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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질릴 때도 됐지

신유리가 서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 저녁 식사는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온 선물을 하인에게 건네주며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서준혁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서준혁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인기척에도 그는 단지 눈만 까딱할 뿐이었다.

서창범은 무척이나 엄숙했다. 그는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말했다. “왜 이제 왔어. 준혁이는 너 안 온다고 하더라.”

“차가 좀 막혀서요. 아저씨, 생신 축하드려요.” 신유리의 얼굴에는 아무런 빈틈도 없었다. 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서준혁의 옆에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그녀는 서준혁과 송지음이 연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모습에 순간 그녀의 눈빛이 얼어버렸다.

서준혁은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핸드폰을 다시 책상 위로 엎어놓았다.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안 올 줄 알았어.”

“네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녀가 대답했다.

그 말에 서준혁은 잠시 멈칫했다. “까먹었어.”

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비 올 것 같아서, 먼저 지음이 집에 데려다줬어. 어차피 너도 차 있으니까.”

“내 문자에 답장 안 했잖아.” 신유리는 시선을 내리깔며 눈 속에 담긴 생각을 숨겨버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전화도 안 받아서 난 너한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

송지음을 집에 데려다줬구나.

서창범의 생일, 저택에는 많은 친척들이 찾아왔다. 하정숙은 손님 응대하는 게 바빠서 신유리의 트집을 잡을 시간이 없었고, 신유리도 당연히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누군가 서준혁의 혼사에 관심을 가지는 말에, 하정숙은 그제야 딱히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쟤? 아직 멀었어.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친척은 이 상황이 조금 의아했다. “두 사람, 만난 지 꽤 오래된 거 아니야? 왜 아직도 확정이 안 된 건데?”

그들도 당연히 하정숙이 신유리를 성에 차지 않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리는 몇 년이나 서준혁의 옆에 있었고, 허창범도 두 사람 사이를 묵인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신유리가 서씨 집안에 시집오는 게 못 박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정숙은 그 말들이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손을 휘적이며 신유리를 옆으로 불렀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의미심장했다. “너랑 준혁이, 뭐 어떻게 되고 있는 거니?”

뭘 어떻게 말하겠는가.

하정숙은 송지음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신유리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르긴 해요. 저랑 준혁 씨 아직 젊잖아요. 저희 모두 아직은 일이 더 중요해요.”

하정숙과 말하는 건 편안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정숙의 은근한 조롱을 좀 더 들은 후에야 굳은 얼굴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아직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친척들이 하정숙을 타이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너무 잡지 마. 나중에 진짜 준혁이랑 결혼하게 되면 어떡하려고.”

하정숙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쟤는 준혁이랑 결혼 못 해.”

그 말에 신유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곧이어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거실 쪽에 있는 다른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마자 서준혁이 누군가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 나 혼자야.”

신유리는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막 발걸음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송지음은 이미 그녀를 발견했는지 작게 소리를 질렀다. 신유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서준혁은 고개를 돌렸고, 그의 차갑고 담담한 눈동자가 그녀의 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우리 말 훔쳐 들었어?”

신유리는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그의 말에 대답했다. “무심결에.”

말을 끝낸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번에 잡았다.

서준혁은 검은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 신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못 들었어.”

서준혁의 눈동자는 그제야 아래로 내려갔다. 곧이어 그의 시선은 여자의 오른 쪽 손목에 있는 팔찌에 멈추게 되었다.

그의 눈썹이 들썩였다. “왜 아직도 끼고 있어?”

그 말에 신유리는 손목을 확인했다. “습관이야.”

이 팔찌는 대학교 때 서준혁이 그녀에게 선물한 팔찌였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신유리는 그것을 줄곧 끼고 있었다.

잠시 후, 서준혁은 그녀의 팔을 놓아주며 말했다. “몇 년인데, 이제 질릴 때도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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