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내고 도망친 아내가 임신했다니

사표를 내고 도망친 아내가 임신했다니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1-05
Por:  pinecone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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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S그룹의 재벌 3세 권제하를 냉혹하고 절제된 남자라 말한다. 하지만 3년간 비밀 결혼 생활을 이어 온 한이설은 알고 있었다. 밤이 되면 그는 누구보다 뜨겁고 집요한 남자라는 걸. 그러던 결혼 3주년 기념일, 그의 첫사랑이 귀국했다. 술에 취한 제하는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이설을 안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를 찾아 사후피임약을 먹이라고 명령했다. 그때 이설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가짜 신분과 죽음까지 꾸며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졌다. 4년 후, 천재적인 아이와 함께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표로 돌아온 이설. 그녀 앞에 나타난 제하는 더 이상 오만한 재벌이 아니었다. “이설아, 이혼도 사직도 내 허락 없이는 안 돼. 그러니까 제발…… 정부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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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약이 끝난 날, 아내가 사라졌다
오늘은 S그룹 부회장 권제하와 그의 수석 비서 한이설이 비밀 결혼을 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동시에 두 사람이 맺었던 비밀 결혼 계약과 근무 계약이 만료되는 날이기도 했다.권제하는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내려다봤다.10분 전, 송유진 변호사가 직원을 보내 서류 봉투 하나를 전달했다.한이설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도 없이 변호사를 통해 물건만 보내왔다.봉투 안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끝내는 데 필요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5년 동안 목에 걸었던 S그룹 부회장실 수석 비서 사원증과 사직서, 직접 서명하고 지장까지 찍은 협의이혼 관련 서류.마지막으로, 권씨 일가의 안주인에게만 대대로 전해지는 200억 원 상당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벨벳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반지 안쪽에는 오래전에 말라 검붉게 변한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다.권제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서류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았다.한이설.지난 3년간 한이설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순종적인 그림자였다.반년 전 유세아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두 집안의 3000억 원대 정략결혼설이 재계에 퍼졌을 때도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집에서 조용히 지내며 해외 인수합병 업무까지 도왔다.권제하는 그런 그녀가 이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설마 자신을 떠날 리 없었다.그런데 계약이 끝나자마자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변호사를 보내 사원증과 사직서, 이혼 서류에 결혼반지까지 돌려보내다니!그는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담긴 케이스를 탁 닫았다.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제 관심을 끌어 보겠다는 수작이겠지.한진국은 아직 구치소 지정 병원에 머물며 재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남긴 음파 연구실도 이제 막 인계 절차를 마친 참이었다.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발붙이기도 어려운 여자가 대체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겠는가?사흘도 지나지 않아 제 발로 돌아와 고개를 숙일 게 뻔했다.바로 그때였다.똑, 똑.부회장실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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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빼앗긴 700일의 결실
6개월 전, 서울.4월의 새벽 두 시. 창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한이설은 침대에 엎드린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드러난 등에는 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그날 밤 S그룹은 몇 달간 끌어 온 해외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축하연에서 술에 취한 권제하는 운전기사에게 곧장 그녀의 집으로 가라고 했다.집에 도착한 그는 막 샤워를 마친 그녀를 현관에서부터 거칠게 몰아붙였다.경제지들은 S그룹 부회장 권제하를 냉혹하고 금욕적인 협상가라고 평가했다.하지만 5년간 그의 수석 비서로 일하고, 2년 반 동안 비밀 결혼 생활을 이어 온 한이설은 알고 있었다. 단둘이 있을 때면 그가 얼마나 강한 지배욕을 드러내는지.잠시 후, 샤워를 마친 권제하가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꺼내 그녀의 머리맡에 내려놓았다.한이설은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가린 뒤 서류를 바라보았다.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유럽 신경 재활 공동 프로젝트 책임자 변경 통보’“세아가 내일 미국에서 돌아와.”권제하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유씨 메디컬과 3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의료 인수합병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어. 세아가 그룹에 들어오면서 이 프로젝트를 직접 맡고 싶다고 하더군. 네가 맡은 업무를 정리해서 넘겨줘.”한이설은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말하는 프로젝트는 그녀가 700일 넘게 공들여 이끌어 온 일이었다. 더구나 핵심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스위스 로잔에 설립한 음파 신경 재생 연구소의 3년 한시적 사용권이 걸려 있었다.3년 전, 아버지 한진국은 해상 페이퍼컴퍼니 싱하이 투자의 악의적인 공매도 공격으로 한씨 건설이 무너진 뒤 분식 회계 혐의로 기소되어 수감됐다.구치소 지정 병원에 있던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어머니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당시 막 S그룹의 실권을 장악한 권제하에게는 유럽 의료 기업 인수에 필요한 연구소 사용권이 필요했다. 한이설에게는 아버지를 지키고, 한씨 건설을 무너뜨린 배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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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S그룹 본사 소회의실.한이설 앞에는 2년 넘게 공들여 완성한 유럽 신경 재활 공동 프로젝트의 자료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직접 준비한 핵심 자료 전부였다.회의실 문이 열리고 박영숙 이사장과 유세아가 들어섰다. 박영숙은 S그룹 복지재단 이사장이자 권제하의 친모였다. 유세아는 유씨 메디컬의 외동딸이자 새로 영입된 해외사업 전략이사였다.“한 비서, 일찍 나왔네.”박영숙은 상석에 앉으며 한이설을 힐끗 쳐다봤다.“오늘은 세아가 핵심 프로젝트를 인수하는 첫날이야. 미리 확실히 해 둘 게 있겠지. 3년 전 네 아버지가 분식 회계로 회사를 부도내고 수감되지 않았다면, 네가 여기서 비서 노릇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 거야. 세아는 와튼스쿨을 졸업한 인재이자 유씨 메디컬의 후계자야. 자료를 넘긴 뒤에는 옆에서 잘 보좌해. 오래 일했다고 텃세 부릴 생각은 말고. 알겠어?”회의에 참석한 직원들 앞에서 한이설을 죄를 갚기 위해 회사에 남은 사람처럼 깎아내리는 말이었다.한이설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이사장님, 인수인계는 그룹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습니다.”“어머님, 너무 엄하게 말씀하지 마세요. 이설 언니도 그동안 제하 오빠 곁에서 고생 많았을 텐데요.”유세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이설 앞으로 다가왔다.“이설 언니, 이제 이 프로젝트는 제가 맡게 됐어요. 사용권 관련 자료도 전부 준비해 주신 거죠? 꼼꼼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해요.”유세아는 두 손을 내밀어 서류철을 받으려 했다.한이설이 서류철을 건네는 순간, 유세아가 갑자기 그것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날카로운 금속 모서리가 한이설의 오른손등을 깊게 긁고 지나갔다.“아!”손등에 길게 상처가 나며 피가 흘러내렸다. 붉은 피가 인수인계 목록 위로 떨어졌다.한이설이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기도 전에 유세아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서류철을 탁자에 떨어뜨린 그녀는 뒤로 물러나며 눈가를 붉혔다.“이설 언니…… 프로젝트를 넘기기 싫은 마음은 이해해요. 그래도 서류를 건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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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블루 다이아몬드에 담긴 침묵값
오후 1시 30분. S그룹 본사.한이설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오른손등의 거즈는 셔츠 소매에 가려져 있었다.그녀는 자리에 앉아 오후에 예정된 프랑스 두마스 그룹과의 계약 자료를 정리했다. 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한 비서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신 걸 확인하시고 부회장실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알겠습니다.”이설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부회장실 안에서 권제하는 오후 이사회 안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만년필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었다.그의 눈길이 이설의 얼굴을 지나 오른손등에 감긴 거즈에 머물렀다.“손은 좀 어때?”“병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가벼운 상처라 업무에는 문제없습니다.”이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권제하는 그녀의 태도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혼자 삼키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따라와.”부회장실 안쪽의 숨겨진 문을 열자 개인 휴게실이 나타났다. 권제하는 소파 옆 수납공간에서 남색 벨벳 보석함을 꺼냈다.“와서 앉아.”이설이 소파 끝에 앉자 그가 보석함을 열었다.안에는 짙고 영롱한 푸른빛을 뿜는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8캐럿의 희귀한 수레국화색 다이아몬드가 백금 장식에 세팅된 고급스러운 작품이었다.이설이 잠시 목걸이를 바라보는 사이, 제하는 그것을 꺼내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그가 몸을 숙여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잠금장치를 채우는 손길은 서툴지만 조심스러웠다. 차가운 펜던트가 쇄골에 닿았다.그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아는 어릴 때부터 유씨 집안에서 귀하게 자랐어.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고. 원래 좀 여린 애야. 지금 그룹과 유씨 메디컬이 3천억 원 규모의 인수합병을 추진 중이야. 그러니 오전 일은 그냥 넘어가 줘. 회사에서도 세아한테 웬만하면 맞춰 주고.”이설은 쇄골 위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그래서 자신을 휴게실로 불러 목걸이까지 걸어 준 거였다.자신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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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 곁에 선 다른 남자
부회장실 밖에서 이어지던 대화는 20분쯤 지나서야 끝났다.박영숙과 유세아가 회의실로 이동하는 소리가 멀어지자, 휴게실은 다시 조용해졌다.한이설은 소파에서 일어나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풀었다.보석함에 넣어 가방 안쪽에 챙긴 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휴게실을 나섰다.오후 3시. S그룹 본사 대회의실.두마스 그룹과의 해외 인수합병 계약 체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프랑스 측 회장과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권제하는 최종 프랑스어 계약서에 서명하려던 참이었다.특별 초청석에는 유세아가 앉아 있었다.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최종 계약서에는 유세아가 손을 쓴 흔적이 있었다.그녀는 전날 두마스 측 통역사를 매수해 제12조 부속 합의서의 법률 용어와 자산 평가 기준을 바꿔 놓았다.그대로 서명하면 S그룹은 두마스 계열 페이퍼컴퍼니에 300억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했다.더 큰 문제는 계약서의 1차 검토 책임자란에 한이설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계약이 체결되면 그녀가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상황이었다.“권 부회장님, 이견이 없으시다면 서명하시지요.”두마스 회장이 만년필을 건넸다.권제하가 펜을 받아 서명란에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이설이 들어섰다. 손에는 프랑스어 계약서와 검토 자료가 들려 있었다.회의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유세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이설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계약 체결식을 방해하겠다는 거예요? 제하 오빠, 경호팀 불러서 내보내세요!”권제하는 펜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리고 이설을 바라봤다.이설은 유세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두마스 회장을 향해 유창한 프랑스어로 입을 열었다.“회장님, 서명하시기 전에 제12조 부속 합의서를 다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기존에 합의한 내용과 최종본의 조건이 다릅니다. 특히 자산 평가액의 차액을 보전하는 조항이 일방적으로 수정됐고, 산정 기준도 30%나 높아졌습니다. 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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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남자의 위험한 제안
서울성모병원 VIP 복도.권제하의 시선은 한이설의 허리에 얹힌 윤재이의 손에 고정돼 있었다. 표정은 싸늘했다.이설은 그의 시선을 느끼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윤재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선생님, 감사합니다. 약도 받았으니 먼저 가 볼게요.”그녀는 곧장 제하와 일행에게 사무적으로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30분 뒤, 서울성모병원 지하 VIP 주차장.수석 보좌관의 연락을 받고 나온 이설은 검은색 마이바흐 뒷좌석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짙은 시더우드 향이 감돌았다. 권제하는 재킷 단추를 풀고 좌석에 기대어 있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윤재이가 이설의 허리를 감싸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 역시 유세아와 함께 있었으니, 그녀에게 무슨 관계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손은 어떻게 됐어?”“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았습니다. 약만 제때 바르면 된다고 했어요.”이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제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청담동 부티크로 가.”“부회장님, 지금은 퇴근 시간이…….”“내일 저녁 그룹 창립 50주년 기념 아시아·태평양 의료 전략 포럼 만찬이 있어. 수석 비서인 너도 참석해야 해.”그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드레스부터 고르자.”***20분 뒤, 두 사람은 청담동의 한 고급 부티크에 도착했다.2층 VIP 살롱에는 뜻밖에도 유세아가 먼저 와 있었다. 새하얀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그녀 주변으로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매장 점장인 박 씨는 유씨 집안과 친척 관계였다. 제하를 발견하자 곧장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권 부회장님, 오셨습니까? 세아 아가씨도 내일 만찬에 입으실 드레스를 고르고 계셨습니다.”“제하 오빠, 왔어요?”세아가 반갑게 다가왔다. 그러다 이설을 발견하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이설 언니도 드레스 고르러 왔어요?”제하는 대꾸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매장에 진열된 드레스들을 가리켰다.“저쪽에 있는 드레스 전부 한 비서에게 가져다줘. 입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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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0억 핑크 다이아몬드의 주인
다음 날 오전, 한이설의 아파트.거실 한쪽에는 전날 부티크에서 가져온 샴페인 골드 드레스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이설은 포장조차 뜯지 않았다.오전 10시, 초인종이 울렸다.권제하의 수석 보좌관이 스타일리스트 두 명과 함께 찾아왔다. 손에는 드레스가 든 상자와 흉터 연고가 들려 있었다.“한 비서님, 부회장님께서 어젯밤 유럽 계좌 문제를 처리하신 뒤 파리에서 급히 공수하신 드레스입니다. 오늘 저녁 포럼 만찬에 입으라고 하셨습니다.”이설은 상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안으로 들였다.***저녁 6시.이설은 은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아파트를 나섰다.오른손등의 상처에는 피부색과 비슷한 의료용 드레싱이 붙어 있었다.아파트 앞에는 마이바흐가 대기하고 있었다.뒷좌석에 오르자 권제하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이 이설에게 잠시 머물렀다.차가 호텔을 향해 출발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먼저 입을 연 것은 제하였다.“어제는 미안해.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서 급하게 나가느라 계산을 맡기는 걸 깜빡했어.”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어제 널 도와준 남자 말이야. 심태주라고, 월가에서 돌아온 놈이야. 수단이 좋지 않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니 가까이하지 마. 가능하면 접촉도 피하고.”어젯밤 보좌관에게 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받은 뒤였다.심태주가 이설의 드레스까지 사 줬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이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예의 바른 대답이었지만, 그뿐이었다.제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왼손을 감싸 쥐었다.이설은 손을 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호텔에 도착했다.***밤 8시.신라호텔 대연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한 재계 인사와 언론사 기자들로 붐볐다.박영숙은 유세아와 함께 원로 이사진에게 둘러싸여 있었다.제하가 입장하자 그녀는 곧장 세아의 팔을 끼고 다가왔다.“제하야, 이제 왔구나.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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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계약이 끝나면, 남이었다
순간, 연회장이 술렁였다.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하객들 사이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이설은 그 자리에 선 채 제하를 바라봤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와 자신을 잡은 그의 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오랫동안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노력을 빼앗고,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했던 남자.그런 그가 지금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했다.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만찬이 끝나기도 전에 서울의 경제계와 사교계는 발칵 뒤집혔다.‘S그룹 권제하 부회장,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결혼 3년 차 아내 최초 공개! 200억 원 상당의 핑크 다이아몬드로 아내의 정체 밝혀!’기사는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와 SNS를 장악했다.박영숙 이사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그룹 원로들까지 그날 밤 권제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만찬이 끝나자 제하는 이설을 데리고 호텔 최고층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방에 들어선 그는 보타이를 풀며 이설을 돌아봤다.“오늘 오래 서 있었잖아. 먼저 씻고 쉬어. 아까 술도 두 잔이나 마셨으니 속이 불편할 거야. 북엇국도 준비해 뒀어.”“네.”“나는 복도 끝 전략실에서 당숙 어른들과 인수합병 문제를 논의하고 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이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왼손 약지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밤 11시 30분쯤, 직원이 북엇국과 따뜻한 홍삼차를 가져왔다. 홍삼차는 제하가 마실 것이었다.이설은 잠시 망설이다 쟁반을 들었다.그에게 직접 전해 주고 싶었다. 오늘 무대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한 이유를, 짧게라도 듣고 싶었다.그녀는 복도 끝 전략실로 향했다.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좁은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제하야, 솔직히 말해 봐라. 오늘 그 귀한 핑크 다이아몬드까지 한이설 손에 끼워 준 게 설마 진심이냐? 한진국 그 범죄자의 딸에게 마음이라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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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처음으로 내 전화를 끊은 여자
새벽 12시 30분.권제하는 당숙 권태성을 돌려보내고 전략실을 나섰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대화에 미간을 누르며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복도 한쪽 장식대에는 식어 버린 홍삼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객실 문을 열자 어둠과 적막이 그를 맞았다.평소라면 이설이 늦게 돌아오는 그를 위해 작은 조명 하나쯤은 켜 두었을 시간이었다.게다가 오늘은 달랐다.그는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 이설을 자신의 아내라고 선언했다. 권씨 가문의 안주인에게만 허락된 200억 원짜리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도 직접 끼워 주었다.그녀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한이설?”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욕실과 드레스룸까지 확인했지만 이설의 흔적은 없었다. 오늘 입었던 드레스와 주얼리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제하는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그 순간,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열린 검은색 벨벳 케이스 안에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놓여 있었다.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제하는 반지를 집어 들었다.백금 밴드 안쪽과 다이아몬드 받침대에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그는 낮에 이설의 오른손등에 드레싱이 감겨 있던 걸 떠올렸다. 반지를 빼다가 상처가 다시 벌어진 모양이었다.반지를 빼는 데 그만큼 애를 썼다는 뜻이었다.제하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지난 3년간 이설은 한 번도 그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회사에서도 차갑게 굴더니, 사람들 앞에서 아내로 인정받고도 반지를 빼놓고 떠났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설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통화가 연결됐다.“한이설, 너 지금 어디야?”제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누가 마음대로 호텔을 나가도 된다고 했어? 반지는 왜 빼놓은 거야? 무슨 뜻이지?”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내 이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호텔 방이 답답해서 몸이 좀 안 좋았어요. 먼저 한강 아파트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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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혼은 네 마음대로 안 돼
새벽 1시 30분.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권제하는 검은 셔츠 차림으로 거실에 들어섰다.밤늦은 시간인데도 한이설은 잠들지 않고 소파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그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제하는 곧장 소파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한이설, 설명해 봐. 오늘 사람들 앞에서 네가 내 아내라고 공식 발표했는데, 돌아서자마자 반지를 빼놓고 호텔을 나와? 무슨 뜻이야?”이설은 반지를 한 번 내려다본 뒤,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두 묶음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한쪽은 수석 비서 업무 인수인계 서류, 다른 한쪽은 3년 전 선대 회장 입회하에 체결한 비밀 결혼 및 직무 수행 계약서였다.“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밟는 것뿐이에요.”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계약도 이제 반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유럽 의료 인수합병에 필요한 연구소 기술 사용권도 확보했고, 오늘 포럼에서 부회장님과 부부 행세까지 했으니 외부에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이설의 시선이 반지에 머물렀다.“더는 이런 보여 주기식 행동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반지도 원래 제 것이 아니니 돌려드리는 게 맞고요.”권제하는 눈앞의 계약서를 내려다봤다.그녀가 오늘 밤 전략실 앞에서 자신과 당숙의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식 석상에서 아내로 인정했고, 권씨 가문의 상징인 가보까지 손에 끼워 주었다.그런데 이설은 아무런 감동도 없는 얼굴로 계약 종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더는 필요 없다고?”제하가 짧게 웃더니 몸을 숙였다. 그의 손이 이설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한이설, 똑똑히 들어. 이 결혼이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는 처음부터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어. 내 허락 없이는 반년이 지나든 3년이 지나든 이혼 못 해.”턱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설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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