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사람들은 S그룹의 재벌 3세 권제하를 냉혹하고 절제된 남자라 말한다. 하지만 3년간 비밀 결혼 생활을 이어 온 한이설은 알고 있었다. 밤이 되면 그는 누구보다 뜨겁고 집요한 남자라는 걸. 그러던 결혼 3주년 기념일, 그의 첫사랑이 귀국했다. 술에 취한 제하는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이설을 안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를 찾아 사후피임약을 먹이라고 명령했다. 그때 이설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가짜 신분과 죽음까지 꾸며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졌다. 4년 후, 천재적인 아이와 함께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표로 돌아온 이설. 그녀 앞에 나타난 제하는 더 이상 오만한 재벌이 아니었다. “이설아, 이혼도 사직도 내 허락 없이는 안 돼. 그러니까 제발…… 정부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 줘.”
Ver más다음 날 오전 8시.전날 밤 권제하가 결혼 3년 차 아내를 공개한 소식은 주요 언론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S그룹 권제하 부회장, 창립 50주년 포럼서 아내 공개! 200억 원짜리 핑크 다이아몬드의 주인은?’기사에는 무대 위에서 한이설의 손을 잡은 권제하와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10캐럿 핑크 다이아몬드가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같은 시각, 권제하가 보낸 경호원들이 한이설의 짐을 청담동 펜트하우스로 옮겼다. 이설은 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전용 차량을 타고 S그룹 본사로 향했다.그런데 본사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소란이 눈에 들어왔다.수십 명의 기자와 파파라치가 로비 앞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큼지막한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재벌가 사모님 한이설, 배은망덕한 딸! 200억 다이아몬드를 끼고 호의호식하면서 중병에 걸린 아버지와 동생은 외면!]현수막 아래에는 금붙이를 잔뜩 걸친 중년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있었다.“기자 양반들, 제발 우리 집안 사정 좀 들어 보세요! 남편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병원에 누워 있는데, 딸이라는 애는 재벌가에 시집가서 3년 동안 사모님 노릇만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안중에도 없고, 친정에는 돈 한 푼 보내지 않았다니까요!”한이설의 계모 김미란이었다.그 옆에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금목걸이를 걸친 스물네 살 청년이 앉아 있었다. 김미란이 데리고 온 아들 한준우였다.준우는 전날 뉴스에서 이설의 손에 끼워진 핑크 다이아몬드를 본 뒤 밤새 어머니와 일을 꾸몄다. 불법 도박장에서 빌린 사채 8억 원을 갚을 길이 막막하던 참이었다.그에게 누나의 200억 원짜리 반지는 그야말로 구세주나 다름없었다.“왔다! 한이설 나왔다!”준우가 이설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짓이겨 끄고 출입 게이트 앞을 가로막았다.“어이쿠, 우리 누나 오셨네! 재벌가 사모님 되더니 이제야 얼굴을 비추시는구만?”김미란도 서둘러 다가와 이설의 바짓단을 붙잡으려 했다.“이설아! 네 아버지가 병원에서
새벽 1시 30분.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권제하는 검은 셔츠 차림으로 거실에 들어섰다.밤늦은 시간인데도 한이설은 잠들지 않고 소파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녀는 그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제하는 곧장 소파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한이설, 설명해 봐. 오늘 사람들 앞에서 네가 내 아내라고 공식 발표했는데, 돌아서자마자 반지를 빼놓고 호텔을 나와? 무슨 뜻이야?”이설은 반지를 한 번 내려다본 뒤,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두 묶음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한쪽은 수석 비서 업무 인수인계 서류, 다른 한쪽은 3년 전 선대 회장 입회하에 체결한 비밀 결혼 및 직무 수행 계약서였다.“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심술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밟는 것뿐이에요.”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계약도 이제 반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유럽 의료 인수합병에 필요한 연구소 기술 사용권도 확보했고, 오늘 포럼에서 부회장님과 부부 행세까지 했으니 외부에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이설의 시선이 반지에 머물렀다.“더는 이런 보여 주기식 행동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반지도 원래 제 것이 아니니 돌려드리는 게 맞고요.”권제하는 눈앞의 계약서를 내려다봤다.그녀가 오늘 밤 전략실 앞에서 자신과 당숙의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였다.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식 석상에서 아내로 인정했고, 권씨 가문의 상징인 가보까지 손에 끼워 주었다.그런데 이설은 아무런 감동도 없는 얼굴로 계약 종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더는 필요 없다고?”제하가 짧게 웃더니 몸을 숙였다. 그의 손이 이설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한이설, 똑똑히 들어. 이 결혼이 언제 시작되고 끝날지는 처음부터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어. 내 허락 없이는 반년이 지나든 3년이 지나든 이혼 못 해.”턱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설은 그의
새벽 12시 30분.권제하는 당숙 권태성을 돌려보내고 전략실을 나섰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대화에 미간을 누르며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복도 한쪽 장식대에는 식어 버린 홍삼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객실 문을 열자 어둠과 적막이 그를 맞았다.평소라면 이설이 늦게 돌아오는 그를 위해 작은 조명 하나쯤은 켜 두었을 시간이었다.게다가 오늘은 달랐다.그는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수많은 사람 앞에 이설을 자신의 아내라고 선언했다. 권씨 가문의 안주인에게만 허락된 200억 원짜리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도 직접 끼워 주었다.그녀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한이설?”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욕실과 드레스룸까지 확인했지만 이설의 흔적은 없었다. 오늘 입었던 드레스와 주얼리는 그대로 놓여 있었다.제하는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그 순간,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열린 검은색 벨벳 케이스 안에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놓여 있었다.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제하는 반지를 집어 들었다.백금 밴드 안쪽과 다이아몬드 받침대에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그는 낮에 이설의 오른손등에 드레싱이 감겨 있던 걸 떠올렸다. 반지를 빼다가 상처가 다시 벌어진 모양이었다.반지를 빼는 데 그만큼 애를 썼다는 뜻이었다.제하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지난 3년간 이설은 한 번도 그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회사에서도 차갑게 굴더니, 사람들 앞에서 아내로 인정받고도 반지를 빼놓고 떠났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설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통화가 연결됐다.“한이설, 너 지금 어디야?”제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누가 마음대로 호텔을 나가도 된다고 했어? 반지는 왜 빼놓은 거야? 무슨 뜻이지?”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내 이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호텔 방이 답답해서 몸이 좀 안 좋았어요. 먼저 한강 아파트로 돌아와
순간, 연회장이 술렁였다.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하객들 사이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이설은 그 자리에 선 채 제하를 바라봤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와 자신을 잡은 그의 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오랫동안 자신을 외면하고,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노력을 빼앗고, 상처를 입어도 모른 척했던 남자.그런 그가 지금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했다.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만찬이 끝나기도 전에 서울의 경제계와 사교계는 발칵 뒤집혔다.‘S그룹 권제하 부회장,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결혼 3년 차 아내 최초 공개! 200억 원 상당의 핑크 다이아몬드로 아내의 정체 밝혀!’기사는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와 SNS를 장악했다.박영숙 이사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그룹 원로들까지 그날 밤 권제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만찬이 끝나자 제하는 이설을 데리고 호텔 최고층 스위트룸으로 향했다.방에 들어선 그는 보타이를 풀며 이설을 돌아봤다.“오늘 오래 서 있었잖아. 먼저 씻고 쉬어. 아까 술도 두 잔이나 마셨으니 속이 불편할 거야. 북엇국도 준비해 뒀어.”“네.”“나는 복도 끝 전략실에서 당숙 어른들과 인수합병 문제를 논의하고 올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이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왼손 약지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밤 11시 30분쯤, 직원이 북엇국과 따뜻한 홍삼차를 가져왔다. 홍삼차는 제하가 마실 것이었다.이설은 잠시 망설이다 쟁반을 들었다.그에게 직접 전해 주고 싶었다. 오늘 무대에서 자신을 아내라고 선언한 이유를, 짧게라도 듣고 싶었다.그녀는 복도 끝 전략실로 향했다.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좁은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제하야, 솔직히 말해 봐라. 오늘 그 귀한 핑크 다이아몬드까지 한이설 손에 끼워 준 게 설마 진심이냐? 한진국 그 범죄자의 딸에게 마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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