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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달빛 한 모금
10 시간 뒤, 비행기가 착륙했다.

마중 나온 사람은 절친한 친구 신예림이었다.

신예림은 나를 보자마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유나야... 너 어쩌다 이렇게 말랐어."

"내가 진작 말했잖아. 정서준 같은 부잣집 바람둥이는 언젠가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린다고."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 얘기는 그만하자. 나 이제 즐겁게 살려고 온 거야."

신예림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리 나으면 내가 술집 데려가서 신나게 놀게 해 줄게. 그 쓰레기는 잊어버리자!"

우리는 웃고 떠들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를 갉아먹던 관계를 벗어나자,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새로웠다.

저택에 도착하자 신예림은 갓 구운 서양식 디저트를 빨리 맛보라며 내게 권했다.

느닷없이 날카로운 전화벨이 울려 포근하던 분위기를 깨뜨렸다.

신예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저장 안 된 번호인데. 국내 번호네..."

눈꺼풀이 움찔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 뜬 번호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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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9화

    누가 봐도 오래 함께할 수 없는 사이였는데, 나만 그 달콤한 말에 눈이 멀어 있었다.다음 날 저택을 나서 출근하는데, 길가에서 최수빈이 불쑥 튀어나왔다.얼굴은 붉게 부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한정판 원피스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길거리의 거지와 다를 게 없었다.최수빈이 나를 사납게 노려봤다."서준이네가 파혼하니까 우리 아빠가 난 쓸모도 없대. 아예 인연을 끊겠대.""이제 나한테 아무것도 안 남았어. 속 시원해?"어이가 없었다.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 사이에서 가장 잘못한 사람은 정서준이라는 걸.나는 비웃듯 말했다."내가 파혼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 나 찾아와 봐야 소용없어. 가서 그 사람한테 따져."최수빈은 잠시 멍해지더니, 눈빛이 돌연 사납게 변했다. 그러고는 나를 밀치고 비틀거리며 달려갔다.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그때 모르는 사람이 친구 신청을 해 왔다. 정서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락했다.생각해 보니 우리는 제대로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온 마음을 쏟았던 관계인 만큼, 끝은 제대로 맺고 싶었다.한참이나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하지만 도착한 건 한 문장뿐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돈 때문에 나랑 있었던 거야?]내가 이토록 단호하게 떠날 수 있다는 걸 아직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처음에는 우리 집 빚을 갚으려고 그에게 부양받는 여자가 되겠다고 했던 게 맞았다.하지만 사람 마음을 흔드는 데 능한 정서준은 늘 다정하고 깊이 사랑하는 척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저 장난감이라고 비웃고 번번이 차단할 때마다 이렇게 가슴이 아팠을 리 없었다.나는 눈을 내리깔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사랑했어요.]내 사랑을 남김없이 소모시킨 건 정서준 자신이었다.또 한참이나 '입력 중' 표시가 떴다. 마지막에 채팅창에 나타난 건 짧은 답 하나였다.[그래.]하지만 나는 곧바로 수락했다."알았어요."나는 홀가분하게 웃고 정서준을 차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8화

    집에 들어서자 신예림이 소파에 누워 들뜬 얼굴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얼른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파파라치가 정서준이랑 약혼녀 싸우는 영상 올렸어. 둘 다 드디어 이미지 무너졌네. 하하하...""그동안 인터넷에 둘을 커플로 엮으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 헛소리들, 보기만 해도 역겨웠어!"나는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이미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까지 오른 영상을 눌렀다.영상에는 내가 떠난 뒤의 모습만 나왔다.정서준이 일부러 내 사생활은 드러나지 않게 한 모양이었다.화면 속 정서준이 매달린 최수빈을 떼어 내더니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귀국하기 전부터 경고했잖아. 네 체면은 세워 주겠지만 유나한테 너무 심하게 굴지는 말라고.""우리 집안끼리 결혼시키려던 건 없던 일이야. 내일 직접 네 집에 가서 파혼할 거야!"여자에게 손을 대다니. 어려서부터 지켜 온 체면과 품위도 내던진 셈이었다.정서준이 저토록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봤다.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최수빈은 무너져 내리듯 고개를 저었다.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기어가 정서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통곡했다."유나한테 질렸다고 한 건 너잖아. 내가 괴롭히면 잠깐 네 곁을 떠날 거라고 했잖아.""나도 아예 마음 접을 줄은 몰랐어. 이건 내 탓 아니야, 서준아!"하지만 정서준은 혐오에 찬 얼굴로 최수빈을 발로 걷어차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떠났다.영상이 끝나자 신예림이 분을 참지 못하고 물컵을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정서준이 수빈이한테 널 괴롭히라고 시킨 거였어? 그냥 바람둥이인 줄 알았더니, 완전히 쓰레기네!"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가사 도우미에게 파편을 치워 달라고 했다.바람둥이든 쓰레기든,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신예림을 달래 재우고 나도 내 방으로 돌아왔다.한지호에게 200만 원을 보내면서 말을 덧붙였다.[오늘 저녁 일은 미안해요. 치료비로 써요.]나와 정서준의 일에 아무 잘못도 없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7화

    나는 반사적으로 정서준을 밀어냈다."정서준 씨, 아직도 안 갔어요?""내가 가면 웬 놈이랑 놀아나려고?"정서준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핏발 선 눈으로 한지호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너무 빨라 피할 틈도 없었다. 한지호의 코에서 바로 피가 흘렀다.나는 급히 한지호를 부축했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걸 확인하고는 참지 못하고 정서준에게 소리쳤다."말 가려서 해요! 한지호 씨는 그냥 동료예요. 오늘 처음 만났다고요. 못 믿겠으면 알아보세요!""정말 그래야 할 거야."정서준이 비웃었다. 눈에 잔인한 경멸이 스쳤다."하긴, 어려 보이던데. 30 살이 다 돼서 늙은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하겠어? 너 싫다고 안 하는 건 나밖에 없지."그때 최수빈이 망고 주스 한 잔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억지웃음을 띠고 있었다."유나 씨, 직접 짠 주스예요. 마시고 지난 일은 이제 화 풀어요."나는 굳은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서준은 알아차리지 못했다.정서준이 내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말투에는 애원하는 기색마저 비쳤다."유나야, 주스 마시고 같이 돌아가자. 수빈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되잖아."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 손을 세차게 쳐 내고, 비싼 맞춤 정장 위로 망고 주스를 끼얹었다.최수빈이 비명을 지르며 나를 말리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도 사정없이 손을 날렸다. 짝, 뺨 맞는 소리가 울렸다."정서준 씨, 정말 제가 그쪽 없으면 못 살 줄 알아요? 그래서 일부러 망고 주스까지 들이밀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요?"나는 혐오 어린 눈으로 정서준을 바라봤다.정장에 묻은 액체를 내려다보던 정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최수빈에게 고개를 돌렸다."내가 오렌지 주스 짜 오라고 하지 않았어?"붉게 부은 최수빈의 얼굴 위로 눈물이 두 줄기 흘렀다."미안해, 서준아. 망고가 더 비싸니까 유나 씨한테 좋은 거 주고 싶어서..."저 두 인간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 다친 한지호를 부축해 나가려는데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6화

    [그런데 최수빈 씨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돌보시느라 못 가셨어요.]안도하며 답장을 썼다.[앞으로 대표님 이야기는 전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이어서 컴퓨터를 켜고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대학에서 전공한 디자인은 요즘 인기가 많은 분야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게임 스튜디오에서 캐릭터 의상 디자인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다. 나는 수락했다.일을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최수빈에게서 전화가 왔다.[내가 널 너무 우습게 봤어! 밀고 당기는 솜씨가 대단하네. 서준이가 나랑 파혼하겠다고 난리잖아!][정서준이 어떤 집안 사람인지 몰라? 나랑 결혼 안 해도 다른 여자랑 하겠지. 네가 그 아내 자리를 차지할 일은 절대 없어!]분을 이기지 못한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순진한 척하던 가면은 완전히 벗어 던진 뒤였다.길게 상대하고 싶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 버렸다.한밤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비몽사몽 겉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가, 서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잠이 달아났다. 정서준이었다.떠나온 곳은 늦봄이었지만, 이곳 노르웨이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있었다.그런데 정서준은 흰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 나를 찾아오느라 옷 갈아입을 생각도 못 한 모양이었다.추위에 코가 새빨개졌고, 속눈썹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표정이 굳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재빨리 문을 닫으려 했다.그러자 정서준이 문틀에 손을 내밀어 막았다. 손이 끼일 수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다."독하기도 하지. 유나야, 들어가서 몸 좀 녹이라는 말도 안 해 줘?"어쩔 수 없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래도 문 앞을 막아선 채였다.신예림은 원래부터 정서준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내가 당한 일들을 알고는 더 질색했다.정서준이 안에 들어왔다는 걸 알면, 불쾌해서 가사 도우미에게 소독제로 바닥을 세 번 닦으라고 할지도 몰랐다.나는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정서준 씨?"정서준은 잠시 나를 빤히 봤다. 내가 끝내 꿈쩍도 하지 않자 표정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5화

    10 시간 뒤, 비행기가 착륙했다.마중 나온 사람은 절친한 친구 신예림이었다.신예림은 나를 보자마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유나야... 너 어쩌다 이렇게 말랐어.""내가 진작 말했잖아. 정서준 같은 부잣집 바람둥이는 언젠가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린다고."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그 얘기는 그만하자. 나 이제 즐겁게 살려고 온 거야."신예림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다리 나으면 내가 술집 데려가서 신나게 놀게 해 줄게. 그 쓰레기는 잊어버리자!"우리는 웃고 떠들며 집으로 돌아갔다.나를 갉아먹던 관계를 벗어나자,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새로웠다.저택에 도착하자 신예림은 갓 구운 서양식 디저트를 빨리 맛보라며 내게 권했다.느닷없이 날카로운 전화벨이 울려 포근하던 분위기를 깨뜨렸다.신예림이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저장 안 된 번호인데. 국내 번호네..."눈꺼풀이 움찔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화면에 뜬 번호를 보니, 정말 정서준이었다.말릴 틈도 없이 신예림이 먼저 전화를 받았다.가슴이 철렁했다. 휠체어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내가 어디에 머무는지 이렇게 빨리 알아내다니, 대단한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수빈이가 날 어떻게 자극하는지는 정말 몰랐을까?'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복잡한 생각을 끊었다.[서유나 바꿔.]"이 쓰레기야, 무슨 낯으로 전화까지 해?"신예림은 거침없는 성격인 데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정서준이 재벌가 후계자라는 신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신예림, 네 집안이 조금이라도 소중하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목소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5 년을 곁에 있었던 나는, 지금 화가 났다는 걸 알았다.신예림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친구뿐 아니라 그 집안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그래서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예의를 갖추되 거리를 두는 목소리로 말했다."정서준 씨."[우리 유나, 이제 제멋대로 하겠다 이거야? 그 호화로운 새장으로

  • 나를 삼킨 사랑, 착각은 이제 그만   제4화

    그런데 정서준은 별 흥미도 없이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날 밤 내 곁에 머물지도 않았다.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서유나를 예뻐하는 건 예쁘고 말 잘 들어서야. 고양이처럼 데리고 놀기 좋잖아.""그런데 오늘은 손에 물집이 잔뜩 잡혔더라고. 보기만 해도 비위가 상해서!"그때 정서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명령조였다.[수빈이가 다음 달에 처음으로 나랑 외국에 가는데 아는 게 없어. 네가 서류 좀 준비해 줘.]곧이어 전화 너머로 최수빈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난 아무것도 몰라도 서준이가 다 예뻐해 주잖아.][유나 씨, 내가 좀 성격이 급해요. 오늘 밤 안으로 부탁할게요.]정서준이 말렸다.[유나는 밤에도 몸이 안 좋다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하지만 나는 곧바로 수락했다."알았어요."5 년 전, 먹고살 길이 막막해 클럽 테라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정서준이 거금을 쓰지 않았다면, 그 느끼한 사장들 사이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이번 서류까지 정리해 주면 더는 빚진 게 없을 것이다.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몸의 불편함을 참으며 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했다.꼬박 밤을 새우고서야 시킨 일을 마쳤다.아침이 되자 서류를 들고 지성그룹으로 갔다.안내 데스크 직원은 나와 정서준의 관계를 알고 있어, 늘 반갑게 맞아 주곤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앞을 가로막았다."서유나 씨, 대표님은 안 계세요. 일단 휴게실로 안내해 드릴게요."걸어가는 내내 직원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이 최수빈 씨 하이힐 신어서 힘들까 봐 차에서 사무실까지 안고 가셨대. 둘이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안내 직원은 난처한 얼굴로 해명하려다가, 내 표정이 달라지지 않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뒤 정서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류를 사무실로 가져오라는 말이었다.문을 열자 최수빈이 정서준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끈적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최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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