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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이담의 손에 이끌려 물놀이하게 된 설태하가 어색하게 씻고 나오자, 넓은 집은 네 명이 들어와도 주인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썰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상황이 몹시 불편한 설태하와 달리 나머지는 익숙한 건지 남아 있는 집안일을 하거나 청소하며 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멋쩍은 설태하가 아직 물기가 젖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돌린 곳에는 유리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하이담의 어린 시절 사진이었다.
"어리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하이담이 아마 제 형제 것으로 보이는 큰 옷을 입고 짓궂게 웃는 얼굴이라든지, 입학식 사진이라든지… 일상을 담은 사진을 보니 항상 웃고 있는 사진들 속에 유일하게 혼이 난 건지 심드렁한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있는 하이석의 옆에서 울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귀엽지?"
고요한 방 안에는 설태하의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내가 거슬려? 방해물이냐? 역시 전에도 그냥 한 말인 거지!!?"점점 분노로 변해가는 목소리에 하이담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내게 꽤 큰 피해의식이 있지. 한마디로 자존심은 센 주제에 자존감은 낮아.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어떻게든 내게 한 방 먹이려는 그 발버둥이 재미있어. 」우습다는 듯이 이야기하던 설이현의 말이 우습지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하이담에게 설이현의 약점을 알아 오라느니, 그간 설태하에게 해왔던 것들을 전부 설이현과 친해지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화가 날 만도 한데 화를 낼 수가 없었다.'아프다.'심장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그저 이 몸만 큰 어린애가 자신을 봐달라고 몸으로 울부짖는 것 같아 쓰라렸다. 어린 시절 자신을 보며 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안달 내던 하이철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넌 내가 아직도 설이현 편에 서는 건 아닐까 무서워? 걱정돼?""……….""네게 난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설태하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바짝 굳어 숨을 들이켰다."그렇게 생각해? 내가 널 홀라당 버리고 설이현에게 넘어갈,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고!""………… 아니.""그런데 뭘 그렇게 초조해하는 거야?""…… 다른 그랬으니까. 전부… 그놈만 만나면 내게서 사라졌으니까."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것보다는 당장에 벽에 꽂힌 손이 걱정되어 그 손을 확인하자 멀쩡한 손에 조금 당황
"태, 태―!"자기 집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도어락을 열고는 거칠게 집주인을 밀어 넣고는 끌어안았다. 얼굴이 울릴 정도로 큰 심장 고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저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지만, 떼어낼 생각이 없어 보이는 행동에 슬쩍 고개를 올리자, 설태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분노로 표출하고 있었다."동생, 왜 그런 표정이야? 본가에서 무슨 일 있었어?""너… 왜 난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는데?""어, 어??""왜 설이현이랑 같이 있는데? 왜 집 앞까지 데리고 왔는데? 내가 없었으면 바보처럼 웃으며 집까지 들일 생각이었냐?"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하는 설태하에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잘못한 것 같아 그 넓은 등을 토닥였다. 그 손길에 안정감을 느끼며 더 파고드는 터에 꼼짝없이 벽과 설태하 사이에 끼여 겨우 숨을 쉬었다."나 아파."그 말에도 설태하는 꼼짝하지 않고 되레 하이담의 허리를 강하게 감았다.그 감정은 아마 집착이고 질투일 테지만, 설태하는 그 감정을 모른다.그래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응―? 태하야. 일단 좀 놔! 나 아파!"쓰다듬던 손으로 등을 툭툭 쳐도 꼼짝하지 않아 결국 혀를 내두르며 하이담이 힘이 빠져 축 처져 설태하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올리고는 조금 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설이현이 회사로 왔어. 그런 김에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좀 나눴어.""무슨 이야기.""음…. 회사 관련 이야기도 했고… 설이현도 고양잇과니까 캣닙 좋아하냐고." 
여유 부릴 시간도 없이 설민재의 연락받고 다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설이현이 경호원도 없이 홀로 하이담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처음 자신이 오해했을 때도 그랬지만 설이현은 어릴 적부터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하물며 경호원까지 물린 것은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다.하지만 또 처음 때와는 느낌이 영 달랐다.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처음 설이현을 만나고 돌아온 하이담은 변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히 설태하를 보고 웃었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계속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이담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고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불안한 감정이 드는 건지, 초조한 생각만 드는 건지 몸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야, 하이담은 기억을 잃지 않으니까.'입술을 꾹꾹 누르며 진정되지 않는 몸을 움직이며 하이담의 집 앞에서 얼쩡거렸다.'아니지, 학교로 가야 하나?'서둘러 몸을 돌리자, 몸에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고, 인상을 찌푸리며 그 둔탁함에 아래를 내려보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반가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야! 그래도 미안하다고는 해야지."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바짝 굳었다."너, 키 많이 컸네~"시원시원한 목소리, 어울리지 않게 길게 찰랑찰랑하는 머리카락,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성숙해지고 여성스러워진 어린 시절 자신의 전부였던 그 아이."정말! 본가에서 나갔다
실로 자신 따위가 이곳에 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근사하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호텔에 심장이 괜히 쿵쿵 울렸다."왜? 이런 디너를 원한 게 아니었어?""완전 부담스럽거든!""부담스러워해도 돼."설이현에게 땍땍거리는 하이담을 보며 괜히 놀라는 직원들 사이로 설이현이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기자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자리였다. 어느새 조용히 야경을 바라보는 하이담앞으로 사진을 내밀었다."그래, 네가 그냥 날 보러 올 이유는 없지."하이담이 의아한 설이현의 시선은 무시하고 본 사진은 설태하가 찍힌 사진이었다."태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래?"아무것도 없이 낡은 창고가 달랑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는 설태하는 비교적 최근인 거 같은데, 이걸 자신에게 보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사진을 줄 생각으로 직접 찾아온 것도 아닐 테고."그 안에 누가 있는 줄 알아?""엥? 창고 아니었어? 사람이 살아?""그 안에는 설용범. 아버지의 동생… 그러니까 나와 그 녀석의 작은아버지가 유배당한 곳이지.""엥? 뭐 조선시대야?"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작은아버지가 있다고."뭐, 집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대에 살고 있는가 보지."요즈음 설태하와 설이현과 얽힌 이후, 알게 된 사실이 있다.둘 다 의외로 영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특히 저 설이현의 표정은 '흥미 없어.'라고 쓰여있다.그렇다면
유달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분노에 가득 찬 채로 서류를 작성 중이니 당연할 것이다. 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트집 잡아 시간마다 잔소리를 30분 넘게 해 대는 권 주임에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질 지경이었다.게다가 평소 이 시간쯤이라면 창가 너머 설태하의 붉은 머리가 슬슬 보였을 텐데, 본가에 간다는 연락 한 통 남겨 놓고 이틀 동안 잠잠했다. 여전히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괜히 휴대폰 화면을 툭툭 건드려봐도 연락이 없는 것에 조금 짜증도 나고 걱정도 됐지만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이참에 거리감을 먼저….""거리감?""악!!!"귓가에서 쑥 들어오는 여기 있을 리 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간질간질한 귀를 부여잡고 고개를 홱 돌리자,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으며 서 있는 설이현이 하이담과 똑같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깔끔하고 비싼 정장에 그 특유의 향수 냄새를 뿜으며 양팔을 꼬아 여전히 왕자님 같은 포스로 서 있지만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 사실을 설이현에게 알려주지 않은 건지 당당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머리가 어질했다."이현아? 여기 외부인 출입 금지인데?""보내주던데."당당한 말에 숨을 들이 삼켰다."따지고 보면, 내 것이기도 하고."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꾸하기에 '이게 무슨 상황?' 혹은 '말단 계약직이 어떻게?'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어 그 팔을 잡고 질질 끌고 복도로 나오자, 그 상황이 뭐가 그리 우스운 건지 픽 웃더니 하이담
"아직, 아무것도 보고 된 건 없어.""확실해?""확실해. 영감이 얼마나 유별난지 알잖아."확답하는 말을 듣고도 안심되지 않았다. 어젯밤 이미 취한 상태로 맥주를 마시던 하이담은 해롱해롱한 상태로 온갖 말을 했다. 그 와중에 왜 늑대라고 정정하지 않았는지 따위의 말을 하다, 설이현은 왜 사자냐는 물음에 알딸딸하게 올라오던 술기운이 모조리 달아났다.설이현에게 지금 상황을 알렸단 소리다.그런데 그 설이현은 아직 본가에 알리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도무지 그 꿍꿍이를 예측할 수 없어 속이 탔다."누님의 태도는 변했어?"초조함이 잔뜩 드러나는 표정에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슬쩍 묻자, 초조함은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했다. 지금 설태하는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설민재의 눈에는 이 설태하, 그 하이담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아니, 어쩌면 애정까지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과거, 설태하가 좋다고 늘 설태하의 편에 서겠다고 한 그 여자는 설이현을 만난 이후, 기억을 잃고 설이현을 좋아하게 됐다고 설태하에게 설렘을 가득 안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 설태하의 표정과 달리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아, 또 깜빡할 뻔.""뭐.""돌아왔어.""뭐가.""뭐겠냐?"또 말을 빙빙 돌려 하는 설민재를 보고 강하게 혀를 찼다."…… 만났어.""뭐?! 벌써? 빠른데!?""누굴 말하는 건데?""엥? 당연히….""작은아버지 말이야."설민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