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라이커의 시점
그녀의 향기가 마치 산불이 지나간 뒤의 연기처럼 여전히 내 코 안쪽에 배어 있었다. 달콤한 야생 꿀, 은은한 바닐라, 그리고 언제나 나를 미치
게 만들었던 그 희미한 반항의 기척. 6년, 그리고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부딪친 그 한 번의 사건이 내가 묻어두려 했던 모든 상처를 다시 찢어
놓았다.
나는 실버베일 최고의 호텔에 있는 알파 스위트의 천장까지 닿는 창가에 서서,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치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형제들
은 내 뒤에 서 있었다. 방 안의 긴장감은 숨이 막힐 정도로 짙었다.
“그녀에게 아이가 있어.” 나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위스키가 담긴 크리스탈 잔을 꽉 움켜쥐자 유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들이야. 대략 여섯 살쯤 돼.”
로난은 대리석 벽난로 근처를 서성거리며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계산해 볼 필요도 없잖아, 형. 그 아이는 우리 냄새
가 났어. 희미했지만 분명히. 희석된 폭풍과 삼나무 냄새 같았지.” 평소의 장난기 어린 어조는 사라지고, 날카롭고 안절부절못하는
어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레이프는 가죽 안락의자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앉아,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세 마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정말 중요한 일이 닥치면, 레이프는 침묵을 지키며 치명적인 존재로 변했다.
로난이 방을 서성거리던 걸음을 멈췄다. “방금 거절당한 짝이, 거의 틀림없이 우리 아들과 함께 있는 걸 봤는데도, 마치 아무것도 못 본 척하
며 저녁 식사 내내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인가?”
레이프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먼저 조사해. 조용히. 이번에는 실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6년 전 그날 밤의 기억은 여전히 가장 어두운 순간마다 나를 괴롭혔다. 우리는 젊고, 오만하고, 어리석었다. 무리의
모든 암컷들이 우리에게 달려들던 그때, 늑대가 없는 오메가가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바람둥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녀
를 이용하고 잔인하게 차버렸으며, 유대 관계를 끊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틀렸다.
그녀가 사라진 후 첫 해는 지옥과도 같았다.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절감은 우리를 감정 기복이 심하고, 공격적이며, 가슴 아파하
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눈치채셨다. 우리를 그녀를 찾게 내버려 두는 대신, 아버지는 우리를 3년 동안 가혹한 섀도우 리지 훈련
소로 보내버리셨다. 그곳에서는 강제 격리, 피가 날 때까지 이어지는 전투 훈련, 그리고 무리에 대한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일만
반복되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쯤, 아버지는 이미 새로운 정혼 상대들을 정해 놓으셨고, 엘라라 보스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셨다.
하지만 우리는 찾아다녔다. 몰래. 수년 동안.
그리고 이제 운명이 그녀를 우리 바로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비를 등지고 그들을 마주했다. 6년 전 우리가 무자비하게 끊어버렸던 짝의 유대가 다시 맥박치고 있었다. 약하지만 끈질기게, 마
치 멍든 피부 아래에서 뛰는 심장박동처럼. 엘라라를 보는 순간 배를 한 방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그녀는… 더 강해 보였다. 우리가 망
가뜨렸던 그 순진한 소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새로운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고, 그녀가 몸으로
그 소년을 감싸던 모습—
내 것. 우리 것.
막을 새도 없이 원초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문에서 날카로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베타 조수인 엘리아스가 태블릿을 손에 들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리가 이
런 상태일 때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파님들. 알파 빅터 케인이 20분 뒤 저녁 식사에서 딸과의 동맹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님께서도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선택받은 후계자가 이 동맹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나는 목구멍 깊숙이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을 내뱉었다. 결혼 동맹. 우리가 실버베일 영토에 온 이유 그 자체였다. 나이트셰이드는 남부 무
역로와 케인이 장악한 광산 채굴권을 필요로 했다. 그 대가로 우리 중 한 명이 비비안 케인과 결혼해 통합된 무리를 물려받게 될 터였다.
아버지의 명령. 언제나 아버지의 명령뿐이었다.
“우리가 가고 있다고 전해,”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
케인 저택에서의 만찬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긴 마호가니 식탁은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에서 반짝였다. 은식기가 고급 도자기에 부딪히며 딸랑거렸다. 알파 빅터는 왕처럼 식탁의 가
장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의 오른편에는 딸 비비안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우리 중 누군가 그녀를 쳐다볼 때마다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녀
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웠다. 긴 적갈색 머리에 밝은 초록색 눈, 값비싼 빨간 드레스로 감싸인 매끈한 몸매. 다른 알파라면 누구라도 기
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라이커, 로난, 레이프,” 빅터가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맹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기쁩니다. 비비안은 몇 달
동안이나 이 결합을 고대해 왔습니다. 여러분 중 누가 선택되든 훌륭한 후계자가 될 것입니다.”
비비안의 뺨이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 한 가닥을 손가락에 감았다. “세 분 모두… 정말 인상 깊으세요,”
그녀가 부드럽고 달콤하며 연습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와 함께 루나로서 곁에 설 수 있다면 영광일 거예요.”
로난은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눈빛까지 닿지 않았다. “너무 과찬이시네요, 비비안.”
테이블 아래에서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6년 전 눈물로 범벅이 된 엘라라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가 거
절의 뜻을 전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던 모습. 그 후 그녀가 우리로부터 도망치던 모습.
나는 억지로 대답했다. “이 동맹은 두 무리에 모두 이익이 됩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빅터는 우리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는 영토 경계, 광산 수익, 합동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
놓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우리를 자꾸 훔쳐보며, 어느 형제를 더 좋아하는지 가늠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로난이 가끔 던지는 정중한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레이프가 자신의 눈을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는 리더십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고 애썼다.
나는 그 말들을 거의 듣지 못했다.
내 마음은 자꾸만 학교 복도로 쏠렸다. 그 소년의 헤이즐색 눈동자로. 엘라라의 향기가 마치 내가 한때 끊어내려 했던 사슬처럼 나를 감싸던
그 느낌으로. 그녀는 이곳의 한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를 혼자 키우며. 그 생각에 내 가슴속에서 어둡고 집착적인 무언가가 꿈
틀거렸다.
그녀는 우리 곁에 있어야 했다. 보호받으며, 소중히 여겨지며.
그 대신, 우리는 그녀를 내팽개쳐 버렸다.
저녁 식사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비비안은 점점 대담해져서 나이트셰이드의 전통에 대해 묻는 동안 로난의 팔을 가볍게 만지기도 했다.
로난은 그 분위기에 맞춰주었지만, 나는 그의 턱에 감도는 긴장감을 포착했다. 레이프는 침묵 속에서 식사를 했고, 시선은 딴 데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 소년에게. 엘라라에게.
우리가 드디어 저택을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왔을 때쯤, 비는 안개 낀 이슬비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스위트룸 문이 우리 뒤로 닫히자마자, 로난은 그 매력적인 척하던 태도를 버렸다. 그는 넥타이를 휙 풀어버리고 방 건너편으로 내팽개
쳤다. “거기선 숨을 쉴 수가 없었어. 그녀가 날 만질 때마다 으르렁대고 싶었어.”
레이프는 술을 따라 놓았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 짝이 아니야.”
나는 소파에 주저앉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그래. 그녀는 아니야.”
노크 소리. 또 엘리아스였다. 이번에는 그의 표정이 경계심 가득했다.
“알파들. 엘라라 보스에 대한 예비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말해 봐.”
엘리아스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6년 전 어머니 미라와 함께 실버베일에 도착했습니다. 둘은 영토 동쪽 끝자락에 있는 낡은 오두막으
로 이사했죠. 엘라라는 지역 클리닉에서 치료사의 조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삶을 살고 있죠. 최근까지 기록상 연애 상대는 없었지
만—마커스 리드라는 의사가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둘은 데이트를 했습니다.”
로난이 들릴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는 내 안에서 치솟는 분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 소년은?” 내가 위험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랜던 보스. 여섯 살입니다. 그녀가 나이트셰이드를 떠난 지 7개월 후에 태어났죠. 아버지는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강한 알파
의 피를 이어받았는데—분명 당신 것이죠.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자 스스로를 방어한 것이었
습니다.”
방 안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레이프는 천천히 일어섰고, 그의 몸에서 힘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그 아이를 숨겼어.”
“그녀는 우리가 그녀를 파괴했기 때문에 도망친 거야.” 나는 그 말이 재처럼 씁쓸하게 느껴졌지만 정정했다. 후회—내가 스스로 느끼
도록 거의 허락하지 않았던 감정—이 내 목구멍을 긁어댔다. “우리는 그녀를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식으로 배척했어. 그녀를 이용하고,
모욕하고, 결국 내팽개쳤지. 당연히 도망쳤겠지.”
로난은 창문 앞에 멈춰 서서 밤을 응시했다. “이제 어쩌지? 우린 이 동맹이라는 개소리 속에 갇혀 버렸어. 우리가 이 동맹을 위태롭게 하면 아
버지는 미쳐버리실 거야. 비비안은 이번 주 말까지 우리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해.”
나는 일어나 창가로 가서 그 옆에 섰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더 늙고, 더 냉혹해졌지만, 우리 짝을 망가뜨린 바로 그
개자식이었다.
“더 조사해. 철저히,” 내가 말했다. “그녀가 여기서 보낸 삶에 대해 모든 걸 파헤쳐야 해. 그리고 어떻게 접근할지 결정해야지. 왜냐하면 유대
가 끊어졌든 아니든…”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거야. 그리고 그 소년은 우리 후계자야.”
레이프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섰다. 그는 근육과 강렬함이 어우러진, 말 없는 벽과도 같았다. “그녀는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니,” 내가 동의했다. “그녀는 그러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린 6년 전처럼 무모한 소년들이 아니야.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가 그녀를 다
시 사라지게 두지 않을 거야.”
마치 동의라도 하듯 짝의 유대감이 이제 더 강하게 맥박쳤다. 비 내리는 밤 어딘가에서, 엘라라는 아마도 아들을, 우리 아들을 꼭 껴안고
있을 터였다. 과거가 다시 그녀의 삶으로 돌아올까 봐 몹시 두려워하며.
나는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한때 그녀를 파멸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비록 동맹을 깨고, 아버지에 맞서며, 우리가 외면했던 그 여인에게 우리가 두 번째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해도 말이
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자라면 누구든 신들의 가호가 있기를.
57장: 엘라라의 시점 내 손에 든 차트는 오늘 이미 진료를 마친 환자의 것이다. 차트를 반쯤 읽은 뒤에서야 이 사실을 깨닫는다. 내 손글씨로 적힌 기록, 두 시간 전에 작성한 치료 계획서… 나는 차트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양손을 카운터에 얹은 채 숨을 고른다. 이번 주 들어 잘못된 차트를 집어든 게 벌써 세 번째다. “엘라라.” 문 쪽에서 마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조용하고 당황한 어조였다. 그는 이번 주 내내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특유의 세심한 배려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3호실에 환자가 있어요.” “알아요.” 나는 올바른 차트를 집어 들었다. “고마워요.” 그는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고, 마커스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을 때 늘 하는 바로 그 행동이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나는 3호실로 향했다. ********* 그날의 나머지 시간은 그 사진이 도착한 이후로 이어져 온 지난 며칠들처럼 지루하고 단절된 채 흘러갔다. 열하루, 나는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그 숫자를 안다. 마치 고통이 너무나 끊임없이 이어져 일종의 배경 소음이 되어버렸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처럼. 점심시간, 나는 휴게실에 혼자 앉아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반 정도 먹었다. 12시 45분, 마커스가 문가에 나타났다. 지난 며칠 동안 그를 보지도, 소식도 듣지도 못했던 게 참 묘하다. 그는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고, 무언가에 대해 결심을 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56장: 레이프의 시점 11시 14분에 부엌 불이 켜진다. 엘라라가 아니라… 미라다. 커튼 뒤의 실루엣이 움직이는 모습과 걸음걸이로 알 수 있다. 엘라라는 부엌에서 더 빠르게, 더 목적의식을 가지고 움직인다. 미라는 마치 자신이 서 본 모든 부엌에서, 보지 않아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만큼 오랫동안 지내온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는 대낮에 이 오두막을 읽어내던 방식 그대로 어둠 속에서도 이 오두막을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가 헌신이라든가 집착이라든가라고 인식하는 그 특유의 세심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지금으로서는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결심했다. 11시 23분. 뒷문이 열린다. 미라가 현관으로 걸어 나온다. 그녀는 두꺼운 가디건과 잠옷 차림에, 양손에 컵 두 개를 들고, 잠을 자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며 한동안 깨어 있었던 여자의 표정으로 나무 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컵 하나를 들어 나무 쪽을 향한다. 나는 그림자에서 걸어 나온다. ********** 우리는 추위 속 현관 계단에 앉아 있다… 몇 주 전, 그녀가 그날 밤에 대해 묻고 내가 입 밖으로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진실을 털어놓았던 바로 그 계단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바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차를 마시며 어둠 속의 요새를 바라보고, 나도 차를 마시며 똑같이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몇 분 동안 침묵이 있어야 할 그대로 있게 내버려 둔다. “그녀가 네가 그리운 것 같다고 말했어,” 미라가 마침내 말한다. “오늘. 랜던과 함께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직접 말하진 않았어,” 미라
55장: 엘라라의 시점 “엄마. 또 떨어뜨리셨네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차트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떨어뜨린 기억은 없다. “내가 할게.” 나는 쪼그려 앉아 차트를 주워 들고 일어섰다. 펜다는 지난 일주일 내내 지어왔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의 호기심 어린 표정이 아니라, 좀 더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솔직한 대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묻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펜다의 말이 맞다. “일찍 쉬러 가.” 그녀가 말한다. “다음 20분은 내가 맡을게.” “난 괜찮아 — ” “엘라라.”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잠시 앉아서 쉬어. 제발.” ******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양쪽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숨을 쉬었다. 천천히, 실버베일에 온 첫 몇 달 동안 밤마다 찾아오던 ‘거절의 병’에 시달리던 시절,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했던 그때처럼. 가슴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필드 하우스에서 느꼈던 날카로운 통증도, 급성 통증도 아닌, 깊고 둔한 통증이었다. ‘유대’에서 오는 통증이다. 미라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이 재발은 내 몸이 거리를 감지하고 있으며, 그 감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8일 동안 접촉도, 근접도 없었는데도, 내 신경계는 우리가 타당한 이유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알아,*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이성적인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내 몸에게 말한다. *알아. 내가 선택한 거야. 좀 믿어 줘.* 내 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아파만 온
54장: 라이커의 시점 우리는 7시까지 케인의 전화에 응답해야 했는데, 나는 벌써 깨어 있었다. 5시부터 깨어 있었으니, 아단나가 밤새 보내준 법적 대응 지침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 지침은 의회의 제소에 대응해 케인이 법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보복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화면에 그의 이름이 뜨자, 나는 전화를 두 번 울리게 한 뒤 받아냈다. 바로 받으면 내가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알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위험한 것들이 주는 그 특유의 유쾌함으로 들렸다… 겉으로는 매끄럽지만, 그 이면에는 압박감이 감돌았다. “의회에 제출한 서류 받았어.” “그럴 줄 알았어.” “꼼꼼하군. 그 점은 인정해 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상황을 가늠하는 듯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내 딸의 행동을 묘사한 방식은 다소 과장된 것 같군. 사진 한 장이잖아, 라이커. 넌 사진 한 장 때문에 지역 위원회에까지 문제를 제기했어.” “저는 민간인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기록된 괴롭힘의 패턴 때문에 지역 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내 목소리는 평정이었다. “그 사진은 더 방대한 제출 자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출 서류를 전부 읽어보셨다면 그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읽었습니다.” 또 한 번의 침묵. “그리고 한 가지를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딸이 한 행동은 충동적이고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이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제출 서류… 전체 제출 서류, 무단 공격 기록, 위협 증거 등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변하며 더 따뜻해졌다. 무언가를 제안하려는 남자의 어조였다. “이 일이 조용히,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53장: 로난의 시점 “지난 10분 동안 휴대폰을 네 번이나 확인했잖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라페는 호텔 스위트룸 건너편 안락의자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때만 보여주는 특유의 인내심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급업체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어.” 내가 말했다. “감시탑 자재에 대한 거.” “벌써 5일이나 지났어. 감시탑 자재 주문은 없어.” 나는 휴대폰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탁자 위에 뒤집어 놓았다. “알았어. 그 여자가 문자를 보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알아.” “내가 직접 말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잖아.” “네가 그 말을 해야만 했다고 생각해,” 라페가 말한다. “5일 동안 바쁜 척만 해왔잖아.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아.” 나는 그 맞은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본다. 5일. 요새도, 훈련도, 저녁 식사도, 교량 점검에 대한 잘 자라는 문자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5일. 내가 동의한 일이고, 그 이유를 이해하며, 이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묻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옹호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그래도 그녀가 첫 주에 우리 얼굴에 문을 쾅 닫아버린 이후로 내가 겪은 가장 힘든 5일이었다. “그 사진이 자꾸 생각나.” 내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말이야. 비비안이 그 자리에 의도적으로 앉게 했어…” 지금 돌이켜보니, 그녀가 자리를 잡은 모습,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었을 때 딱 그 순간 몸을 기울였던 모습이 떠오르네. 난 그때 사진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어. 동맹 만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니까 예의상 그렇게
52장: 미라의 시점 사흘. 나는 세어왔다. 내 몸의 다른 부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세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이 도착한 지 4일. 엘라라가 더 이상 대놓고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고, 문을 닫은 화장실에서 확인하기 시작한 지 4일. 그녀는 그곳에서 내가 그 뒤에 이어지는 실망스러운 침묵의 특유한 분위기를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그녀는 4일 동안 로난, 라이커, 라페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 침묵 그 자체가 아니라. 침묵은 이해한다. 침묵에도 용도가 있고, 숨는 곳이 아니라 힘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침묵의 특정한 형태, 그녀의 어휘에서 그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 누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기보다 “그 상황”이나 “일어난 모든 일”이라고 표현하는 방식… 그것은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후퇴다. 나는 이런 모습의 딸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나이트셰이드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처음 2년 동안, 나는 이런 모습의 딸을 염두에 두고 진료 일정을 짜야 했다. 단추를 모두 채운 코트. 뒤로 묶은 머리.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중하고 절제된 능숙함.그녀는 이 모습을 2년 동안 유지하다가, 비로소 아주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는 벗지 않을 것처럼 그 모습을 되찾을까 봐 무섭다. ************- 랜던이 사흘째 되는 날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묻는다. “할머니.” 그는 정원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는 딸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으로 곱씹는 동안, 손이 할 일이 필요해서 허브 화단에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왜 또 그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