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만두게!”명진윤이 다급히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윤태호가 발로 그 벌레를 몇 번이나 밟자 산산조각 난 채 죽었다.명진윤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더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명 대사님, 괜찮으세요?”천우진이 재빨리 다가가서 명진윤을 부축했다. 명진윤은 아무 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윤태호를 쳐다보았다.윤태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물었다.“명 대사님, 혹시 어디 아프세요? 내가 침술로 치료해 드릴까요?”“그럴 필요 없네. 나는 이만 가보겠네.”말을 마친 명진윤이 뒤돌아 가려고 했다. 이때 윤태호가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잠깐만요.”“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명진윤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자 윤태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명 대사님, 오해하지 마세요. 그저 돌려받을 것이 있어서 부른 거예요.”명진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물었다.“무엇을 돌려받겠단 말인가?”“조금 전에 작성한 양도 계약서를 내놓으세요.”“하!”명진윤은 주머니에서 지장을 찍은 양도 계약서를 꺼내더니 바닥에 던졌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윤태호는 명진윤의 뒷모습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승준아, 나도 이만 가볼게. 나중에 시간이 되면 어르신을 뵈러 다시 올 거야.”천우진은 다급히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박씨 가문 저택 앞.천우진은 이미 차에 올라탄 명진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명 대사님, 노여움 푸세요.”“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나?”명진윤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박승준한테서 2000억만 받으면 된다고 했지. 그런데 그쪽이 박씨 가문의 절반 재산을 가져야 한다면서 날 부추긴 탓에 한 푼도 얻지 못했네.”“명 대사님, 제 탓을 하면 안 되죠.”“천우진 씨 때문에 일전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네. 게다가 내가 기르는 새끼 고충도 죽었지. 멍청한 놈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네.”“명 대사님, 솔직히 말해
“어르신은 곧 깨어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는 박형만의 머리에 꽂았던 일곱 개 금침을 뺐다.윤태호는 고개를 돌리고 박승준한테 물었다.“혹시 이곳에 일회용 컵이 있나요? 있으면 가져다주세요.”박승준은 서랍 안에서 일회용 컵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윤태호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박승준 씨, 어르신이 왜 갑자기 의식을 잃었는지 궁금하죠?”“맞아요.”박승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할아버지는 무슨 병에 걸린 건가요?”“어르신은 병에 걸린 게 아니에요.”“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왜 의식을 잃은 거죠?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큰 병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요?”“박승준 씨, 놀라지 말고 잘 들으세요. 어르신이 쓰러진 건 몸속에 무언가가 들어갔기 때문이에요.”그 말에 천우진과 명진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박승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무언가가 몸 안에 들어갔다고요? 그게 뭔데요?”“곧 알게 될 거예요. 침술로 치료할 테니 잘 보세요.”윤태호는 금침을 하나 꺼내서 박형만의 목을 찔렀다. 그가 손으로 박형만의 목을 누르자 박형만은 숨을 쉬기가 버거워서 천천히 입을 벌렸다.이때 검은색 벌레가 박형만의 입안에서 기어 나왔다. 쌀알만 한 크기였고 온몸에 짙은 녹색 액체가 묻어 있어서 더 징그러웠다.그 벌레는 무당벌레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이 벌레를 어디에서 본 것 같아요.”박승준은 그 검은색 벌레가 명진윤이 도자기 병에서 꺼낸 벌레와 똑같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박형만의 입속에서 나온 벌레는 그것보다 크기가 작을 뿐이었다.‘설마 이 벌레가 명 대사님과 연관이 있는 걸까?’그가 생각에 잠겼을 때 작은 벌레는 날아서 도망치려고 했다.윤태호는 재빨리 일회용 컵으로 그 벌레를 가두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큼!”박형만이 몇 번 기침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황찬호는 격동되어서 침대맡으로 다가갔다.“어르신께서 일어나셨어요.”천우진은 주먹을 꽉 쥔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윤태호를 노려보고 있었다.“할아버지, 괜찮아요?”
그는 금침으로 박형만의 목을 찌른 후, 손가락으로 침 끝을 살짝 튕겼다. 금침이 흔들리면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이건 금침 도혈이군.”명진윤은 그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그를 비웃을 때 거슬렸지만 윤태호는 확실히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윤태호는 명진윤이 침술을 알고 있을 줄 몰랐다. 그는 고개를 돌리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이 침술을 알고 있어요?”“알고 있네. 하지만 침구로는 박 회장의 병을 낫게 할 수 없다고 장담하지.”명진윤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가 기른 어미 고충으로도 새끼 고충을 꺼낼 수 없었으니 윤태호도 실패할 것이다.“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말을 마친 윤태호는 침을 꽂았다. 박승준은 박형만이 걱정되어서 안절부절못했다.그는 윤태호가 박형만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을지 몰라서 불안했다. 윤태호가 침을 꽂을 때 말리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그가 아주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마 명진윤이 사용한 괴이한 수법보다 윤태호의 침구 치료법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윤태호가 할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 경쟁자한테 빚지게 생겼어.’박승준이 불안해하고 있을 때 윤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르신, 이제는 일어나셔야 해요.”그 말에 명진윤이 피식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박 회장은 오랫동안 큰 병을 앓고 있었네. 침을 몇 번 놓았다고 해서 의식을 되찾는다면 자네는 신의...”“큼!”명진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형만이 의식을 되찾고 기침했다. 깜짝 놀란 명진윤은 멍하니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닐세.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이때 박형만이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황찬호는 너무 기뻐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이 깨어나셨어요. 의식을 되찾았다고요!”박승준은 박형만의 앞으로 가서 다급히 물었다.“할아버지, 괜찮아요?”“나, 나는...”박형만은 겨우 몇 글자만 내뱉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할아버지, 제 말이 들려요? 할아버지!”깜짝 놀란 박승준은 얼굴이 하얗게
“박승준 씨, 걱정하지 말게. 박 회장의 병이 고치기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든 낫게 해주겠네.”말을 마친 명진윤은 주머니에서 검은색 병을 꺼냈다. 병마개를 따자 엄지손가락만 한 무당벌레가 그 안에서 기어 나왔다.검은색으로 뒤덮인 무당벌레의 두 눈은 푸른빛을 띠었다. 온몸에 짙은 녹색 액체가 묻어있어서 아주 징그러웠다.‘저건 고충 모체야.’윤태호는 그 무당벌레가 고충의 모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명강에서 제일 사악한 고독이라고 불리는 건 모자 고충이었다. 역술인은 긴 시간 동안 자신의 피로 어미 고충을 길들였다.그리고 어미 고충으로 수많은 새끼 고충을 길렀다. 역술인은 어미 고충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모든 새끼 고충을 통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명진윤이 어미 고충을 꺼냈을 때, 윤태호는 박형만의 체내에 있는 것이 새끼 고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명진윤은 어미 고충을 통제해서 새끼 고충을 불러낼 생각이구나. 내가 네 뜻대로 되게 가만히 있을 것 같아?’윤태호는 조용히 주술을 그려서 박형만의 체내에 스며들게 했다.“자, 안에 있는 놈을 불러내거라.”말을 마친 그는 어미 고충을 박형만의 입안에 넣었다. 박승준은 명진윤을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이때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박형만의 입에서 검은색 물체가 나왔다.어미 고충이 명진윤의 손바닥에 내려앉더니 덜덜 떨고 있었다.“왜 다시 나온 거지? 그놈은 어쩌고 너 혼자 나온 거냐?”명진윤이 묻자 어미 고충은 계속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떨었다. 무서운 것과 마주한 후에 두려워서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뭐라고? 체내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놈도 나오지 못한다는 거냐? 어떻게 된 일이지?”명진윤이 벌레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뭇사람들은 경악했다.“윤 선생, 이 세상에 곤충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황찬호는 깜짝 놀라서 윤태호에게 물었다.“당연하죠. 세상 만물이 숨 쉬고 살아있으니깐요. 그리고 저 벌레는 명진윤의 피를 먹고 자랐을 거예요.”그의 말에 황찬호는 두 눈을
‘어떻게 된 일이지?’명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몇 분 동안 치료했으니 박형만의 몸에 반응이 생길 것이다.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박형만은 침대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명진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대나뭇잎으로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박형만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명진윤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충을 통제할 때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에 시간을 끌면 안 되었다.3분 뒤, 명진윤은 박형만의 입을 천천히 벌리고 들여다보았지만 고충이 보이지 않았다.몇 분 동안 대나뭇잎을 불었으니 고충이 입에서 기어 나오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고충을 찾을 수 없었다.명진윤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무척 당황했다.“명 대사님, 할아버지의 상태가 좀 좋아졌나요?”박승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승준 씨, 별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명진윤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박승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던 명진윤이 주머니에서 피리를 꺼냈다. 그가 피리를 불자 괴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피리 소리를 들은 윤태호는 온몸이 오싹했고 병실 안에 괴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박형만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당황한 명진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가 기른 고충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명진윤은 피리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박승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명 대사님, 할아버지는 왜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거죠? 혹시...”“닥치게!”명진윤이 그를 노려보면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환자를 치료할 때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네.”이때 윤태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방해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환자를 치료할 줄 모르는 게 아닌가요?”천우진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윤태호,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명 대사님은 세상에 이름을 날린 의사야. 어르신의 병을 단번에 고칠 수 있어.”
“만약 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 건가요?”윤태호가 묻자 박승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요.”‘믿지 않을 거면서 왜 물어본 거야?’박승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내가 아는 백아윤이라면 눈이 높아서 웬만한 남자한테 끌리지 않을 거예요.”그의 말에 천우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박승준의 말을 들어 보니 윤태호를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천우진은 아무도 모르게 명진윤을 향해 눈짓했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박승준이 먼저 말했다.“윤태호 씨,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할아버지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거예요.”“왜요?”윤태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옆에 서 있던 황찬호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박승준이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백아윤을 좋아하지만 백아윤은 윤태호 씨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경쟁자나 마찬가지잖아요.”“저는 어르신의 병을 바로 낫게 할 수 있어요. 박승준 씨는 가문의 절반 재산을 지킬 수 있고요.”“알고 있어요.”“알고 있는데도 저의 제안을 거절한다고요?”박승준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가문의 절반 재산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윤태호 씨한테 빚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윤태호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치료 비용을 받지 않고 박형만의 병을 낫게 해준다고 했지만 박승준은 오만하게 굴면서 거절했다.‘가문의 재산을 의사도 아닌 역술인에게 주다니... 명진윤한테 속을까 봐 나섰더니 유치한 핑계를 대면서 거절해? 멍청한 놈!’윤태호는 박승준이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황찬호가 다가가면서 말했다.“박승준 씨, 이 일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게...”“황 시장님,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저는 이미 결정했어요.”말을 마친 박승준은 명진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명 대사님, 저의 할아버지를 치료해 주신다면 박씨 가문의 절반 재산을 드릴게요.”“양도 계약서를 써서 주게나.”얼마 후, 박승준은 계약서를 들고 나타났다. 명진윤이 지장을 찍는 모습을 본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