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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Author: 서한월
비를 더 맞다가 열이라도 나면 어떡하냐고 해도 유하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승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우산을 든 채 유하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어깨 한쪽과 옷자락이 빗물에 젖어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러다 서서히 비가 잦아들었고 하늘은 어두워졌다.

로즈 가든 안에는 하나둘 불이 켜졌다.

유하는 가지 끝에 매달린 핑크장미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건 고모할머니가 심으신 꽃이야. 원래는 늦은 가을까지 피는 종류야.”

“그럼 대단한데.”

승현도 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은 뭐야?”

“가을의 꿈.”

“이름도 참 예쁘다.”

“응...”

...

“에취!”

방 안에 들어왔지만 유하는 보송한 담요를 둘러쓰고 연달아 재채기했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자, 약 먹어.”

승현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색이 진한 약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표정에는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들어가자고 해도 안 듣더니 결국 이렇게 됐잖아. 몇 번을 말해, 몸 좀 챙기라고.”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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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고요?”폭우가 쏟아지는 소리 속, 캄캄한 침실에서 유하는 한순간 자신이 고열 때문에 환청을 듣는 건 아닐까 싶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한번 물었다.전화기 너머에서 집사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목소리가 몹시 다급했다.[오승현 대표님이 아가씨께 말씀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계속 저러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요. 아가씨, 나가서 말려보셔야 하지 않을까요?]“알겠어요.”유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해열제를 가져다 달라는 말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유하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한참이 지난 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도 모른 채 유하는 축 늘어진 몸을 추슬러 겨우 일어섰다. 벽을 짚고 한 걸음씩 옮겨 창가로 갔다. 창틀에 몸을 기대고, 뜨거운 숨을 낮게 내쉬며 어지러운 머리를 버티고 밖을 내려다봤다.유하의 방 창문에서는 정원이 보였다.폭우 속.번개가 하늘을 가르던 찰나, 유하는 보았다.낮에 마음에 걸려서 떠나지 못했던, 그 장미나무 아래.검은 우산 하나가 펴져 있었다.시선을 더 낮추자 의자가 보였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검은 우산을 든 채, 장미나무 위를 가려 주고 있었다.꼼짝도 하지 않은 채.승현이었다.낮에 유하에게 우산을 씌워 주던 것처럼.이번에는 그 꽃을 위해서였다.유하가 신경 쓰던, 그 꽃을 위해서.‘왜?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이렇게 하면, 자기가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일들이... 속이고 이용했던 것들이... 유하가 견뎌야 했던 그 답답하고 아픈 시간이... 다 지워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유하의 얼굴은 열로 달아올라 있었고 눈도 붉어졌고, 머리는 더 심하게 어지러워졌다.‘상관없어.’유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창밖을 보지 않았다.비 맞다 죽든 말든... 고작 비 한 번일 뿐이었다.자기가 겪은 건...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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