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이안은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어둠이 내린 거리, 멀지 않은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던 아영이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화면을 터치해 귀에 대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저 지금 전철역 앞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오피스텔로 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지금요?" 되물어오는 아영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뚝 끊겼다. 이렇게 사전 약속도 없이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영은 당황스러운 듯 끊어진 휴대폰 화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도로변으로 나가 손을 들어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그녀가 택시에 탑승해 출발하는 모습을, 멀찍이 떨어진 차 안에서 이안이 서늘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영을 태운 택시가 대로변으로 빠져나가자 이안 역시 운전대를 잡고 그 뒤를 천천히 따라붙었다. 오피스텔에 먼저 도착한 아영이 택시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까지 확인한 이안은, 시동을 끈 채 차 안에서 10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차가운 정적 속에서 그가 운전대를 쥔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하얗게 질린 마디마디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낮에 본 장면이 잔상처럼 잔인하게 뇌리를 스쳤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보였던 그 화사하고 다정한 웃음.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이안은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며 헝클어진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겼다. 차에서 내린 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낡은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도착한 5층. 긴 복도를 지나 아영의 집 앞에 선 그는 망설임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둔탁한 물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화장실이었다. 이안은 망설임 없이 겉옷을 벗어 던지고 그대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습기로 가득 찬 화장실 안, 거울을 통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안의 형상을 확인한 아영이 흠칫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에요!" "뭘 그렇게 놀라. 하루 이틀 본 몸도 아닌데." "그, 그렇지만 갑자기 이렇게 들어오시면……." "……." 손으로 민망한 듯 몸을 가리려는 아영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안은 쯧,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는 거스를 수 없는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손 치워." "너, 너무 밝아요……." "명령이야." 단호한 단어 하나에 아영은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가리던 손을 내려놓았다. 이안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영의 뒤로 다가가 그녀를 품에 강하게 안아챘다. 젖은 피부 너머로 전달되는 아영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이안의 등 뒤까지 또렷하게 전해졌다.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뛰는 쿵쾅거림이었다. 이안은 아영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읊조렸다. "……다른 남자한테도 이래?" "네? 뭐, 뭐가요……?" "……심장." "심장……이요?" "속도 말이야. 미친 듯이 빨리 뛰잖아. 대답해." 아영은 그의 직설적인 물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도망치듯 이안의 넓은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이안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그거야…… 몰라요. 나도 왜 이러는지……." 수줍게 중얼거리는 아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턱끝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턱을 잡아 세우고 소리치고 싶었다. '혼나야겠어. 나랑 계약하는 동안은 나한테만 웃어줘야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이안은 결국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계임을 명시했던 그 망할 계약서. 서로의 사생활에는 절대로 관여하거나 신경 쓰지 않기로 약속했던 조항이 사슬처럼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그녀의 감정을 요구할 그 어떤 자격도 없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안은 결국 터져 나오려는 질투와 독점욕을 억누르며, 아무런 말도 없이 아영의 아랫입술을 거칠게 깨물어 넣었다. 삼켜버린 말 대신 깊은 입맞춤과 뜨거운 숨결만이 화장실 안의 자욱한 김 속으로 번져나갔다."아영 씨." "아, 깜짝이야!" 급히 뒤를 돌아보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희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었다. 유니폼을 벗고 깔끔한 캐주얼 차림을 한 그는 또 다른 의미로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겼다. "아…… 희호 선수님이셨네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전화번호 좀 물어보려고요." "……네? 전화번호요?" 예상치 못한 단어에 아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희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으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네. 아영 씨랑 개인적으로 친구 하고 싶어서요." 대한민국을 흔드는 스포츠 영웅이자 수많은 연예인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 강희호가 직접 전화번호를 물어오다니. 아영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굳이 이런 대단한 사람과 날을 세우거나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번호를 휴대폰에 찍어주었다. "문자 한 번 남겨주세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아영은 희호가 번호를 입력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안의 문자를 다시 확인하느라 바쁜 걸음으로 건물 밖을 향해 훌뚱뚱 뛰어가 버렸다. "……?" 남겨진 희호는 덩그러니 복도 한가운데 서서 아영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나 아이돌, 화려한 모델들도 자신과 한마디라도 더 섞어보려고 온갖 애를 쓰는데. 정작 이 조그만 신인 모델은 번호만 홀랑 주고는 미련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 것이다. "하…… 참 나." 희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승부욕과 알 수 없는 설렘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희호는 아영이 남기고 간 번호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입력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밖, 고급 세단 안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이안의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한 채, 희호의 입꼬리가 짓궂게 올라갔다. ‘송아영…… 생각할수록 진짜 재미있는 여자네.’ . . . "오늘 완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스튜디오 중앙으로 걸어가는 희호를 보며, 아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조금 전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희호의 미묘한 시선이 잔상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신인 모델이라 마음에 안 드셨나…… 하긴, 저런 대형 슈퍼스타 옆에는 톱스타급 모델이 서야 그림이 나오지." 아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높은 곳에 있는 이안의 곁,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인 강희호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 테스트와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영은 프로답게 표정을 가다듬고 스튜디오 중앙에 섰다.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시선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 아영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크게 흔들렸다. 촬영장 세트 구석, 어두운 조명 그림자 속에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안 씨?’ 아영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실룩거리더니, 이내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져 나갔다. 가끔 이안은 이렇게 감시 차원이라는 핑계를 대며 불쑥 촬영장에 나타나곤 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보러 와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속에서 퐁퐁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찰칵-! 아영의 갑작스럽고 화사한 표정이 카메라 렌즈에 그대로 담겼다. 그 눈부신 미소에 옆에 서 있던 희호마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며 멍하니 아영을 바라보았다. "아영 씨, 지금 그 표정 너무 좋아! 대박이다! 희호 선수 보고 다시 한번만 그 느낌으로 가볼게요!" 감독의 들뜬 목소리에 아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귓가를 스치는 것은 과거 이안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던 경고였다. ‘나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그렇게 웃지 마.’ 하지만 여기는 엄연한 일터였다. 아영은 이안이 스튜디오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잉— 고요한 침실 안에 묵직한 진동음이 또 다싶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아영의 눈동자가 갈수록 커졌다. 다름 아닌 촬영 제의. 그것도 이안이 있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콜라보 화보 촬영이었다. 촉이 왔다. 명목상은 기획팀의 러브콜이었지만, 이안이 뒤에서 손을 쓴 게 틀림없었다. [송아영 모델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콜라보 화보 제안을 위해 연락 드립니다. 아영 님도 잘 알고 계실 저희 브랜드 전속 모델, 축구선수 '강희호' 님과 함께하는 커플 화보 촬영인데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저희는 희호 님의 상대 모델로 아영 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강희호?" 아영은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강희호라니. K리그를 씹어먹고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거듭난 그 강희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꼬마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르는 이가 없는 국민적 스포츠 스타였다. "이건…… 이건 무조건 해야 해!" 아영은 활짝 웃으며 침대 위로 훌쩍 몸을 던졌다.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발놀림을 쳤다.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보육원에 번듯한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1순위라면, 2순위는 오롯이 그 남자, 이안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곁에 당당히 서고 싶다는 열망. 만약 자신이 대중에게 인정받는 유명한 모델이 된다면, 늘 비즈니스적이기만 했던 그와의 관계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동화 속 마지막처럼 진정한 사랑의 키스…… 그리고 결혼까지?’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 사이로 얼굴을 가렸지만, 화끈거리는 볼의 열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우, 송아영 미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 아영은 홧홧해진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호흡을 가다듬고 빠르게 옷을 챙겨 입었다. 가슴속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 . . 촬영 당일, 세트장은
지잉— 고요를 깨는 작은 진동 소리에 아영이 눈을 떴다. 흐릿한 시선으로 확인한 휴대폰 시계는 오후 1시 14분. 예정보다 3시간이나 더 잠에 파묻혀 있었던 셈이다. 집 안에는 온기가 여전했지만, 적막함이 흐르는 것을 보니 이안은 이미 나간 듯했다. "우움... 나가기 싫다." 베개 깊숙이 파고들자 이안의 잔향이 포근하게 감돌았다. 아영은 이불 위에서 푹신한 눈밭에 누운 아이처럼 팔다리를 저으며 천사 놀이를 했다. 몽롱한 기분으로 휴대폰 액션을 슬라이드해 문자를 확인한 순간, 아영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아영아, 잘 지내니? 요즘 통 연락이 없어서... 선생님 조금 서운하려고 해~] 스치는 문장 하나에 잠운이 씻은 듯 달아났다. 매일 밤 '내일은 꼭 전화 드려야지' 다짐만 하고 미뤄왔던 죄책감이 왈칵 밀려왔다. 아영은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여보세요? 아영이니?" "쌤! 죄송해요, 정말요...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연락도 못 드리고..." "아휴, 아니야, 아영아. TV랑 잡지 나올 때마다 선생님이 얼마나 뿌듯한데. 우리 보육원 아이들도 '아영이 언니가 정말 여기서 살았어요?' 하면서 신기해하고 난리도 아니란다." 선생님의 헐떡이는 듯 따뜻한 음성에 아영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햇빛 보육원. 핏덩이 때 던져져 스무 해를 보낸, 아영에게는 세상의 시작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사실 아영이 험난한 모델 판에 뛰어들어 이 악물고 돈을 벌었던 이유도 오직 하나였다. 낡아 무너져가는 보육원 건물을 비우고 어디론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대로 가다간 보육원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눈 감을 수 없었다. 아영에게 '엄마'나 다름없던 최유나 선생님의 그 따뜻한 미소가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었다. 거절당할 것을 알기에, 언제나 이름 없는 기부자의 탈을
아영은 황급히 이불을 당겨 자신의 알몸을 가렸다. 자신의 민낯을 전부 드러낸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안은 가볍게 이불 한쪽을 잡고 스스럼없이 들춰냈다. "매일 보는 몸인데, 새삼스럽게 왜 가려?" "아니... 일, 일은요? 출근하신 거 아니었어요?" "반차 냈어.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컨디션이 나쁘다는 말에 아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혹시 어디라도 아픈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손을 올려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체온보다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 이상함에 아영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이안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작은 손목을 틀어쥐고는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아뇨! 몸도 안 좋으시다면서 그럴리가요." "아가 먹으면 싹 낫릴 것 같은데." 몸이 안 좋다더니 돌아오는 건 뻔뻔한 요구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안은 그 맹한 표정이 귀엽다는 듯 낮게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안 줄 거야?" "아... 주, 주죠. 그런데 몸도 안 좋으신데 또 하시게요?" "내가 2년 전에도 말했을 텐데. 나 성욕 세다고." "그래도 아프다면서요..." 쪽. 걱정과 불만이 섞인 아영의 잔소리는 이안의 다정한 입맞춤에 허공으로 삼켜졌다. 이안은 부드럽게 아영을 침대에 눕히고는,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손길로 탐하기 시작했다. 아영의 살결에 닿는 그의 손길에는 은근한 열기가 실려 있었다. "그럼 만지기만 할게. 오늘 촬영 있어?" "으읏... 아뇨, 없어요..." "잘됐네." 피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애무에 아영의 동공이 점차 풀려갔다. 이안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자지러지는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고 아영이 가장 약한 민감한 곳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쾌감과 참을 수 없는 생경함에 아영은 결국 그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 그만..." "왜. 이제 겨우
10분이 지나 15분쯤 되었을 무렵, 정적만이 밀려들던 방 안의 공기를 깨고 자그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륵— 아영의 솔직한 배꼽시계였다. 순식간에 아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좀 전까지 그와의 아슬아슬한 스킨십에 붉게 달아올랐던 볼에서 피기가 싹 가셨다. 창피함과 민망함에 차라리 백지처럼 창백해진 표정이었다. "헉... 저... 그게, 아니에요. 하하..." 아영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안은 눈을 짚으며 낮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그렇게 놀라? 밥 안 먹었어?" "아, 네... 집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갑자기 불러서 못 먹은 거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네? 아니에요, 진짜 괜찮은데... 그냥..." 민망함을 주체하지 못한 아영은 눈동자를 헤매며 이안과 눈도 맞추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가만히 담아두던 이안은 미련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널브러진 협탁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길로, 아영이 좋아하는 매일 시키던 그 단골 가게를 눌러 샌드위치와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30분 걸린다네." "벌써 시키셨어요...?" "뭘 또 그렇게 놀라. 오늘따라 오버는." 이안은 그 반응이 진심으로 귀엽다는 듯, 살짝 새침해진 아영의 볼살을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아, 아파요..." 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칭얼거렸지만 이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짓궂은 재미를 느꼈는지 반대쪽 볼까지 조심스레 잡아당기더니, 장난치지 말라고 한 소리 던지려던 아영의 벌려진 입술 위로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고 단단한 세례가 지나간 뒤, 그는 다시 아영의 옆자리에 스르륵 누워 나른한 눈빛을 보냈다. "30분이면 한 번 하고도 시간이 넉넉히 남을 것 같은데. 아가 생각은 어때?" 또 '아가'였다. 평소엔 그저 딱딱하게 '송아영'이라 부르던 그가, 품에 안을 때면 무심하게 던지는 그 애칭. 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