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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당사자는 알고 있을까?
아니, 분명 당사자는 별생각 없이 설이현에게 한 방 먹일 생각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착각으로, 아니 어쩌면 착각이 아닐 수도 있고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엄한 사람에게 정체를 들켰는데, 기억을 잃지도 않고 반은 짐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갑게 대한다. 설태하가 타인과 그어 놓은 선을 아무렇지 않게 폴짝 뛰어넘었다. 꽤 고생했던 사람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넘어 이쪽에서 당황할 지경이다.
당연히 설태하의 인생에 그런 사람은 작은아버지 말고는, 아니 그 작은아버지도 10살 이후로는 함께 지내지 못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을 버리고 배척하는 집안사람들과 타인들을 경계하고 혐오하면서도 사람의 온기를 그 누구보다 그리워했을 것이기에 집안에서 알기 전까지 그저 잘 지내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너, 얼굴색이 왜 이래!? 게다가 지금 가족 모임 뭐 하는 시간 아냐? 왜 혼자 여기 있어? 설민재는?!"의아했다. 집안에서 가장 큰 일정이 생겨서 당분간 연락 못 할 것이란 말만 덩그러니 남기고 남은 치킨까지 모조리 먹어 치우고 설태하를 데리고 갔는데, 설민재는 어디 갔고 설태하는 왜 새파랗게 질려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태하야! 야! 설태하!"일단은 설태하 위로 쏟아지는 비부터 어떻게 해야 할 듯해 설태하의 팔을 질질 끌어 자기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설태하가 강하게 그 손을 뿌리쳤다."야―! 넌 이 상황에서도 그래?! 이번엔 싫어도 좀 참아!""이 길이 아니야.""뭐?"눈살을 찌푸리며 헛소리하는 설태하를 다시 억지로 잡고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성인 남성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 상태로 돌아다니게 두는 것도 아니다 싶어 몇 번이고 자신의 팔을 뿌리치는 설태하를 붙잡다 덩달아 몽땅 젖어버린 윤채린의 인내심이 점점 한계에 다다를 때쯤, 설태하가 윤채린을 벽에 밀어붙이고는 팔목을 강하게 잡고 부러질 듯 강하게 비틀었다."야!!!"결국 참지 못한 윤채린이 화가 난 얼굴을 하며 소리를 질러도 꿈적하지 않던 설태하는 그저 지긋이 윤채린을 내려봤다. 그 시선에서 어떠한 온기도 감정도 심지어 초점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자식 제정신이 아닌가?'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어느새 공포감이 몰려와 비에 축축하게 젖은 것과 별개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설태하의 이름을 다시 부르자, 다행히 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
"야, 괜찮냐?"설민재가 방에 갇혀 있는 설태하에 몰래 찾아와 집안에서 준비한 값비싼 간식을 건네자, 침대 밑에 쪼그려 앉아 기껏 가져온 값비싼 화과자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그래도 이현이 형이 그렇게 말해서 이 정도로 끝난 거라고. 그러니까 애초에 왜 간 건데!?""가라고 준 거 아니었냐?""그, 그건 그런데! 그렇게 조심성 없이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어."아마 그 이유는 '하이담'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안에 끌려온 뒤로 주인에게서 강제로 호텔에 맡겨진 개같이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도 아마 하이담과 연락을 할 수 없어서 그럴 것이다.그렇다고 윤채린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며 대신 연락해 달라고 하면 아마 설태하를 혀를 깨물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대충 둘러대며 디저트를 잘 먹었다는 핑계 삼아 마지막으로 연락을 남겨 놓기는 했지만, 그 답이 어떤지는 윤채린만 알 수 있다."하아아… 나도 빨리 나가고 싶다."그리고 집안에서 못 나가게 된 것은 설태하뿐만이 아니라 설민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밖에서는 익숙해지지 않는 또다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가주님! 옷이 젖으십니다! 그러다 몸이 상하면….""설 실장, 호들갑 떨지 말도록 하세요."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낡고 굵직한 목소리에 설민재와 설태하가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집안의 가주인 설인범은 우직해 보이는 신체와 달리 몸이 좋지 않았다. 10년 전부터는 아예 해외에 자리 잡고 집안으로 올 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무슨 변덕인지 며칠 전 불쑥 집
"태하가? 여태? 우주에게 연락해 보라고 할까?""아냐. 됐어."손사래 치며 고개를 젓는 하이담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눈에는 걱정이 말투에는 서운함이 담겨있었다."그리고 보니 우주는?"오늘 저녁에 함께 외식하기 위해, 그리고 하이철이 손수 만든 반찬들을 건네주기 위해 꽤 오랜만에 연하늘 집에 온 하이담은 마지막으로 왔을 때와 달리 엉망인 집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는 이 엉망의 주범일 연우주를 찾았다."음… 면접?""아직도?""마음이 뒤숭숭한가 봐."연하늘이 떨어진 연우주의 옷가지를 집어 들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담아. 혹시 우주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걸까?""왜 그런 생각을 해?""거기 있을 땐… 재활 때문에 힘들어 보이긴 해도… 적어도 표정은 밝았는데. 이곳에서는 힘들어 보이고 표정도 밝지 않아.""하늘이 네가 너무 걱정해서 그런 거 아니야? 거기선 이렇게 걱정하는 걸 계속 본 건 아니잖아.""… 그런 걸까?"아마 아닐 확률은 높지만, 이렇게라도 말해야지 연하늘의 밖에 멈출 줄 모르고 내리는 비처럼 뚝뚝 내리는 것이 그칠 것 같았다. 이런 부분은 은근히 하이철을 닮아 익숙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연하늘도 어쩔 수 없이 가족과 관련된 일에는 답지 않게 쿨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가끔 무모한 짓을 할 때의 연하늘을 보는 연우주와도 똑 닮아 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우주 오면 같이 갈까?""응, 연락 넣어놨어.""우주도 참, 뭐가 그렇게 우중충한 거야.""말하지도 않고."
이제 곧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와중에 설태하는 그간 연락이 한 통 없었고 학교에 오지도 않았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지만, 자신이 외근 나간 사이 또 학교에 왔었던 설이현과 맞닥뜨린 연하늘이 하는 말을 보면 설이현의 컨디션과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하는 것에 딱히 집안에 일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게다가….윤채린이 자신에게 보낸 사진은 분명 처음 보는 남자애와 그 뒤에 엎어져 자는 설태하를 보면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채린이랑 잘해 볼 마음이 생겼나?'뭐, 첫사랑이 원래 그런 게 아닌가? 감정을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들쑥날쑥해지는 것.그런데 하이담의 기분은 왜 들쑥날쑥해지는지. 아니,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해야 하는 어른이기에 한숨을 푹 쉬며 오늘도 없는 설태하의 연락에 목매지 않기로 마음먹고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 앞에서부터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음식 냄새에 금세 얼굴에 있던 고민과 근심이 싹 날아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하이철이다―!!""오빠를 붙여야지."그렇다. 황금연휴는 직장인에게도 있고 공무원에게도 있다. 휴가 때 못 챙겨 준 것이 영 마음에 걸려 하루 먼저 올라와 하이담이 어떻게 사는지 확인도 할 겸, 하이담이 가장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하고 청소를 대충 하고 하며 혹시나 있을 남자의 흔적도 찾았지만 우습게도 하이담의 집에서는 빈 캔과 머리카락밖에 나오지 않았다.그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심 실망하기도 했다.'보호자의 마음이란 복잡미묘하군.'&n
"설태하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 건? 생각 안 해 봤지?"그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하던 하이담은 잘게 웃으며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표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표정이라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그럼 머리를 싸매고 찾는 수밖에 없네.""부탁해요. 우리 똑똑이.""하지만 의외로 이런 머리는 우주가 잘 돌아가는데.""그치?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는데… 요즘 괜히 심란해 보여서."설이현이 하이담에게 설태하가 가진 모든 것을 뺏어 자신에게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하이담을 그걸 이용해 설이현을 한 방 먹이고 싶다고 한다.솔직히 말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응?"연하늘이 하이담을 빤히 바라보다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래,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겠지. 잘됐어. 나도 이현이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거든.""왜? 그때 봤을 때 또 귀찮게 한 거지?""아주 오래전에 묵혀놨던 유감스러운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야겠어.""헉…!"* * *하이담과 연하늘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는 동안 설태하와 설민재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그놈이….""무슨 의미겠냐고! 그 누님이 이중 첩자…우웁!!.""아니라고!!"설민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칠게 자기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로 가정이라도 듣기 싫은 말이기에 설태하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한 모습에 설민재가 순
한참 동안 설동만의 변명 아닌 변명과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듣던 설이현이 슬슬 지겨운 건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 일어서자, 집안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오는 것을 냉정하게 거절하고는 홀로 뒤 정원으로 나가는 것을 설민재가 슬쩍 따라가자 설이현은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달빛이 빛나는 연못에 '후-' 불며 설민재를 바라보는 것에 오히려 당사자가 놀라 움찔했다."너 말이지, 반쪽짜리와 가까이 지내더니… 뻔해졌군.""그거 욕인 거죠?""용건은.""그…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 말인데요…."'아아.' 설이현이 낮게 소리를 내며 담배를 솟아오른 돌에 꾹 눌렀다.이미 탄 자국이 짙게 있는 것 보니 꽤 오래전부터 설이현의 전용 재떨이가 된 듯 보였다."정말이에요?"혼란 그 자체였다.만약 설이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고 거짓이라면 그것 또한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설태하에게 말해야 할지 말지 더욱 혼란스러웠다.'이 사람은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설민재가 머리 굴리는 것이 설이현의 눈에는 뻔히 보였다."넌, 네 일을 해."라고 말했지만 '골머리 좀 앓아 봐.'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에 설민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되돌아가는 설이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여간에 성격 나쁜 건 유전이 분명하다니까.'어린 시절 아주 잠시지만, 설이현과 설태하의 아버지가 집 안에 있을 때를 떠올리자, 절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어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