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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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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유성준은 그녀의 앞으로 가 회피하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니라고?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날 보면 인사도 없이 지나치잖아. 그런데도 날 피하는 게 아니야?”

“왜 이러는데? 내가 나린이랑 만나서 그래?”

신연희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삼촌이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기뻐요.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잘된 거 진심으로 축하해요. 삼촌이 절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받아들였으니까 제 걱정은 마세요. 앞으로 삼촌 안 좋아할 거예요.”

신연희는 담담하게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어딘가 거슬렸는지 유성준의 표정은 삽시에 어두워졌다. 신연희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평생 들은 말 중 가장 황당한 말이었다.

“고백했다가 차이고 종일 매달리다가 차이더니 이젠 내 관심을 받으려고 새로운 수작을 부리나 보네?”

유성준은 말을 뱉으며 신연희의 표정을 관찰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걸 보고 유성준은 더 확신했다.

유성준은 한 걸음 한 걸음 신연희에게 다가갔다. 신연희가 품에 안은 상자를 본 그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

“날 안 좋아한다면서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쓰고 몰래 날 스케치했어? 몇 년 내내 집착하다가 이제 와서 안 좋아한다고?”

“신연희, 네가 하는 말이 우습지도 않아?”

신연희는 말없이 눈앞의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우스운지 모를 리가 없었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믿는 사람은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지금 신연희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었다.

“제가 삼촌을 정말 오래 좋아하긴 했지만 삼촌은 평생 절 좋아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저 정말 포기했어요.”

말을 마친 신연희는 유성준이 보는 앞에서 상자 안의 물건을 모두 쏟아냈다.

그리고 안에 있던 편지와 스케치를 하나씩 전부 찢어버렸다.

날리는 종잇조각 사이로 신연희는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두워지는 유성준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 유성준의 시린 말투가 그녀의 귀에 꽂혔다.

“어디 계속 아닌 척해 봐. 신연희, 명심해.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나린이뿐일 테니까!”

그날 이후 신연희와 유성준은 말을 섞지 않았다.

신연희는 유성준과 할 말이 없었고 유성준은 신연희가 밀당을 하는 거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어색하고 팽팽한 기류는 유씨 가문 파티까지 이어졌다.

예전 같았다면 이런 가문 파티에서의 주인공은 유씨 가문 부모님의 예쁨을 듬뿍 받는 신연희였을 것이다.

유씨 가문 사람들은 신연희를 둘러싸고 안부를 묻곤 했고 그럴 때마다 유성준이 나서서 신연희를 구해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 유씨 가문 사람의 관심은 모두 구나린에게 쏠려 있었다.

구나린은 미래의 유씨 가문 안주인이 될 사람이었고 신연희는 일개 외부인일 뿐이니 누가 더 중요한지는 사람들도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짧은 반나절 동안 신연희는 유씨 가문 사람들이 구나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지켜보았다.

구나린이 오자마자 유성준의 어머니는 유씨 가문 대대로 물려진 팔찌를 그녀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그건 신연희가 지난 생에서도 보지 못했던 비취 팔찌였다.

파티가 시작되자 유씨 가문 사람들은 식사하며 구나린과 유성준의 결혼 날짜를 논의했다.

그렇게 파티는 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면서 끝이 났다.

신연희가 유성준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유성준의 어머니가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그녀를 붙잡았다.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유성준의 어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연희야, 성준이 곁에서 떠나도록 해.”

“너도 알다시피 성준이는 나린이랑 만나고 있어. 성준이 곁에 있으면 괜히 성준이한테 짐만 되고 너도 웃음거리로 남는 것밖에 더 되겠니?”

유성준의 어머니는 신연희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말을 듣는 신연희는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유성준의 어머니는 신연희를 좋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성준에게 고백하기 전까지였다.

다들 신연희를 황당하게 생각했고 그녀의 마음을 낯 뜨거운 것이라며 질책했다.

신연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떠날 거니까 걱정 마세요.”

말을 하고 난 신연희는 가방 속에서 이민 서류를 꺼내 유성준의 어머니 앞에 보였다.

“며칠 전에 아빠가 같이 살자고 연락해 주셨어요. 아빠가 제 약혼남을 점찍어 두셨대요. 앞으로 삼촌한테 집착도 안 하고 삼촌 곁에서 멀리 떨어질 거예요.”

유성준의 어머니는 신연희 손에 든 이민 서류를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표정이 풀렸다.

“그 약속 지키길 바란다.”

유성준의 어머니가 자리를 떠나자 신연희는 긴장을 풀었다. 서류를 가방에 넣고 떠나기 위해 몸을 일으킨 찰나, 문 앞에 서 있던 유성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 곁에서 멀리 떨어질 거라고?”

신연희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유성준이 어디까지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해외로 나갈 거란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신연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잘못 들은 거예요.”

말을 마친 신연희가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유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외로 가기 싫어하는 거 알아. 내가 나린이랑 결혼했다고 해서 굳이 이사 갈 거 없어. 나랑 너희 아빠는 좋은 친구 사이야. 내가 너 하나쯤은 평생 보살펴줄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신연희는 눈을 크게 떴다. 유성준을 찾으러 왔던 구나린도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구나린의 원망 어린 눈빛이 신연희를 향하자 신연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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