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호텔을 나온 서연은 차에 타자마자 민지수에게 시우의 등원 사진과 유치원 정보가 외부에 퍼졌는지부터 확인하라고 했다.
“친자 얘기는 직원들한테도 하지 마. 오늘 로비에 있던 사람들한테는 고객과 대표가 개인적인 언쟁을 했다고만 설명해.”
“차 회장님이 검사 결과를 들고 왔는데도요?”
“그 검사는 내 동의도, 시우 동의도 없이 한 거야. 결과가 맞다고 절차까지 괜찮아지는 건 아니야.”
지수는 곧바로 루미에르의 고객정보 열람 권한을 잠갔다. 시우가 사무실에 온 날 촬영된 보안영상은 별도 저장하고, 외부 문의에는 답하지 않기로 했다.
서연은 차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놀란 기색이 아직 남아 있었다.
도진이 진실을 알아버린 순간을 여러 번 상상한 적이 있었다.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빼앗으려 들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 그런데 막상 그의 입에서 ‘내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5년 동안 자신이 만든 생활 안으로 태강이라는 이름이 다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갈까요?”
지수가 물었다.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회사로 가. 내일 리허설 일정부터 다시 볼 거야.”
“오늘 같은 일이 있었는데 계속 진행하게요?”
“내가 계약을 깨면 윤세아 이사 결혼식과 우리 직원들 일이 같이 무너져. 개인 일과 계약 해지는 따로 판단해야 해.”
루미에르에 도착하자 거래처 두 곳에서 연락이 와 있었다. 태강문화재단 쪽 행사와 협력하면 향후 계약이 어렵다는 경고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서연은 전화를 스피커로 돌리지 않고 담당자 말을 끝까지 들었다.
“누가 연락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 문화재단 의전팀이라고만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도 거래가 걸려 있어서요.
“이해합니다. 계약 해지 여부는 공문으로 보내주세요. 이미 제작한 물량과 환불 가능한 항목은 따로 정산하겠습니다.”
억울하다고 붙잡지 않았다. 대신 통화 시각과 발신번호를 기록해 변호사에게 넘겼다.
그사이 호텔 로비에 남은 도진은 강태욱 실장에게 같은 자료를 요구하고 있었다.
“병원 기록과 루미에르 공격 경로를 공식 절차로 확인해.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빼오면 그 자료는 받지 않겠다.”
강 실장은 잠깐 망설였다.
“차명희 이사장 측이 관련돼 있다면 그룹 내부에서 먼저 정리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자료가 확인되면 외부 변호사에게 넘겨. 가족 일이라고 기록을 없애지 마.”
도진은 손에 들고 있던 친자 검사 결과를 접었다. 숫자는 시우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만 보여줬다. 아버지로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아이가 자신을 만나고 싶은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서연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췄다. 조금 전 그녀는 분명히 더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대신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제 행동과 검사 절차에 관해서는 변호사를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직접 찾아가지 않겠습니다.]
서연은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오후 회의에서 그녀는 직원들에게 거래처 연락 상황을 숨기지 않았다. 취소가 들어오면 계약서에 따라 처리하고, 기자나 태강 관계자가 시우를 물으면 대표에게도 연결하지 말라고 했다.
“대표님, 이 결혼식을 계속 맡는 게 맞습니까?”
최은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계속한다. 다만 직원 안전이나 고객정보가 위험해지면 그때 멈출 거야. 기준은 내가 혼자 정하지 않고 법무팀과 같이 확인할게.”
서연은 강행을 용기처럼 포장하지 않았다. 멈출 수 있는 조건까지 정한 뒤에야 다음 날 동선을 점검했다.
밤이 되자 강 실장이 도진에게 첫 보고서를 보냈다. 루미에르 거래처에 연락한 번호는 문화재단 의전팀에서 사용한 회선이었다. 5년 전 이혼 자료를 보관한 법무팀 직원 이름도 같은 문서에 나왔다.
도진은 보고서를 언론에 흘리거나 서연에게 직접 보내지 않았다. 외부 변호사에게 원본 보존을 맡긴 뒤 차명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본가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는 서연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우리를 버린 거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조작이 드러나도 자신이 듣지 않은 선택은 남았다.
차가 성북동 저택 앞에 멈췄다. 도진은 젖은 서류봉투를 들고 문 앞에 섰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말을 끊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부터 확인할 차례였다.
“예산은 내가 더 내면 돼요. 그런데 며느릿감이 싫다네요.”배정숙은 서연이 앉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민의 예산 노트는 이미 신랑 민재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하객 500명은 받아야죠. 민재 아버지 아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 풀밭에서 몇 명 앉혀놓고 끝내면 누가 책임져요?”“어머니, 풀밭이 아니라 실내도 있는 하우스홀이에요.”“그게 그거지. 호텔 놔두고 왜 그런 데를 가?”소민은 끝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손을 내려놨다. 민재가 어머니에게 찻잔을 권했다.“엄마, 일단 말씀 들어봐요. 한 대표님 오셨잖아요.”소민에게는 조금만 참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서연은 노트를 자기 앞으로 당기지 않고 소민 앞에 다시 놓아줬다.“두 분이 정한 예산은 2,500만 원 맞으세요?”“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하려고요.”소민이 대답하자 배정숙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얼마든지 더 낸다니까요. 1억이든 2억이든, 제대로 된 데로 잡아줘요. 우리 쪽 손님만 400명은 올 거예요.”민재가 말없이 카드를 봤다. 소민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서연은 카드 대신 노트 첫 장을 폈다.대관과 식사, 드레스, 촬영. 각 항목 옆에는 두 사람이 문의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지운 숫자 아래로 다른 숫자를 덧쓴 자국도 보였다.“이 식사 비용은 몇 분 기준이에요?”“200명이요. 저희가 각자 100명씩 부르기로 했어요.”“왜 네가 인원을 정해?”배정숙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연이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빠, 이거 타면 안 돼.”“안 태워. 타이머 맞췄어.”“아까 소시지는 터졌잖아.”“그건 속이 너무 꽉 차서.”“또 핑계.”서연은 채소 바구니를 들고 펜션 테라스로 나오다 웃었다. 도진은 시우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게를 들고 있었다. 석쇠 위에서 새우 껍질이 빨갛게 익었다.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출발하느라 도착했을 때는 바다가 어두워져 있었다. 시우는 차에서 졸다가 짐을 내릴 때 다시 눈을 떴다. 내일 공룡을 보러 가기 전까지 잠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식탁에 앉고부터는 하품을 숨기지 못했다.“숯을 좀 옆으로 빼봐요. 불이 너무 세잖아요.”“감독이 둘이네.”“말 안 들으면 집게 압수예요.”도진이 집게를 든 손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 시우가 까르르 웃다가 새우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골랐다. 서연은 뜨거운 껍질을 벗겨 식힌 뒤 아이 접시에 놓았다.“아빠 것도 해줘.”“아빠는 손이 있잖아.”“아빠 손은 집게 잡았잖아.”도진이 기다렸다는 듯 서연을 봤다. 서연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새우를 하나 더 깠다. 접시에 놓아주려 하자 그가 몸을 숙여 받아먹었다.“애 앞에서 뭐 해요.”“애가 하라고 했잖아.”시우는 이미 다른 새우를 고르는 중이었다. 서연은 도진의 소매에 붙은 소금 한 알을 떼어냈다. 반지 두 개가 잠깐 부딪쳤다.도진이 마지막 조개를 접시에 옮기다가 서연 앞에 놓인 짐 목록을 봤다. 수영복도 바닷놀이 장난감도 없었다. 아이가 고른 공룡 몇 마리와 책, 갈아
금요일 오전, 서연은 여행 가방 대신 취소 정산표를 다시 펼쳤다. 지수가 빨간 표시를 해둔 것은 연주 예식의 대관 시간이었다.“12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이요. 취소 접수되고 다른 업체가 바로 다시 예약했대요.”“다시 팔린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야. 우리한테 청구한 손실 내역부터 비교하자.”호텔은 예약을 비워둔 손실을 계산해 대관료의 80%를 요구해둔 상태였다. 아직 최종 합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같은 시간에 새 계약이 잡혔다면 정산 근거를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서연은 원래 계약의 취소 조항과 호텔에서 보낸 계산표를 나란히 놓았다.“이 날짜로 다시 계산해달라고 해줘. 이미 지급한 금액이 있으면 그것도 구분하고.”지수가 다른 서류 3장을 꺼냈다. 꽃과 무대, 조명 협력업체가 보내온 준비 비용이었다. 호텔 정산표에는 반영돼 있었지만 업체들은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우리한테는 지급이 필요한 비용이라고 적어 보냈는데, 업체에는 행사가 취소돼서 못 준다고 했대요.”“그럼 누가 청구하고 누가 받아서 지급하는 건지 확인해야겠네.”서연은 금액보다 발주자 이름부터 살폈다. 같은 비용이 두 번 적힌 것도 있었고, 어느 계약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견적도 섞여 있었다.“정 대표님 건은 샘플 비용과 본식 꽃 예약금을 나눠달라고 해줘. 실제로 지출된 것만 확인할 수 있게.”“다른 업체들 것도 다시 받을게요.”업체 담당자가 보내온 문자에는 날짜가 서로 다르게 적혀 있었다. 한쪽은 취소 통지를 받은 날, 다른 쪽은 이미 재료를 주문한 날이었다. 서연은 빠른 쪽에 동그라미를 쳤다.“주문이 먼저 들어간 건 취소했다고 비용이 없어지지는 않아
다음 날 오후, 지수는 예식 취소 정산표를 들고 왔다. 대원물산 측이 루미에르에 요구했던 50억 원과 실제 준비 비용이 서로 다른 칸에 적혀 있었다.“기획 진행비와 확인된 실비는 지급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쪽 사과문 요구는 문구 조율 중이고요.”“배상 청구를 철회한다는 내용도 서면으로 받아줘. 돈이 들어왔다고 다른 문제까지 끝난 건 아니니까.”서연은 비용 항목을 하나씩 확인했다. 드레스 숍의 별도 피팅 시간, 샘플 꽃과 운송비, 외부 스태프 예약금이 들어 있었다. 아직 발주하지 않은 본식 자재는 없었다.“이 조명 장비는 견적만 받았지?”“네. 설치도 안 했고요.”“그럼 실비 청구에서는 빼자.”지수가 해당 항목에 줄을 긋고 합계를 다시 냈다. 이미 일한 직원과 외부 스태프의 인건비가 빠진 곳도 찾아 채웠다.“대표님 것만 자꾸 빼지 마세요. 야간 상담도 실제 업무였어요.”“알았어. 그건 넣어.”지수는 그제야 계산기를 내려놨다.연주가 찾아온 것은 정산표를 다시 출력할 무렵이었다. 정장 대신 니트와 편한 바지를 입었지만, 양손으로 쇼핑백을 잡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집에서 제 짐을 일부 가져왔어요. 회사에도 사직 의사를 전했고요. 처리해야 할 게 생각보다 많네요.”“쉬는 건 좀 쉬셨어요?”“잠은 잤어요. 자고 나니까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실감이 나더라고요.”연주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안에는 쪽빛 스카프가 2장 들어 있었다. 서연은 손을 씻고 돌아와 천을 펼쳤다. 가장자리의 색이 한쪽만 조금 짙었다.“이 무늬가 다 다르네
밤 9시, 서연은 서경민과 함께 경찰서에 들어갔다. 앞서 보낸 녹음과 기사 자료에 설명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연주도 자신이 원해서 연락을 끊었으며 누구에게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하러 왔다.현관 옆에서 기다리던 기자가 서연을 알아봤다. 질문이 겹쳤다.“신부에게 잠적을 권유한 게 맞습니까?”“50억 원 배상 요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서연은 서경민을 봤다. 그는 제출할 자료가 든 서류철을 챙기고, 길게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연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제 이야기는 제가 할게요.”서연은 그녀를 중앙으로 밀거나 카메라 쪽으로 돌려세우지 않았다. 연주가 멈춘 자리에 나란히 섰다.“저는 한서연 대표님이 시켜서 연락을 끊은 게 아닙니다. 예식 준비 과정에서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한 기자가 공방의 위치를 물었다. 서경민이 생활 장소에 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럼 결혼은 예정대로 합니까?”“하지 않습니다. 오늘 상대방에게 제 뜻을 직접 전했습니다.”연주는 다음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숨을 골랐다.“제 의사인데도 계속 누군가 시킨 일이라고 하지 말아주세요.”그 말을 마친 연주가 물러났다. 서연은 공개된 녹음의 앞뒤가 잘렸다는 사실만 설명했다. 전체 통화는 7분 40초였지만 기사에는 15초만 실려 있었다.“당사자와 직접 준비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말에서 뒷부분이 빠졌습니다. 원본과 기사의 차이는 대리인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상담 내용까지 모두 공개하지는 않을 겁니다.”“누가 편집한 겁니까?&rd
수요일 저녁 7시, 약속한 연수원 회의실이었다. 도진은 지수에게 시우를 부탁하고, 아이가 자기 전에 영상통화를 할 수 있게 시간을 맞춰두었다.최승혁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연주의 팔부터 잡으려 했다. 서연이 둘 사이로 의자를 밀어놓았다.“앉아서 이야기하세요.”“백연주,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양가 어른들 앞에서 나만 우스워졌잖아.”연주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에 둔 두 손이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서경민이 회의 목적과 녹음 사실을 알리자 승혁은 마지못해 맞은편에 앉았다.“내가 어른들께 잘 말해줄 테니까 들어와. 스트레스받아서 그랬다고 하면 돼.”연주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승혁이 종이를 낚아채려 하자 그녀가 자기 쪽으로 당겼다.“제 말부터 들어요.”“들으러 왔잖아. 뭘 더 해주면 돼? 드레스도 네가 고른 걸로 바꿔줄게.”승혁은 휴대전화 화면을 켜 드레스 사진을 찾았다. 연주는 그 화면을 보지 않았다.“저한테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물어본 적 있어요?”“지금 멀쩡히 앉아 있잖아.”“어제 제가 연락을 끊었을 때요.”승혁의 손이 잠시 멈췄다. 곧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리를 꼬았다.“온 집안이 널 찾았어. 그걸로 부족해?”“결혼식에 늦을까 봐 찾은 거잖아요.”서연은 연주 앞의 물잔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 종이를 펼칠 공간이 생겼다. 연주는 적어온 문장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었다.“이 결혼은 하지 않을게요.”승혁이 짧게 웃었다.&ldq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