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나씨! 잠시 대표실로 좀 오세요.”
대표의 호출을 받은 유나는 영문을 모른채 대표실에 올라갔다.
“음. 유나씨. 나는 처음부터 유나씨가 충분히 재능도 있고 잠재력이 충분한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음. 인사를 받고 싶어 부른 건 아니고… 내년 우리 회사가 기획하는 패션쇼가 있어 유나씨를 불렀어요. 이번 홍콩에서도 실력을 발휘했고 충분히 능력도 인정을 받았으니 직접 이번 프로젝트를 유나씨에게 맡겨 볼까 해요.”
“제가요? 저는 아직…..”
“물론 우리 업계에서 유나씨는 아직 햇병아리죠. 월드 컴피티션에서 한 번 우승했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패션계는 유나씨도 알다 시피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트렌드를 읽어내고 주도하려면 끊임 없이 변화해야 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도 아직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기엔…..”
“유나씨 마음 충분히 이해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컨셉이 있어요. 90년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캡슐 컬렉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요. 단순히 옛날 옷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대중문화의 감성을 끌어 와 재해석하는 거죠. 유나씨가 한 번 감각을 살려서 도전해 봤으면 합니다. 유나씨에게는 기회이고 우리에게는 모험이지만 그렇다고 리스크가 그렇게 크지는 않죠. 이정도면 서로 충분히 딜할 수 있는 부분 같은데…..”
“대표님 생각이 그러시면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최대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좋습니다. 6개월이면 충분히 유나씨도 컨셉을 잡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기획할 만큼 넉넉할 겁니다. 유나씨와 함께 할 프로젝트 팀 멤버는 우리 조부본부장이 만들어 놓을 겁니다. 유나씨 행운을 빌어요!”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대표의 사무실을 나온 유나는 얼떨떨했다. 인정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냥 구름 속을 걷는 기분만 느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민팀장님, 그럼 우리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유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주연이지만 늘 유나에게 예의 있게 대하는 주연을 유나는 항상 선배로 대우했다.
“주연 선배 생각은 어때요?”
“음, 우선 결국 레트로 남성 패션인데 정장 스타일로 가야겠죠? 그러나 정장으로만 가면 심심할 텐데 조끼도 식상하고.. 팀장님은 이미 생각하고 계신 아이디어가 있나요?”
“이것 저것요. 그러나 아직은 실현할 단계는 아니라서….. 우선 90년 대 핫했던 보이그룹을 찾아 그들의 의상과 자료들을 직접 검토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90년대 그룹요?”
“네. 잡지나 영상 자료로는 감을 잡기 어려워서요. 우리가 실제 그 당시 입었던 옷의 디자인, 박음질, 마무리 작업 등을 직접 봐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감을 잡을 수 있어요. 우리는 소비자 입장이 아니라 트렌드를 주도하고 새로운 패션을 시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필요하다면 재구성한 옷을 그 당시 그룹을 통해 패션지에도 싣고요.”
“그렇담 당시 보이그룹 컨택을 해봐야 겠네요?”
“그렇죠. 저는 H2H를 섭외했으면 해요.”
유나가 선수를 치고 나섰다.
“H2H요? 음… 팀장님 그 그룹은 해체되지 않았나요? 그 그룹이 90년대 상당히 인기 있었던 그룹인 건 맞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인지도가 거의 없을 텐데요?”
기획담당 MD가 맞서듯 말했다.
“아직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단호한 유나의 말에 주연과 다른 팀원들이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머쓱해진 유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H2H여야 해요. 이미 소비된 스타를 다시 데려오는 건 복고예요. 우리가 하려는 건 복고가 아니라 재해석이에요. 잊힌 것을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 그리고 메인 보컬인 김도윤님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일단 우리 프로젝트 컨셉을 잘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그분도 응해 주실지 모릅니다. 주연 선배! 김도윤님 컨택 부탁드립니다.”
유나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주연을 비롯한 팀원들은 팀장인 유나가 이미 모든 것을 설계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팀장님 그럼 섭외해 보겠습니다.”
……………
조인유 빌딩 엘리베이터는 8층에 멈췄다. 도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사무실 곳곳은 밝은 햇살과 조명이 이질적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마네킹들이 눈에 띄었고 앳띤 직원들이 분주히 지나 다니고 있었다.
“민유나 디자이너를 찾아왔습니다.”
“네 팀장님 사무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 오시겠어요?”
유나는 도윤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가슴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을 때, 너무 지쳐 어떤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면서 손을 뻗어 주던 H2H의 노래들. 그리고 메인 보컬 김도윤… 조인유에서 첫 월급을 타고 지연과 함께 콘서트에 가서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을 기다려 사인을 받은 그 사람. 바로 그 같은 사람이 유나 눈 앞에 서 있었다.유나는 현실감이 전혀 없이 몽롱하고 현기증까지 났다.
‘과연 도윤이 나를 알아볼까? 그럴 일은 없겠지? 수많은 팬과 스쳐가는 그 많은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한 나를 어떻게 알아 보겠어?’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 기획 담당자 민유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예,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도윤이라고 합니다.”
도윤은 유나를 전혀 알아 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유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자신을 알아볼까 설레발을 친 것을 생각하니 민망함에 얼굴이 살짝 달아 오름을 느꼈다.
“우리 옷을 참고하겠다고요?”
도윤이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정확하게는 그 시대의 감성을요.”
유나는 입에 침이 마르고 목이 마름을 느끼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 시대라…..”
도윤이 씁쓸히 웃었다.
“듣고 보니 내가 꽤 옛날 사람이 됐네요.”
‘그렇지 않아요! 도윤님은 살아 있는 전설이고 제가 언제나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심장같은 존재에요’
마음속으로 유나는 외치고 있었지만 현실은 도윤의 압도적인 표정에 기가 죽어 있었다.
“솔직히 별로 내키지는 않네요. 옛날 의상 꺼내놓고 추억이나 파는 일이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추억을 파시라는 게 아닙니다. 그 시대의 감성을 재해석해서 요즘 세대에 새로이 알리는 거에요!”
“글쎄요. 말은 그럴싸하지만 과연 그게 될까요? 사람들이 지나간 것에 향수를 느끼는 건 잠깐이죠. 옛날 스타가 나오면 반갑다고 박수는 쳐 줍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소비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예요. 요즘 세대는 자신들이 즐길 수 있어야 환호를 하고 지갑을 엽니다.”
“그래서 김도윤 씨가 필요한 겁니다.”
도윤이 유나를 바라봤다.
“과거를 보여 주려는 게 아니라, 지금도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으니까요.”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상기되어 있었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계약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의상과 무대 자료를 제공하고 내년 레트로 컬렉션 후 패션지 메인 모델로도 활동하시는 조건이에요.”
“계약서를 한번 볼까요?”
“여기 있습니다.”
주연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집에 가서 한 번 검토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 네 물론입니다. 신중하게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나가 얼른 대답했다.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지 한 번 봅시다.”
도윤이 무심하게 계약서를 대충 접어 안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민유나씨라고 하셨나요? 왜 낯이 익죠? 어디서 본 듯 한데….”
“예? 그럴 리가요?”
유나는 마치 마음이 들킨 듯 뜨끔하여 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제가 초면에 실례를 했네요.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부르다니요?”
“민유나씨? 유나씨? ... 그냥 디자이너님이라고 부를게요. 괜찮죠?”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럼 디자이너님 다음에 봐요.”
유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에서 우주를 보았다.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던 단 한사람 김도윤..
항상 멀리서 지켜보고 가까이서도 멀리 있기만 했던 그 남자가 이제 자신의 협업파트너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던 그 남자가 이제 자신의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불렀다.
‘디자이너님.’
이상하게도 유나는 그 한마디가 자꾸만 떠올랐다.
“민유나씨?”“네?”“민유나씨인가요?”“예 전데요.”“여기 등기우편이 왔어요. 사인 부탁드려요.”우편 배달원이 사라지고 유나는 우편물을 보았다.“뭐지?”호기심에 우편물을 뜯자 티켓 두 장이 들어 있었다.“김도윤의 가을 산책?”티켓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에 문자가 왔다.“티리릭”“유나씨? 혹시 우편 받았어요?”도윤의 문자였다.“네 방금요.”“이번에 작은 콘서트를 열어요. 유나씨를 초대하고 싶어요.”“아. 감사합….”유나는 답장을 쓰다 지웠다. 답장을 너무 빨리 보내는 듯 했다. 유나는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열여덟 살의 자신에게 도윤은 힘든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사람.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자신에게 직접 콘서트 티켓을 보냈다.‘나를… 초대한 거야?’입가에 자꾸 웃음이 번졌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민유나 드림.”문자를 쓰고는 이내 지웠다.‘이건 너무 거래처에 보내는 답장 같잖아?”“뭐라고 쓰지?”유나는 고심했다.“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꼭 갈게요^^ 콘서트도 너무 기대돼요!”곧 문자가 울렸다.“그날 봐요. 유나씨가 와주면 저도 힘이 날 것 같네요.”‘내가 가면 힘이 난다고?’유나는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팀장님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주연이 유나에게 다가오더니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물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팀장님, 연애편지예요? 당황하는 거 보니 더 수상한데….”주연이 물러나지 않고 더 치근대며 말했다.“주연씨도 참….”유나는 주연을 피해 멀리 돌아섰다.“팀장님, 도윤님 촬영본 1차 선정 사진들 검토 일정 언제 잡을까요? 도윤님도 아예 초대해서 함께 검토하면 나중에 따로 미팅 안 잡아도 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듯 한데…”“다음 주는 지방 일정이 있고 이달 마지막 주에 잡으면 좋겠어요.”“네 팀장님 그럼 제가 도윤님께도 연락해 놓을게요.”***“아유, 지지배. 웬일로 전화를
‘띠릭’‘발목은 좀 어때요?”도윤의 문자였다.유나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회사에 물어 봤나? 나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살짝 궁금했지만 유나에게는 이내 의미가 없어졌다.도윤이 먼저 문자를 보낸 것이 중요했다. 회사일이 아니라 자신의 발목을 물어 보려고.‘어쩌지? 답장을 바로 보내야 되나? ‘바로 보내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잖아.’유나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삼십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집어 들었다.‘아니야. 일부러 늦게 보내는 게 더 이상해.’유나는 혼자서 거실을 뱅뱅돌며 고민에 빠졌다.‘네 통증은 이제 거의 없어요. 지난 번 파스 감사했습니다.’보내기를 누르려 하는 순간 고민이 되었다.‘너무 감정 없이 보내나? 더 자세히 보내는 것도 그렇고… 아…’유나는 휴대폰을 꼭 쥐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네 이제 통증은 거의 사라진 거 같아요. 지난 번에 파스까지 손수 사다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유나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신경이 쓰였다.‘다행이네요. 다음 촬영 때 봐요 유나씨!’‘유나….씨?”유나는 그 세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민팀장도 아니고 유나 디자이너도 아닌,이제 도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유나는 아무리 참으려 해도 혼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도윤의 메이크 업이 끝나갈 무렵 유나가 오른 발목에 반깁스를 하고 나타났다.“저런 유나씨. 많이 불편하겠어요. 오래 갈 것 같은데…”도윤이 유나의 발목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아. 도윤님 아직 움직이시면 안되는데….”메이크업 스태프가 도윤의 이마 가르마를 정리하며 투박하게 한 마디 했다.“아 다음주에는 깁스를 풀거에요. 이제 한결 편해졌어요.”유나가 발목을 들어 오버해서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그건 또 다음주 가 봐야 아는 겁니다. 접질린 발목은 약해져 있어 늘 조심해야 돼요.”도윤이 메이크업 스태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네
“유나씨 잠깐 대표실로 들어오세요!”최대표가 유나를 대표실로 불렀다.“유나씨 이번 레트로 컬렉션 프로젝트에 H2H 김도윤씨를 섭외했다면서요?”“맞습니다.”유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대표가 자신을 질책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H2H의 김도윤이라…. 90년대 인기가 참 많았죠. 제 기억에 소녀팬도 굉장히 많았던 거 같고….. 그런데 지금은 활동을 하고 있나요? 매스컴에서는 거의 사라진 듯 한데…..”대표도 프로젝트 팀원들과 같은 반응이었다.“네 지금은 당시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앨범도 내고 음악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유나가 다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레트로 감성을 살리기 위해 20년전 인기 보이 그룹의 리더를 섭외한 아이디어는 뭐 어느 정도 공감은 됩니다. 그런데 페션지 메인 모델까지 제안했던데 너무 과한 제안은 아닐까요? 젊은 소비자들에게 ‘김도윤’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통할지도 의문이고요. 자칫하면 레트로가 아니라 그냥 ‘한물간 스타’를 데려왔다는 인상만 줄 수도 있어요.”지적하는 최대표의 눈빛이 날카로웠다.“저도 그 부분을 생각했습니다.”“그래요?”“김도윤씨는 가수이지 전문 모델이나 배우는 아니었죠. 그래서 오히려 저희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레트로 감성에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때 김도윤씨의 팬들도 이제는 소녀에서 어느덧 사회의 중심 세대가 됐을 거예요. 자신뿐 아니라 남편이나 연인의 패션에도 관심을 갖고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대죠.”“보이그룹에 열광했던 과거의 소녀팬들이 움직인다?”“그렇습니다. 우리가 팔아야 하는 건 20년 전의 옷이 아니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느끼고 싶어 하는 감정이죠. 김도윤씨는 그때 스타일에서 유행의 정점에 있었고 시간은 좀 지났지만 지금도 세련된 이미지는 잘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얼굴이라는 게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소비된 이미지가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얼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유나씨! 잠시 대표실로 좀 오세요.”대표의 호출을 받은 유나는 영문을 모른채 대표실에 올라갔다.“음. 유나씨. 나는 처음부터 유나씨가 충분히 재능도 있고 잠재력이 충분한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음. 인사를 받고 싶어 부른 건 아니고… 내년 우리 회사가 기획하는 패션쇼가 있어 유나씨를 불렀어요. 이번 홍콩에서도 실력을 발휘했고 충분히 능력도 인정을 받았으니 직접 이번 프로젝트를 유나씨에게 맡겨 볼까 해요.”“제가요? 저는 아직…..”“물론 우리 업계에서 유나씨는 아직 햇병아리죠. 월드 컴피티션에서 한 번 우승했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패션계는 유나씨도 알다 시피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트렌드를 읽어내고 주도하려면 끊임 없이 변화해야 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런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저는 그래도 아직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기엔…..”“유나씨 마음 충분히 이해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컨셉이 있어요. 90년대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캡슐 컬렉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요. 단순히 옛날 옷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대중문화의 감성을 끌어 와 재해석하는 거죠. 유나씨가 한 번 감각을 살려서 도전해 봤으면 합니다. 유나씨에게는 기회이고 우리에게는 모험이지만 그렇다고 리스크가 그렇게 크지는 않죠. 이정도면 서로 충분히 딜할 수 있는 부분 같은데…..”“대표님 생각이 그러시면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최대표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좋습니다. 6개월이면 충분히 유나씨도 컨셉을 잡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기획할 만큼 넉넉할 겁니다. 유나씨와 함께 할 프로젝트 팀 멤버는 우리 조부본부장이 만들어 놓을 겁니다. 유나씨 행운을 빌어요!”“네 대표님 감사합니다”대표의 사무실을 나온 유나는 얼떨떨했다. 인정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냥 구름 속을 걷는 기분만 느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민팀장님, 그럼 우리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유나보
“자 여기 모두 모여 봐요!”최대표가 모든 디자이너들과 직원들을 대회의실에 불러 모았다.“우리 회사에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이번 홍콩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컴피티션에서 우리 회사 민유나씨가 당당히 우승을 했습니다”.최대표가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회의실이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우아, 유나씨 들어 온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복덩이가 들어왔네? 대단해 그리고 축하해.”팀장이 밝은 표정으로 유나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유나는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그런데 유나씨 국화무늬는 좀 의외였어. 제법인데?”주부본부장이 시크한 표정으로 유나에게 말을 건넸다.“친한 언니랑 기념으로 샀던 핸드폰 케이스에 국화 무늬가 있었던 게 떠올랐어요. 저도 의외여서 얼떨떨해요”“자자 이렇게 회사에 좋은 일이 있는 날은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죠? 우리 오늘 유나씨 우승 기념으로 회식합시다! 3차까지는 빼기 없기입니다.”대표가 우렁차게 이야기했다.유나는 건네 주는 술잔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자기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두 남아서 시간을 보내 주는데 분위기를 어렵게 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화장실 좀….”유나는 속이 매스껍고 불편하여 밖으로 나왔다. 바깥 찬 공기를 들이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다.“유나씨 괜찮아요?”같은 팀 동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예 바깥 공기를 마시니까 조금 나아요. 들어가 보세요.”“유나씨, 오늘 진짜 많이 마시던데 괜찮겠어요? 거절하기가 힘들었죠? 내가 오늘 집에 데려다 줄께요.”“아 선배 저 혼자 갈 수 있어요.”“유나씨, 이미 많이 마셔서 힘들어 보여요. 내가 얼른 짐 챙겨 나올 테니 기다려요.”쏜살같이 들어간 동우가 이내 유나의 가방과 외투를 들고 나왔다.“유나씨 택시 잡아서 내려 주고 갈께요. 집이 어디에요?”“음…. 종로구……..”유나는 다리에 힘이 자꾸 풀렸다.유나의 겨드랑이를 얼른 부축이면서 동우가 택시를 거칠게 불렀다
“민유나씨? 대표님 호출이요.”“녜? 대표님이요?”얼떨결에 대표실에 들어간 민유나를 최대표는 반가워했다.“어 유나씨. 오랜만이죠? 자 잠깐 앉아요.”“대표님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나요?입사 후 대표를 독대한 것이 처음이라 유나는 웬지 모를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이번에 홍콩에서 디자이너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컴피티션이 열리는데 우리 회사 대표로 유나씨가 참가하면 어떨까요?”권유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거절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이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가… 그런 큰 행사에…..”말을 주저하며 얼버무리는 유나에게 최대표가 찡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디자이너들이 모두 가을 컬렉션에 묶여 있어요. 그렇다고 이번 컴피티션을 그냥 스킵하기에는 아쉬운 행사에요 유나씨는 오히려 신인이니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잖아요? 유나씨가 한 번 준비해 봐요.”거의 제안이라기보다는 반명령에 가까웠다.“알겠습니다, 대표님.”한숨을 내쉰 유나는 승낙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그렇게 개인 짐을 챙겨 유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작은 창문 너머 건물들이 점점 장난감처럼 크기가 줄어 들었다. 비행기 특유의 둥근 창에는 지연 언니, 그리고 웬일인지 고향에 두고 온 동생이 문득 떠올랐다. 유나의 가슴이 먹먹해 졌다. 비행기를 처음 타서 인지 아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 탓인지 확실치 않았다. 첫 출장은 설렘이 가득하기 마련이지만 유나에게는 설렘보다는 부담이 백배인 출국이었다.컴피티션 디렉터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위해 초집중을 했다.“이번 컨셉은 서스테이너블 디자인이에요. 원단의 레프트오버까지 모두 활용한 작품을 출품해 보세요. 기간은 1주일입니다.”유나는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어떤 디자인이 세계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을까? 과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우면 좋을텐데…’ 문득 동대문 봉제 공장에서 헤어질 때 지연 언니와 하나씩 사서 나눠가진 국화무늬의 핸드폰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국화 무늬를 원피스에 새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