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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화. 네가 가진 걸 보여줘

Author: 혜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2 07:09:01

006화. 네가 가진 걸 보여줘

벨리사는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장례 내내 네가 본 것.”

“뭘 봤는데.”

“문.”

나는 하나씩 말했다.

“근위병.”

벨리사의 손가락이 멈췄다.

“사제 약함.”

이번에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내 칼.”

벨리사가 내 허리 쪽을 봤다.

군복 위에 아직 검이 달려 있었다.

장례라서 검을 벗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전쟁이 끝난 지 고작 며칠이었다.

몸에서 검을 떼는 게 아직 더 어색했다.

벨리사는 검을 본 게 맞았다.

여러 번.

“그냥 본 거야.”

“그래.”

“의미 없어.”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쉽게 인정하자 벨리사가 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믿는 척하지 마.”

나는 조금 웃었다.

“그건 잘 아네.”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야?”

“아직은.”

“아직?”

“응.”

한 번만 짧게 대답하고, 나는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검을 잡던 손이라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벨리사는 그 손을 봤다.

“전쟁에서 사람 많이 죽였어?”

질문이 바뀌었다.

하지만 사실은 같은 얘기였다.

“많이.”

“직접?”

“응.”

벨리사는 입술을 적셨다.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그 순간에야 알았다.

이 애가 정말 확인하고 싶은 것.

나를 두려워하는 이유.

“몇 명?”

“세다 말았어.”

“아무렇지도 않아?”

“처음엔 토했어.”

벨리사의 눈이 조금 커졌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손이 떨렸고.”

“그다음은?”

“익숙해졌지.”

“…….”

“사람은 웬만한 건 다 익숙해져.”

벨리사의 시선이 내 손에서 올라왔다.

“나도 죽일 수 있어?”

드디어 나왔다.

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

벨리사도 자기가 입 밖에 낸 뒤에야 너무 직접적이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렸다.

벨리사가 먼저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내가 뭔가 잘못했으면.”

“뭘.”

“모르지.”

“모르는데 죽을까 봐 무서워?”

“그럴 수도 있잖아.”

나는 등을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

벨리사도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의자 등받이에 닿고서야 멈췄다.

사이는 아직 탁자 하나만큼 떨어져 있었다.

나는 손도 뻗지 않았다.

그런데도 벨리사의 목선이 굳었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뒤의 문을 확인했다.

지금은 벨리사가 그러고 있었다.

“벨리사.”

“왜.”

“살고 싶어?”

그 애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엔 계산해서가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대답하는 순간 약점을 내 손에 쥐여 주는 기분이겠지.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벨리사가 말했다.

“누가 죽고 싶겠어.”

“그런 말 말고.”

“뭘 듣고 싶은데.”

“네 대답.”

벨리사의 손이 무릎 위에서 천을 움켜쥐었다.

“살고 싶어.”

작았다.

나는 잘 들었다.

“얼마나?”

벨리사가 나를 노려봤다.

이번엔 화가 아니라 수치였다.

“그걸 꼭 말해야 해?”

“아니.”

나는 다시 등을 기대었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또 그거네.”

“뭐가.”

“선택하게 하는 척하는 거.”

이번에는 웃음이 나왔다.

“척?”

“나갈 수 있다고 해 놓고 나가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해 놓고 안 말하면 뭔가 숨기는 사람이 되잖아.”

“그래서?”

“결국 네가 원하는 답을 하게 만드는 거잖아.”

벨리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구한테 배웠겠어.”

벨리사의 표정이 멈췄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애는 시선을 먼저 피했다.

“그래서 복수하려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나랑 엄마를 죽이려고?”

“그건 아직 안 정했어.”

벨리사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이번에는 숨기지도 못했다.

정말 무서워했다.

죽음.

그게 이 애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칼리아.”

이번에는 내가 호칭을 지적하지 않았다.

벨리사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나 진짜 아무것도 몰라.”

“아까도 들었어.”

“아버지 죽은 거랑 나랑 상관없어.”

“그것도 들었고.”

“엄마도—”

거기서 멈췄다.

나는 그 한 박자를 봤다.

끝까지 부정하지 못했다.

“오델린도?”

내가 대신 물었다.

벨리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엄마는…….”

“왜.”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말은 너무 늦었다.

나는 이제 확실히 알았다.

벨리사는 뭔가를 알고 있다.

전부는 아닐 수도 있었다.

직접 손을 댄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멈춤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벨리사가 따라 일어나지 못했다.

그대로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잠깐.”

“왜.”

“난 어떻게 되는 건데?”

“아직 아무것도.”

“그럼 왜 이런 얘기를 해.”

“네가 먼저 남았잖아.”

벨리사는 입을 다물었다.

맞았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오델린과 함께 가도 됐다.

그런데 자기 발로 남았다.

나는 장례당 문 쪽으로 걸었다.

뒤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벨리사가 따라왔다.

“칼리아.”

나는 문고리에 손을 얹고 멈췄다.

“폐하.”

벨리사가 이를 악문 듯 호칭을 고쳤다.

“정말 내가 뭔가 알고 있으면.”

나는 돌아봤다.

“응.”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

이제야 거래였다.

나는 일부러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벨리사가 한 걸음 가까이 왔다.

아까보다 거리가 줄었다.

자기가 먼저.

“살려줘?”

그 말은 거의 속삭임이었다.

벨리사가 누군가에게 살려 달라는 뜻의 말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예전에는 언제나 반대였다.

지금은 녹색 눈이 내 입만 보고 있었다.

나는 문에서 손을 뗐다.

“사면은 약속 안 해.”

벨리사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먼저 보여주면 거래는 해볼 수 있겠지.”

그 애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조그만 틈 하나만으로도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뭘 원해?”

벨리사가 물었다.

“증거?”

“있어?”

“모르겠어.”

이번에는 진짜인지 거짓인지 애매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나는 장례당 문을 열었다.

밖의 차가운 공기가 향 냄새 사이로 들어왔다.

오델린은 멀리 가지 않았다.

복도 끝 창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딸을 두고 먼저 가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벨리사가 어머니를 발견했다.

표정이 순간 복잡해졌다.

나는 그 옆을 지나치며 낮게 말했다.

“생각해 봐.”

벨리사가 돌아봤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한 걸음 더 걸었다.

“네가 가진 걸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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