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게다가 남자의 손목을 꺾은 것도 강아연에게 감히 손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건드리는 걸 성규연이 허락할 리 없었다.“아연아, 네가 마음이 착하다는 건 알아.”성규연은 강아연이 어릴 적부터 착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언제나 전부는 아니야.”성규연이 이렇게 차분하게 강아연에게 설명한 것은 처음이었다.강아연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려 성규연의 손길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오해했어요.”“괜찮아.”성규연은 미소 지었다. 강아연이 먼저 사과했으니 받아 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그런데 아연아, 나를 그렇게 의심하니까 조금 서운하네.”성규연은 강아연 앞으로 다가가 낮게 물었다.“마음에 상처받은 보상으로 뭔가 하나 부탁해도 돼?”강아연은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뭘 원하는데요?”“난 네가...”성규연은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강아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다가, 강아연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말을 이었다.“내일 저녁이 내 생일이야. 네가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안 될까?”강아연은 잠시 멈칫했다.예전에 케이크를 만들어 본 적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성규연은 한 입도 먹지 않았고,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런 사람이 인제 와서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니.“싫어요.”강아연은 단칼에 거절했다.정성을 쏟았다가 몇 번이고 외면당한 탓에 다시 케이크를 만들 마음은 없었다.“케이크가 먹고 싶으면 이연미 씨한테 부탁해요...”“난 네가 만든 케이크가 먹고 싶은데.”성규연이 팔을 뻗어 강아연의 허리를 감싸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목소리에는 애원하는 기색이 묻어났다.“이게 두 번째 부탁이야. 들어주면 안 돼? 아연아?”너무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에 강아연은 어쩔 줄 몰랐다.밀어내려고 했지만 성규연은 오히려 더 단단히 안았다. 승낙할 때까지 놓아주지
추궁하는 눈빛에 강아연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아직도 무섭냐고?’당연했다.침묵만으로도 성규연은 답을 알아차렸다.성규연이 눈썹을 더욱 찌푸렸다.“왜 나를 무서워하는데?”강아연은 2초쯤 침묵한 뒤 숨을 내쉬었다.“규연 씨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줄 모르니까요.”사실은 너무 냉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방금 일을 못 본 척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정에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 태도와 앞뒤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잔혹함을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다.이런 남자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피하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강아연이 돌려 말했지만 성규연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 연산 그룹 책임자 편을 드는 거야?”강아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그냥 제가 본 일을 말하는 거예요.”가끔은 의문이 들었다.‘규연 씨처럼 냉혹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어떻게 미래 그룹 사람들의 충성을 얻었을까?’성규연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그러니까 네 눈에는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네?”성규연 자신도 이상했다. 강아연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불쾌했다.‘예전에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강아연의 평가만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걸까? 아마 지금 강아연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야.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인다고 하지 않던가...’강아연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을 이어 가면 성규연의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질까 두려웠다. 다시는 그 분노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모른 척할 수도 있었고 냉정하게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교육 때문에 강아연은 남의 처지에 쉽게 공감했다. 아버지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강아연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갖게 됐다.그러니 강아연과 성규연은 성격이 너무도 달랐다. 애초에 함께 살아가
계산을 마친 뒤 성규연은 커다란 장바구니 두 개를 직접 들었다. 기사가 다가와 돕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짐을 트렁크에 싣고 강아연의 손을 잡아 차에 태우려던 때였다.“성 대표님!”쉰 듯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아연이 돌아보자 낡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기사가 앞을 막았다.“누구세요?”“성 대표님! 저 연산 그룹 프로젝트 책임자입니다!”남자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전에 우리 회사와 계약하셨잖습니까!”“연산 그룹?”성규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강아연을 뒤로 감쌌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런 회사가 있긴 했다.“연산 그룹이 납기를 지키지 못해서 미래 그룹에서 이미 계약을 해지한 거로 아는데, 무슨 일이죠?”성규연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남자는 더욱 다급해졌다.“제발 딱 하루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하루면 됩니다. 반드시 전량 납품하겠습니다!”“대표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 회사는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자금줄도 전부 끊겼습니다. 여기서 투자까지 철회하시면 저희는 끝장입니다!”연산 그룹의 책임자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제 아들은 선천성 질환으로 입원해 있습니다. 수술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제 아내도 지칠 대로 지쳐서 매일 죽겠다고 합니다. 돈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 가족은 정말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강아연은 쉰 살이 넘고 관자놀이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강아연은 성규연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성규연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목소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그건 그쪽 사정이죠. 계약서에 납품 기일이 분명히 명시돼 있고, 기한을 넘기면 계약 위반이에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려했다고 생각해요.”“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당신들 말고도 맡을 회사가 많아요.”차갑고 단호한 말투였다. 마치
따스한 숨결이 뺨에 닿았다. 강아연 특유의 향기가 함께 밀려오자 성규연은 순간 정신을 빼앗겼다. 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고, 가까이에 있는 강아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다시 아프게 할까 봐 조심하는지 약을 바르는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바람까지 몇 번이고 불어 주었다.남편을 깊이 사랑하는 다정한 아내 같았다. 예전의 강아연이 돌아온 것만 같아 성규연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성규연은 손을 뻗어 강아연의 손목을 붙잡았다.강아연도 고개를 들어 성규연을 바라보았다. 맑은 두 눈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잔잔한 호수에 산들바람이 불어 물결이 반짝이는 것처럼 눈동자가 빛났다.빠져들 수밖에 없는 눈빛이었다.다정해진 강아연을 마주한 성규연은 목울대를 움직였다. 참을 생각은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미 충분히 참았다.성규연은 다른 손으로 강아연의 턱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서늘한 삼나무 향이 코끝에 밀려왔다.면봉을 쥔 강아연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면봉이 휘어질 정도였다. 속으로는 거부감이 가득했지만 성규연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내리깔고 희미하게 입맞춤을 받아 주었다.그 반응은 성규연에게 더없는 용기가 됐다. 늘 서늘하던 얼굴에도 온기가 번졌고, 한번 시작된 입맞춤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마이바흐가 달리는 도로 양옆에는 키 큰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창을 따라 차 안에 들고,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바뀌었다. 차 안의 분위기도 처음의 부드러운 설렘에서 점점 더 뜨겁고 짙어졌다.강아연은 숨이 막혀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입맞춤을 받아야 했다. 힘없이 성규연의 팔을 몇 차례 두드리고 나서야 성규연이 아쉬운 듯 놓아주었다.성규연은 강아연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대고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연아, 입술이 너무 달콤해. 멈출 수가 없잖아...”강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면봉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강아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손가락을 오므렸다.그런 속내를 모르는 성규연이 다시
“어쨌든 강아연은 지금 내 아내야. 앞으로도 내 아내는 강아연 하나뿐이고, 다른 사람으로 바꿀 생각 없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마음 접어. 안 그러면 사촌이라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서지원이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강아연이 지금도 네 아내로 남고 싶어 할 거라고 그렇게 확신해?”“직접 물어보든가.”성규연은 강명우가 있는 한 강아연이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리라고 자신했다. 그 약점만 쥐고 있으면 걱정할 게 없었다.서지원은 양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쥐고 큰소리쳤다.“강아연이 정말 네 아내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내가 반드시 데리고 나올 거야. 꼭!”성규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패배자가 마지막으로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사촌 동생이니 참을성을 발휘해 한마디 대꾸해 주었다.“네게 그런 기회는 없어.”그럴 기회를 줄 생각도 없었다. 강아연은 오직 성규연의 아내여야 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었다.성규연은 강아연의 몸도, 마음도 모두 자신만의 것이 되기를 바랐다.그래서 서지원이 떠나자마자 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명우를 철저히 감시하고 누구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였다....강아연은 허수빈에게서 연락을 받고 가늘게 눈썹을 찌푸렸다.성규연이 강명우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했다는 소식이었다.허수빈은 강아연과 성규연의 최근 상황을 물어본 뒤 금세 사정을 짐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성규연을 대하는 방식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때요?”“어떻게요?”“강하게 맞서는 대신 부드럽게 달래는 거예요. 회유책이라는 말 알죠...”“...”강아연은 그 자리에 선 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허수빈이 전화를 끊은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아연아, 왜 그래?”하유리가 어깨를 톡 쳤다.그제야 강아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오늘 많이 피곤해 보이네. 정리도 거의 끝났으니까 오늘은 일찍 퇴근해. 나머지는 내일 하고.”하유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서지원은 그 뻔뻔한 연기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해명했다.“강아연 씨, 진짜 그런 게 아니에요! 성규연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제 말 믿으세요...”“거짓말? 그럼 내 얼굴에 난 상처는 내가 스스로 때려서 생겼다는 거야?”성규연이 태연하게 되묻더니 다친 얼굴을 손으로 쓸고는 곧 아프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아연아, 너무 아파...”완전히 고자질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성규연! 어디까지 연기할 건데!”서지원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미래 그룹 대표가 이렇게 뻔뻔하고 속 검은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성규연은 서지원의 불타는 시선을 느끼고도 강아연을 향해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아연아, 나 연기하는 거 아니야.”서지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강아연 씨! 정말 모르시겠어요?”“그만 하세요. 두 분 다 싸우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싸우세요. 우리 회사는 두 분을 감당할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요.”강아연은 차갑게 말했다.“서지원 씨, 그만 돌아가 주세요.”“잠깐만요...”서지원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건물 보안 요원이 다가와 출구를 가리켰다.“왜 저만 내쫓는데요?”서지원이 불만스럽게 물었다.그 모습을 본 성규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강아연을 따라가려던 순간이었다.“성규연 씨도 돌아가 주세요.”강아연의 말투는 철저히 사무적이었다.“우리 회사는 이전 관련 서류를 정리하느라 바빠요. 손님을 맞을 여유가 없어요.”성규연의 입꼬리가 도로 내려갔다. 강아연은 두 사람에게 눈길 한 번 더 주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정말이지 인정사정없었다.“봤지? 불쌍한 척해 봤자 소용없어. 네 아내도 널 싫다잖아.”서지원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신나게 약을 올렸다.‘누가 먼저 비겁하게 굴고 피해자인 척하랬나?’성규연은 길게 숨을 내쉬고 서지원을 돌아보았다.“서지원, 언제까지 이런 철없는 짓을 할 거야?”목소리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