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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날의 미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7 11:46:14

"오늘부터 유나 씨는 아틀리에에서 수석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세요.”

주부본부장이 건조하게 말했다.

“네? 아틀리에에서요?”

“네 유나씨 그리고 같은 질문을 두번하는 버릇은 좀 고치세요.”

유나는 주부본부장의 차가운 말투에 움추러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7층의 아틀리에실은 조인유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60여평 되는 작업 공간에 10여개의 디피용 마네킹들이 서 있었고 작업용 책상과 미싱들 사이에 원단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유나씨 얘기 잘 들었습니다. 우선 유나씨가 재능이 있든 없든 그건 둘째 문제이고 원단부터 익혀야 합니다. 자 우선….”

유나는 수석 디자이너가 가리키는 대로 면, 실크, 모혼방 등 다양한 패브릭을 만져 보고 그리고 노트에 적었다. 수석 디자이너의 말 뿐 아니라 표정과 손짓까지 온 힘을 기울여 집중했다.

“원단을 익히고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해야 해요. 즉 머리에서 이미 재단을 해야 하죠. 연습이란 없어요. 스케치를 한 후 원단에 칼을 대는 순간 그 원단은 이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유나씨가 집중하지 않으면 수백만원짜리 원단을 쓰레기통에 넣는 수가 있어요.”

유나는 숨을 참으며 들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각, 밤 10시 유나는 아틀리에에 혼자 남아 원단을 정리하고 눈에 익혔다.

유나는 원단 냄새가 좋았다. 원단이 자신을 어서 재단해 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언젠가 자신의 손끝에서도 이런 원단이 아름다운 옷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다. 1시간쯤 원단을 정리하고 아틀리에의 불을 끈 후 유나는 집으로 향했다. 차가운 11월의 밤공기가 유나에게는 시원한 산소처럼 느껴졌다.

….

유나는 첫 월급 명세서를 받고 기분이 묘했다. 월급 통장을 뚫어지라 들여다 보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었다. 분명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비해 조금 더 나아지긴 했지만 공장 기숙사 비용으로 공제되던 금액은 지금 살고 있는 월세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 없었다. 유나는 이를 더 악물고 저축하기로 했다. 점심값이 아까워 아침마다 눈을 비비며 도시락을 쌌다. 맨밥에 넣은 계란후라이에 재래식 김 그리고 김치가 전부였다. 

“언니.”

“유나야 별일 없지? 잘 지내지? 네 목소리 잊어 버릴 뻔 했다 얘.”

지연은 여전히 유나를 생기 있는 목소리로 반겼다.

“언니 나 첫 월급 탔어.”

“그래? 축하한다. 여기보다 훨씬 많지?”

“응, 조금 더 많기는 한데 지금 살고 있는 집 월세를 내면 오히려 언니랑 있을 때보다 더 허리 띠를 졸라매야 해.”

“그렇구나. 이제 신입이잖아. 경력이 쌓이고 하면 훨씬 좋아지겠지. 나도 언제 회사원이 될 수 있을까? 너 언니 진짜 잊어버리면 안된다. 알지?”

새삼 확인시키는 지연에게 유나는 화제를 돌렸다.

“나 언니랑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어. “

“그래? 거기가 어딘데? 놀이공원이야? 롯데월드?”

설레발 치는 지연에게 유나가 차분히 말했다.

“아니야 언니. H2H 콘서트에 가고 싶어. 이번에 전국 투어를 하는데 서울에서 시작해 언니도 같이 가자.”

“응 글쎄…”

“내가 언니 티켓도 끊어 놨어. 같이 가자. 나 혼자 가기가 좀…..”

“야. 천하의 구두쇠가 콘서트 티켓값이 꽤나 할텐데 이 언니 것도 끊어놨다고 하니 안갈 수 없지. 언젠데?”

“응, 이번 토요일이야.”

“응, 그래? 금요일이 야간조이긴 한데 시간이 있으니 한번 스케쥴 바꿔보지 뭐. 그래 같이 가자.”

“언니 고마워. 그럼 토요일 동대문입구 역에서 5시에 보면 어때?”

“좋아. 그래 거기서 보자. 벌써 내가 유나 덕에 호강이구나. 콘서트를 다 가보게 되고. 그것도 H2H 콘서트를 말야.”

….

콘서트 장에 마이크를 들고 늠름하게 관객과 호응하는 H2H 멤버와 특히 리드보컬 장도윤은 매너도 돋보였다. 콘서트 장을 떠나지 않는 팬들에게 이쪽 저쪽 계속 손을 흔들며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야 정말 티비나 CD로 듣는 거랑은 또 다르네. 이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콘서트를 다니는구나. 유나야 네 덕에 콘서트 잘 즐겼어. 저녁은 이 언니가 낼께. 가자!”

“언니 잠깐만.”

“응? 왜? 콘서트 끝났잖아.”

“나 사인 좀 받고 싶어.”

“사인? 그게 될까?”

스포트라이트는 꺼지고 관객들의 안전한 퇴장을 위해 보조 조명만이 켜져 있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빠져 나갔고 열성팬처럼 보이는 10여명의 소녀들만 무대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중 한두명이 사인을 받으려는지 종이를 무대 위로 내밀었다. 어떤 이는 인형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유나는 자신도 재빠르게 무대 쪽으로 옮겨 갔다.

“야 유나야! 같이 가!”

번개처럼 움직인 유나를 지연이 당황하며 뒤쫓았다.

장도윤은 이미 2~3명의 소녀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유나도 얼른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H2H 의 정규앨범 2집 CD 재킷의 여백이 있는 부분을 내밀었다.

“장-도-윤”

리드보컬 장도윤이 힘있게 1초만에 자신의 사인을 거침없이 적었다.

“이름이…?”

“민… 민유나에요.”

유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장도윤은 바로 사인펜으로 민유나에게 라고 적은 뒤 미소와 함께 건네주었다.

유나는 목례를 하고 그것을 받았다.

“이제 가야돼요. 뒷정리를 해야 할 스태프들이 기다려요.”

공연 팀 소속인 듯한 사람이 장도윤에게 다가와 그를 가볍게 밀치듯 말했다.

장도윤이 마지막으로 무대 쪽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렇게 무대의 조명은 꺼졌다.

사인을 하던 섬세한 손길과 밝고 여유로운 미소, 공연이 끝난 뒤에도 팬들에게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모습은 유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날 장도윤에게 받은 사인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그의 미소였다. 그 순간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유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히지 않을 첫 만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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