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성북동 태강그룹 본가 저택의 육중한 철문이 거친 굉음과 함께 열렸다. 폭우를 뚫고 질주한 검은색 마이바흐가 정원 분수대 앞에 급제동하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뿜었다.
차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내린 도진은 빗물을 뚝뚝 흘리며 저택 현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경호원들과 고용인들이 사색이 되어 도진의 서슬 퍼런 기세에 질려 황급히 길을 비켰다.
2층 응접실 안.
우아한 실크 가운을 걸친 차명희는 재계 사모님 모임의 명단을 훑어보며, 루미에르를 주요 거래처에서 전면 배제하라는 협박 전화를 돌리던 중이었다.
쾅-!
육중한 마호가니 문이 거칠게 부서지듯 열리며 도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뻑 젖은 머리칼 사이로 번뜩이는 도진의 눈빛은 맹수보다 서슬 퍼렇고 잔혹했다.
“도, 도진아? 이 야심한 시각에 꼴이 그게 뭐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차명희가 찻잔을 든 채 당황하여 눈을 치켜떴다.
도진은 한마디 대꾸도 없이 테이블 앞으로 성큼 다가가, 차명희가 보던 명단 서류철을 거칠게 낚아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도자기 찻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파편을 튀기며 산산조각이 났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어미한테 무슨 해괴망측한 버릇이니!”
차명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표독스럽게 악을 썼다. 도진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젖어 있는 서류 봉투 두 개를 꺼내 차명희의 눈앞에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이걸 똑똑히 보십시오.”
도진의 억눌린 음성이 지하 깊은 암반수처럼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명희가 파들거리는 손으로 봉투 안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5년 전 자신이 사람을 사서 조작했던 한서연 명의의 가짜 위자료 계약서 사본과 차명 계좌 송금 내역, 그리고 붉은색 글씨가 선명한 유전자 검사 결과지였다.
[친자 관계 성립 확률: 99.99%] 차명희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 이게 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이냐?”
“5년 전, 어머니가 돈에 눈이 멀었다며 손가락질하고 쫓아낸 여자의 뱃속에 제 아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 아들을 제 손으로 사지로 내몬 겁니다.”
도진의 목소리가 피를 토하듯 짓이겨져 흘러나왔다. 차명희는 일순 낯빛이 파랗게 질렸으나, 이내 이를 악물며 표독스러운 얼굴로 서류를 구겨 쥐었다.
“그 천한 년이 낳은 애새끼를 어떻게 믿어! 류하준이나 다른 놈의 씨를 받아놓고 유전자 검사지를 교묘하게 위조한 걸 수도 있잖니! 절대 우리 태강의 핏줄일 리 없다!”
그 순간, 도진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차명희의 바로 옆 대리석 장식장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콰앙-!
장식장 강화유리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쩍쩍 갈라지며 붉은 피가 도진의 주먹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차명희가 경악에 질려 숨을 들이켜며 비명을 집어삼켰다.
“단 한 마디라도 내 아들과 서연이에게 그 더러운 입을 놀렸다간, 어머니라 해도 제 손으로 단죄할 겁니다.”
도진의 눈빛에는 피눈물 섞인 맹렬한 살기가 형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부로 태강재단 이사장직을 포함해 어머니의 모든 그룹 내 직책과 권한, 법인카드를 전면 정지합니다. 본가 자택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십시오.”
“도진아! 네가 감히 어미를 가두겠다는 거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루미에르나 서연이 주변에 쥐새끼 한 마리라도 더 얼씬거린다면, 5년 전 어머니가 저지른 사문서 위조와 회사 자금 횡령 증거를 들고 제가 직접 중앙지검으로 갈 겁니다.”
도진의 서늘하고 명료한 최후통첩에 차명희의 다리가 풀리며 바닥으로 처참하게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지은 죄는 어머니가 짊어지십시오. 제 죄는…… 제가 평생 피눈물을 흘리며 갚을 테니.”
도진은 무너져 내린 어머니를 뒤로한 채, 단 1초의 미련도 없이 저택을 빠져나왔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마이바흐는 강남 테헤란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어둠이 깊게 깔린 루미에르 사옥 앞. 도진은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밤늦도록 홀로 불이 켜져 있는 서연의 집무실 창문을 빗속에서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차창을 사정없이 때리는 빗소리 속에서, 도진은 서연이 홀로 겪었을 5년의 지옥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피로 물든 그의 주먹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멈추지 않는 죄책감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차 안에서 면담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 서연이 이미 거리를 두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사옥 가로등 아래 선 도진은 그 행동이 사과인지 또 다른 압박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서연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부터 이미 상대의 뜻보다 자기 후회를 앞세운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안 손님을 화면 앞으로 보내겠다는 거예요?”박 이사장이 두 배치도 사이에 손을 짚었다. 금요일 오후, 운현당 관리실에서 신랑 신부와 혼주가 함께 우천안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전에 전화로 설명을 들은 이사장은, 결정하기 전에 공간부터 직접 보겠다고 했다.지수가 고택 대청 쪽 사진을 돌려놓았다.“대청은 50명까지입니다. 가까운 가족만 들어가고 나머지 분들은 재단 연회실에서 보는 방법도 있어요. 다만 신랑 신부님은 하객을 나누지 않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신랑이 어머니를 봤다.“저희 둘만 고택에서 사진 찍고, 식은 다 같이 보면 안 될까요?”“여기까지 준비했는데 아깝잖아요.”지수는 바깥 설치를 맡은 담당자에게 확인한 내용을 설명했다. 마당에 매단 장식을 남겨두고 비를 피할 천만 덧대는 안은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반출한 장비와 실내로 옮길 물품을 사진으로 나눠 보여줬다.“하객석을 비바람에 노출시켜놓고 예정대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장소가 바뀌는 건 아쉽지만, 옷을 입고 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남길 수 있어요.”신부가 연회실 사진을 당겨봤다.“여기 창문으로 고택이 보여요?”“네. 앉는 방향을 바꾸면 뒤로 보입니다.”“그럼 저는 이쪽이 좋아요. 어른들 자리를 따로 나누지 않았으면 해요.”박 이사장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지수는 재촉하는 대신 바뀐 출입구와 주차 안내를 옆에 놓았다. 이사장이 마침내 펜을 들었다.“모르는 분들은 고택 정문으로 올 거예요. 거기 사람을 꼭 세워줘요.”“네. 이미 도착하신 분들도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연주가 가져온 옷은 아직 완성품이 아니었다. 가봉 실밥이 남은 당의와 길이가 긴 치마, 접어 보관한 쪽빛 단령이 작업대에 놓였다. 함께 온 한복 제작자가 먼저 소매를 펼쳐봤다.“신부님 키에는 치마를 이만큼 줄여야겠네요. 오늘 가봉하고 내일 마무리하면 됩니다. 장식까지 새로 넣기는 어려워요.”지수는 시간을 적었다. 은채는 한쪽에서 양가 어머니의 대여 한복 사진을 받아 비교했다. 연주는 사진에 붙은 치수와 준비한 원단을 나란히 놓고, 소매 끝에 댈 색부터 골랐다.“어머님 옷은 협력 숍에서 금요일에 받을 수 있어요. 신랑 신부님 옷하고 색이 겹치는지 봐주세요.”연주가 사진 옆에 원단을 댔다.“이 노란색은 조명 아래에서 더 진해져요. 옅은 쪽이 나을 것 같은데, 입으시는 분께 먼저 보여드려요.”오후 상담에는 신부와 박금선 이사장이 함께 왔다. 지수는 비단채 취소 메일과 기존 주문서를 먼저 보여줬다. 박 이사장이 납품 날짜에 밑줄을 긋고 그녀를 올려다봤다.“예정한 의상을 준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대체안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른 대여 옷도 계속 확인하겠습니다.”박 이사장은 접어놓은 옷을 들춰봤다.“처음 가봉한 옷하고 많이 달라요. 사진도 다 다시 봐야겠네.”“네. 여기서 직접 입어보고 결정해주세요. 바뀌는 비용도 따로 적었습니다.”신부가 산호빛 당의의 깃을 만졌다. 연주는 손에 든 핀을 내려놓고 그녀가 충분히 볼 때까지 기다렸다.“이것도 이번에 새로 염색하신 거예요?”“이 원단은 앞서 염색해둔 걸 썼어요. 쪽빛 단령과 나란히 놓으면 얼굴 쪽이 밝아 보여요. 실제 조명에서도 한번 보실래요?”
목요일 오전 10시, 지수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은채가 의상 납품표를 펼쳤다. 운현당 혼례는 이틀 뒤였다. 지수는 시설 담당자에게 받은 우천 대안 두 가지를 그 옆에 놓았다.“대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50명까지예요. 나머지 분들이 계실 곳은 재단 연회실 쪽으로 확인했어요. 오후에 혼주님과 최종 결정할게요.”“등롱은요?”“120개를 전부 쓰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 실내 배치부터 다시 보고요. 의상은 예정대로 들어와요?”은채가 확인 표시를 했다.“오늘 오후 2시요. 신랑 신부님 2벌, 양가 어머님 2벌. 비단채에서 아침에도 차에 싣는다고 했어요.”그때 지수의 휴대전화에 에드워드 권의 이름이 떴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 복도로 나갔다.“프로젝트 끝나고 연락드리기로 했는데요.”“그 전에 확인할 게 생겼습니다. 민 실장님이 이직 안 하신다는 소문이 돌아서요.”“아직 어디에도 최종 답을 드리지 않았어요.”“한 대표가 이번 일을 맡겨주니까 생각이 달라지셨나 보군요.”지수는 회의실 유리문 너머로 납품 시간을 적는 은채를 봤다.“제안 조건에 관한 말씀이 아니면 나중에 통화하겠습니다.”“책임만 넘겨받는 건 아닌지 살펴보세요. 의상부터 틀어지면 누가 나서줄지도.”전화가 끊겼다. 지수는 마지막 말을 메모하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은채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실장님, 비단채에서 납품을 못 하겠대요.”지수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상대는 아펠가모와 새로 맺은 독점 공급 계약 때문에 출고가 막혔다고 했다. 계약금을 더 얹어
수요일 회의의 첫 보고자는 지수였다. 협력업체에 보낼 연락 체계와 예산 전결 범위를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서연은 참석했지만 중간에 답을 대신하지 않았다.“업체에서 대표님 확인을 다시 요청하면 저한테 연결해 주세요. 승인 범위 밖의 문제는 제가 대표님과 상의해서 답하겠습니다.”최은채가 담당표에 지수의 이름을 적었다. 현장 문의와 고객 변경 요청이 더는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게 됐다.다음 날 운현당 현장 점검에서 첫 수정 요구가 나왔다. 마당에 세우려던 조명 받침 일부가 뿌리 보호 구역과 겹쳤다. 오래된 목재에 기대 고정하는 방식도 허용되지 않았다.“잔디가 눌리는 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설치하고 철거할 때 장비가 드나드는 길도 같이 봐야 해요.”관리 담당자의 설명에 지수는 도면을 접지 않고 표시했다. 허용되는 구역부터 다시 확인했다. 은채는 하객 통로를 따라 걸으며 장비 이동 구간을 따로 기록했다.“이 배치면 앞쪽 등롱을 많이 줄여야겠어요.”은채의 말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개수부터 지키려고 하면 안 되겠네. 설치할 수 있는 위치를 먼저 잡자.”회사로 돌아온 지수는 서연의 집무실 앞에 잠깐 멈췄다. 예전 같으면 문을 두드리고 어느 방향으로 할지 물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오늘 확인한 제한 사항과 다시 검토할 안을 정리해 공유했다.서연의 답은 길지 않았다.[확인했어. 필요한 외부 검토 비용은 예산 안에서 진행해. 추가되면 알려주고.]지수는 그 메시지를 읽고 조명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지 공방에는 크기가 다른 등롱들이 걸려 있었다. 지수는 종이 두께와 조명 색이 달라질 때 그림자가 어떻게 생기는지 하나씩 봤다. 옆에서는 시공 담당자가 실제 설치할 위치와 장비 무
서연은 사직서 봉투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지 않았다.“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해.”지수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서연은 어제 운현당 배치안을 띄웠다. 자신이 손댄 선 아래로 지수가 검토해둔 표시가 보였다.“이쪽 대안도 설명하려고 했지? 내가 현장 보고 하자고 끊었고.”“네.”“통로가 좁다는 말은 해야 했어.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바꿀지까지 내가 가져갈 필요는 없었어.”서연은 화면을 돌려놨다.“내가 편하게 일하는 방식이 지수 씨한테도 좋은 줄 알았어. 그건 내가 잘못 생각했어.”지수는 말을 고르느라 잠깐 고개를 내렸다.“대표님이 저 힘들게 하려고 그러신 건 아닌 거 알아요.”“그걸 지수 씨가 이해해주는 것하고, 내가 바꾸는 건 다른 문제지.”서연이 운현당 계약 자료를 가져왔다. 예산은 1억 5,000만 원, 계획 인원은 300명이었다. 시설 보호와 야간 행사 운영 조건을 관리 담당자와 더 확인해야 했다.“이 프로젝트를 지수 씨가 맡았으면 좋겠어. 이번에는 이름만 담당자가 아니라 실제 총괄로.”지수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퇴사하지 않으면 맡기시겠다는 뜻인가요?”“아니. 그렇게 붙잡고 싶지는 않아. 사직 일정은 따로 이야기하자. 진행할 마음이 없으면 거절해도 되고.”서연은 빈 종이를 펼쳤다.“맡게 된다면 범위부터 정하자. 예산 안에서 시안과 업체, 현장 운영은 지수 씨가 결정해. 내가 다른 취향이라는 이유로 뒤집지는 않을게.”“안전이나 계약 문제는요?”&ldqu
집에 돌아온 서연은 코트를 벗다가 도진에게 물었다.“직원한테 일을 맡긴다고 해놓고, 결국 내가 다시 다 고치면…… 그건 맡긴 게 아닌 거겠죠?”도진은 걸어두던 재킷을 내려놨다.“왜 고쳤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위험한 걸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그런데 고쳐야 할 이유만 말하고 다시 해보라고 할 수도 있었어요. 오늘은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펜부터 가져갔거든요.”서연이 소파에 앉았다. 도진도 옆에 앉아 그녀가 말하는 동안 기다렸다.“내가 하는 게 빠르니까 그렇게 했어요. 처음도 아니고요.”“빠르기는 했을 거야. 대신 다음번에도 네가 해야 할 테고.”서연은 손에 쥔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지수는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정할 시간이 오면 서연이 다시 앞에 섰다.“그래놓고 지수 씨가 너무 바쁘면 휴가 쓰라고 했네요.”“휴가도 필요하지. 일할 자리를 바꿔주는 것하고는 별개고.”도진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서연은 그 손을 붙잡았다.“오늘은 나한테 정답 안 알려주네요.”“민 실장이 답할 일을 내가 하면 또 똑같아지잖아.”서연이 작게 웃었다. 도진은 그녀의 손가락을 한 번 쥐어주고 놓았다.“알면서 고치기 어렵네요.”“오늘 알았으면 내일 물어보면 되지. 민 실장이 어떤 걸 원하는지.”시우를 재운 뒤, 서연은 서재에서 지난 행사 자료를 열었다. 소민의 드레스 피팅 예약과 견적을 맞춘 연락, 나희 가족의 출입 계획, 청림방직 행사 때부터 쌓인 업체별 기록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