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유나야 어떻게 됐어? 네가 만든 옷 맘에 든데? 우리 공장으로 발주한데? 반장님이 엄청 기대하고 있던데?”
지연이 신발을 벗고 들어 오는 유나를 보고 호돌갑을 떨며 말했다.
“응, 그냥 두고 가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
유나는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유나가 지치거나 외롭거나 우울할 때 힘을 다시 넣어 주는 감미로운 목소리- H2H의 강도윤 목소리를 들으며 유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
“유나야 잠시 보자.”
김반장이 노크를 다급하게 하며 불렀다.
“네?”
“사무실로 잠깐 내려와.”
저녁조인 유나는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거기에 장실장이 서 있었다.
“유나씨, 장실장입니다.”
“예, 실장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대표님께서 유나씨가 우리 조인유에 입사를 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하셨어요. 이미 반장님께는 양해와 동의를 구했고요. 유나씨가 만족할 만한 조건은 충분히 제시 될 겁니다.”
…..
“유나야 그래서 어떻게 할꺼야? 조인유로 갈꺼야? 대한민국 여성복 패션 1위 업체 조인유가 웬말이야? 진짜 부럽다. 나 잊지 않을거지? 계속 연락할꺼지?”
“아직 몰라 언니 나도 지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그때 작업 반장이 유나를 불렀다.
“유나 잠깐 나와라.”
“예, 반장님.”
“무슨 일이세요?”
“조인유가 너를 보내 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기존 물량을 2배로 늘려주고 계약기간도 3년까지 자동연장하기로 했어. 그러니 마음 정하고 이번주까지 마무리 해.”
“반장님…”
“너한테도 훨씬 좋은 기회잖아? 언제까지 여기 동대문 반지하 봉제공장에서 썩을 거니? 너도 꿈이 있을거 아니야. 그리고 넌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 수고했어.”
대답도 듣지 않고 통보식으로 자기 할 말만 쏟아 부은 김반장이 유나의 어깨를 툭툭치고 사라져버렸다.
가족이라고 혼자 착각속에 살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무작정 연수네서 뛰쳐 나온지 이제 1년, 어렵게 이곳 반지하 봉제 공장에 자리를 잡아 큼큼한 곰팡이 냄새와 빛이라곤 하루에 1시간이 고작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익숙했다.
짐은 단촐했다. 큰 트렁크 두 개가 고작이었다.
지연이 따라 나오며 말했다.
“너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을까?”
지연의 코끝이 빨개졌다.
“언니….”
“유나야 그래도 넌 꼭 성공해야 돼.”
익숙한 골목이 점점 멀어져 갔다.
……….
“자 주목! 오늘부터 새로이 디자인 팀에 합류한 인턴 민유나씨에요. 빨리 적응하도록 잘 도와주세요.”
“유나씨? 짧게 소개 좀….”
장실장을 흘끗 보던 유나가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민유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엥? 우리가 인턴을 뽑는 거 알고 있었어?”
“대표님이 맘에 들어 했다나봐요.”
책상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으려고 들은게 아닌데 유나가 알아들을 만한 내용이 귀에 들어 왔다.
팀장의 안내를 받은 유나는 창가 쪽 디자인팀으로 걸어갔다. 여러 디자이너들이 모니터 앞에서 작업을 하거나 원단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팀장은 한쪽 끝에 있는 작은 책상을 가리켰다.
"여기가 오늘부터 민유나 씨 자리예요."
책상 위에는 새 노트북과 스케치북, 연필꽂이, 사원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직 비어 있는 그 공간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첫 출발을 기다리는 자리처럼 보였다.
“감사합니다.”
유나는 웬지 모를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어릴적 늘 엎드려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했고 한번은 밥상에서 문제를 풀다가 아버지한테 얻어 맞기도 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동대문 봉제 공장의 기숙사는 침대 매트리스와 간단한 간이 화장대 놓기에도 벅차 책상을 따로 배치하기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자 유나는 투지가 불타 올랐다. 그러나 유나는 당장 살 집부터 구해야 했다. 자신이 직접 집을 계약해 본 경험이 없는 유나는 망설이며 수화기를 들었다.
“언니, 밥 먹었어?”
늘 유나를 응원해 주고 배려해 주던 지연이었다.
“그래, 회사 어때? 엄청 좋아? 정말 부럽다. 난 언제 그런 회사에 취직해 볼 수 있을까? 유나야 너 얼른 승진해서 백으로 나 넣어줘야 해 호호.”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연이 말을 이었다.
“언니 부탁이 있어”
“응 나한테? 뭔데 말해봐”
“나 살 집을 구해야 되거든. 같이 부동산 좀 가줄 수 있어? 나 혼자는 불안해서….”
유나가 말 끝을 흐렸다.
“당연하지. 내가 너한테 잘 보이려면 널 잘 모셔야지. 오늘은 잔업 없으니까 빨리 마칠 수 있을 거 같아 우리 2호선 왕십리 입구역에서 볼까?”
“응 좋아. 언니, 6시까지 올 수 있겠어?”
“그래 밥 안먹고 바로 가면 시간 맞출 수 있을 거 같아. 만나서 밥도 먹자 호호.”
지연은 마치 새집으로 이사가는 것이 본인인 것처럼 들떠 있었다.
부동산 2,3군데를 둘러 본 지연이 말했다.
“유나야 내 생각엔 오피스텔 14층이 제일 나아 보이는데? 네 생각은?”
“응 그렇긴 한데… 가격이….”
“충분히 그 정도는 되잖아.”
“물론 월급으로 감당은 되는데 저축을 많이 못할 거 같아. 나 우선은 맨 처음 본 반지하 주택으로 계약 할까봐.”
“넌 공장에서 일도 계속 반지하에서 했는데 지겹지도 않니? 그리고 너 반지하는 공기도 안좋고 건강에 해로워. 돈만 생각하면 안돼”
지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 언니, 딱 1년만 살고 옮길까 해. 우선 1년은 돈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고 싶어.”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
비록 반지하 공간이었지만 방이 2개나 되고 약간의 거실 겸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자기 혼자 그만큼의 공간을 평생 누려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동생과 한 방에 자던 시절, 그리고 연수네 집에서는 옷방에서 지냈고 봉제 공장 기숙에서는 말이 통하는 룸메이트 지연이 있었지만 공간은 늘 비좁았다. 그래도 유나는 지연과 함께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늘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자신의 간이 침대에 눕고 mp3를 귀에 꽂고 매일 H2H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상상하고, 잠들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났다.
유나의 집과 회사는 버스로 5정거장 거리였다. 지하철로는 2정거장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하철 지하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보다 버스가 더 편했다.
유나는 출근길 버스에 올라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가방에서 CD케이스를 꺼냈다.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는 손때가 묻은 H2H의 정규 3집 앨범 CD가 들어 있었다. 휴대용 CD플레이어 안에 CD를 꽂고 ‘딸깍’뚜껑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유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민유나씨?”“네?”“민유나씨인가요?”“예 전데요.”“여기 등기우편이 왔어요. 사인 부탁드려요.”우편 배달원이 사라지고 유나는 우편물을 보았다.“뭐지?”호기심에 우편물을 뜯자 티켓 두 장이 들어 있었다.“김도윤의 가을 산책?”티켓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에 문자가 왔다.“티리릭”“유나씨? 혹시 우편 받았어요?”도윤의 문자였다.“네 방금요.”“이번에 작은 콘서트를 열어요. 유나씨를 초대하고 싶어요.”“아. 감사합….”유나는 답장을 쓰다 지웠다. 답장을 너무 빨리 보내는 듯 했다. 유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열여덟 살의 자신에게 도윤은 힘든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사람.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자신에게 직접 콘서트 티켓을 보냈다.‘나를… 초대한 거야?’입가에 자꾸 웃음이 번졌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민유나 드림.”문자를 쓰고는 이내 지웠다.‘이건 너무 거래처에 보내는 답장 같잖아?”“뭐라고 쓰지?”유나는 고심했다.“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꼭 갈게요^^ 콘서트도 너무 기대돼요!”곧 문자가 울렸다.“그날 봐요. 유나씨가 와주면 저도 힘이 날 것 같네요.”‘내가 가면 힘이 난다고?’유나는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팀장님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주연이 유나에게 다가오더니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팀장님, 연애편지예요? 당황하는 거 보니 더 수상한데….”주연이 물러나지 않고 더 치근대며 말했다.“주연씨도 참….”유나는 주연을 피해 멀리 돌아섰다.“팀장님, 도윤님 촬영본 1차 선정 사진들 검토 일정 언제 잡을까요? 도윤님도 아예 초대해서 함께 검토하면 나중에 따로 미팅 안 잡아도 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듯 한데…”“다음 주는 지방 일정이 있고 이달 마지막 주에 잡으면 좋겠어요.”“네 팀장님 그럼 제가 도윤님께도 연락해 놓을게요.”***“아유, 지지배. 웬일로 전화를
‘띠릭’‘발목은 좀 어때요?”도윤의 문자였다.유나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회사에 물어 봤나? 나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살짝 궁금했지만 유나에게는 이내 의미가 없어졌다.도윤이 먼저 문자를 보낸 것이 중요했다. 회사일이 아니라 자신의 발목을 물어 보려고.‘어쩌지? 답장을 바로 보내야 되나? ‘바로 보내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잖아.’유나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삼십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집어 들었다.‘아니야. 일부러 늦게 보내는 게 더 이상해.’유나는 혼자서 거실을 뱅뱅돌며 고민에 빠졌다.‘네 통증은 이제 거의 없어요. 지난 번 파스 감사했습니다.’보내기를 누르려 하는 순간 고민이 되었다.‘너무 감정 없이 보내나? 더 자세히 보내는 것도 그렇고… 아…’유나는 휴대폰을 꼭 쥐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네 이제 통증은 거의 사라진 거 같아요. 지난 번에 파스까지 손수 사다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유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신경이 쓰였다.‘다행이네요. 다음 촬영 때 봐요 유나씨!’‘유나….씨?”유나는 그 세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민팀장도 아니고 유나 디자이너도 아닌,이제 도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유나는 아무리 참으려 해도 혼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도윤의 메이크 업이 끝나갈 무렵 유나가 오른 발목에 반깁스를 하고 나타났다.“저런 유나씨. 많이 불편하겠어요. 오래 갈 것 같은데…”도윤이 유나의 발목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아. 도윤님 아직 움직이시면 안되는데….”메이크업 스태프가 도윤의 이마 가르마를 정리하며 투박하게 한 마디 했다.“아 다음주에는 깁스를 풀거에요. 이제 한결 편해졌어요.”유나가 발목을 들어 오버해서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그건 또 다음주 가 봐야 아는 겁니다. 접질린 발목은 약해져 있어 늘 조심해야 돼요.”도윤이 메이크업 스태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네
“유나씨 잠깐 대표실로 들어오세요!”최대표가 유나를 대표실로 불렀다.“유나씨 이번 레트로 컬렉션 프로젝트에 H2H 김도윤씨를 섭외했다면서요?”“맞습니다.”유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대표가 자신을 질책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H2H의 김도윤이라…. 90년대 인기가 참 많았죠. 제 기억에 소녀팬도 굉장히 많았던 거 같고….. 그런데 지금은 활동을 하고 있나요? 매스컴에서는 거의 사라진 듯 한데…..”대표도 프로젝트 팀원들과 같은 반응이었다.“네 지금은 당시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앨범도 내고 음악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유나가 다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레트로 감성을 살리기 위해 20년전 인기 보이 그룹의 리더를 섭외한 아이디어는 뭐 어느 정도 공감은 됩니다. 그런데 페션지 메인 모델까지 제안했던데 너무 과한 제안은 아닐까요? 젊은 소비자들에게 ‘김도윤’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통할지도 의문이고요. 자칫하면 레트로가 아니라 그냥 ‘한물간 스타’를 데려왔다는 인상만 줄 수도 있어요.”지적하는 최대표의 눈빛이 날카로웠다.“저도 그 부분을 생각했습니다.”“그래요?”“김도윤씨는 가수이지 전문 모델이나 배우는 아니었죠. 그래서 오히려 저희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레트로 감성에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때 김도윤씨의 팬들도 이제는 소녀에서 어느덧 사회의 중심 세대가 됐을 거예요. 자신뿐 아니라 남편이나 연인의 패션에도 관심을 갖고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대죠.”“보이그룹에 열광했던 과거의 소녀팬들이 움직인다?”“그렇습니다. 우리가 팔아야 하는 건 20년 전의 옷이 아니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느끼고 싶어 하는 감정이죠. 김도윤씨는 그때 스타일에서 유행의 정점에 있었고 시간은 좀 지났지만 지금도 세련된 이미지는 잘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얼굴이라는 게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소비된 이미지가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얼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유나씨! 잠시 대표실로 좀 오세요.”대표의 호출을 받은 유나는 영문을 모른채 대표실에 올라갔다.“음. 유나씨. 나는 처음부터 유나씨가 충분히 재능도 있고 잠재력이 충분한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음. 인사를 받고 싶어 부른 건 아니고… 내년 우리 회사가 기획하는 패션쇼가 있어 유나씨를 불렀어요. 이번 홍콩에서도 실력을 발휘했고 충분히 능력도 인정을 받았으니 직접 이번 프로젝트를 유나씨에게 맡겨 볼까 해요.”“제가요? 저는 아직…..”“물론 우리 업계에서 유나씨는 아직 햇병아리죠. 월드 컴피티션에서 한 번 우승했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패션계는 유나씨도 알다 시피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트렌드를 읽어내고 주도하려면 끊임 없이 변화해야 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저는 그래도 아직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기엔…..”“유나씨 마음 충분히 이해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컨셉이 있어요. 90년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캡슐 컬렉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요. 단순히 옛날 옷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대중문화의 감성을 끌어 와 재해석하는 거죠. 유나씨가 한 번 감각을 살려서 도전해 봤으면 합니다. 유나씨에게는 기회이고 우리에게는 모험이지만 그렇다고 리스크가 그렇게 크지는 않죠. 이정도면 서로 충분히 딜할 수 있는 부분 같은데…..”“대표님 생각이 그러시면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최대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좋습니다. 6개월이면 충분히 유나씨도 컨셉을 잡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기획할 만큼 넉넉할 겁니다. 유나씨와 함께 할 프로젝트 팀 멤버는 우리 조부본부장이 만들어 놓을 겁니다. 유나씨 행운을 빌어요!”“네 대표님 감사합니다”대표의 사무실을 나온 유나는 얼떨떨했다. 인정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냥 구름 속을 걷는 기분만 느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민팀장님, 그럼 우리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유나보
“자 여기 모두 모여 봐요!”최대표가 모든 디자이너들과 직원들을 대회의실에 불러 모았다.“우리 회사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이번 홍콩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컴피티션에서 우리 회사 민유나씨가 당당히 우승을 했습니다”.최대표가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회의실이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우아, 유나씨 들어 온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복덩이가 들어왔네? 대단해 그리고 축하해.”팀장이 밝은 표정으로 유나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유나는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그런데 유나씨 국화무늬는 좀 의외였어. 제법인데?”주부본부장이 시크한 표정으로 유나에게 말을 건넸다.“친한 언니랑 기념으로 샀던 핸드폰 케이스에 국화 무늬가 있었던 게 떠올랐어요. 저도 의외여서 얼떨떨해요”“자자 이렇게 회사에 좋은 일이 있는 날은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죠? 우리 오늘 유나씨 우승 기념으로 회식합시다! 3차까지는 빼기 없기입니다.”대표가 우렁차게 이야기했다.유나는 건네 주는 술잔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자기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두 남아서 시간을 보내 주는데 분위기를 어렵게 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화장실 좀….”유나는 속이 매스껍고 불편하여 밖으로 나왔다. 바깥 찬 공기를 들이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다.“유나씨 괜찮아요?”같은 팀 동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예 바깥 공기를 마시니까 조금 나아요. 들어가 보세요.”“유나씨, 오늘 진짜 많이 마시던데 괜찮겠어요? 거절하기가 힘들었죠? 내가 오늘 집에 데려다 줄께요.”“아 선배 저 혼자 갈 수 있어요.”“유나씨, 이미 많이 마셔서 힘들어 보여요. 내가 얼른 짐 챙겨 나올 테니 기다려요.”쏜살같이 들어간 동우가 이내 유나의 가방과 외투를 들고 나왔다.“유나씨 택시 잡아서 내려 주고 갈께요. 집이 어디에요?”“음…. 종로구……..”유나는 다리에 힘이 자꾸 풀렸다.유나의 겨드랑이를 얼른 부축이면서 동우가 택시를 거칠게 불렀다
“민유나씨? 대표님 호출이요.”“녜? 대표님이요?”얼떨결에 대표실에 들어간 민유나를 최대표는 반가워했다.“어 유나씨. 오랜만이죠? 자 잠깐 앉아요.”“대표님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나요?입사 후 대표를 독대한 것이 처음이라 유나는 웬지 모를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이번에 홍콩에서 디자이너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컴피티션이 열리는데 우리 회사 대표로 유나씨가 참가하면 어떨까요?”권유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거절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이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가… 그런 큰 행사에…..”말을 주저하며 얼버무리는 유나에게 최대표가 찡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디자이너들이 모두 가을 컬렉션에 묶여 있어요. 그렇다고 이번 컴피티션을 그냥 스킵하기에는 아쉬운 행사에요 유나씨는 오히려 신인이니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잖아요? 유나씨가 한 번 준비해 봐요.”거의 제안이라기보다는 반명령에 가까웠다.“알겠습니다, 대표님.”한숨을 내쉰 유나는 승낙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그렇게 개인 짐을 챙겨 유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작은 창문 너머 건물들이 점점 장난감처럼 크기가 줄어 들었다. 비행기 특유의 둥근 창에는 지연 언니, 그리고 웬일인지 고향에 두고 온 동생이 문득 떠올랐다. 유나의 가슴이 먹먹해 졌다. 비행기를 처음 타서 인지 아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 탓인지 확실치 않았다. 첫 출장은 설렘이 가득하기 마련이지만 유나에게는 설렘보다는 부담이 백배인 출국이었다.컴피티션 디렉터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위해 초집중을 했다.“이번 컨셉은 서스테이너블 디자인이에요. 원단의 레프트오버까지 모두 활용한 작품을 출품해 보세요. 기간은 1주일입니다.”유나는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어떤 디자인이 세계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을까? 과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우면 좋을텐데…’ 문득 동대문 봉제 공장에서 헤어질 때 지연 언니와 하나씩 사서 나눠가진 국화무늬의 핸드폰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국화 무늬를 원피스에 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