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남편의 외도와 시댁의 멸시에 짓눌려 살던 한서경. 남편이 집을 비운 밤, 그의 수행비서 권태하가 안방 문을 두드린다. 남편의 비밀을 모두 아는 남자와 손잡은 순간, 서경은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한다.
Ver más새벽 2시, 45층 펜트하우스의 마스터 드레스룸.
한서경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세면대 물에 남편의 이탈리아산 최고급 맞춤 화이트 실크 와이셔츠를 담그고 있었다.
새하얀 깃 안쪽에 번져 있는 번들거리는 진한 체리색 립스틱 자국.
그리고 낯선 여자의 짙고 저열한 인공 바닐라 향수 냄새가 코끝을 사납게 찔러왔다.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3년 동안 이어진 지옥 같은 정략결혼.
해성물산의 총괄 상무이자 남편인 강진우는 매주 여자를 갈아치우며 안방 드레스룸을 상간녀들의 흔적으로 난도질해 놓았다.남편은 새벽마다 술에 취해 들어와 화장대 거울을 보며 서경의 턱을 쥐어짜듯 비틀곤 했다.
‘네가 침대에서 목석처럼 굳어 있으니 내가 밖으로 도는 거 아니냐. 살결에 온기 하나 없는 인형 같은 년.’
서경은 차가운 손으로 셔츠 깃을 비벼 빨았다.
손톱 밑이 시리도록 붉은 물이 배어 나왔지만, 그녀의 아름답고 메마른 눈동자에는 더 이상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모든 감각과 자존감이 거세된 채, 그저 가문의 결속과 비즈니스를 위한 허수아비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영혼이 곪아 터져 감각을 잃어버린 식물처럼 서경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남편이 던지는 모욕적인 언사들은 서경의 심장을 날마다 송곳처럼 찔러대며 마모시켰다.
달칵.
적막을 찢고 등 뒤에서 조용하고 절제된 구두 굽 소리가 울렸다.
서경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드레스룸 입구의 어둠 속에서 완벽하게 정돈된 블랙 스리피스 수트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남편 강진우의 수석 전담 수행비서, 권태하(權泰河)였다.
187cm의 장대한 체격, 콧등에 걸친 은빛 무테안경, 그리고 그 너머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칠흑 같은 눈동자.
남자는 낮에는 강진우의 온갖 더러운 사생활과 뒷감당을 도맡으며 90도로 허리를 굽히던 완벽한 충견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깊은 밤, 홀로 선 남자의 넓은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위압감은 안방의 주인을 능가하고 있었다.
단정한 넥타이 핀 아래로 묵직한 가슴팍이 천천히 오르내렸다."사모님."
태하의 낮고 서늘한 중저음이 적막한 드레스룸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고급스러운 벨벳 상자를 화장대 위에 정갈하게 내려놓았다."상무님께서는 조금 전 청담동 룸살롱에서 강남 텐프로 출신 내연녀와 함께 호텔 스위트룸으로 입실하셨습니다. 오늘 정오까지는 귀가하지 않으실 예정입니다."
남편의 난잡한 외도 현장을 보고하는 비서의 어조는 지나치리만큼 건조하고 정중했다.
서경은 젖은 손을 린넨 타월에 닦아내며 씁쓸한 자조의 미소를 흘렸다."알려줘서 고마워요, 권 비서. 셔츠는 내일 세탁소에 맡길 테니…… 그만 퇴근해요."
대답을 마쳤는데도 구두 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서경은 거울 속 남자를 살폈다. 남편의 일을 보고한 뒤에는 늘 곧바로 돌아서던 사람이었다.젖은 셔츠를 다시 집으려던 손이 세면대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하지만 태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태하는 긴 다리로 세면대 쪽을 향해 걸어 들어왔다.남자가 다가올 때마다, 강진우의 역겨운 시가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서늘한 시더우드와 은은한 베르가못 향이 드레스룸의 공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묵직하고 남성적인 체향이 서경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서경의 심장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권 비서……?"
태하가 서경의 바로 한 뼘 앞까지 다가와 우뚝 멈추어 섰다.
남자의 넓고 거대한 어깨 그림자가 서경의 가녀린 체구를 온전히 집어삼키듯 덮어버렸다.무테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남자의 시선은, 낮에 보던 비서의 공손한 눈빛이 아니었다.
굶주린 맹수가 먹잇감을 옭아매듯, 서경의 차갑게 붉어진 손가락과 떨리는 가녀린 쇄골, 그리고 얇은 실크 잠옷 실루엣을 삼킬 듯 노골적으로 훑어내리고 있었다.서경은 타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먼저 비켜 달라는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태하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남자의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세면대에 놓여 있던 젖은 와이셔츠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툭.
"그 셔츠는 버리십시오. 사모님이 씻어낼 일이 아닙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서경의 귓바퀴를 뜨겁게 스쳤다.
"그리고 오늘 밤은…… 사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겠습니다."
둘만의 서약에서 1년여가 흐른 뒤, 두 번째 맞는 화창한 봄날, 영국 런던 리치먼드 힐 대저택.정원 가득 만개한 순백의 화이트 로즈 가든 위로 따스한 5월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그사이 대한민국과 글로벌 재계의 판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격변했다.낡고 썩은 과거의 잔재는 완전히 소멸했고, 새로운 질서가 황금빛으로 자리 잡았다.한서경 총괄대표가 이끄는 명진글로벌은 유럽 명품 하우스들과의 독점 유통망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세계 10대 패션·유통 제국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미국 포브스(Forbes)지는 한서경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1위’로 선정하며 1면 표지를 장식했다. 과거 재벌가의 억압 속에서 목석이라 조롱당하던 여인은, 이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최고의 거물로 군림하고 있었다.그녀의 한마디에 글로벌 패션 시장의 주가가 출렁였다. 세상은 그녀를 ‘살아있는 여왕’이라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반면 파멸의 늪에 빠진 자들의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전남편 강진우는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치료를 받고 있었다. 판결을 뒤집어 보겠다던 기세도, 서경을 불러내려던 집요함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남자는 여전히 벽을 긁어댔고, 전남편의 권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만방자하게 며느리를 짓밟던 시어머니 조 여사는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며 매일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짖다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됐고, 내연녀 유채은 역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들이 서경에게 전해 달라던 부탁도 더는 그녀의 일상을 흔들지 못했다.***정원의 푸른 잔디밭 위, 하얀 파라솔 아래서 한서경이 평화로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품 안에는 천사처럼 곤히 잠든 생후 3개월 된 건강한 사내아이가 안겨 있었다. 두 사람의 뜨겁고 숭고한 사랑의 결실이자, 제국의 유일무이한 후계자였다.아이의 하얀 뺨 위로 부드러운 봄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를 바라보는 서경의 미소에는 한없는 자애로움과 평온이
영국 런던 리치먼드 힐(Richmond Hill), 템스강이 굽이쳐 흐르는 언덕 위의 고풍스러운 대저택.가을의 황혼이 하늘을 핏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강물 위로 눈이 부실 정도의 영롱한 금빛 윤슬을 흩뿌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모든 끔찍했던 과거와 악연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내고 돌아온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고요하고 웅장한 대자연의 축복만이 가득 차 있었다. 시끄러운 하객도, 위선적인 재벌 사교계의 계산도,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도 없는 오직 두 영혼만의 신성하고 순수한 결혼식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젖은 잔디 냄새와 붉은 장미의 향기가 테라스를 가득 채웠다.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호텔 예식장보다 더 거룩하고 성스러운 둘만의 성역이었다.서경은 문득 입을 열었다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는 그녀에게 말을 재촉할 하객이 없었다. 누군가 써준 인사말을 외우던 결혼식과는 달랐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 시작할지 잠깐 망설였을 뿐이었다. 태하는 먼저 말하지 않고, 그녀의 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 오기를 기다렸다.야외 가든 테라스의 하얀 대리석 난간 앞. 서경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심플하고 우아한 오프화이트 실크 슬립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가을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는 흑발, 그리고 노을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그녀의 살결은 세상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왕의 모습이었다.그녀의 맞은편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화이트 실크 셔츠의 단추를 가볍게 풀어헤친 권태하가 마주 서 있었다. 남자의 깊고 서늘했던 흑안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서경을 향한 숭배와 헌신적인 사랑으로 깊게 젖어 있었다. 서경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5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한 빛을 발했다. 서경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반지 위로 붉은 노을이 스쳐 갔다.“태하 씨.”서경이 먼저 손을 뻗어 남자의 넓고 단단한 가슴팍 위에 하얀 손바닥을 얹었다.남자의 셔츠 너머로 쿵쾅거리는 묵직한 심장 박동이 서경의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번져나갔다.“새벽 2시에 그
경북 청송군 진보면, 경북북부제1교도소(청송교도소) 특별접견실.두꺼운 방탄유리 너머의 차가운 철제 의자에는 수용번호 ‘7140’을 가슴에 단 강진우가 웅크려 앉아 있었다.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파리한 뺨, 깊이 푹 꺼진 눈가, 그리고 자해를 시도해 하얀 붕대로 칭칭 동여맨 손목이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고 있었다. 한때 강남 일대를 주름잡던 오만방자했던 재벌 3세의 몰골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절망과 광기 속에 썩어가는 한낱 중범죄자 독방 죄수만이 남아 있었다.남자의 옷깃은 구겨져 있었고, 손목을 감싼 붕대 가장자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남자의 손톱 밑에는 벽을 긁어대다 낀 피딱지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교도관 둘이 양옆에서 남자의 어깨를 경계하며 감시하고 있었다.철컥.무거운 철제 문이 열리고, 한서경이 걸어 들어왔다. 순백의 최고급 맞춤 화이트 슬랙스 수트에 심플한 블랙 힐을 신은 서경의 자태는, 한 줄기 성스러운 빛처럼 차갑고 눈부셨다.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서울의 테라스에서 태하가 끼워준 5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유리창 너머의 어둠과 서경이 뿜어내는 눈부신 후광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접견실의 적막을 지배했다.덜컹—!진우가 미친놈처럼 철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방탄유리창을 두 손바닥으로 쾅쾅 내리쳤다.“서경아……! 한서경! 네가 드디어 왔구나! 제발 날 여기서 꺼내줘!”인터폰 수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남편의 피맺힌 고함과 비참한 애원.남자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차가운 유리창에 제 이마를 짓이기듯 비벼댔다.“내가 다 잘못했어! 무릎 꿇고 빌게! 네 발가락이라도 핥을게! 이혼만은 제발 취소하고 선처 탄원서만 써줘! 매일 밤마다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아! 여기서 12년을 썩다간 나 진짜 미쳐서 자살할지도 몰라! 살려줘, 서경아!”추악하고 비참한 구걸.서경은 인터폰 수화기를 천천히 귀에 대며, 입가에 서늘한 여왕의 조
영국 런던 첼시,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 야외 중앙 광장.전 세계 50여 개국 주요 글로벌 패션 매거진과 방송사 취재진의 수백 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폭죽처럼 눈이 멀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런던 글로벌 패션 위크 VVIP 갈라 디너 레드카펫.수많은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유럽 왕실 귀족들, 그리고 세계 유력 재벌 총수들이 자리를 빛내는 화려한 무대 중앙으로, 칠흑처럼 짙은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추어 섰다.도어맨이 차 문을 열자, 먼저 완벽하게 재단된 영국식 블랙 턱시도를 차려입은 권태하가 성큼 내렸다.곧게 편 단단한 어깨, 서늘한 은빛 무테안경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거대 자본의 황제다운 기품에 취재진의 감탄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태하가 정중하게 손을 뻗어 차 안의 여인을 조심스럽게 에스코트했다.차에서 내린 한서경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 순간, 셔터 소리가 일순간 멎을 듯한 숨 막히는 침묵이 광장 전체를 지배했다.등 라인이 엉덩이 골 직전까지 아찔하게 파여 매끄러운 척추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짙은 에메랄드빛 백리스 실크 드레스.걸음을 옮길 때마다 깊은 옆트임 사이로 하얗고 탄탄한 각선미가 은밀하게 드러났고, 가녀린 목선에는 심플한 5캐럿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우아하면서도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였다.“Who is that stunning lady?! Look at her back!”“Look here, Madam Han! Mr. Kwon! Please look at camera one!”외신 기자들의 폭발적인 함성과 플래시 세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동양인 여성 총수가 뿜어내는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귀티와 관능에 서양의 호사가들이 넋을 잃었다. 서경은 여유롭고 매혹적인 여왕의 미소를 지으며 곁에 선 태하의 단단한 팔짱을 부드럽게 꼈다.두 사람의 완벽한 실루엣은 플래시 세례 속에서 한 폭의 명화처럼 빛났다. 남자의 단단한 팔뚝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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