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 둘이 처음 만난 장소는 다름 아닌 청담동의 한 고급 카페였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무명 모델에 불과했던 아영으로서는 감히 발을 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우아하고 서늘한 공간. 스폰서를 구한다는 익명의 게시글을 보고, 짚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면접에 응했던 날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배루퉁한 유부남일 수도 있었고, 거북한 나이의 할아버지일 수도 있었다. 자존심도 수치심도 모두 팽개치고 그녀를 이 장소로 이끈 것은 당장 내일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 밀린 월세와 팍팍한 현실뿐이었다. “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야, 이미 온 거... 그냥 얼굴만 보고 가는 거야. 딱 얼굴만.” 아영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가락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렸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연습을 하던 중, 고급스러운 룸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남자.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 고급 수트와 슬쩍 보이는 명품 시계, 깔끔하게 넘겨 올린 머리, 그리고 차갑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 아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징그러운 노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젊고 완벽한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 막혀서 늦었네요.” “아... 괜찮아요! 저도 방금 왔는걸요.” 이안은 무심한 눈빛으로 건너편 의자에 앉더니, 자켓 안주머니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계약서 한 통을 꺼내 아영에게 건넸다. 구절구절 길게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태도였다. “이거 보고 조건이 괜찮으면 바로 계약 진행하죠.” “네? 아, 네...” 아영은 다짜고짜 건네진 계약서를 얼떨결에 받아 들고 서둘러 내용을 훑어보았다. 법률 용어와 어려운 단어들이 빼곡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명확했다. '이안의 결혼이 진행되면 즉시 파기될 것', '서로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영역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 그것이 이 계약의 가장 중요한 뼈대였다. “내용... 괜찮은 것 같아요.”
Zuletzt aktualisiert : 2026-10-04 Mehr lesen