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의 구원자는 내 상처를 너무 잘 알고있다: Capítulo 1 - Capítulo 10

28 Capítulos

001화. 매달 500만 원

‘내 손을 부러뜨린 여자에게, 시우 씨는 이번 달에도 500만 원을 보냈다.’서경은 수령인 칸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김채린. 손을 떼어도 같은 이름이었다.동명이인이면 됐다. 흔한 이름이니까. 서명만 다르면.마지막 획이 길게 빠져 이름 밑에 줄을 긋고 있었다. 학교에서 제 소묘집을 망쳐놓은 뒤에도 채린은 꼭 저렇게 이름을 남겼다. 누가 그랬는지 숨길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서경은 종이를 넘기려 했다. 오른손 약지가 펴지지 않았다.바이올린 활을 놓친 뒤로, 10년째 제때 펴지지 않는 손가락이었다.“서경아. 커피 식겠다.”서재 문밖에서 시우가 불렀다.서경은 펼쳐놓은 서류를 덮지 못했다. 왼손으로 오른손 약지를 감싸고서야 종이 위에 떨어지던 그림자가 멎었다.“응. 금방 갈게요.”목소리가 평소처럼 나와서 놀랐다.시우가 맡긴 후원비 정산철이었다. 늘 날짜순으로 영수증만 정리했다. 누구에게 주는 돈인지는 관리번호 뒤에 가려져 있었다.이번에는 C-04 뒤에 수령 확인서가 붙어 있었다. 돈을 받은 사람의 이름과 서명이, 처음으로 드러난 종이였다.김채린.지급 사유는 생활지원.서경은 다음 장을 넘겼다. 전월에도 500만 원, 그 전달에도 같은 금액. 모두 매달 15일에 지급되어 있었다.지난달 15일에는 비가 왔다. 오른손이 아파 물컵을 놓칠 뻔한 날이었다. 시우는 대신 컵을 들어 입에 대주고, 저녁 내내 손을 주물러주었다.그날 이 여자에게도 돈을 주었구나.그날 시우는 물을 흘린 그녀에게 괜찮다고 했다. 셔츠는 새로 사면 된다고. 서경은 그 말이 고마워, 손을 주무르는 그에게 아프다는 말도 참았다.김채린도 그날 돈을 받았다. 새 셔츠 몇 벌쯤은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돈을.종이 가장자리가 손톱 밑을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아픈 데를 정확히 알았다.“많이 남았어?”시우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서경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수령 확인서 한 장. 관리번호와 날짜가 적힌 정산표 한 장. 두 번째 사진에 제 손 그림자가 걸렸다.문손잡이가 내려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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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비서의 자리

식탁에는 의자가 세 개뿐이었다.서경은 문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시우와 유세라,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 자신이 들고 온 서류 가방을 놓을 의자도 없었다.“그건 이쪽에.”시우가 제 의자 뒤를 가리켰다. 서경은 가방을 사이드테이블에 내려놓았다.유세라는 그녀의 블라우스를 보고 짧게 웃었다.“집에서 바로 나온 줄 알았네. 강 대표님은 직원 옷도 직접 골라주시나 봐요?”“세라 씨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시우가 메뉴판을 펼쳤다. 집을 나올 때 그녀의 옷깃까지 고쳐준 손이었다. 지금은 맞은편 의자에 걸린 세라의 가방도 치워주지 않았다.서경은 서류를 꺼냈다. 베이지색 소매가 식탁 가장자리를 스쳤다. 앉을 사람이 입고 온 옷이 아니었다.서경은 식탁 위의 경매 도록을 정리했다. 모서리를 맞추는 일이 익숙해서 손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손 엄지로 두꺼운 표지를 누르는 순간, 유세라의 시선이 흉터에 닿았다.“이번에 우리 장학생들도 무대에 세울 거예요. 서경 씨도 옛날에는 악기 했다면서요.”“바이올린 전공이었어요.”“잘됐네. 애들 긴장하지 않게 옆에서 좀 봐줘요. 너무 굳어 있으면 사진이 안 나와서.”서경은 표지를 놓았다.“연주 지도는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누가 레슨해달래요? 옷 매무새 보고, 순서 맞춰서 올려보내고. 그런 일 잘하잖아요.”유세라가 샴페인 잔을 밀었다. 서경은 얼음통에서 병을 꺼냈다. 병목에 감긴 흰 천이 차고 축축했다.시우의 시선이 오른손에 멎었다.“왼손으로 받쳐. 또 떨어뜨리지 말고.”서경은 병을 고쳐 잡았다. 시우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떨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유세라의 잔을 채우는 동안 샴페인 한 방울이 테이블보에 떨어졌다.“어머.”유세라가 냅킨을 놓았다. 식탁 가장자리에서 손을 뗀 탓에, 천이 서경의 발치로 흘러내렸다.“괜찮아요. 새로 가져다줘요.”그 말을 듣기도 전에 서경은 몸을 굽혔다.“서경아, 손 조심해.”시우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주우라는 말도, 줍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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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화. 입을 다문 값

“C-04요? 계속 같은 사람입니다.”윤 비서의 대답은 짧았다.서경은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정산표를 넘겼다. 오전에는 시우가 출근했고, 오후에는 윤 비서가 서류를 가지러 올 예정이었다. 그 전에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이번에는 수령인 이름이 붙어 있어서요. 번호가 바뀐 건가 했어요.”“담당 직원이 바뀌면서 원본 첨부를 했나 봅니다. 금액만 맞춰놓으시면 됩니다.”“과거 자료도 다 같은 번호로 찾으면 되죠?”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소리가 멎었다.“대표님께서 과거 자료까지 정리하라고 하셨습니까?”서경은 펼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얼른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혼나지 않으려면, 언제나 그렇게 대답하는 게 빨랐다.“후원 사례집에 쓸 자료를 골라두래요. 제 치료비도 같이 들어 있어서요.”거짓말은 아니었다.“그건 대표님이 선별해서 주실 겁니다. 우선 지난 분기만 정리해주십시오.”“네, 알겠어요.”통화가 끝나자 서경은 기록하던 펜을 내려놓았다. 계속 같은 사람. 잘못 끼워진 서류라는 기대가 하나 사라졌다.서경은 블루 펍을 검색했다. 확인서의 번호가 가게 번호와 같았다. 지도에는 차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떴다.기사를 데리고 가면 시우에게도 전해진다. 채린에게 먼저 전화하면, 그 여자가 시우에게 알릴지도 몰랐다.서경은 지도를 닫았다. 지갑 안의 태주 명함도 그대로 두었다. 시우와 같은 식탁에 앉았던 남자에게 맡기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먼저 어머니의 요양병원에 전화했다. 내일 오후 2시 면회를 확인하고, 진료 설명을 자신이 직접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제가 요즘 직접 들은 게 별로 없어서요.”직원은 왜 몰랐느냐고 묻지 않았다. 조금 일찍 오면 담당 간호사와 연결해보겠다고 했다.서경은 내일 가져갈 옷을 꺼냈다. 서랍 안쪽에서 오래된 악보집이 함께 딸려 나왔다.마지막으로 연습하던 날의 표시가 남아 있었다. 활이 두 번 바닥에 떨어졌고, 세 번째로 주우려 할 때 시우가 케이스에 넣었다.너 자신을 그만 괴롭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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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화. 그날의 목소리

—손을 못 쓰게 해. 병원에는 내가 갈 테니까.재생이 멈췄다.서경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 더 말할 것 같았다. 농담이라고 하든, 잘못 들었다고 하든, 그 목소리를 아는 사람이 끼어들어 정정해주어야 했다.식사 자리에서 생선을 발라주겠다고 하던 목소리였다.서경이 다치기 전에, 시우는 이미 병원에 오기로 했다.손을 못 쓰게 해.그 손을 10년 동안 이 사람이 주물렀다. 약지가 펴지지 않을 때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서경은 아프다는 말조차 줄였다. 손을 놓지 말고 조금만 더 만져주기를 바랐다.“한 번 더.”그가 병원에는 내가 간다고 말하는 부분까지 들어야 했다. 자신이 울면서 기다린 사람이 언제부터 오기로 되어 있었는지.“서경아.”“다시 틀어.”채린이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서경이 소리가 끝나기 전에 화면을 덮었다.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었다. 화면을 누르는 데 필요한 힘조차 가늠되지 않았다.시우가 병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늦어서 미안해.그녀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정말 늦게 알아서 오지 못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다친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시우의 셔츠를 붙잡았다.그때 그의 셔츠에 피가 묻는 걸 걱정했었다.서경은 고개를 숙였다. 속이 뒤집혔다. 채린이 물컵을 밀어주었지만 받을 수 없었다.“나도 그때 집이 망하게 생겼었어. 우리 아버지 회사 돈 막아주겠다고 하니까…….”“너는.”서경이 겨우 말을 이었다.“전화 끊고, 무슨 생각 했어?”채린이 입을 다물었다.“내가 계속 빌었잖아. 손만 놓아달라고.”“그 얘기는 하지 마.”“넌 들었잖아.”채린이 종이컵을 찌그러뜨렸다.“부러지는 소리까지, 바로 옆에서 들었잖아.”눈물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서경은 닦지 않았다. 그때 못 본 척하던 여자 앞에서 오늘까지 얼굴을 정리해주고 싶지 않았다.“미안해.”소리가 너무 작아서 커피 기계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에 묻혔다.서경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넘어갔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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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화. 약속할 수 없는 것

시우가 손을 달라고 했다.서경은 저녁 내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을 정리하고, 외출복을 갈아입고,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면 다음에는 손을 만져주었다. 그때마다 그는 TV 소리를 줄였고, 서경은 소파의 같은 자리에 앉았다.“오늘은 그냥 잘래요.”말을 하고 나서야 거절했다는 걸 알았다.시우가 그녀를 보았다.“왜. 많이 아파?”“조금요.”“그럴 때 풀어줘야지.”그가 손을 뻗었다. 서경은 피하지 않으려고 무릎에 힘을 주었다. 시우의 손가락이 닿기 직전, 그녀의 어깨가 먼저 움츠러들었다.시우가 멈췄다.짧은 침묵 뒤에 그가 물었다.“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엄마를 보니까…….”어머니를 핑계로 쓰는 게 싫었다. 하지만 오늘 정말 어머니를 보며 울고 싶었다. 거짓말을 만들어내기보다 그 감정 하나를 붙잡았다.“많이 나이 드신 것 같아서요.”시우가 그녀를 제 쪽으로 당겼다. 서경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붙였다. 품에 안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숨이 풀렸다. 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이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알면서도 몸은 익숙한 자리에 기대고 있었다.“너 혼자 감당하게 안 해. 내가 있잖아.”그의 셔츠는 익숙한 세제 냄새가 났다. 서경은 그 냄새 속에서 잠들고, 아픈 날에는 울었다. 오늘은 어깨에 닿은 이마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몰랐다.시우가 등을 쓸어내렸다. 서경은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쌌다. 그의 품 안에서, 그가 다시 손을 잡지 못하게.“고마워요.”버릇처럼 나온 말을 삼킬 수 없었다. 대신 그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믿는다고, 예전처럼 말하지 않았다.***새벽이 되어 서경은 작은방으로 옮겨 앉았다. 시우는 서재에서 일을 하다 잠들었고, 그녀는 어머니에게 보낼 사진을 정리하겠다고 했다.권태주의 명함을 책상에 놓았다.한 줄을 쓰는 데 오래 걸렸다.[후원 관련 서류에서 확인할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한서경입니다.]보낸 메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파일은 붙이지 않았다. 김채린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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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화. 내가 적은 연락처

정 변호사는 녹음을 두 번 듣지 않았다.첫 재생을 마친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서경에게 물었다.“이 파일을 받은 경위를 처음부터 말해주세요. 추측은 빼고, 직접 보고 들은 것만요.”서경은 수령 확인서를 발견한 일부터 설명했다. 말이 엉킬 때마다 시우가 나쁜 사람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싶었다. 정 변호사는 왜 그렇게 오래 몰랐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날짜가 모호한 부분만 다시 확인했다.“원래 녹음 전체는 김채린 씨가 가지고 있다고 했고요?”“네. 지금 받은 건 일부예요.”“받은 파일은 그대로 보관해주세요. 전체 녹음을 얻을 방법은 제가 검토하겠습니다.”정 변호사가 수령 날짜를 적었다.“서경 씨가 다시 혼자 만나서 가져오실 필요는 없어요.”“저를 믿으세요?”변호사가 펜을 멈췄다.“서경 씨의 이야기를 듣고 검토하는 게 제 일입니다. 믿어달라고 하시느라 기억하지 않는 내용까지 채워 넣으실 필요는 없어요.”서경은 펜을 들었다. 정확한 시간까지 기억나지 않는 날짜 옆에 물음표를 적었다. 시우 앞이었다면 그가 기억하는 시간으로 고쳤을 것이다.정 변호사는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서경도 의자 등받이에 처음으로 등을 붙였다.책상 위에는 상담 신청서가 놓여 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아래에 연락 가능한 번호를 적는 칸이 있었다. 비상 연락처를 쓰려던 손이 습관처럼 움직였다가 멎었다.강시우.세 글자 중 첫 글자도 다 쓰지 못했다.“그 칸은 나중에 정하셔도 됩니다.”정 변호사가 다른 종이를 건넸다. 서경은 자기 휴대전화 번호만 적었다.“권 대표님한테는 오늘 이야기가 다 전해지나요?”“누구에게 무엇을 전할지는 서경 씨와 먼저 정합니다. 권 대표가 소개했다는 이유로 제가 자동으로 보고하지는 않아요.”“그럼 오늘은, 상담받았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직접 그렇게 하세요.”정 변호사는 어머니의 진료 계획과 납부 내역부터 물었다. 옮겨야 한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머니는 어디에 있고 싶어 하는지도.“병원은 계속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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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화. 나를 위한 계획서

사진 속 서경은 활을 들고 웃고 있었다.시우가 그 사진을 뒤집었다.“그것보다 이게 낫겠네.”그가 고른 것은 병실 사진이었다. 서경은 오른손에 두꺼운 붕대를 감고 있었고, 시우는 침대 곁에 앉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누가 찍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전 연주 사진이 좋아요.”“후원 사례집이잖아.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보여야지.”주말 아침, 시우는 오래된 자료 상자를 거실로 가져왔다. 홍보팀에 넘기기 전에 서경이 사진과 이력을 확인하면 된다고 했다. 박 실장은 이미 사본 한 묶음을 준비해 옆에 놓아두었다.맨 위의 투명 파일에는 영문 표제가 붙어 있었다.Project: 서경.서경은 파일을 꺼내놓고도 바로 열지 못했다.“왜 이름을 이렇게 써놨어요?”“그때 담당자가 그렇게 정리했겠지.”시우는 소파에 기대앉아 커피를 마셨다.“너한테 해준 게 많으니까. 치료하고, 진학 도와주고, 여기 들어온 뒤에는 생활도 챙겨주고.”서경은 첫 장을 넘겼다. 어머니의 병원 연락처, 학교, 성적, 장학금 내역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음에는 고등학교 때 받은 연주회 초청장이 나왔다.연주 사진에는 그녀 혼자 있었다. 병실 사진에는 시우도 있었다.서경은 그가 골라둔 사진의 모서리를 맞췄다. 붕대를 감은 손 옆에 시우의 손이 놓여 있었다. 자신은 무릎 아래까지 이불을 덮고 있었고, 그가 입은 셔츠는 조금도 구겨지지 않았다.누가 찍었을까. 셔터가 울릴 때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이 초청장은 제 거니까 가져가도 돼요?”“그럼. 다 네 얘기잖아.”시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필요한 건 사진 찍어놔. 홍보팀에서 정리하고 원본은 다시 보관할 거야.”그녀는 연주 사진 두 장을 골랐다. 사진 뒷면에는 아버지 글씨가 있었다.[서경이. 끝나고 냉면 먹으러 감.]사진 가장자리에는 아버지의 손가락이 조금 찍혀 있었다. 렌즈를 가렸다고 그 자리에서 타박했던 기억이 났다. 한 장 더 찍어준다는 말에 배고프다며 먼저 걸어갔었다. 서경은 붉게 번진 그 귀퉁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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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화. 사진 밖의 아이

“손목이 조금 더 보이게 해줄래?”사진기사가 말했다.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소매를 만졌다. 손목 안쪽에는 옅은 화상 흉터가 있었다. 아이가 주춤하자 진행 담당자가 웃으며 설명했다.“민지야, 후원자분들이 어떤 도움을 주시는지 알아야 하잖아. 네가 이렇게 잘 이겨내고 연주하는 게 얼마나 기특해.”월요일 오전, 자선 경매장 옆 연습실에는 아이들 다섯이 모여 있었다. 서경은 무대 순서를 확인하고 행사 물품을 전달하러 왔다. 유세라가 지시했던 일이었다.카메라 앞에 선 아이는 13살 권민지였다. 명단에 적힌 전공은 바이올린. 서경은 나이보다 연습 기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려운 곡을 빽빽하게 적어놓았고, 마지막에 공연 예정 곡 옆으로 작은 체크 표시가 있었다.민지는 소매를 조금 올렸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개도 들고. 그래, 그렇게.”셔터가 울리기 전에 서경이 입을 열었다.“잠시만요. 연주 자세 사진부터 찍으면 안 될까요?”사진기사가 카메라를 내렸다.“기획안에 흉터가 보이는 컷이 있어서요.”“아이한테 확인하셨어요?”진행 담당자의 웃음이 굳었다.“보호자 동의는 받았습니다.”서경은 민지를 보았다.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소매를 꼭 잡고 있었다.“민지야. 이 사진 찍어도 괜찮아?”민지의 입이 조금 열렸다가 닫혔다.“저…… 연주하는 거 먼저 하면 안 돼요?”사진기사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 악기 턱에 올려볼래?”진행 담당자가 서경을 옆으로 불렀다.“한 실장님, 사진은 저희가 정해놓은 방향이 있어요. 사연이 있어야 후원도 움직입니다.”“연주를 보여주면 되잖아요.”서경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왔다. 아이들 쪽을 보았다. 민지는 소매를 쥔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흉터가 잘 나온 사진보다, 저 아이가 잘하는 걸 찍어주세요.”담당자가 순서표를 접었다.“관장님께는 한 실장님 요청이라고 말씀드릴게요.”서경은 목 안쪽으로 올라온 사과를 삼켰다.“네. 제가 말씀드렸어요.”카메라가 다시 올라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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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화. 같은 작품의 두 이력

하성에서 돌아온 답은 두 줄이었다.[학생 사진 사용 여부와 기존 악기 대여를 연계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갤러리 보관 악기는 대여처 확인 중입니다.]서경은 먼저 민지의 담당 교사에게 연락했다.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자 교사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아이가 그 문제로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도 전했다.전화를 끊은 뒤 서경은 다시 업무 메일을 열었다.유세라의 갤러리에서 경매 자료의 보완본이 도착해 있었다. 다음 날 보내겠다던 자료가 한 주를 넘겨 온 것이다. 이번에는 운송 내역까지 붙었다. 서경은 전달 목록을 작성하다가 파일 하나를 다시 열었다.새벽의 천사.작품의 취득 이력에는 프랑스 개인 소장가로부터 인수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첨부된 운송 서류의 출발지는 방콕이었다.처음에는 다른 작품의 문서가 잘못 붙은 줄 알았다. 작품 사진 아래의 관리번호를 보자 같은 번호였다. M-17.그녀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취득 이력과 운송 경로가 다른데 중간 대여 이력이 있나요?”“서류에 있는 게 전부인데요.”“권 대표님 쪽에서 빠진 이력을 요청하셔서요.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아요.”담당자가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다. 음악이 흘렀다. 그 사이 서경은 번호 뒤에 붙은 사진을 확대했다.사진의 받침대에는 길게 팬 홈이 있었다. 도록 사진을 옆에 띄우자 그 자리만 매끈했다.서경은 도록을 돌려놓고 빛의 방향을 맞춰보았다. 홈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 아래에 촬영일을 적고, 받침대 부분을 따로 표시했다. 누구에게 보여줘도 같은 자리를 찾을 수 있게.담당자가 돌아왔다.“관장님은 지금 외부 일정이시라서요. 윤 비서님이 설명해주실 겁니다.”갤러리 작품의 운송 경로를 왜 시우의 비서가 설명할까.서경은 그 질문을 삼켰다.“그럼 회신 메일로 부탁드릴게요.”통화를 마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 비서였다.“서류는 전달만 해주시면 됩니다.”그는 인사 없이 본론부터 말했다.“제가 질문받으면 답을 해야 하니까요.”“하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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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화. 오지 않은 원본

[파일 지워. 그거 잘못 보낸 거야.]채린에게서 문자가 왔다.서경은 아침에 그 문장을 읽고, 양치하던 칫솔을 세면대에 내려놓았다. 얼마 뒤 전화가 걸려왔다.“들었어? 지우라고.”“무슨 파일인지 알면서 보냈잖아.”“네가 뭘 알아. 내가 옛날에 따로 잘라놓은 거라고. 앞뒤 다 듣지도 않고 무슨 신고 같은 걸 하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서경은 욕실 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 시우는 출근 준비를 하며 다른 방에서 통화 중이었다.“그럼 앞뒤까지 보내.”“싫다고 했잖아.”“갑자기 왜 이래?”채린은 대답하지 않다가 낮게 욕을 했다.“강시우한테 연락 왔어. 이번에 후원비 전부 다시 본대. 내가 누구한테 무슨 확인서를 줬냐고 묻더라.”서경은 세면대 가장자리를 잡았다.“나를 만났다고 했어?”“너부터 그렇게 말했는지 알아야 나도 대답을 하지.”“나한테서 들었다고 하든 말든, 네가 받은 돈은 네가 설명해야지.”“잘났네. 너는 그 사람 돈 안 받고 살았어?”서경은 입을 다물었다.채린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나는 적어도 어떤 돈인지 알았어. 너는 모르면서 공주처럼 살았잖아. 이제 와서 나만 나쁜 년 만들어?”서경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의 여자는 한쪽 입술에 치약 거품이 묻어 있었다. 그것을 닦아내는 데 집중했다. 먼저 울면 채린이 계속 떠들게 될 것 같았다.“나는 네 손을 부러뜨리지 않았어.”말이 나오자 거울 속 입술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네가 받은 돈하고 내가 속은 걸 한 줄에 쓰지 마.”“그런 말 법정에서 해봐. 네 통장도 깨끗한지 한번 보자고.”“네가 아는 게 있으면 말해.”“일단 약속부터 해. 나를 안 건드린다고.”“그건 못 해.”채린이 전화를 끊었다.서경은 한동안 욕실에 서 있었다. 원래 녹음을 받지 못했다. 채린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그 짧은 파일만 가지고 싸워야 할 수도 있었다.***감정서 원본도 오지 않았다.하성 담당자는 오전 심의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짚었다. 갤러리는 재반입 물품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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