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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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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희는 그날 유성준이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민 수속이 최대한 빨리 통과되어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구나린은 그런 신연희를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날 구나린은 쇼핑하러 나가자며 억지로 신연희를 끌고 외출했다. 그러나 차를 탄 지 얼마 안 가 신연희는 약에 취해 기절해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바닷가의 절벽 위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구나린도 똑같은 자세로 절벽 위에 묶여 있었다.

신연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구나린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 붙여진 테이프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 섞인 신음으로 들릴 뿐이었다.

구나린은 신연희의 의아함을 눈치챈 듯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연희, 원래 널 납치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그날 성준이가 한 말 때문에 불안해서 증명받고 싶었어. 우리 둘 중 누가 성준이한테 더 중요한지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신연희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애초에 증명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답은 뻔하니까...

곧 납치범의 문자를 받은 유성준이 현금 두 박스를 들고 급히 달려왔다.

유성준은 들고 온 현금 박스를 앞으로 던지며 소리쳤다.

“돈은 가져왔으니까 두 사람 놔 줘!”

그러나 이미 구나린의 명을 받은 납치범은 일말의 동요 없이 여유롭게 말했다.

“유 대표님, 애초에 돈을 바라고 납치한 게 아니에요.”

유성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그의 말투는 한결 더 차가워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납치범은 신연희와 구나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한 사람은 오랜 친구의 딸, 한 사람은 대표님의 약혼녀라면서요?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어요. 다른 한 사람은 바다에 던져져 상어의 먹이가 될 겁니다. 선택하세요!”

말을 마친 납치범이 손에 든 줄을 살짝 풀자 절벽 끝에 묶인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바닷속에 빠질 듯했다.

구나린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준아, 살려줘! 나 죽기 싫어!”

구나린의 외침에 유성준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나린이 건드리지 마!”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납치범은 드디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놀란 척 연기를 하던 구나린도 안도했다.

감동을 받은 척 유성준을 바라보았지만 유성준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한쪽에 있는 신연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절망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신연희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녀의 덤덤한 표정을 보자니 유성준은 묘하게 불안해졌다.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줄에서 풀려나 감동해서 달려와 안기는 구나린에 유성준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구나린을 꽉 끌어안았다.

“나린아...”

하지만 곧 유성준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신연희를 묶고 있던 줄이 끊어짐과 동시에 그녀가 바다로 추락했다.

풍덩!

높이 치솟은 바닷물이 신연희의 몸을 감쌌다. 아래로 당기는 무수한 힘이 그녀를 심연 속으로 끌어내렸다.

필사적으로 위로 헤엄치려 했지만 힘을 풀리게 하는 피로감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렇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며 신연희는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고 병원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유성준이 보였다.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과 푸르스름한 수염이 그가 이미 며칠 내내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신연희는 더 이상 유성준의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다 결국 신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곁에 있어 주실 필요 없어요. 나린 언니한테 가보세요. 나린 언니야말로 삼촌의 보살핌이 더 필요할 거예요.”

오해의 소지라도 있을까 봐 신연희는 한마디 덧붙였다.

“전 제가 알아서 챙길 수 있어요.”

유성준은 얼어있다가 복잡한 눈빛으로 병상에 있는 신연희를 오랫동안 바라본 후에야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신연희가 퇴원하던 날은 마침 구나린의 생일이었다.

두 사람이 사귄 후로 처음 맞는 생일이라 유성준은 생일 파티를 유난히 성대하게 준비했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10만 송이 장미가 파티장을 가득 채웠고 수많은 고가의 선물들이 한구석에 쌓여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사진도 입구부터 파티장까지 줄지어 놓여있었다.

하늘을 가득 수놓은 불꽃과 함께 파티도 절정에 달했다. 유성준은 구나린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우아한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그들 뒤의 대형 스크린에는 유성준과 구나린이 함께한 순간의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하객들이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하고 있을 때 갑자기 대형 스크린이 블랙아웃되었다.

곧이어 여러 장의 유치한 편지와 스케치가 화면에 나타났다.

유성준에 대한 신연희의 사랑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공개되고 만 것이었다.

파티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신연희는 대형 스크린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분명 다 찢어버렸는데 대체 왜 여기서 공개된 거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스크린을 꺼버리고 싶었지만 두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군대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신연희는 심연 속으로 한없이 추락했다.

“유 대표님 곧 결혼할 텐데 신연희 양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나 보네요. 정말 뻔뻔하기도 하지.”

“나린 씨 생일 파티에 이런 짓이라니 이건 도발밖에 더 돼요?”

“나린 씨 불쌍하기도 하지. 결혼을 해도 남편을 노리는 사람이 있으니 원...”

하객들의 수군거림에 춤을 추던 주인공도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크린을 본 구나린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몸을 떨며 화면 속 편지를 쓴 죄인을 보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드레스 자락을 붙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린아!”

유성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구나린을 따라가려 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얼어있는 신연희를 보고는 발길을 멈추고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짝!

주변이 순간 고요해졌다.

“신연희, 요즘 잠잠한가 했더니 이런 짓을 준비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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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영양실조와 고통으로 인해 한때 혈색이 좋았던 구나린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유성준의 어머니에게 고작 뺨 한 대만 맞았을 뿐인데 구나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그런데도 유성준의 어머니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자기 아들이 이 여자 때문에 그 지경이 된 걸 생각하자 유성준의 어머니는 더는 참지 못하고 구나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뺨을 내려쳤다.이상한 걸 감지하고 교도관이 달려들어 유성준의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면 구나린은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유성준의 어머니는 두 교도관에 의해 단단히 붙잡혀 있으면서도 구나린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걸 멈추지 않았다.“망할 것, 차라리 네가 차에 치여야 했어!”“왜 네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식물인간이 된 건데!”...욕설을 들으며 구나린은 그저 우습다고 생각했다.유성준이 자신을 사랑할 때 유성준의 어머니는 자신을 친딸처럼 아끼고 예뻐하며 매일 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그런데 지금 유성준은 저를 끔찍이 미워하고 유성준 어머니의 태도도 완전히 뒤바뀌었다.‘망할 것’이라는 말이 구나린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유성준의 어머니가 지쳐 차를 마실 때가 되어서야 구나린은 입을 열었다.“제가 망할 것이라고요? 그러는 어머님 아들은 얼마나 잘난 줄 아세요?”“절 좋아한다면서 신연희 연락이라고만 하면 절 버려두고 신연희한테 갔어요!”“신연희한테 미련이 있으면서 저한테 사랑한다고 하질 않나, 어느 쪽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더 망할 자식 아니겠어요? 잘못한 건 본인이면서 여자 탓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하하,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된 것도 싸요. 그런 인간은 평생 깨어나지 말아야 해요.”말을 마친 구나린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런데 구나린은 웃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분명 자신과 유성준은 한때 가장 사랑하는 사이였다.신연희만 아니었다면, 유성준이 두 여자를 다 놓치려 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일을 저지를 리도, 이 지경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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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18장

    하인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뒤돌아 쌓인 선물을 처리했다.유성준은 선물이 반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속 보내라는 지시만 내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임씨 가문으로만 보내질 줄 알았던 임원훈의 예상과 달리 유성준은 아예 선물을 들고 파티에 나타났다.그건 임씨 가문과 오래 알고 지내던 가문에서 주최한 파티로 신연희가 처음으로 임원훈의 아내로 참석하는 파티이기도 했다.신연희가 입은 빨간 드레스가 임원훈의 앞주머니에 꽂힌 빨간 행커치프와 잘 어울렸다.신연희의 중지에서 반짝이는 25캐럿 루비는 임원훈이 그녀의 25번째 생일 선물로 준 것으로 파티에 참석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그녀가 임원훈의 팔짱을 끼고 등장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물론 구석에 있던 유성준의 시선 또한 사로잡았다.사람들 속에서 밝고 환하게 웃는 신연희를 바라보자니 유성준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스쳤다.신연희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과거 신연희는 정말 잘 웃는 아이였다.그녀의 웃음은 해피 바이러스처럼 유성준의 기분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그녀의 웃음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그러나 유성준이 신연희의 마음을 거절하고 구나린과 사귄 후로 신연희는 유성준 앞에서 뭘 하든 조심스러워졌다.선물을 든 유성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얇은 선물 박스가 그의 손에 구겨질 뻔했다.이번 파티의 중요 인물인 임씨 가문 안주인에게 하객들은 각자 선물을 건넸다.유성준도 그리로 발을 내디뎠다.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임원훈이 한 발 먼저 신연희를 감싸안으며 2층의 룸으로 향했다.“연희야!”유성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으며 서둘러 쫓아가려 했다.그러나 덩치 큰 보디가드 두 명이 팔을 뻗어 그를 막아 나섰다.임씨 가문의 집사가 유성준의 바로 앞에 섰다.“유 대표님,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사모님께 무슨 짓을 하셨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임 대표님께서 과거 일로 유 대표님을 매장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체면은 충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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