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빈은 시후와 은서보다 조금 더 일찍 이곳에 도착했다. 여빈은 사촌 동생과 이미 30분 가까이 썰매를 탔고, 조금 쉬려고 할 때쯤 은서와 손을 잡고 걸어오는 시후를 목격했던 것이다..!물론 시후의 손을 잡고 있는 은서는 두꺼운 마스크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귀여운 토끼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시후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여빈은 시후를 매일 생각하며 떠올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시후가 이 호숫가로 다가오자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순간.. 여빈은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시후 씨가 어떻게.. 처음 보는 여성과 손을 잡고 같이 놀고 있는 거야..?! 게다가 이렇게 친하기까지 하고..?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만약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시후 씨는 유나와도 이 정도로 가깝게 지낸 적이 없었다고..! 그렇다면.. 설마.. 설마.. 시후 씨가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야?! 나는 줄곧 시후 씨에게 내 마음을 표현했고, 그 때마다 시후 씨는 늘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거절했어.. 그러니까, 난 그냥 유나에 대한 예의 때문에 날 거절한 건 줄 알았는데.. 그런데 여기서 젊은 여자랑 손잡고 놀고 있어??!’비록 여빈은 은서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은서의 몸매와 군데군데 비치는 뽀얀 피부만 보아도 분명 미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고사하고 유나 역시 비비지 못할 정도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빈의 기분은 갑자기 저 아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낙담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어쩐지.. 시후 씨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려 했던 게, 알고 보니 새 애인이 생겨서 그런 거였어..’여빈의 사촌 여동생은 여빈이 갑자기 얼어붙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물었다. "여빈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여빈은 정신을 차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멍해져서 그래..”라고 답했다.사촌 여동생은 빙그레
이때 시후는 여빈의 시선이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어린 시절 매우 좋아했던 썰매 타기를 다시 할 수 있어 너무나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누구나 동심을 갖고 있으며 시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한창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스케이트를 신고 있던 한 아이가 점점 빠른 속도로 시후와 은서를 향해 달려왔다..! 이 아이는 스케이트를 처음 타서 그런지 방향을 컨트롤하지 못했고, 은서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은서를 향해 금방이라도 부딪힐 것 같은 태세로 다가왔다. 은서와 충돌하기 직전.. 아이는 스스로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은서는 너무나도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아이는 10대 초반으로 보였고, 40kg 정도 되어 보였지만 사실 속도가 빨라지면 부딪혔을 때 충격은 만만치 않기에 위험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바로 아이가 신고 있는 스케이트의 날카로운 날이다. 스케이트 날은 원래 굉장히 날카롭기에, 사람을 찌르거나 벤다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이 광경을 목격한 시후는 급히 썰매에서 뛰어내린 뒤 은서를 품에 안고 사고가 날 뻔한 자리에서 반 바퀴를 휙 돌았다.하지만, 그 아이가 시후가 뛰어내린 썰매에 부딪힐 것 같자 시후는 아이가 다치는 것을 막으려고 썰매를 발로 찼고, 썰매는 다른 방향으로 ‘휙’하고 튀어 나갔다.아이는 스케이트를 탄 경험도 별로 없었고, 이런 긴급 상황에서 대응 능력도 별로 없어서 썰매에 부딪힐 것을 예감하고는 겁에 질려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시후에 의해 튕겨 나간 썰매 때문에 아이는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돌진했고, 장애물이 사라졌기에 속도는 이전보다 더 빨라졌다..!시후와 은서가 마침 아이와의 충돌을 피했기에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아이가 통제 불능 상태로 직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던 여빈은 시후가 뜻밖
절체절명의 순간에, 시후는 품에 안고 있던 은서를 내려놓고 빠르게 아이를 뒤쫓아, 여빈과 충돌하기 1초 전에 아이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여빈이 눈을 떴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통제 불능의 소녀를 막아 세운 것이 시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 편으로는 화가 났다. 기쁜 점은 바로 자신이 위험할 때는 늘 시후가 백마 탄 왕자처럼 자신의 앞에 나타나 모든 위험을 막아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화가 나는 건, 이렇게 오랫동안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그의 연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시후는 계속해서 자신을 거절했고 지금까지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후가 안성에서 몰래 애인을 만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시후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앞에 여빈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모두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면 아이가 다칠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은 시간이 지나면 완쾌될 수 있지만, 아이는 아마도 입원 치료가 필요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행히도 아이는 겁만 먹었을 뿐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다..!소녀는 눈을 가린 손을 내린 뒤, 시후가 자신을 구해주었고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시후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를 빙판 위에 올려놓고 “그럼, 앞으로 스케이트를 탈 때 천천히 타도록 해~ 알았지?”라고 말했다.소녀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마워요 아저씨~ 알겠어요.." 말을 마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시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빠이빠이~~”시후는 아이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은서를 찾으러 돌아가려는데, 문득 낯익은 얼굴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시후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권여빈 씨?! 왜 여기 있어요?"여빈은 일부러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왜요?
은서가 마스크를 벗은 이유는 지금 이 여성이 시후의 지인이므로, 자신을 시후의 친구로 보든 시후의 20년 된 약혼녀로 보든 간에 최소한의 존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행동은 여빈을 벼락 맞은 듯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는 은서의 아름답고 친숙한 얼굴을 보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을 고은서라고 칭한 눈앞의 여성은 국내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 ‘혜리’였기 때문이다..! 전국의 팬들과 할리우드까지 사로잡은 그 대스타 혜리..!! 그녀는 자신의 집안 배경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배우 ‘혜리’의 집안 배경을 잘 모르고 있었고, Koreana 그룹의 고선우 회장의 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빈은 재벌가의 딸이기 때문에, 은서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순간, 여빈은 자신의 세계관 전체가 뒤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후 씨가 어떻게 고은서 같은 아름다운 여자와 알고 있는 거지..? 게다가 두 사람은 손까지 잡고 썰매를 타질 않나.. 그리고 위급한 순간에 공주를 구하는 왕자처럼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구하지 않았던가..?’세상에..! 자신과 고은서의 차이는 정말 너무나도 컸다..! 고은서는 안성 바닥에서 굉장히 유명한 여성이었다. 비록 그녀의 집안은 최정상에는 못 미치지만, LCS 그룹과 엘에이치 그룹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서의 외형, 성격, 재능, 지명도는 LCS 그룹과 엘에이치 그룹의 딸들보다는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고은서와 견줄 만한 아가씨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은서는 한국 재벌가의 여성 자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여빈은 너무나도 놀라웠고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왜? 시후 씨가 어째서 고은서 같은 최고의 여자와 함께 있지?’ 여빈은 아직도 충격에 휩싸여 있었고, 그녀의 사촌 여동생은 깜짝 놀라 입을 가리고 "와, 정말 혜.. 혜리 언니..?"라고 외쳤다.은서는 급히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웃으
사실 유나와 마찬가지로 여빈 역시도 혜리의 팬이기도 했다. 아마도 시후가 여기 없었다면 벌써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다가갔을 것이다. 그래서 여빈은 "시후 씨, 어떻게 이 톱스타 혜리와 알게 된 거예요??”라며 물었다.시후는 한동안 여빈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자신이 은서를 자신이 풍수를 봐주는 고객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면, 자신이 고객과 손을 잡고 썰매를 타고 있는 것이 분명 상식에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은서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라고 하면 금방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여빈에게 시후는 늘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고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만 살던 고아가 어떻게 이런 유명한 재벌가의 아가씨를 알 수 있는 거야? 이건 분명히 상식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후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한, 이 일을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가 망설이는 사이.. 은서가 대신 대답을 해버렸다. "시후 오빠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여빈은 이 말을 듣자마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조금 뒤, 바로 의심이 들었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시후 씨는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살았고, 18세에 복지원을 나온 후 그는 막노동 판에서 일을 하다가 유나의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했어.. 유나의 할아버지는 시후 씨가 서울대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셨고, 졸업한 뒤 바로 유나와 결혼했는데.. 그런 시후 씨가 어떻게 Koreana 그룹의 아가씨를 알 시간이 있었겠어..? 그리고 두 사람은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나잖아..? 아니면 혹시.. 시후 씨에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건가..? 그것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이것 하나뿐인 것 같아..’ 그래서 여빈은 무의식적으로 은서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시후 씨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거예요?? 시후 씨는 보육원에서 오랫동안 지내지 않았던가요?”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
원래 여빈은 시후의 말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 시후의 말을 들으니 여빈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의혹들까지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여빈이 유나에게 듣기로, 서울 대학교를 다닐 때 시후가 학교에서 온갖 멸시를 당했고, 같은 동기들 중에 시후보다 가난한 학생 조차도 그를 무시했다고 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남들의 시선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더욱이 다른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거나, 다투지도 않았기 때문에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그러니 이런 시후의 성격상 연예인 ‘혜리’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시후가 말을 한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 여빈은 오히려 시후가 존경스러워졌다. Koreana 그룹 구성원과 지인인데다, 고은서와 친하면서도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지언정 결코 이 인맥을 자랑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여빈은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조금 전 시후가 은서가 너무나 다정하게 보였기에,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후에게 "시후 씨, 그런데 유나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예요?”라고 물었다.시후는 웃으며 물었다. "구현탕이라고.. 이번에 새로 나온 제품.. 알아요?""알죠?" 여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전 대박쳤다던.. 효과 만점인 그 약 아니에요? 아참, 혜리 씨가 광고 모델이잖아요?”그러자 시후는 또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구현탕의 제조사가 구현제약이라는 걸 알아요?”여빈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죠?”"얼마 전 은서가 광고 촬영 차 서울에 왔을 때, 유나 씨와 함께 저녁 식사도 했어요. 은서가 공인이기 때문에 이 일을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던 겁니다.” 시후는 예전에 은서와 식사한 일에 대해 여빈에게 알려주었다."
시후는 여빈이 자신의 말을 믿자 입을 열었다. "여빈 씨, 그럼 시간이 늦었으니 우리 먼저 갈게요. 내일 공항에서 봐요.”여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생각난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방금 또 한 번 절 구해줬어요!”시후는 웃음지었다. "하하.. 당신이 아니라 그 소녀를 구했죠! 정말 부딪혔다면, 당신은 별 문제가 없었어도 그 소녀는 조금 위험했을지도..?”여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 "흥!! 그래도 고마워요!"시후는 어쩔 수 없이 웃음 지었다. "됐어요. 그럼 우리 가야 해서요.. 아무튼 유나 씨에게는 이 일은 비밀로 부쳐줘요~”여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말 안 할게요~ 그럼 우리도 가야 해서요~” 여빈과 사촌 여동생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시후와 은서는 조금 전 전원 주택에 차를 세워 두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서로 달랐다. 네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여빈이 돌아간 뒤, 시후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오늘 이 일은 겨우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시후와 은서가 몸을 돌려 수십 미터를 걸어간 뒤에야 은서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시후 오빠, 왜 계속 신분을 숨기는 거야??? 신분을 밝히면 사람들이 오빠를 무시할 일이 없잖아!!”시후는 살짝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내가 부모님을 따라 그룹을 떠난 뒤에 솔직히 말해서 평범한 고아나 다름없었어. 그런데 내 신분을 밝히면 어떻겠어? 아마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걸?”은서는 또 다시 물었다. "그럼 아저씨랑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그룹에 연락해서 오빠를 데리러 오라고 할 수 있잖아!"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LCS 그룹의 상황은 당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어. 더구나 우리 부모님은 LCS 그룹의 요구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반기를 들었기에 그룹을 떠나신 거야. 그리고 나는 비록 어렸지만 그들의 핏줄이 흐르고 있고.. 그러니 어떻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내 발로 LCS 그
박상철에 대해 시후는 딱히 경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박상철이 자신에게 결코 악의가 없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진화 보육원에서 무사히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박상철이 암암리에 자신을 보호한 덕분이므로.. 그러니 박상철이 나쁜 생각을 먹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박상철 집사는 또한 시후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는 박상철과 연락해서 부모님의 일을 자세하게 물어볼 생각이었다.그 시각, 박상철은 지금 LCS 그룹에 있었다.LCS 그룹의 고위급 간부 회의실에는 LCS 그룹의 모든 자녀들이 가족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은 회장, 즉 시후의 할아버지, 은충환이었다.LCS 그룹의 자녀 20여 명이 회의실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다들 모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은 회장은 "어제 전해 듣기로.. 어르신이 구름산에서 바로 공항으로 가셨다고 하던데.. 내가 마지막을 보지 못해 굉장히 안타까워..!"라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시후의 큰 아버지 은정공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럼.. 어르신이 고향으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이렇게 회의를 여신 겁니까?”은충환은 손을 저었다. "아니야.. 어르신이 일찍이 나에게 말했던 건, 그가 구름산 건설이 완료된 후에도 국내에 머물게 되는 것은 자신만의 인연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했어. 이제 그가 떠난 건 이미 오랫동안 기다려온 인연을 얻은 것이 틀림없다.”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후의 동년배 사촌이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오늘 이렇게 오라고 하신 건..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겠죠..?”지난 번에도 은 회장은 LCS 그룹의 직계 자손들을 모두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상들의 묘소를 옮기기로 결정할 때였다. LCS 그룹은 이미 규모가 굉장히 커졌기 때문에 각자가 부서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으니,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모두를 모으기 힘
안산의 갑작스러운 분노 섞인 외침에 Samson 그룹 삼형제는 일제히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모두가 이미 같은 결론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인 안산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안태풍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저 자들이 우리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2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우리를 노린 거죠?”안재남도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집안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큰 잘못을 저지른 일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동안 우리 집안의 자산 대부분은 당시 엔젤투자에서 비롯됐고, 게다가 누나는 실리콘밸리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던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우리와 그렇게 원한 관계에 있다는 거죠?”안충주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걸 수도 있지.”안재남이 물었다. “형 말은... 돈을 노린 다는 거야?”“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안충주가 말했다. “하지만 저들이 이토록 정교하고 집요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단순한 증오심이나 원한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그러자 안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굳이 우리 전부를 죽일 필요는 없지 않겠니? 요즘은 대부분 자산을 디지털 형식으로 가지고 있기에 은행 계좌나 증권 계좌, 신탁 계좌에 숫자로만 남아 있다. 그러니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그 자산이 그들 손에 들어가는 건 아닐 것 아니냐!”안충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네 사람은 곧 깊은 침묵에 빠졌다.그때, 막내딸 안유진이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말했다. “아버지, 배유현 회장이 조금 뒤에 찾아 뵙고 싶다고 전화가 왔는데요.”“배유현...?” 안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배유현 회장이 누구냐?”안충주가 얼른 말했다. “아버지, 또 잊으신 거 아니죠? 아침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사건을
그 순간, 안태풍, 안충주, 그리고 안산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안태풍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너는 권아현을 만났고... 권아현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네 곁에서 무려 19년 동안 숨어 지냈어... 우리를 죽이려 한 자들과 누나가 그 해에 죽었던 일은 분명 관련이 있는 거야!”안산은 경악하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은 예선이와 은 서방을 죽이고도 모자라, 재남이 곁에 무려 19년이나 묵혀 놓은 시한폭탄을 이번에 터뜨린 셈이군... 대체 이 놈들은 뭘 노리고 있는 거지?! 만약 우리 집안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면, 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거냐고?”“그러게 말입니다...” 장남 안충주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면, 뭔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 때 진작에 손을 썼겠죠.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을 텐데...”안산이 말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자들이 우리에게 대체 얼마나 큰 복수심을 품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큰 판을 벌이는 건지 말이야...”안재남은 참다 못해 말했다. “아버지, 형님들... 꼭 제 아내를 19년 전에 그 조직에서 일부러 저에게 심어놓은 인물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중간에 회유되었거나,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그럴 리 없어.” 안충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네 아내가 중간에 회유된 것이라면, 그 집안 가족들 역시 그때 함께 배신했겠지. 그런데 그 집안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런 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잖아. 그러니 나는 오히려 권아현과 그 일가 전체가 애초부터 철저하게 설계된 함정이라고 판단한다.”안태풍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이어서 안재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재남아, 너와 권아현이 처음 만났을 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겠어?”안재남은 말했다. “그 당시 내가 석사 2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아내는 막 석사에 입학했었지. 신입
유럽과 미국에서는 가족 신탁 상품이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자산 보호 방식으로 여겨진다.한국에는 ‘부자는 삼대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부모 세대가 어렵게 일군 부를 자손 세대가 사치스러워 함부로 낭비하고, 눈은 높지만 능력은 부족하여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쉽게 가족의 파산으로 이어지고, 하룻밤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자손 세대의 능력과 인품이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단 능력이나 인격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가문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인재 외에도 천재지변 같은 변수도 존재한다.그러나 가족 신탁은 이러한 인재와 천재지변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먼저 자신의 자산을 신탁에 넣는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조차 해당 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자산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자녀나 지정된 상속인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훗날 중대한 문제가 생겨 가문이 빚더미에 앉게 되거나 파산을 하게 되더라도, 이 가족 신탁은 정부나 채권자에 의해 임의로 처분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유럽과 미국에 있는 유서 깊은 가문들이 여러 세대, 심지어는 수십 세대에 걸쳐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것이다.비록 권아현 집안 식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지만, 그들의 자산은 이미 모두 가족 신탁으로 옮겨졌다. 이는 더없이 안전한 보관 방식으로, 권아현의 집안 식구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기업 운영에는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길 걱정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돈은 신탁에 들어가 있는 이상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 정부조차 이 자산에는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이런 행동은 곧 권아현 집안 식구들, 혹은 그들 뒤에 있는 그 미스터리한 조직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은 바로 잠적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인 전략적 후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 외가 식구들은 나를 만났고, 내가 부른 사람들이 당신을 데려갔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러니 당신과 외가 식구들이 다시 만났을 때,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알약 하나를 먹인 뒤 당신을 구했다고만 알려주고, 이후 배유현 양에게 당신을 그들에게 데려다 주라고 했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하시고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살린 사람과 자신들을 살린 사람을 연결 지으려 할 거고, 그 뒤는 외가 식구들이 스스로 추측하게 내버려 두면 됩니다.”“알겠습니다, 도련님!” 제이크 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배유현을 불러들였다. “배유현 씨, 헬기를 좀 준비해주시고, 제이크 한 경감을 맨해튼의 AB 빌딩까지 모셔다 드리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내 외삼촌께 연락을 드려 방문 의사를 전해주시고요. 그 날 그들을 구한 후 현장을 수습한 사람은 배유현 씨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배유현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바로 Samson 그룹 측에 연락하겠습니다.”......같은 시각, 맨해튼 AB 빌딩.Samson 그룹은 함께 모여 회의를 열고는 최근 각종 정세를 종합하여 토론하고 있었다. 안산은 최근 알츠하이머 증상이 계속 악화되고 있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와 자식들은 그에게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오랫동안 설명해주곤 했다. 다행히도 안산은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인물이라, 그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의 설명을 들으면 곧바로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 날 암살 사건이 발생한 이후, Samson 그룹 사람들은 줄곧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가족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안산은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들은 제이크 한은 매우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전의 경력 때문에 블랙 드래곤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영구 거점을 건설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용병 조직에게 있어 영구 거점을 보유한다는 것은, 단번에 다른 용병 조직들에 비해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병이라는 존재는, 이화룡이 거느리는 조폭들에 비해 각국 사법기관이 훨씬 더 경계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용병 조직은 세계 각국에서 길거리의 쥐와 같은 존재로 비밀리에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직 정부와 깊이 협력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절대로 대놓고 간판을 걸고 활동하지 못한다.물론 미국에도 용병 조직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백악관과 협력하며 그들의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은밀히 활동할 수밖에 없다. 용병 조직의 대다수는 미국 퇴역 군인 출신으로, 본국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개개인으로 위장 생활을 하다가 해외에서 임무를 수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한 용병 조직은 100명 남짓한 구성원들에 불과한데 그들은 평소 각자 합법적인 직업과 신분으로 위장하여 일반 시민처럼 지내다가 임무가 떨어지면 관광객을 가장해 출국을 한다. 비록 이들이 본국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무장 전투 요원이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용병 조직의 성장이 제한되는 것이다.하지만 용병 조직이 대놓고 합법적인 영구 거점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블랙 드래곤이 시리아와 협력했을 당시 미국 CIA는 그 이유를 조사했는데, 조직이 시리아에서 너무 빨리 성장하는 걸 우려해 개입까지 시도했었다. 하지만 시리아는 블랙 드래곤과의 협력을 고수했고, 그 뒤에는 시리아 내 영향력 있는 반정부 인사 하미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
시후가 말했다. “예전에 아버지 측근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바로 이런 암살자들의 습격 때문이었다고요. 그들은 임무를 마치자마자 입 안의 독약을 깨물고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들었는데... 이번 사건에서 만난 자들과 방식이 동일했습니다. 비록 두 사건 모두 20년 전 일이긴 하지만, 상대가 수백 년 동안 존재했던 조직이라면, 같은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제이크 한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시후 도련님, 그렇다면 조직이 이미 수백 년이나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시후는 대답했다. “내가 한 명을 생포한 한 명에게서 죽음의 전사들이라는 암살자에 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리곤 당시 ‘547’이라는 자로부터 들었던 내용을 모두 제이크 한에게 이야기해 주었다.그 이야기를 들은 제이크 한은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세상에 많은 나라들이 사라졌고, 수많은 전쟁과 재난을 겪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고, 유럽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아시아 역시 아편 전쟁, 러일 전쟁 등을 겪었고, 미국은 남북전쟁까지 겪었죠. 지난 2~300년 동안 이 세계는 혼돈 그 자체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비밀 조직이 존재해 왔다니, 대체 어떻게 그들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게 가장 궁금한 부분입니다. 그 조직은 단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수세기 동안 세력을 키워온 것 같더군요. 말씀하신 그 모든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는 무관하게요. 난 그게 오히려 더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곤 시후는 제이크 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의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조직에서 당신을 본 사람은 내가 일부러 생포했던 그 한 명 외에는 모두 죽었고, 당신이 그날 현장에 나타난 것도 계획된 게 아니라 우연이었으니, 그 조직은 당신을 주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오랜
제이크 한도 자신이 이렇게 물이 빠진 수조에 그냥 앉아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뭔가 창피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는 난처한 듯 물었다. "그... 갈아입을 옷이 좀 있을까요...?"시후는 옆에 있는 배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유현 씨, 제이크 한 경감의 옷 좀 챙겨 주시겠어요?"배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말했다. "이곳에는 연구원들의 작업복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 가져다 드릴게요!"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배유현은 곧장 돌아가 작업복 한 벌을 들고 돌아왔고, 제이크 한은 옷을 걸친 후 시후와 함께 옆쪽에 마련된 휴게실로 이동했다.시후가 제이크 한에게 물 한 병을 건네자, 그는 받자마자 단숨에 물을 다 마시고는 입가를 닦으며 결심한 듯 말했다. "시... 시후 도련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는 한지만,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이상 앞으로 시후 도련님께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무슨 일이든 목숨 걸고 따르겠습니다!"그러자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갖춰 답했다. "마침 잘 됐네요. 내가 부탁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제이크 한은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말씀만 하십시오!"시후는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럼 내가 요청하고 싶은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당신이 여기서 나간 이후엔, 나를 봤다는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Samson 그룹 사람들이 묻는다면, 당신은 이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냥 페이셔스 그룹의 냉동센터에서 깨어난 뒤 나왔다고만 하세요."제이크 한은 놀라며 물었다. "시후 도련님, Samson 그룹 식구들을 구해 주셨는데 왜 아직 서로 만나려고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그러자 시후는 담담히 말했다. "그건 내가 곧 말하려는 두 번째 이유와 관련 있어서... 조금만 기다리세요."제이크 한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이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만약 Sams
시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호, 당신도 회춘단 얘기를 들은 적 있군? 내 큰 외삼촌에게 들은 거지?”“큰 외삼촌...” 제이크 한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곧 시후가 자신이 막 깨어났을 때 그가 안충주의 조카라고 소개했던 걸 떠올리며, 갑자기 깨달은 듯 말했다. “그래, 충주가 분명 내게 얘기했었지...”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외삼촌이 회춘단 얘기까지 꺼냈다면, 경매장에서 쫓겨난 얘기도 같이 했을 텐데?”제이크 한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라 말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 회춘단도, 지금 얘기한 중소단도 다 내가 소유자니까. 그 경매도 내가 주최한 것이고, 당시 그 자리에서 내가 직접 외삼촌을 쫓아내기도 했거든.”제이크 한은 경악하며 물었다. “그 사람이 네 외삼촌인 걸 알면서도 쫓아낸 거라고?!”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쫓아낼 땐, 외삼촌의 정체를 내가 몰랐어. 그땐 외삼촌이 가명을 쓰셨으니까.” 그러고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설령 내가 외삼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해도, 역시 쫓아냈을 거야. 왜냐하면 외삼촌은 내가 정한 규칙을 어기려 했기 때문이야. 경매 시작 전에 분명히 말했지. 회춘단은 누구든 낙찰 받으면 현장에서 즉시 복용해야 하며, 절대 외부 반출이 안 된다고. 그런데 외삼촌은 돈으로 그 규칙을 깨려고 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를 내쫓은 거지.”제이크 한은 조용히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난 정말 안 죽은 거란 말인가...?”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네가 정말 안예선의 아들이라면, 자신의 출신을 알고 있으면서, 왜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외가 쪽 가족들과 만나지 않은 거야?”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당신은 지금도 내 정체를 의심하는 건가?”제이크 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의심이라기보다... 난 그냥 이 모든 게 너무 이상해 보이
시후의 말은 제이크 한을 한순간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가설이, 지금 이 순간 서로 모순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만약 지금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면, 총에 맞아 벌집이 됐던 자신의 몸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지금 이 모든 게 단지 의식 속에 있던 환상이라면,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 된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뇌가 어떻게 뇌사 판정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는가...?인간의 몸은 일정 시간 동안 혈액 공급을 받지 않았을 때, 대뇌는 최대 5분 밖에 버티지 못하는데, 그 당시 상황으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의식을 보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시후는 제이크 한이 계속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말해주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잠시 멈추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당신이 총을 맞았을 때, 나는 내 방식으로 당신이 뇌사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 두었어. 그래서 이곳까지 무사히 옮겨 냉동할 수 있었지.”제이크 한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 방식? 무슨 방식을 쓴 거야?”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당신이 굳이 알 필요는 없고.”제이크 한은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입은 부상들은? 설령 네가 내 뇌를 살렸다고 쳐도, 내 몸은 어떻게 된 거야?”시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중소단 덕분이지. 이 약의 약효는 매우 간단해. 당신의 신체가 어떠한 손상을 입었든 간에, 완전히 재구성, 즉 회복하게 해준다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이 직접 확인해 봐. 몸에 상처 자국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지.”제이크 한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저온 보호복을 찢고, 고개를 숙여 가슴을 들여다봤다. 그런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가슴에는 상처는커녕 흉터 하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