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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무구
예의를 갖추지 않은 건조한 단미의 태도에 박미영이 벌떡 일어났다.

“너 지금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만해!”

윤정해가 낮은 목소리로 끊었다.

“단미가 오랜만에 집에 왔잖아. 당신도 말 좀 줄여.”

면박을 당한 박미영의 표정이 굳었다.

나경은 분위기를 살피다가 얼른 일어나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모, 이모부 말씀이 맞아요. 언니도 오랜만에 왔는데 일단 밥부터 먹어요.”

윤정해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미 쪽으로 다가갔다. 목소리를 한결 누그러뜨렸다.

“단미야, 밥 먹자.”

두 사람이 식탁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나경은 박미영에게 바짝 붙어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이모, 이모부가 부탁할 일이 있으니까 저렇게 맞춰주는 거예요. 윤단미 같은 애랑 괜히 싸워서 뭐 해요?”

그 말을 듣자 박미영의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두 사람도 뒤이어 식탁에 앉았다.

가사도우미들이 내내 준비한 음식이 식탁 가득 올라왔다.

“단미야, 배고프지? 이것도 좀 먹어.”

윤정해가 유난히 다정한 얼굴로 고기 한 점을 단미의 그릇에 놓았다.

나경도 단미에게 억지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 오늘 음식은 이모부가 언니 온다고 주방에 특별히 부탁한 거래. 많이 먹어요.”

단미는 식탁을 한 번 훑었다. 음식은 풍성했지만 단미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중 두 가지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음식이었다.

윤정해가 그릇에 놓아준 고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단미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분이 축 가라앉아 있던 단미는 이제 와 부녀 사이가 다정한 척하는 연기에 장단을 맞출 마음이 없었다.

젓가락도 들지 않고 윤정해를 바라봤다.

“할 말 있다고 불렀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딸의 눈에 선명한 거리감을 본 윤정해의 표정이 잠시 어색해졌다. 이내 부드러운 얼굴을 꾸몄다.

“단미야, 지 서방이... 정말 며칠째 출장 중인 거냐?”

단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출장인지 아닌지는 본인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전화해 봤어. 며칠 동안 강울시에 없다고 하더라. 회사에도 두 번이나 찾아갔는데 비서실에서도 출장이라고 했고.”

“그래서 절 부른 이유가 호건 씨의 일정 확인하려는 거예요?”

윤정해의 표정이 굳는 걸 본 단미가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답해 드릴게요. 출장 간 거 맞아요.”

“할 말 끝났으면 전 갈게요.”

단미가 일어나려 하자 윤정해가 급히 붙잡았다.

“얘도 참. 네가 집에 온 게 얼마 만인데 밥 한 끼도 아빠랑 못 먹니?”

그 말에서 단미는 부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계산된 다정함만 보였다.

‘밥까지 먹으라고?’

다음 달에 조부모 묘소를 찾아가는 일을 상의하려는 줄 알았기 때문에 왔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이 집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일도 있어요?”

딱 필요한 말만 듣겠다는 태도였다. 목소리 어디에도 부녀 사이의 온기는 없었다.

분위기를 좀 풀어 놓고 본론을 꺼내려던 윤정해는 결국 바로 용건으로 들어갔다.

“JF그룹에서 추진하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연구 사업, 알고 있지?”

정부 지원을 받아 JF그룹이 주관 연구사로 선정된 대형 사업이었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성공하면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질 프로젝트였다.

협력사를 고르는 JF그룹의 기준은 까다로웠다.

윤정해는 자신이 호건의 장인이라는 관계를 내세워 몇 차례 호건에게 윤성산업을 참여시켜 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자기 힘으로 안 되자 딸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단미는 윤정해의 눈에 비친 욕심을 봤지만 이내 모르는 척 남의 일처럼 답했다.

“뉴스에서 본 적은 있어요.”

윤정해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강울시에서 가장 전망 좋은 사업이야. 우리 윤성산업이 여기 들어가기만 하면 3년 안에 회사 이익이나 기업가치가 몇 배는 뛸 수 있어.”

윤정해는 기대를 감추지 못한 채 단미를 바라봤다.

“너도 우리 회사가 잘되는 게 좋잖아.”

단미가 짧게 물었다.

“그래서요?”

“우린 지씨 집안과 사돈이잖니? 굳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회를 줄 필요가 있나? 네가 지 서방한테 얘기해서 우리 회사도 그 사업에 넣어 달라고 해봐.”

윤정해는 잠깐 말을 고르고 덧붙였다.

“지분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어. 참여만 하면 돼.”

단미는 단호했다.

“미안하지만 JF그룹 일은 제가 관여할 수도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처지도 아니에요.”

거절이 너무 빨랐다. 윤정해는 체면이 상했는지 입가의 웃음까지 사라졌다.

식탁 위에 몇 초간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언니, 아직 형부한테 말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해요?”

나경이 단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부부끼리는 둘만 있을 때 부탁하기 쉽잖아요. 형부한테 살짝 잘 말해 주면 될 수도 있죠.”

단미가 눈을 들어 나경을 바라봤다.

“JF그룹은 대기업이야. 누구에게나 같은 규정이 적용되고, 협력사 선정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내가 옆에서 몇 마디 한다고 결정되는 일이 아니야.”

마지막 문장에 힘을 주자 나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모욕감을 느낀 듯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

“그래?”

박미영이 비웃었다.

“그런데 주씨 집안의 그 따님은 해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 서방을 몇 번 만나더니, 주성그룹이 바로 그 사업 협력사 중 하나가 됐다고 하던데?”

채림의 이름이 나오자 단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미영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빈정거렸다.

“옆에서 부탁하는 게 안 통하는 게 아니라, 네 말만 안 통하는 거 아니니?”

윤정해가 날카롭게 박미영을 꾸짖었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틀린 말 했어? 단미가 무능한 거지. 주채림은 자기 원하는 대로 지 서방을 움직이는데, 얘는 못 하잖아...”

“그만하라고!”

윤정해가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 그제야 박미영이 입을 다물었다.

단미는 식탁 아래에서 손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맞아요. 주채림은 그 사람을 움직일 수 있지만 전 못 해요.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저 말고 주채림한테 부탁하세요.”

“단미야, 네 엄마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네가 지 서방의 아내잖아...”

“곧 아니게 돼요.”

단미가 조용히 윤정해의 말을 끊었다.

“그 사람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이혼할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 모두 단미를 쳐다봤다.

각자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윤정해에게서는 당황한 기색이 먼저 드러났다.

반대로 나경은 눈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박미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비웃었다.

윤정해가 다급하게 말했다.

“단미야, 네 엄마가 한 헛소리 때문에 이혼 같은 말까지 꺼내면 안 되지. 화가 나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화나서 하는 말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단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부탁, 저는 못 들어드려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

“집안 일 하나 도와주기 싫어서 이혼한다는 거짓말까지 하네.”

박미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단미야, 윤성산업 주식 너도 갖고 있잖아. 거기서 배당은 받으면서 왜 회사에 도움은 하나도 안 주겠다는 거야?”

단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

“제가 우리 엄마의 유일한 딸이고, 지금 가진 주식은 우리 엄마가 남겨 준 유산이니까요.”

“만약 제가 마음 바뀌어서 그 주식을 전부 팔아 버려도, 누구도 저에게 뭐라고 할 권리 없어요.”

“너...”

박미영은 분노로 표정이 굳었지만, 단미는 더 바라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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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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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이라고 믿었던 우리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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