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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무구
통화 종료음이 들렸지만 단미는 한동안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움직이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손을 내렸고, 생각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갔다.

그날 단미는 호건과 함께 지씨 집안 본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단미는 식사를 마친 뒤 2층 방으로 올라가 잠시 쉬었다.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우연히 거실에서 나누는 호건과 여동생 지윤희, 어머니 김혜정의 대화를 듣게 됐다.

“오빠, 딱 하나만 물어볼게.”

윤희가 호건을 바라봤다.

“새언니랑 채림 언니가 동시에 오빠 앞에 서 있어. 둘 중 한 사람만 아내로 골라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야?”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호건의 대답은 짧았다.

“채림.”

술장 뒤편에 서 있던 단미는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가슴 한가운데가 얼음물에 잠긴 듯 서늘해졌다.

“설마, 오빠가...”

윤희가 말을 잇기도 전에 호건의 핸드폰이 울렸다.

곧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그래. 지금 돌아가지.”

“회사에 일이 생겼어. 난 먼저 갈게. 나중에 새언니한테 전해줘.”

호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춰 서서 윤희에게 덧붙였다.

“아까 얘기한 건 새언니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 괜한 말 만들지 말고.”

윤희가 코웃음을 쳤다.

“진짜 최악이네.”

어둑한 곳에 숨어 있던 단미는 구두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듣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윤희의 한숨 섞인 말이 들렸다.

“오빠가 채림 언니를 고르면, 새언니는 대체 뭐가 되는데? 남들 웃음거리라도 되라는 거야?”

그 말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단미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하... 새언니 너무 억울하겠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김혜정이 차갑게 말했다.

“원래 호건이랑 결혼할 사람은 채림이었어. 단미는 운 좋게 빈자리에 들어온 거지. 우리 집 며느리가 된 것만으로도 과분한 줄 알아야지.”

“네 할머니가 단미를 손주며느리로 찍지 않았으면, 단미 집안 정도로 우리 집과 혼사를 논할 수나 있었겠니?”

“엄마도 채림 언니 편이야?”

김혜정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주씨 집안은 애초부터 우리와 혼담이 오가던 집안이야. 채림이 해외에서 돌아왔고, 네 오빠가 마음을 바꿔 채림이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난 반대할 생각 없다.”

윤희가 물었다.

“그럼 새언니는?”

“그건 단미가 자기 남편 마음 하나 못 얻은 탓이지.”

김혜정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묻어났다.

“결혼한 지 벌써 2년이야. 아직도 호건이 아이를 원하게 하지도 못했잖니? 단미가 계속 며느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난 대체 언제 손주를 보겠어?”

윤희가 숨을 들이켰다.

“오빠가 계속 아이를 미룬 게... 채림 언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새언니랑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려던 건 아니겠지?”

“그럴 수도 있지.”

김혜정은 태연했다.

“아이가 없으면 헤어질 때도 그편이 훨씬 깔끔하니까.”

단미는 그날 어떻게 그 집을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세 사람의 말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2년 동안 단미가 품고 있던 착각을 단번에 깨뜨렸다.

단미는 호건이 아무리 바쁘고 무뚝뚝해도, 함께 보낸 지난 2년 동안 자신을 조금쯤은 좋아하게 됐다고 믿었다.

그런데... 전부 단미 혼자만의 기대였다.

자기 마음을 상대의 마음으로 착각했을 뿐이었다.

‘윤희 말이 맞았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게 이렇게 우스운 일이었구나.’

단미는 애초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결혼 안으로 잘못 들어온 관계였다.

...

2년 전, 지호건과 주채림의 관계는 재계와 연예 매체가 앞다퉈 다룰 만큼 유명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호건은 채림을 위해 강울시 최대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거액을 투자했다.

개관식 날 채림은 무대에서 직접 준비한 창작 발레로 마음을 고백했고, 호건은 꽃다발을 들고 무대에 올라 화답했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장면은 한동안 화제가 됐고, 뒤이은 인터뷰에서는 양가가 결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까지 공개돼 도시 전체가 떠들썩했다.

주씨 집안은 지씨 집안만큼 오래된 재벌가는 아니었지만, 강울시에서 이름난 상류층 집안이었다.

조건만 놓고 보면 누구도 흠잡기 어려운 혼사였다.

그런데 결혼을 코앞에 둔 때, 채림이 돌연 호건을 두고 해외로 떠났다. 당시 집안을 이끌던 이영숙 명예회장은 크게 노했다.

그 무렵 지씨 집안의 실질적인 수장은 수십 년간 재계를 누빈 이영숙이었다.

호건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서 후계자로 길러졌다.

이영숙은 손자의 결혼과 동시에 JF그룹 경영권을 넘겨 차세대 총수로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혼사를 앞두고 주씨 집안 쪽에서 문제가 터지자, 이영숙은 미련 없이 혼처를 바꿔 버렸다.

단미는 아직도 자신이 왜 이영숙의 눈에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전까지 이영숙을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다만 김혜정의 말처럼, 그 혼사가 단미에게 뜻밖의 기회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날 이영숙은 단미에게 호건과 채림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고 말한 뒤, 호건과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호건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자기 할머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기에 단미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끝났고, 호건이 자신과의 결혼을 받아들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혼사를 받아들였다.

단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호건이라는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조건과는 상관없었다.

‘사랑은 결혼하고 나서도 만들어 갈 수 있어.’

단미는 그렇게 믿었다. 어차피 부부로서 평생을 함께할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작 2년 만에 현실은 단미의 기대를 잔인하게 깨뜨렸다.

호건이 자신과 결혼한 건... 채림이 결혼 직전 떠나버렸고, 그룹 승계를 앞둔 그에게 예정대로 혼인을 치를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호건에게는 혼인 상대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채림이 돌아왔다.

호건은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필요에 의해 선택된 단미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패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가 왜?’

‘왜 가만히 앉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버려질 날을 기다려야 해?’

...

그날 오후 단미는 결혼 전에 자기 명의로 마련해 둔 아파트로 갔다. 집을 정리하고, 이혼 뒤에는 그곳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저녁에 루아힐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자기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정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서만 접수하면 바로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협탁 맨 위 서랍을 열어 작은 소지품을 정리하던 단미는 초대장 한 장을 발견했다.

다음 날 열리는 대형 미술품 경매 초대장이었다.

강울시에서 꽤 규모가 큰 경매가 예정돼 있었다.

출품 목록에는 단미가 오래전부터 실물을 보고 싶어 하던 청화백자 한 점이 포함돼 있었다.

직접 낙찰받지 못하더라도 실물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최근 일주일 내내 이혼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경매 일정도 잊고 있었다.

...

다음 날.

단미는 아버지 윤정해의 전화를 받았다. 저녁을 먹으러 본가에 오라는 연락이었다.

단미는 정확히 식사 시간에 맞춰 윤씨 집안 저택에 도착했다.

거실에는 윤정해와 새어머니 박미영, 이모 집안에서 맡아 키우고 있는 이나경이 앉아 있었다.

단미가 늦게 나타났다고 생각한 박미영이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단미야, 아침부터 네 아버지가 전화했는데 왜 이제 와? 식구들이 다 너 기다리느라 밥도 못 먹었잖아.”

단미는 담담하게 답했다.

“기다리시라고 한 적 없는데요.”

박미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 그게 무슨 태도니?”

“제가 불편하시면 저는 지금 나가도 돼요.”

단미의 친어머니는 단미가 5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윤정해는 박미영과 재혼했고, 이듬해 두 사람 사이에서 윤민재가 태어났다.

새어머니가 들어온 뒤 아버지는 달라졌다. 그때부터 이곳은 이미 단미의 집이 아니었다.

이 집에서 단미의 처지는 부모를 모두 잃고 이모 집에 얹혀사는 나경보다도 못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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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100화

    이영숙은 직접 집게를 들어 버터간장 새우 한 점을 집어서 단미의 그릇에 올려 줬다.단미는 바로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쳤다.“감사합니다, 할머니.”요즘 단미는 기름진 음식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하지만 어른이 직접 덜어준 음식을 손도 대지 않는 건 예의에 맞지 않았다.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단미는 새우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진한 간장 양념에 버터와 기름 향까지 입안 가득 퍼졌다.윤희가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어때요, 새언니? 괜찮죠? 저 요즘 이거 제일 좋아해요.”좋은 걸 소개했다는 듯 눈이 반짝였다.단미는 억지로 삼켰다.곧바로 속이 뒤집힐 듯 울렁거렸다.하지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어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윤희에게 웃었다.“네, 맛있어요.”호건은 단미의 그릇에 담백한 연근 초무침을 조금 덜어줬다.그러면서 남아 있던 새우는 자연스럽게 자기 그릇으로 가져갔다.윤희가 바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호건은 태연했다.“나도 먹으면 안 돼?”윤희가 어이없다는 듯 테이블을 가리켰다.“저기 접시에 많이 있잖아. 왜 꼭 새언니 그릇에서 가져가?”이영숙이 윤희를 나무라는 척 웃었다.“얘는 그런 것도 모르니.”“네 오빠랑 새언니가 서로 살갑게 챙기는 거잖아.”단미는 속이 더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입술을 꽉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입을 열었다가는 그대로 토할 것 같았다.호건은 단미가 불편해하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받쳐 주며 낮게 물었다.“아직 배 안 고프면 조금 있다 먹을까?”그 말을 들은 이영숙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미간을 찌푸린 채 견디는 단미까지 확인하자 표정이 달라졌다.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이 밝아졌다.이영숙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혜정이 불만스럽게 말했다.“밥상에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안 먹겠다는 거니? 어른 앞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김혜정은 조금 전 채림 일 때문에 단미가 일부러 까다롭게 구는 거라고 생각했다.“욱...”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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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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