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080화. 선고 뒤의 복도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08:00:39

서경은 선고가 시작되기 전에 손목시계를 풀었다.

밴드가 조이는 것 같았다. 풀어도 맥박은 줄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를 가방에 넣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태주는 옆자리에서 법정 앞을 보고 있었다.

시우가 들어왔다.

그는 방청석을 한 번 훑고 서경에게 시선을 멈췄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그가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자기 쪽의 일이었다.

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피고인들의 주장이 먼저 정리됐다. 수령과 지급을 관리했을 뿐이라는 설명, 현장의 일은 몰랐다는 주장, 피해자 가족에게 제공했던 지원. 서경은 그 말들이 다시 나오는 동안 가방의 모서리를 잡았다.

이어 그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나왔다.

독립된 진술과 연락 내역, 실제 돈이 움직인 경로와 사건 전후의 행동이 이어졌다. 증명되지 않은 일부 사실과 자료의 한계도 구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82화. 내 소리를 소개하는 법

    공연 프로그램 인쇄본이 도착했다.서경은 이름이 잘못 적혀 있지 않은지 먼저 봤다. 손이 불편해 돌아온 기적이라는 문장 대신, 오랜 공백 뒤 실내악 무대로 복귀한다는 짧은 소개가 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새로 찍은 것으로 썼다.연주할 곡은 세 곡이었다.포레의 자장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 현재 손과 호흡으로 연주할 수 있는 편곡과 길이를 유진과 함께 정했다. 익숙한 제목이라고 몸이 저절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짧은 음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오른손에 힘이 몰리면 소리가 거칠어졌다.리허설에서 서경은 마지막 곡을 한 번 중단했다.유진이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서경은 활을 내리고 어깨를 돌렸다. 잠깐 쉬고 다시 해보겠다고 했다. 그가 벽시계를 보았다.“오늘 남은 건 한 번입니다. 전체 말고 어려운 부분만 할까요?”서경은 첫 마디를 보다가 손가락을 폈다. 처음부터 다시 켜면 마지막 곡 전에 힘이 다 빠질 것 같았다.“그 부분만 해요.”다시 시작하자 피아노가 먼저 모퉁이를 돌았다. 서경의 활이 뒤를 쫓았다. 짧은 음 하나가 모서리에 부딪힌 듯 튀었다.그녀는 이를 악물지 않고 다음 긴 음에서 활을 눕혔다. 피아노가 돌아오는 자리에 자기 소리를 놓았다. 마지막 마디에서야 둘의 끝이 맞았다.서경이 악보의 자기 파트에 표시하려 하자 유진이 손을 들었다.“방금은 제가 너무 빨랐습니다.”서경이 악보에서 고개를 들었다.“어디요?”“여기 넘어가는 데서요. 녹음 들어보죠.”두 사람은 함께 녹음을 들었다. 모든 흔들림이 서경의 손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도 속도를 잘못 잡았고 그녀도 한 음을 서둘렀다. 둘은 서로의 표시를 고쳐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81화. 편지는 두고 갑니다

    어머니에게는 저녁에 병원에서 이야기했다.전화로 먼저 선고 소식을 전했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부분은 얼굴을 보며 다시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서경이 들어가자 가까운 의자를 가리켰다.“밥 먹었니?”서경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웃다가 울었다.“먹었어. 엄마는?”“나도 먹었지.”둘은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서경은 판결 이유 중 자신이 이해한 부분을 천천히 전했다. 어머니는 남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 혼자 가버린 게 아니었네.”어머니는 무릎 위의 담요를 만졌다. 같은 주름을 펴고 또 폈다.“네 구두까지 닦아놓고 갔어. 나는 그걸 보고도…….”뒤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경은 어머니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앞에서 아버지를 너무 오래 말하지 않았다.“엄마. 우리 이제 아빠 얘기해도 돼.”어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담요에 작은 물자국이 번졌다. 서경도 더는 웃는 얼굴을 만들지 않았다.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둡지 않았다. 봄 저녁이 생각보다 길었다. 태주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경은 차 문을 열기 전에 그의 옷깃을 잡고 얼굴을 묻었다.그가 그녀의 등을 감쌌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싶어요.”“그러죠.”“내일은 연습해야 돼요.”“끝나고 연락 주십시오.”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타자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시우 측 대리인이 정 변호사를 통해 전해온 연락이었다.강시우가 편지를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80화. 선고 뒤의 복도

    서경은 선고가 시작되기 전에 손목시계를 풀었다.밴드가 조이는 것 같았다. 풀어도 맥박은 줄지 않았다. 그녀는 시계를 가방에 넣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태주는 옆자리에서 법정 앞을 보고 있었다.시우가 들어왔다.그는 방청석을 한 번 훑고 서경에게 시선을 멈췄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그가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자기 쪽의 일이었다.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피고인들의 주장이 먼저 정리됐다. 수령과 지급을 관리했을 뿐이라는 설명, 현장의 일은 몰랐다는 주장, 피해자 가족에게 제공했던 지원. 서경은 그 말들이 다시 나오는 동안 가방의 모서리를 잡았다.이어 그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가 나왔다.독립된 진술과 연락 내역, 실제 돈이 움직인 경로와 사건 전후의 행동이 이어졌다. 증명되지 않은 일부 사실과 자료의 한계도 구분됐다.서경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한도진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읽혔다.서경은 숨을 들이켰다. 집에 남겨두고 온 사진 뒷면의 아버지 글씨가 떠올랐다. 냉면을 먹었다는 짧은 문장. 자기 딸과 다음 식사를 할 사람이 남긴 글씨였다. 그 글씨를 두고도 혼자 떠난 사람이라고 미워했었다.서경은 가방을 쥔 손을 풀었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 끝인사를 붙이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다음 말도 직접 듣고 싶어 앞을 봤다.권혜진의 사망 역시 우연한 교통사고라는 설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전의 연락과 비용, 실행에 관여한 사람들의 진술, 은폐 경위가 이어졌다. 태주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가 들었다.서경이 그의 팔에 왼손을 대었다.서로를 위로하느라 중요한 말을 놓치지는 않았다.시우가 가족을 보살핀 사실도 판결문에서 언급됐다.그러나 도움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범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79화. 서로 다른 핑계

    유세라는 별도의 공판에서 감정과 반입 실무를 맡긴 업체를 거론했다.“갤러리에서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감정서를 믿고 거래한 겁니다.”그러나 원래 반입 자료를 받은 뒤 가격 설명을 바꾸라고 회신한 내역이 나왔다. 단순히 잘못된 서류를 전달받은 것인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바꾼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서경의 수령증을 취득 확인처럼 사용하라는 연락에도 갤러리의 응답이 남아 있었다.세라는 화면의 자기 이름을 보다가 변호인에게 몸을 기울였다. 예전처럼 누군가의 옷값을 따질 자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답장 한 줄을 설명해야 했다.변호인은 잘못된 자료를 받았다는 설명부터 다시 하려 했다. 질문은 그 자료를 받은 뒤 보낸 회신으로 돌아왔다. 세라는 앞에 놓인 종이의 모서리를 맞추었다.“작성은 직원이 합니다.”그녀가 말했다.“제가 갤러리의 모든 문장을 직접 쓰지는 않아요.”직원의 초안과 세라의 수정 지시, 바뀐 가격 설명이 나란히 떴다. 세라는 다른 페이지로 종이를 넘겼다.수령증을 취득 확인으로 사용하는 데 동의한 경위가 다시 질문됐다. 그녀는 태산에서 법률 검토를 했다는 답을 내놓았다.“그러면 갤러리에 다시 들어온 물품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셨습니까?”세라의 손이 멎었다.잘못 이해한 것은 서경이라고 했던 보관과 재반입이었다. 세라는 그 사실까지 몰랐다고 할 수 없었다.“보관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세라는 낮게 답했다. 그다음에는 원문을 다시 보겠다고 했다. 직원에게 찾아오라고 할 수 없었다. 자기 앞에 놓인 쪽을 넘기며 직접 그 줄을 찾아야 했다.세라는 한 장을 넘겼다 되돌렸다. 직원의 손도 태산의 설명도 끼어들지 않았다.&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78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카페에 앉자 태주는 자기 몫을 휴대전화 뒤에 넣었다.서경이 그를 보았다.“대표님 회의할 때 보이면요?”“제가 웃을 수도 있겠군요.”“그 정도만요?”그는 사진을 넣고 화면을 뒤집었다.“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뭐라고 하실 건데요?”그가 서경을 봤다. 법정 밖에서 이 남자가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듣고 싶었다.태주는 대답하기 전에 사진의 앞뒤를 한 번 살폈다. 서경은 그 짧은 틈을 못 참고 말을 보탰다.“자료 때문에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는 마세요.”그가 눈을 들었다.“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생각했다기보다, 오늘은 싫어서요.”서경은 가방에서 손을 뺐다. 듣고 싶은 말을 요구하자 얼굴이 뜨거워졌다.“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요.”태주가 사진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이 서경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녀는 괜히 물컵을 당기다 멈췄다.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으로 묻고도, 막상 그 눈을 받자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태주가 손을 내밀어 컵 곁에 놓인 그녀의 손끝을 가볍게 잡았다. 말을 꺼내기 전 먼저 닿는 손이었다.“만나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요.”태주가 휴대전화 뒤의 사진을 한 번 눌렀다.“설명하다 누나 이야기부터 꺼낸 적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먼저 서경 씨를 말하고 싶습니다.”서경은 자기 이름을 발음하는 그의 입술을 봤다.서경은 컵을 두

  •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077화. 제가 원한 것은

    서경은 준비했던 숙박 결제 내역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묻지 않은 숫자들을 급하게 늘어놓지는 않았다.“도움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변호사를 알아볼 방법이나 자료 확인 같은 것이요. 제 숙소와 생활비는 제가 부담했습니다.”“피고인이 제안한 자산을 받으려 한 적은 없습니까?”“무슨 재산인지 확인하려고 대리인에게 가져갔습니다. 서명하지 않았고 받은 재산도 없습니다.”변호인이 거액을 검토한 이유를 물었다.“돈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 병원비도 있었어요.”그녀가 말했다.“그래도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인정하는 조건이라 받지 않았습니다.”변호인이 제안서를 펼쳤다. 서경은 병원에 돈을 보내고 읽었던 날짜를 봤다.“어떤 조건을 말하는 겁니까?”그녀는 과거 지원과 관리가 자신의 위탁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확인 부분이라고 답했다. 변호인이 생활 지원을 받은 적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어머니 진료비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김채린 씨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습니다.”서경은 어머니와 채린의 이름을 따로 말했다.“제가 무엇을 부탁했는지 확인하기 전에, 전부 부탁한 것으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시우를 보고 싶었지만 서경은 제안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재판장이 질문을 정산 서류로 돌렸다.화면에 자기 서명이 떴다.“이 서명은 증인의 것입니까?”“네.”“증인이 해당 거래를 확인한 것 아닙니까?”서경은 종이의 윗부분을 보았다. 반출된 조각품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