게 코웃음 쳤다.“전 그저 선명 도련님께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 아끼는 건 처음이라...”“...”안지영이 처음이라니, 그럼 그 여자는...‘됐어, 그만 생각해. 선명 씨도 이미 잊었다고 했는데 내가 자꾸만 파고들면 나만 속 좁은 여자 되는 거잖아.’안지영은 순수한 감정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간단하고 순수한 감정을 갖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안열은 안지영이 여전히 그 일을 신경 쓰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지영은 총명한 사람이니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이 나태웅의 말 몇 마디로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선명 도련님께서 얘기하셨습니다. 부승호의 일은 본인이 직접 처리하겠다고요.”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아요.”장선명이 그렇게 얘기했으니 안지영은 그 일을 장선명에게 맡길 생각이었다.전에 나태웅의 사건에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다. 괜히 나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싸움으로 번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안지영은 이제야 깨달았다.나씨 가문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다.그들은 후과를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 건드리고 다니니 이런 결과가 펼쳐진 것이 아니겠는가.“아, 맞다. 그날 밤 나태웅한테 약을 타기로 했잖아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안지영이 물었다.전에 두 사람은 나태웅에게 약을 타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날 밤 이후 나태웅이 사라져 버렸다.그리고 그날 밤, 안열에게도 갑자기 사건이 생겼으니...안지영은 아직도 그날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