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
“오늘 밤 넌 우리 거야, 꼬마 오메가. 비명을 너무 크게 지르지 마.”
그 말이 여전히 귀에 맴도는 가운데, 나는 우리 작은 오두막의 무거운 오크 문이 쾅 하고 열리자, 밤공기가 마치 더럽고 두 번째 피부처럼 내
살에 달라붙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떨렸고, 허벅지는 쑤셨으며, 몸속 깊은 곳은 남아 있는 쾌락과 생생한 침범감이 뒤섞인 역겨
운 느낌으로 욱신거렸다. 내 몸에서 여전히 그들의 냄새가 났다—짙은 삼나무, 훈제 위스키, 그리고 권력을 외치는 듯 날카롭고 전기가 흐르
는 듯한 폭풍의 냄새. 그들이 차례로 나를 차지하며, 지킬 생각조차 없는 약속을 으르렁거리던 동안, 그들의 냄새는 사슬처럼 나를 감싸고 있
었다.
나는 뒤로 문을 쾅 닫고 그 문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 막을 새도 없이 목구멍에서 부서진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엘라라?” 어둑한 복도 불빛을 뚫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부엌 문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식기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었
는데, 진료소에서 긴 근무를 마치고 온 탓에 치료사 가운을 여전히 입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
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말을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대신 문 쪽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 차가운 나무 바닥에 앉은 채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
았다. 그들이 내 몸에서 반쯤 찢어낸 드레스는 수치스러운 누더기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목과 어깨에는 물린 자국이 욱신거렸는데,
그 자국들은 본래 신성한 것이어야 했다. 짝의 흔적.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니었다.
엄마는 수건을 떨어뜨리고는 허겁지겁 달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매일 새끼들을 낳게 하고 겁에 질린 오메가들을 위로해 주던 그
부드럽고 든든한 손이, 잠시 망설이다가 눈물로 범벅이 된 내 뺨을 감싸 안았다. “말해 봐, 얘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나는 목을 꾹 삼키며 짠맛과 수치심을 느꼈다. “그들은 제 짝들이에요, 엄마. 달의 여신이 저를 그 세 명 모두와 짝지어 주셨어요.”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세 쌍둥이 말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또 한 번의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라이커, 로난, 그리고 레이프 블랙쏜. 나이트셰이드 무리의 황금 알파들. 이 지역
전체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자비하며, 모두가 탐내는 수컷들. 블랙쏜 아카데미의 모든 소녀들이 그들을 원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늑
대도 없는 한부모 가정의 연약한 딸인 내가 여신에 의해 그들의 운명적인 짝으로 선택된 것이다.
모든 건 오늘 오후에 시작되었다.
례 종이 울린 뒤 복도에서 그들을 지나치던 그 순간, 나는 그 끌림을 느꼈다. 가슴 속을 찌르는 그 분명한 쿵 하는 느낌, 온몸이 달아오
르고 맥박이 요동치던 그 감각. 그들도 얼어붙은 듯 멈춰 섰고, 콧구멍을 벌리며 나를 알아본 듯 눈빛이 어두워졌다. 어리석고도 희망에
찬 단 1초 동안, 나는 모든 것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괴롭힘과 고립, 그리고 내 정체 불명의 아버지와 사라진 늑대에 대한 끊임
없는 수군거림이 마침내 끝날 것이라고.
대신, 뾰족한 턱과 차가운 눈빛을 가진 맏형 라이커는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카데미 뒤편에 버려진 운동장 건물을 향해 턱을 툭 훅
내밀었다. “8시에 거기서 만나. 우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해.”
나는 갔었다. 바보처럼, 나는 그곳으로 갔다.
그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여자친구들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았다. 낡은 건물 안의 공기는 그들의 향기가 뒤섞여 짙게 감돌고 있었다.
여유로운 매력과 사악한 미소를 지닌 둘째 형 로난이 먼저 나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여신이 우리 같은 자들에게 나 같은 사람을 선물해 주
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속삭였다. 가장 조용하고 강렬한 성격의 레이프는 눈꺼풀을 내린 채, 형들이 내 옷과 함께 내 존엄성을 서서히 벗겨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상냥하지 않았다. 정말로. 내 몸이 나를 배신하고 짝의 유대감에 반응했을 때조차, 그들의 손길에는 배려가 아닌 소유욕만이 담겨 있
었다. 라이커는 벽에 나를 밀어붙이고 가장 먼저 나를 차지하며, 늑대가 없는 오메가는 그들의 관심에 감사해야 한다고 으르렁거렸다. 내가
비명을 지르자 로난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 귀에 음란한 칭찬을 속삭였다. 라페는 마지막이었고, 내 안에서 끝을 맺을 때 가슴에서 터져 나오
는 낮고 소유욕 넘치는 으르렁거림을 제외하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거절이 뒤따랐다.
나는 눈을 꽉 감으며, 드레스 조각으로 몸을 가리려 애쓰던 내 위에 그들이 서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는 너를 거부한다, 엘라라 보스,” 라이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고 단호했으며, 그 말은 은빛 칼날처럼 연약한 짝의 유
대를 가르고 지나갔다. “약하고 아버지 없는 오메가는 나이트셰이드의 루나로서 설 자리가 없다. 넌 재미있는 기분 전환거리였을 뿐, 그 이
상은 아니야.”
로난은 잔인한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걱정 마, 아가. 네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크게 신음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레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을 뿐, 어두운 눈동자에 읽을 수 없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뒤 고개를
돌렸다.
그 유대감은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끊어지려면 세 개가 모두 묶인 세트 형태로 거부되어야 했지만—그 고통은 순식간에
밀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내 가슴 속으로 손을 뻗어 심장을 으스러뜨린 것처럼.
“엘라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를 현재로 되돌려 놓았다. 어머니는 지금 내 머리를 쓰다듬고 계셨고,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
이… 널 강제로 했니?”
나는 웃었지만, 목이 메어 흉한 소리가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원했어. 그 유대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원한 적이 없
어. 그냥 나를 이용하고 버리려고 했을 뿐이야.” 새로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들한테 여자친구가 있어, 엄마. 다들 그걸 알고
있어. 난 그저… 놀이감이었을 뿐이야.”
엄마는 나를 품에 끌어안고 가슴에 꽉 껴안았다. 엄마 옷에서 나는 진료소의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엄마가 항상 쓰시던 편안한 라벤더
비누 향이 섞여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들리는 소리는 내 거친 흐느낌과 밖에서 들려오는 멀리서 울리는 올빼미의 울음소리뿐이었다
.
“그들이 정말 싫어,” 나는 엄마의 어깨에 대고 속삭였다. “그들이 내게 느끼게 한 감정이 정말 싫어.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갈망하는 내 안
의 그 부분이 정말 싫어.” 그 고백은 마치 독을 삼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짝의 유대감은 이미 치유되려 하고 있었고,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
고 나를 그들에게로 다시 끌어당기려 하고 있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넌 충격에 빠져 있는 거야, 내 사랑. 그 유대는 그런 면에서 잔인하단다.” 엄마는 내가 새끼 늑대였을 때 악몽에 시달리던 날처럼 나를 부드럽
게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넌 약하지 않아. 절대 그들에게 그런 말을 믿게 두지 마. 짝이 없다고 해서 네가 덜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야. 그저
여신이 너를 위해 다른 길을 마련해 두셨다는 뜻일 뿐이야.”
나는 살짝 몸을 빼며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오늘 밤 엄마 눈가의 피로가 더 깊게 새어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긴 시간 동
안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며, 무리가 거의 인정하지 않는 딸을 키우느라 고생하셨다.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전 여기 더는 못 있겠어요,”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점점 힘이 실려 갔다. “그들이 저를 비웃고 있다는 걸 알면서 그 복도를
걸을 수는 없어요. 그들이 여자친구들과 어울리며 제가 없는 척하는 모습을 볼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고요. 제발, 엄마. 떠나자요. 엄마는 항상
우리를 엄마의 옛 집인 실버베일 무리로 데려갈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할머니 댁은 아직 거기 있잖아요, 그렇죠
엄마는 망설이며, 마치 우리 집이 있는 조용한 거리를 넘어 펼쳐진 나이트셰이드 팩의 영토가 보이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팩은 우리
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지만, 익숙한 곳이었다. 떠난다는 건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을 의미했다.
“엘라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실버베일에도 나름의 문제가 있어. 알파 손은—” “제발요, 엄마, 간청해요, 제발…” 나는
목을 조이는 듯한 절박함에 말을 끊었다.
“어디든 여기보다는 낫잖아요. 제가 일자리를 구할게요. 엄마처럼 진료소에서 도울게요. 뭐든 할게요, 제발… 다시는 그들을 마주할 수 없어
요. 그 배척감… 마치 제 영혼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오랫동안 조용히 있었고, 손가락으로 내 등을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쓰다듬었다. 나는 그 감각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
다. 맨 다리 아래로 느껴지는 나무 바닥은 차가웠다. 문 틈으로 스며든 찬바람이 우리 동네와 맞닿은 숲에서 풍겨오는 희미한 소나무 향기를
실어왔다. 근처 어딘가에서 늑대 무리가 울부짖었는데, 아마도 순찰 중인 전사 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는 그 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힘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내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알았어. 가자. 저축해 둔 돈이 좀 있어. 진료소에서 맡은 환자들을 다 처리하고 나면
이번 주말에 떠날 수 있을 거야. 실버베일에 있는 할머니의 오두막은 수리가 좀 필요할지 몰라도, 그건 우리 거야. 아무도 그걸 우리한테서
뺏을 순 없어.”
안도감이 너무나 강하게 밀려와 눈물이 다시 솟아올랐다. “고마워요,” 내가 속삭였다. “엄마를 이 모든 것에서 끌어내게 해서 미안해요.”
“감히 사과하지 마.” 그녀의 어조가 거세졌고, 눈빛에는 나를 지키려는 불꽃이 번뜩였다. “넌 내 딸이야. 내 유일한 우선순지. 그 남자애들
은 알파일지 몰라도, 널 무너뜨리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보들이야. 여신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단다
.”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 사이로 다시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오며, 그들이 내 몸을 얼마나 쉽게 이용했는지 상기시켜 주
자, 의심이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만약 그 유대가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면? 만약 내가 남은 평생 이 공허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엄마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며, 작은 욕실로 향하는 동안 내 몸무게를 떠받쳐 주었다. 엄마는 뜨거운 목욕물을 받아 놓고, 개인적으로 비
축해 둔 치유용 소금과 허브를 넣었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엄마는 망가진 드레스의 남은 조각을 살며시 벗겨 내며, 그들이 남긴 흔적 하
나하나를 볼 때마다 턱을 꽉 다물었다.
언젠가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녀는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삼중 알파든 아니든, 달의 여신은 짝의 유대를 모독하는 행위
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니까.”
나는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속으로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은 내 예민한 피부에 닿자 편안함을 주기도 했지
만 동시에 따끔거리기도 했다. 엄마는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정성스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감겨 주었다. 익숙한 그 의식이 내 가슴 속 꽉
조여 있던 무언가를 풀어주었다.
“실버베일에 대해 이야기해 줘,” 나는 조용히 말했다. 머릿속에서 여전히 되풀이되는 악몽 대신 미래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곳은 어땠어?”
그녀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스쳤다. “여기보다 더 거칠었지. 옛 방식에 더 가까웠고. 네 할머니도 그곳에서 존경받는 치유사셨어. 무리의
집은 항상 웃음과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지. 하지만 네 아버지를 만난 후로는…” 그녀의 목소리가 멎었고, 얼굴에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녀를 재촉한 적이 없었다. 그 상처는 너무 오래되었고,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머리카락에 묻은 비누거품을 씻어내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블랙쏜 삼형제가 내 삶을 짓누르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보았다. 아카
데미 복도에서 더 이상 몰래 훔쳐보는 시선도 없을 것이다. 왜 여신이 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는 세 명의 짝을 주며 저주했는지 더 이
상 의아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위의 물이 차가워져 가는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배신적인 속삭임이 맴돌았다. ‘그들도 느꼈어. 그 유대감은 거짓말을 하지 않
아.’
나는 그 생각을 사납게 떨쳐냈다. 그들은 나를 거부했고, 이용했고, 모욕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다시 나를 무너
뜨리게 두기보다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
57장: 엘라라의 시점 내 손에 든 차트는 오늘 이미 진료를 마친 환자의 것이다. 차트를 반쯤 읽은 뒤에서야 이 사실을 깨닫는다. 내 손글씨로 적힌 기록, 두 시간 전에 작성한 치료 계획서… 나는 차트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고, 양손을 카운터에 얹은 채 숨을 고른다. 이번 주 들어 잘못된 차트를 집어든 게 벌써 세 번째다. “엘라라.” 문 쪽에서 마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조용하고 당황한 어조였다. 그는 이번 주 내내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특유의 세심한 배려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3호실에 환자가 있어요.” “알아요.” 나는 올바른 차트를 집어 들었다. “고마워요.” 그는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고, 마커스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을 때 늘 하는 바로 그 행동이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나는 3호실로 향했다. ********* 그날의 나머지 시간은 그 사진이 도착한 이후로 이어져 온 지난 며칠들처럼 지루하고 단절된 채 흘러갔다. 열하루, 나는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그 숫자를 안다. 마치 고통이 너무나 끊임없이 이어져 일종의 배경 소음이 되어버렸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처럼. 점심시간, 나는 휴게실에 혼자 앉아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반 정도 먹었다. 12시 45분, 마커스가 문가에 나타났다. 지난 며칠 동안 그를 보지도, 소식도 듣지도 못했던 게 참 묘하다. 그는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고, 무언가에 대해 결심을 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56장: 레이프의 시점 11시 14분에 부엌 불이 켜진다. 엘라라가 아니라… 미라다. 커튼 뒤의 실루엣이 움직이는 모습과 걸음걸이로 알 수 있다. 엘라라는 부엌에서 더 빠르게, 더 목적의식을 가지고 움직인다. 미라는 마치 자신이 서 본 모든 부엌에서, 보지 않아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만큼 오랫동안 지내온 사람처럼 움직인다. 나는 대낮에 이 오두막을 읽어내던 방식 그대로 어둠 속에서도 이 오두막을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내가 헌신이라든가 집착이라든가라고 인식하는 그 특유의 세심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지금으로서는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결심했다. 11시 23분. 뒷문이 열린다. 미라가 현관으로 걸어 나온다. 그녀는 두꺼운 가디건과 잠옷 차림에, 양손에 컵 두 개를 들고, 잠을 자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며 한동안 깨어 있었던 여자의 표정으로 나무 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컵 하나를 들어 나무 쪽을 향한다. 나는 그림자에서 걸어 나온다. ********** 우리는 추위 속 현관 계단에 앉아 있다… 몇 주 전, 그녀가 그날 밤에 대해 묻고 내가 입 밖으로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진실을 털어놓았던 바로 그 계단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바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차를 마시며 어둠 속의 요새를 바라보고, 나도 차를 마시며 똑같이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몇 분 동안 침묵이 있어야 할 그대로 있게 내버려 둔다. “그녀가 네가 그리운 것 같다고 말했어,” 미라가 마침내 말한다. “오늘. 랜던과 함께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직접 말하진 않았어,” 미라
55장: 엘라라의 시점 “엄마. 또 떨어뜨리셨네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차트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가 떨어뜨린 기억은 없다. “내가 할게.” 나는 쪼그려 앉아 차트를 주워 들고 일어섰다. 펜다는 지난 일주일 내내 지어왔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의 호기심 어린 표정이 아니라, 좀 더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솔직한 대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묻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펜다의 말이 맞다. “일찍 쉬러 가.” 그녀가 말한다. “다음 20분은 내가 맡을게.” “난 괜찮아 — ” “엘라라.”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잠시 앉아서 쉬어. 제발.” ******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양쪽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숨을 쉬었다. 천천히, 실버베일에 온 첫 몇 달 동안 밤마다 찾아오던 ‘거절의 병’에 시달리던 시절,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했던 그때처럼. 가슴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필드 하우스에서 느꼈던 날카로운 통증도, 급성 통증도 아닌, 깊고 둔한 통증이었다. ‘유대’에서 오는 통증이다. 미라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이 재발은 내 몸이 거리를 감지하고 있으며, 그 감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8일 동안 접촉도, 근접도 없었는데도, 내 신경계는 우리가 타당한 이유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알아,*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이성적인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내 몸에게 말한다. *알아. 내가 선택한 거야. 좀 믿어 줘.* 내 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아파만 온
54장: 라이커의 시점 우리는 7시까지 케인의 전화에 응답해야 했는데, 나는 벌써 깨어 있었다. 5시부터 깨어 있었으니, 아단나가 밤새 보내준 법적 대응 지침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 지침은 의회의 제소에 대응해 케인이 법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보복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화면에 그의 이름이 뜨자, 나는 전화를 두 번 울리게 한 뒤 받아냈다. 바로 받으면 내가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알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라이커.” 그의 목소리는 매우 위험한 것들이 주는 그 특유의 유쾌함으로 들렸다… 겉으로는 매끄럽지만, 그 이면에는 압박감이 감돌았다. “의회에 제출한 서류 받았어.” “그럴 줄 알았어.” “꼼꼼하군. 그 점은 인정해 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상황을 가늠하는 듯한 침묵이었다. “하지만 내 딸의 행동을 묘사한 방식은 다소 과장된 것 같군. 사진 한 장이잖아, 라이커. 넌 사진 한 장 때문에 지역 위원회에까지 문제를 제기했어.” “저는 민간인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기록된 괴롭힘의 패턴 때문에 지역 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내 목소리는 평정이었다. “그 사진은 더 방대한 제출 자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출 서류를 전부 읽어보셨다면 그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읽었습니다.” 또 한 번의 침묵. “그리고 한 가지를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딸이 한 행동은 충동적이고 신중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이에 대해 딸과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제출 서류… 전체 제출 서류, 무단 공격 기록, 위협 증거 등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요.” 그의 목소리가 살짝 변하며 더 따뜻해졌다. 무언가를 제안하려는 남자의 어조였다. “이 일이 조용히,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53장: 로난의 시점 “지난 10분 동안 휴대폰을 네 번이나 확인했잖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라페는 호텔 스위트룸 건너편 안락의자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때만 보여주는 특유의 인내심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급업체의 확인을 기다리고 있어.” 내가 말했다. “감시탑 자재에 대한 거.” “벌써 5일이나 지났어. 감시탑 자재 주문은 없어.” 나는 휴대폰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탁자 위에 뒤집어 놓았다. “알았어. 그 여자가 문자를 보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알아.” “내가 직접 말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잖아.” “네가 그 말을 해야만 했다고 생각해,” 라페가 말한다. “5일 동안 바쁜 척만 해왔잖아.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아.” 나는 그 맞은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본다. 5일. 요새도, 훈련도, 저녁 식사도, 교량 점검에 대한 잘 자라는 문자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5일. 내가 동의한 일이고, 그 이유를 이해하며, 이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묻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옹호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그래도 그녀가 첫 주에 우리 얼굴에 문을 쾅 닫아버린 이후로 내가 겪은 가장 힘든 5일이었다. “그 사진이 자꾸 생각나.” 내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말이야. 비비안이 그 자리에 의도적으로 앉게 했어…” 지금 돌이켜보니, 그녀가 자리를 잡은 모습,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었을 때 딱 그 순간 몸을 기울였던 모습이 떠오르네. 난 그때 사진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어. 동맹 만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하니까 예의상 그렇게
52장: 미라의 시점 사흘. 나는 세어왔다. 내 몸의 다른 부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세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이 도착한 지 4일. 엘라라가 더 이상 대놓고 휴대폰을 확인하지 않고, 문을 닫은 화장실에서 확인하기 시작한 지 4일. 그녀는 그곳에서 내가 그 뒤에 이어지는 실망스러운 침묵의 특유한 분위기를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그녀는 4일 동안 로난, 라이커, 라페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 침묵 그 자체가 아니라. 침묵은 이해한다. 침묵에도 용도가 있고, 숨는 곳이 아니라 힘을 모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침묵의 특정한 형태, 그녀의 어휘에서 그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 누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기보다 “그 상황”이나 “일어난 모든 일”이라고 표현하는 방식… 그것은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후퇴다. 나는 이런 모습의 딸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나이트셰이드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처음 2년 동안, 나는 이런 모습의 딸을 염두에 두고 진료 일정을 짜야 했다. 단추를 모두 채운 코트. 뒤로 묶은 머리.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중하고 절제된 능숙함.그녀는 이 모습을 2년 동안 유지하다가, 비로소 아주 조금이나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는 벗지 않을 것처럼 그 모습을 되찾을까 봐 무섭다. ************- 랜던이 사흘째 되는 날 나에게 그 일에 대해 묻는다. “할머니.” 그는 정원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는 딸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으로 곱씹는 동안, 손이 할 일이 필요해서 허브 화단에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왜 또 그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