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8
Por:  루니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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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 증거를 찍으러 갔는데, 남자는 처음부터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다. “더 가까이 찍어요. 숨길 생각 없으니까.” VIP들의 비밀을 찍는 여자와, 일부러 찍히는 남자. 그를 쫓을수록 사라진 여자들과 삭제된 기록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 카메라 속 표적은 그가 아니라 내가 된다. 🔥 위험한 관찰, 집착, 그리고 절대 찍혀서는 안 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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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화

“불륜 증거만 가져오세요. 얼굴은 꼭 나오게.”

의뢰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강서하는 그 문장을 떠올리며 망원렌즈를 호텔 루멘 1807호에 맞췄다. 22시 17분. 윤태오는 19분 전 혼자 들어갔고,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8분 뒤 같은 호텔로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너무 쉬웠다.

너무 쉬운 의뢰는 대개 뒤에서 귀찮아졌다.

NOCK에서 일한 지 5년째였고, 서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이 어디서 티 나는지 대충 알았다. 배우자가 야근한다고 거짓말할 때는 주차장에서 들켰고, 출장이라고 둘러댈 때는 카드 내역에서 걸렸다. 호텔까지 따라온 경우는 더 간단했다. 같은 시간, 같은 건물, 같은 층. 찍을 것만 찍고 빠지면 됐다.

문제는 저 남자가 쉬운 피사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찰칵.

창가에 선 윤태오가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없었고 셔츠 단추가 2개쯤 풀려 있었다. 대충 기대 서 있는 것뿐인데 얼굴이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조명이 한쪽을 먹어도 윤곽이 죽지 않았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가장 잘 잡히는 위치로 돌아왔다.

서하는 카메라를 잠깐 내렸다.

“모델 했나.”

혼잣말이 튀어나왔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찍는 건 익숙했다. 잘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도 10분이면 배경이 됐다. 중요한 건 표정이 아니라 증거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의 침대 사정에 호기심을 붙이면 이 일은 오래 못 했다. 서하는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봤다.

그런데 1807호 커튼은 계속 열려 있었다.

불륜을 들킬까 봐 호텔까지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닫아야 할 걸 윤태오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창가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고, 와인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카메라 쪽으로 몸이 돌아와 있었다.

찰칵.

서하는 한 장 더 찍었다.

검은 원피스의 여자가 가까이 붙었다. 이번엔 뭔가 잡히나 싶었으나 둘은 닿지 않았다. 여자는 손을 테이블에 짚었고, 윤태오는 잔 하나만 밀어줬다.

연인이라기엔 거리가 너무 정확했다.

여자의 표정도 이상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윤태오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손가락은 잔보다 휴대전화에 오래 머물렀다. 둘이 한 방에 있다는 사실만 필요해서 누군가 억지로 세워둔 사람들 같았다.

“둘이 진짜 붙어먹는 사이는 맞아?”

답할 사람은 없었다.

서하는 줌을 조금 당겼다가 바로 풀었다. 셔츠 사이로 드러난 피부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그의 자세였다. 마치 누가 어디서 보고 있는지 알고, 그 프레임 안에 몸을 맞추는 사람 같았다.

그때 윤태오가 소매를 걷었다. 손목이 드러났고, 잔을 들던 손이 멈추더니 창밖 어딘가를 한 번 짚었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가 바로 손을 뗐다. 찍으라고 준 장면을 받아먹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얼굴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

의뢰인이었다.

서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아직 사진 한 장 보내지 않았다. 중간 보고도 없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정확했다.

“보고 있나?”

서하는 답장하지 않고 발신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 계약할 때 받은 번호와 같았다. 이상은 없었다. 다만 의뢰인은 첫 통화에서도 윤태오가 누구와 만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얼굴만, 확실하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배우자의 상대를 확인하려는 줄 알았다.

지금은 조금 달랐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윤태오가 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 창 앞에 있던 남자가 화면에서 통째로 빠졌다. 소파, 테이블, 조명, 여자. 끝.

서하는 프레임을 왼쪽으로 옮겼다가 오른쪽으로 훑었다.

없었다.

옥상 출입문을 돌아봤다. 닫혀 있었다. 바람에 굴러간 빈 캔 하나가 벽에 걸려 멈췄고, 그 외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어디 갔어.”

다시 렌즈를 올린 순간, 서하의 손이 멈췄다.

윤태오가 창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웠다.

그가 커튼 끝을 잡았다.

서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제 닫는다. 그럼 여기까지 찍고 퇴실 시간만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윤태오는 커튼을 닫지 않았다.

반대로 끝까지 밀어젖혔다.

1807호가 훨씬 선명해졌다.

“미쳤네.”

서하는 셔터를 눌렀다.

1장.

윤태오가 와인잔을 들었다.

2장.

그가 고개를 돌렸다.

3장.

손가락이 멎었다.

윤태오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창밖 풍경을 보는 게 아니었다. 맞은편 건물도 아니었다.

정확히 렌즈였다.

서하는 카메라를 몇 센티미터 옆으로 옮겼다.

윤태오의 얼굴도 따라왔다.

그는 잔을 입술에 가져갔다가 천천히 내렸고, 아주 짧게 고개를 기울였다. 인사도, 미소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분 나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였다.

[더 당겨.]

서하는 화면을 보다가 다시 1807호를 확인했다.

윤태오는 그대로였다.

2번째 메시지가 왔다.

[그 각도면 셔츠 안까지 보이잖아.]

서하의 손이 멈췄다.

3번째.

[계속 찍어. 네가 어디까지 보는지 궁금하니까.]

“미친 새끼.”

서하는 즉시 번호를 캡처했다.

그 순간 메시지 하나가 더 도착했다.

사진이었다.

서하가 방금까지 숨어 있던 옥상.

그리고 사진 한가운데에는 카메라를 든 서하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촬영 시각은 22시 26분.

지금이었다.

서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뒤는 보지 마.]

곧 마지막 문장이 떴다.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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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불륜 증거만 가져오세요. 얼굴은 꼭 나오게.”의뢰인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강서하는 그 문장을 떠올리며 망원렌즈를 호텔 루멘 1807호에 맞췄다. 22시 17분. 윤태오는 19분 전 혼자 들어갔고, 검은 원피스의 여자는 8분 뒤 같은 호텔로 들어왔다.여기까지는 너무 쉬웠다.너무 쉬운 의뢰는 대개 뒤에서 귀찮아졌다.NOCK에서 일한 지 5년째였고, 서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이 어디서 티 나는지 대충 알았다. 배우자가 야근한다고 거짓말할 때는 주차장에서 들켰고, 출장이라고 둘러댈 때는 카드 내역에서 걸렸다. 호텔까지 따라온 경우는 더 간단했다. 같은 시간, 같은 건물, 같은 층. 찍을 것만 찍고 빠지면 됐다.문제는 저 남자가 쉬운 피사체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찰칵.창가에 선 윤태오가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없었고 셔츠 단추가 2개쯤 풀려 있었다. 대충 기대 서 있는 것뿐인데 얼굴이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조명이 한쪽을 먹어도 윤곽이 죽지 않았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가장 잘 잡히는 위치로 돌아왔다.서하는 카메라를 잠깐 내렸다.“모델 했나.”혼잣말이 튀어나왔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사람을 찍는 건 익숙했다. 잘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도 10분이면 배경이 됐다. 중요한 건 표정이 아니라 증거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의 침대 사정에 호기심을 붙이면 이 일은 오래 못 했다. 서하는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봤다.그런데 1807호 커튼은 계속 열려 있었다.불륜을 들킬까 봐 호텔까지 온 사람이 가장 먼저 닫아야 할 걸 윤태오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창가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고, 와인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카메라 쪽으로 몸이 돌아와 있었다.찰칵.서하는 한 장 더 찍었다.검은 원피스의 여자가 가까이 붙었다. 이번엔 뭔가 잡히나 싶었으나 둘은 닿지 않았다. 여자는 손을 테이블에 짚었고, 윤태오는 잔 하나만 밀어줬다.연인이라기엔 거리가 너무 정확했다.여자의 표정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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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찍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강서하는 뒤를 돌아본 채 휴대전화를 쥐었다.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출입문도 닫혀 있었고 난간 아래 비상계단 역시 비어 있었다. 그런데 방금 받은 사진에는 카메라를 든 자신의 뒷모습이 선명했다. 검은 후드, 왼손에 감긴 스트랩, 발치에 내려둔 가방까지 지금 그대로였다.서하는 사진부터 저장했다.놀라는 건 증거 확보 다음이었다.촬영 정보를 확인했지만 위치값도 기기 정보도 지워져 있었다. 대신 사진 각도가 이상했다. 등 뒤가 아니라 조금 더 높은 곳, 자신의 머리 위를 비스듬히 내려다본 위치였다.“드론까지 띄웠나.”하늘을 확인하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찾지 마.]서하는 바로 답했다.[윤태오 씨?]읽음 표시는 뜨지 않았다.대신 1807호의 불이 꺼졌다.“진짜 성격 더럽네.”카메라를 들자 객실은 이미 검게 잠겨 있었다. 커튼을 친 것도 아니었다. 조명만 한꺼번에 꺼진 상태였다.그때 전화가 걸려왔다.모르는 번호.서하는 녹음부터 켜고 받았다.“말해요.”잠깐 뒤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겁은 없네요.”직접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윤태오라고 확정할 근거는 없었으나 타이밍은 충분히 수상했다.“누구세요?”“찍고 있는 사람 이름도 모르고 왔어요?”“이름 정도는 알아요.”“그럼 내 이름 불러봐요.”“싫은데.”“아까는 셔츠 안쪽까지 그렇게 열심히 당겨보더니.”서하의 검지가 멈췄다.그 장면을 아는 건 1807호 안의 사람뿐이었다.“보고 있었네요.”“서로 본 거지.”“난 돈 받고 본 거고.”“나는 공짜로 봤고.”“재미없어요.”“난 재밌는데. 강서하 씨가 생각보다 오래 보더라고.”서하는 대꾸 대신 카메라 가방 지퍼를 닫았다.“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죠?”“궁금하면 내려와요.”“왜, 이번엔 직접 찍어달라고?”“가까우면 더 잘 보이잖아.”“벗을 것도 아니면서 유세는.”처음으로 상대의 호흡이 한 박자 밀렸다.곧 대답이 돌아왔다.“그건 만나서 결정하고.”서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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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6년 동안 찾던 사람일 테니까.]승강기 숫자가 3에서 2로 바뀌었다.강서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어떻고 손이 떨리고 할 틈은 없었다. 6년 동안 찾던 사람이 정말 저 안에 있다면 먼저 얼굴부터 확인해야 했다.띵.문이 열렸다.강해진은 없었다.대신 윤태오가 서 있었다.검은 셔츠는 여전히 단추 2개가 풀려 있었고 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걷혀 있었다. 1807호에서 내려온 사람치고는 너무 말끔했다. 그는 서하를 발견하고도 놀라지 않았다.“사진 잘 나왔습니까?”서하가 헛웃음을 삼켰다.“언니는요.”“첫마디가 그거네.”“6년 동안 찾던 사람이라며.”“찾던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는 안 했는데.”“장난해요?”“문자를 다시 읽어봐요.”태오가 승강기에서 내려왔다. 서하는 물러서지 않았고, 둘 사이가 1m도 남지 않았을 때 그가 먼저 멈췄다.가까이서 보니 더 짜증 났다. 렌즈 안에서는 지나치게 잘 찍혔고, 실제로 보니 카메라가 덜 담은 부분까지 선명했다.“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죠?”“그 질문도 순서가 틀렸습니다.”“당신한테 순서 검사받으러 온 거 아니니까.”“그럼 제일 궁금한 걸 물어요.”서하가 휴대전화를 들어 예약 확인서를 그의 앞에 띄웠다.“1807호. 강해진 이름으로 예약됐어요. 왜죠?”태오의 눈이 화면에 잠깐 머물렀다.“그 자료, 누가 줬습니까?”“내가 묻고 있잖아요.”“잘못된 자료라서.”“이름도, 생년월일도 같아.”“그래도 강해진이 예약한 건 아닙니다.”서하는 한 발 다가갔다.“그 이름을 알고 있네요.”이번에는 태오가 바로 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대답보다 빨랐다.서하는 그의 셔츠 앞섶을 잡았다. 구겨진 천 사이로 체온이 손등까지 올라왔으나 놓지 않았다.“내 언니 알아요?”태오는 서하의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대신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말했다.“이렇게 가까이 올 거였으면 망원렌즈까지는 필요 없었겠네.”“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나는 좀 다른데.”“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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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번엔 카메라 없이 더 가까이 와.”문자를 다시 읽는 순간, 강서하는 호텔 출입문으로 향하던 윤태오를 불렀다.“거기 서요.”태오가 돌아봤다.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라운지 안쪽 빈 테이블을 손끝으로 가리켰다.“올 줄 알았어요.”“착각도 병인데.”“아까 내 셔츠까지 잡아놓고 이제 와서?”“그건 멱살이었고.”“난 꽤 마음에 들었는데.”“미친 새끼.”서하는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겼다. 앉자마자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녹음을 켰다.태오가 화면을 한번 봤다.“좋은 습관이네요.”“당신 같은 인간 만날 때는 특히.”“그럼 바로 본론으로 갑시다.”그가 카드 한 장을 밀어왔다. VANTA 법인카드였다.“오늘 의뢰비의 2배.”“뭐 하자는 건데요.”“계속 찍어요. 내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서하는 카드를 손가락으로 밀어 돌려보냈다.“다른 변태 알아봐요.”“촬영 자체는 이미 잘하던데.”“씨발, 말하는 꼬라지 진짜.”태오는 웃지도 않았다. 그게 더 얄미웠다.“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서하의 손이 멈췄다.“뭘.”“옥상 위치도, 렌즈 화각도, 당신이 몇 시부터 들어와 있었는지도.”“그걸 자랑이라고 해?”“자랑이 아니라 조건 설명입니다.”태오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하나를 띄웠다. 호텔 맞은편 옥상 도면이었다. 서하가 자리를 잡았던 위치에 붉은 점까지 찍혀 있었다.“당신이 오늘 처음 날 찍은 게 아니고, 나도 오늘 처음 당신을 본 게 아니에요.”서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얼마나 됐죠.”“그 질문에는 아직 답 안 합니다.”“그럼 거래 끝.”일어나려는 순간 태오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서하를 붙잡지는 않았다. 대신 계약서 첫 줄이 보이게 돌려놨다.촬영 및 동선 기록 위탁 계약.“미친놈이 진짜 준비까지 했네.”“충동적으로 사람 부르는 취미는 없어서.”서하는 계약서를 훑다가 3번째 항목에서 멈췄다.[의뢰 수행 중 의뢰인과 조사자는 상호 합의 없는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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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번엔 내가 당신을 고용하죠.”강서하는 법인카드를 손가락으로 밀어 돌려보냈다.“싫어요.”윤태오는 카드를 다시 가져가지 않았다.“금액이 부족합니까?”“돈 문제가 아니고, 의뢰가 겹쳐요. 오늘 당신 찍으라고 돈 준 인간이 따로 있는데 내가 당신 돈까지 받으면 양쪽에서 개새끼 되는 거잖아.”“한쪽은 이미 당신을 속였는데.”“그래도 계약은 계약이고.”태오는 계약서를 접었다.“그럼 고용은 취소하죠.”서하가 의자를 밀다 멈췄다.“이렇게 쉽게?”“대신 하나만 약속해요.”“뭔데.”“오늘 찍은 원본, 지우지 마.”서하의 눈이 그에게 돌아갔다.“왜요?”“22시 14분부터 22시 31분까지. 그 구간은 특히.”정확한 시간이었다. 자신이 윤태오를 찍었고 누군가는 반대로 자신을 찍었다. 강해진 이름으로 잡힌 1807호까지 전부 그 시간 안에 엮여 있었다.“그게 당신 알리바이라도 돼?”“될 수도 있고.”“뭘 했길래 알리바이까지 필요해.”“그걸 지금 말하면 재미없잖아.”“나랑 연애 예능 찍어요?”“아까 내 셔츠 안까지 당겨 찍던데 비슷한 건가 싶어서.”“또 그 소리.”“싫어요?”“아니. 더 해봐. 녹음해서 성희롱으로 돈까지 뜯게.”“그럼 정확히 해야겠네. 난 당신한테 벗으라고 한 적 없어.”“내가 언제 벗는댔어?”“방금 더 해보라며.”“말을.”“아쉽네.”“씨발.”서하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태오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다.“메모리카드.”“아까 지우지 말라더니 이제 가져가게?”“복사 상태만 확인할 겁니다. 싫으면 안 줘도 되고.”“당신 성격이면 침대에서도 계약서부터 내밀겠네.”“필요하면.”“미친.”“중간에 마음 바뀌면 끝낸다는 조항도 넣고.”“거기까지 계약해야 돼?”“당신 같은 사람은 어디까지 괜찮은지 정해두는 게 편하잖아.”서하는 대꾸하지 않았다. 태오는 카드를 달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손을 편 채 기다렸다.결국 선택은 자신 몫이었다.서하는 메모리카드를 뺐지만 바로 올려놓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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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그러니까 원본만은 절대 지우지 마.”윤태오가 돌아선 뒤에도 강서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사진 2장은 같은 시각, 같은 각도였다. 하나에는 태오가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없었다. 합성이라면 흔적이 남아야 했지만 휴대전화로 받은 파일만 봐서는 판단이 어려웠다.서하는 노트북을 닫다가 멈췄다.1807호에 같이 들어갔던 여자.처음부터 그쪽이 더 이상했다.그녀는 40분 만에 혼자 나왔고,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태오와 붙어 있는 장면도 없었다. 불륜 사진을 만들려 했다면 오히려 너무 성의가 없었다.서하는 첫날 촬영본을 다시 열었다.22시 21분 08초.여자가 와인잔을 받을 때 오른쪽 손목이 드러났다.검은 밴드 하나.장식이라기엔 두꺼웠고, 시계도 아니었다.화면을 확대하자 작은 사각칩이 보였다.“출입밴드?”다음 컷에서도 같았다. 여자는 방 안에서도 그 밴드를 풀지 않았고, 태오가 건넨 건 와인이 아니라 얇은 카드였다. 카드 한쪽에는 희미하게 VANTA 로고가 찍혀 있었다.서하는 바로 문재경에게 전화를 걸었다.“검은 보안밴드 사진 보내줄게. 어디서 쓰는지 확인해.”“지금 몇 시인지 알아?”“알면 자겠냐.”“하, 씨발. 보내.”5분 뒤 재경에게 답이 왔다.[VANTA 위기관리 고객용 임시 출입밴드랑 형태가 거의 같아. 정확한 모델은 확인 더 해야 돼.]서하는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불륜 상대가 아니었다.최소한 호텔에서 만난 목적은 달랐다.그 순간 태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이제 알아냈어요?]서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당신 지금 나 보고 있어?”“아니.”“그런데 타이밍이 왜 이래.”“당신이면 슬슬 손목까지 봤을 것 같아서.”“재수 없네.”“틀렸습니까?”“그 여자, 당신 고객이죠.”잠깐 뜸이 생겼다.“맞아요.”“씨발,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당신이 직접 확인하는 게 빠르니까.”“나 시험했어?”“조금.”“좆같은 취미네.”“아까는 내 셔츠 안쪽까지 보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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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 남자를 믿지 마세요.]강서하는 6년 전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먼저 확대했다.강해진 옆에는 분명 윤태오가 있었다. 문제는 사진이 너무 깨끗하다는 거였다. 날짜도, 호텔 로비도, 언니가 실종 당일 입었던 베이지 코트도 맞았다. 너무 맞아서 오히려 걸렸다.서하는 사진을 저장한 뒤 답장을 보냈다.[당신 누구예요.]바로 읽혔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강해진 알아요?]이번에도 읽음만 떴다.“사람 성질 긁는 건 다들 한 학원에서 배웠나.”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서하는 노트북에 메모리카드를 꽂았다. 믿으라느니 믿지 말라느니 하는 말보다 원본이 먼저였다. 1807호 사진을 시간순으로 늘어놓자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게 하나씩 튀어나왔다.침대였다.22시 17분.22시 21분.22시 28분.하얀 이불은 같은 모양으로 접혀 있었고 베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와 윤태오가 40분 가까이 같은 객실에 있었는데 침대에는 주름 하나 늘지 않았다.서하는 다음 컷으로 넘겼다.“그럼 둘이 뭘 한 건데.”테이블 위에는 와인잔 2개가 있었다.첫 사진에서는 서로 붙어 있었고, 4분 뒤에는 하나가 창가 끝으로 옮겨졌다. 그다음 사진에서는 다시 반대쪽. 마시는 사람의 손보다 잔의 위치가 더 자주 바뀌었다.누군가 시간을 재며 일부러 옮긴 것처럼.서하는 사진 12장을 한 화면에 띄웠다. 침대는 그대로인데 잔만 움직였다. 여자도, 윤태오도 프레임에 들어왔다 나갔고 매번 유리잔의 위치가 달라졌다.전화가 울렸다.윤태오였다.“왜요.”“그 여자한테 연락 왔죠.”서하가 의자에서 등을 뗐다.“내 폰도 봐요?”“그 정도면 당신이 먼저 경찰 부를걸요.”“그럼 어떻게 알아.”“내 고객이니까.”“고객 관리가 개판이네. 당신 믿지 말라는데.”“그건 맞는 말이고.”“뻔뻔한 것도 재능이네.”“사진은 봤습니까?”“어떤 사진.”“당신 언니.”서하는 마우스를 멈췄다.“그 여자한테 시켰어요?”“아니.”“그럼 왜 그 여자한테 언니 사진이 있어.”“그래서 만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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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벽 안쪽에서 시작됐다고?”윤태오의 대답은 짧았다.“사진 들고 있어요. 내가 부를 때까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고.”“또 명령질이네.”“그럼 부탁으로 바꿔드릴까요.”“꺼져.”강서하는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20분 뒤 메시지가 왔다.[내일 21시. 호텔 레브 1204호 맞은편 라운지.]주소와 함께 촬영 위치까지 찍혀 있었다.서하는 지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 어디서 찍을지, 어느 방향으로 렌즈를 둘지까지 윤태오가 정해놨다.[내가 당신 직원이야?][아니.]곧 답이 하나 더 왔다.[그래서 더 보고 싶고.]서하는 화면을 한 번 보고 그대로 잠갔다.서하는 바로 전날 확보한 1807호 사진도 태블릿에 띄워 두었다. 침대 밑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였던 그림자와 레브 호텔의 복도 구조를 비교하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객실 벽 한쪽이 지나치게 두꺼웠다. 일반 배관 공간이라고 보기엔 폭이 컸고, 비상계단 도면과도 맞지 않았다. 누군가 통로를 감추려 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구조였다.재경에게 사진을 보내려다가 손을 멈췄다. 태오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라고 한 말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아직 출처도, 구조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를 흩뿌리는 건 서하 방식이 아니었다. 대신 원본을 별도 저장장치에 복제하고 시간값까지 기록했다.“보여주고 싶은 건 정면이고, 숨기고 싶은 건 옆이겠지.”그래서 보조 카메라를 챙겼다.다음 날 20시 47분.호텔 레브 12층 라운지는 루멘보다 훨씬 좁았다. 유리 파티션 너머로 1204호 복도가 비스듬히 보였고, 태오가 지정한 자리는 하필 기둥과 화분 사이였다.움직이면 바로 들킬 자리.“이 새끼 진짜 일부러 이러네.”서하는 카메라를 꺼냈다. 대신 가방 안쪽에서 손바닥만 한 보조 카메라 하나를 더 꺼냈다.태오가 정해준 각도는 정면.서하가 고른 각도는 반대편 비상통로였다.보조 카메라는 장식장 틈에 넣고 객실 복도 끝까지 잡았다. 태오가 자신에게 보여주려는 장면과 보여주지 않으려는 장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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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그것도 찍고 있었네.”강서하는 영상을 3번 돌려봤다.윤태오는 정면 카메라가 아니라 장식장 틈에 숨겨둔 보조 카메라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더 웃긴 건 그다음이었다. 1204호 옆 벽이 열렸고, 회색 코트 남자가 안으로 들어간 뒤 태오까지 사라졌다.호텔 도면에는 없는 통로였다.“호텔들이 왜 다 벽에 사람을 숨겨.”서하는 영상을 복사한 뒤 화장실을 나왔다. 이미 태오와 남자는 보이지 않았고, 12층 복도에는 객실 정리 카트만 서 있었다.그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직원용 구역으로 들어가지 않고 라운지에서 보이는 범위만 다시 확인하던 중, 1204호 옆 장식장 아래에서 검은색 물체 하나가 눈에 걸렸다.카드였다.신용카드보다 조금 작고 두꺼웠다. 호텔 로고도, 이름도 없었다. 앞면에는 숫자만 양각되어 있었다.18-07.“1807?”손을 뻗는 순간 다른 손이 먼저 카드를 집었다.“남의 물건 잘 줍네요.”윤태오였다.“벽에서 튀어나오는 취미도 있어요?”“봤습니까?”“뭘.”“내가 벽에서 나오는 거.”“그걸 말하면 재미없잖아.”아까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태오가 카드를 들어 보였다.“카메라 2대 쓸 줄은 몰랐네.”“당신 허락받고 일해야 돼?”“아니. 그래서 마음에 든다고.”“작업 걸지 마. 존나 안 어울려.”“아까는 벗어도 안 찍는다며.”“지금 벗어봐. 증거물 훼손으로 신고하게.”“그건 촬영보다 재미없겠는데.”서하는 카드를 가리켰다.“줘요.”“왜.”“당신 고객이 떨어뜨린 거잖아.”“그걸 어떻게 압니까?”“회색 코트 오른쪽 주머니. 방 들어가기 전엔 모서리가 보였고, 나올 땐 없었어.”태오가 서하를 봤다.“그것까지 찍었어요?”“당신 셔츠 안쪽만 찍는 줄 알았나.”“그건 계속 기억나서.”“변태 새끼.”“칭찬으로 들을게.”태오가 카드를 내밀었다.서하가 낚아채려는 순간 손끝이 스쳤다.피할 수 있었다.둘 다 안 피했다.태오는 카드를 놓지 않았고, 서하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얇은 카드 한 장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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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MIRROR.”강서하가 카드 뒷면의 글자를 읽자 윤태오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빠졌다.“아는 이름이네.”“카드 줘요.”“싫은데.”“강서하 씨.”“왜. 뺏어가게?”서하는 검은 카드를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태오가 손을 뻗을 줄 알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그거 들고 있으면 위험합니다.”“당신 옆에 있는 것보다?”“비교가 되나.”“그건 인정.”서하는 호텔을 나온 뒤 곧장 NOCK 사무실로 향했다. 새벽이 가까웠지만 잠은 이미 틀렸다. MIRROR라는 이름이 붙은 카드, 18-07이라는 숫자, 1807호의 비밀통로. 따로 보면 찜찜한 조각인데 붙여놓으니 누군가 일부러 자신 앞에 흘리는 단서처럼 보였다.문재경은 퇴근한 뒤였다. 서하는 첫날 원본이 든 메모리카드를 꽂고 1807호 사진부터 다시 열었다.그리고 7번째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윤태오의 뒤쪽 벽.정확히는 장식장 위에 걸린 거울.거울 구석에 사람 손 하나가 비쳐 있었다.“씨발.”당시 객실에 확인된 사람은 태오와 검은 원피스 여자 2명뿐이었다. 그런데 손은 둘 중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태오는 창가에 있었고 여자는 테이블 앞에 있었다.손은 침대 쪽 벽에서 나와 있었다.서하는 확대했다.화질이 깨지기 직전까지 당기자 손목에 길게 패인 흔적이 나타났다.익숙했다.서하는 휴대전화를 꺼내 오래된 사진 폴더를 열었다. 7년 전 여름, 해진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웃고 있는 사진.오른쪽 손목.비스듬하게 이어진 흉터.똑같아 보였다.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서하는 반사적으로 서랍에서 삼각대를 꺼내 들었다.“그걸로 사람 패면 장비 아깝지 않습니까?”윤태오였다.“미친 새끼야, 여길 어떻게 알고 들어와.”“문재경 씨한테 연락했습니다.”“재경이가 당신 들여보냈다고?”“정확히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죠.”“내일 죽여야겠네.”태오가 모니터를 보다가 걸음을 멈췄다.“뭘 찾았어요?”“가까이 오지 마.”“그럼 화면이 안 보이는데.”“눈 좋잖아. 호텔 18층에서도 내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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